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가 말하는 7가지 죄성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

 간디가 말한 7가지 죄성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우리가 잘알고 있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생애중 가장 중요한 시기가 1930년대이다. 이때부터 간디는 인도 국민들을 위한 독립운동과 더불어, 영성운동을 이끈 쉐바그람 아슈람을 방문하여, 이곳에서 정신적, 지적교양을 수양하고, 간디가 인도 정신운동의 중심이 되도록 한 곳이기 때문이다. 



아슈람의 교육내용은 첫째가 무력이나 물리력에 의존하여 운동 할 것이 아니라, 진리와 비 폭력을 통하여 스스로 획득 토록하는 것, 둘째는 진리파지와 비폭력 하힘사 정신을 개인에 국한 시키지 말고 대중으로 확장 시켜 나갈것, 셋째 종교의 긍극적 목표인 구원도 개인에 두지 말고 사회의 공익에 두어야 한다는것, 넷째 가난한 사람들과 청빈을 기반으로 한 선한 요소들이 살아 날 

수 있도록 생명력을 작동케 하는 것, 다섯째 행동을 함에 있어서 구체적 상황 속에서 건설적인 프로그램을 펼쳐 가되 항상 보편적인 기준을 가지는 것이 진리임을 인지케 하는것, 여섯째 목적과 수단은 모두가 중요함을 망각하지 말 것, 일곱째 자기의 이익을 버리고, 사회 공공에 공헌 할 수 있는 실천적 일군이 되어야 한다는 것들이 간디가 바라는 운동의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초적 기반위에서 교육을 받고, 수련을 한 간디가, 1930년대에 인도의 사회 현실을 보고 악이라고 선언한 것이 7 가지 사회악이다. 이 7 가지 사회악은 라즈 갓이란 인도의 국립묘지인, 간디의 묘소앞에 둘러처 세워진 화강암 돌 벽에 세겨저 있는 말이다.

1. 원칙과 원리가 없는 정치 
정치는 현실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살아있는 생명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롭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이러한 생동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꾸준히 정책개발을 하고, 그 정책이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 되고, 항상 탄력과 유연성을 갖고 대화와 협조를 하는 상생의 정치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곡해와 오용,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힘의 대결, 상대방의 비방과 흠집내며, 당리당락에 미친 자들이 하는 정치가 바로 될 수 있는가? 오래 전에 간디가 한 이 말이, 오늘 한국 정치판을 보고, 꾸짓는 듯하여 부끄럽기 한이 없다. 

2. 도덕 즉 책임윤리가 빠져버린 상업 
상업의 원리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윤을 내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업이나 일을 하여 돈을 벌드라도 상업의 윤리가 있고, 상법이 있다. 이러한 상업활동인 상업은 그 나라의 재정적 수입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경비를 충당하는 기본이라 할 수 있다. 양심을 버린 행동으로 번 돈을, 못 본체 하며 받아쓴다면 그 정부나 사람도 썩은 것이다. 

“무조건 서울을 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에 따라 기업가들이나 국민들은 상업을 하고 있지 않는가? 탈세를 교모하게 하고, 상업의 윤리나 도의는 찾아보려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이 한국이 아닌가? 보기 좋게 하려고, 많은 양을 만들어 내려고, 사용금지된 화학 약품을 사용하는 식품제조업자들과 농수산물을 생산하는 재배자들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3. 노동이 없는 부 
오늘날 경제적 부의 창출 과정이 초기 자본주의 시대와 현대는 다소 다르지만, 지금은 정신적 노동이 더 요구되는 시대이다. 우리 국민들의 정신상태는 댓가 없는 공돈을 너무 좋아 한다. 쉽게 돈을 벌려고 하고, 한시간 노동을 하고 10시간의 대금을 달라고 때를 쓴다. 그러나 선진국들처럼 흘린 땀의 댓가 만큼은 반드시 찾는 정직함이 있고, 노동이 없는 부의 축적은 안된다는 말이다. 우리의 노동법이 있고, 무노동 무임금 의 조항도 있으나, 연대 파업을 하여 주변과 업체에 얼마나 많은 재산적 손실을 낳게 하는가?

회사의 재정적 손실을 파업한 노조원에게 부담을 시켜야 한다. 그러나 손해을 당한 회사나 기업에게만 손실을 안도록 하고, 노동하지 않은 파업기간에도 임금을 달라고 하는 것이 한국 노조집단의 범법적 행위인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부동산 투기, 빠징꼬, 복권, 주식 투자, 도박등등 노동없이 돈 벌이 하는 것들에, 넉 빠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반드시 “땀 흘린 만큼의 댓가만 바라는 정신”이 절실 할 때이다. 

