故 백남기 농민 사태에 대한 신대원 학우회의 입장

 故 백남기 농민 사태에 대한 신대원 학우회의 입장

   
 

한 사람이 죽었다. 그는 사랑받는 남편이요 존경받는 아버지였다. 그는 농사짓는 이들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앞장서 싸우다가 물대포를 맞았고, 그대로 의식을 잃었고, 깨어나지 못한 채 317일 동안 가만히 누워 있다가, 끝내 사망했다. 누구도 이 일이 자기 책임이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울고 있다.

故 백남기 농민과 그의 가족들 곁에서 우리 장신대 신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모인 그리스도인들이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 이끌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이룬 교회가 예수님을 머리로 삼아 가르침을 실천하며 보여주신 삶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대답대로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렇기에, 사그라진 생명을 눈앞에 두고 예수님의 삶을 떠올려 본다. 그분은 소외받는 이들을 부르시고(막 10:49),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이시며(눅 18:16), 멸시받는 이들과 함께 잡수시고(마 9:10), 죽음과 슬픔을 당한 이들 앞에서 우신다(요 11:35). 스스로가 아닌 세상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다른 이들을 위해 싸우다 죽었으나 보상도 사과도 받지 못한 한 그리스도인과 그의 가족을 위로해 주실 것이다. 우리도 신학생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삶을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설문을 통해 학우들의 생각이 놀라울 정도로 다양함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우리를 한 분 아래에 품으시고 더불어 신학하게 하심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서로 다르기에 각각 다른 지체가 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예수님의 눈이 된 자는 고통당하는 이를 찾고, 발이 된 자는 그에게 다가가며, 손이 된 자는 약을 바르고 어루만져 위로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를 외면하는 눈, 피하는 발, 막는 손은 예수님의 지체가 아니다.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에게 사마리아인이 친구가 되어줌 같이 우리도 그러하라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신학생이자 그리스도인의 신분으로 故 백남기 농민의 분향소를 찾아 상처받은 유가족들을 위로하려 한다. 우리는 주님께서 사랑하라 하셨기에 그들을 위로할 것이다(요 13:34).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는 말씀은 너무나 명확하다. 한 시대에 같은 국가공동체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있으면서 쓰러진 이와 함께 쓰러지지 못했다면, 함께 울어주는 것은 최소한의 신앙이요 양심이다. 이에 우리의 생각을 밝히며 뜻 있는 학우들이 함께 기도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우리를 통해 흘러가기를…….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미가 6장 8절.

2016년 10월 7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대원 원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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