4. 인격이 없는 교육 
참다운 교육은 바람직한 인격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교육의 목표이기도 하다. 교육은 차가운 두뇌에 지식만 체워 넣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갖고 행동하고 살아 가도록 돕는 일이다. 현실을 보면 교육의 면에서는 교실 붕괴다, 교사들이 노조를 만들어 붉은 띄를 머리에 매고 거리로 뛰처나와 힘의 자랑을 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고함을 친다. 사교육비가 천정부지로 뛰어도 삐뚤어진 교육은 바로 잡지를 못하는 현실을 보고도 손을 든 상태가 이 한국의 교육이요 정책이다. 

이공계의 지원이 줄고, 편한 일을 할 전공과목은 넘쳐나고, 스승이 스승의 대접도 못 받는 교육의 풍토가 아닌가? 교육이 어떠한 인간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나라의 발전이나, 자신의 장래가 보장되고, 경쟁을 뚫고 나가 풍요로운 삶이 될 것인데도, 인적 자원이며 시설, 교사들의 의욕상실로 인하여 교육이 백년대계가 아니라, 조 삼모사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앞으로의 교육은 건전한 정신과 투철한 이념, 비판능력이 거세된 기술이나 지식 보다는 참 인간으로의 성품과 지적인 면을 고루 갖춘, 신(新) 지식인으로 가르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5. 인간성 없는 과학 
과학은 인간들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모든 유용하고 편리한 기계와 생활용품들을 만들어 사용하는 분야의 학문이다. 이러한 이기들을 만들면서, 또 이러한 기구들을 사용하면서 생활환경을 오염시키고, 오존층을 파괴하여 이상 기후 때문에 재앙을 불러 오고 있다. 이는 국가와 민족 사이, 종교간의 분쟁에 사용되는 무기들은 지구상의 인구의 수십배를 죽이고도 남는 것도, 과학이 가져다 준 필요악이다. 노벨도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하여 평화와 건설적인 면에 사용하기를 바랐으나, 오늘은 상대를 죽이는 무서운 파괴적 무기가 아닌가? 하나 뿐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또 국가와 민족, 우리자손들의 장래를 위해 사람을 위한 과학적 지식을 사용하여, 다 같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핵 기술의 개발과 활용, 생명공학, 유전공학, 통신기술 등도 인간의 생명과 존재를 위한 살림살이의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6. 양심이 없는 쾌락 
인간의 마음에는 욕구가 있다. 이 욕구는 사람들이 육체의 건강 유지와 보존을 위한 생리적인 것, 사람과 공생으로 더불어 살기위한 사회적인 것, 개인의 기호와 흥미에 관한 것, 등이 있는데, 이 욕구가 달성되어 꿈이 이루어지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웃을 도와주고 느끼는 마음, 배 고픈 이를 먹여주고 느끼는 기쁨, 외로운 사람의 삶에 벗이 되어 주고 느끼는 기쁨, 사회나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느끼는 즐거움 등은 휴머니즘이 있는 즐거움이다. 양심이 없는 쾌락은 병적인 면이 있다. 범법적인 것이다. 이는 야생적인 것이기도 하다. 다른 것은 제외 하고라도 성적인 면에서 보면, 과거에는 자손을 낳기 위한 것 이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쾌락을 위한 접촉한다. 이로 말미암아 불치병인 에이즈가 번창하여 매년 수백만명을 죽음으로 내 몰고 있다. 쾌락은 돈, 여자, 백단의 향기라 하지 만, 자신의 직업이나 일을 잊을 정도는 아니어야 한다. 

7. 희생이 없는 신앙 
종교는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고도 오랜 기간동안 존재 하지도 않았다. 많은 기간이 흐른 후 인간의 나약한 자신을 께닫고 전능한 힘이나, 초자연적 능력에 의지 하려는 자연물에 마음을 두려는 것이 종교심의 발로요, 그 초능력을 믿는 것을 신앙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독일 신학자 칼 바르트는 신앙을 인식, 신뢰, 고백이라고 하여 바르게 종교를 갖고 믿음을 지키라고 조언을 하였다. 교회라는 말도 헬라어로는 “에클레시아”로 이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말한다. 모이는 장소가 예배당이든, 산이든 비행기 안이든, 배 위든 가리지 않고 모이는 곳이 교회라는 말이다. 모든 종교는 하나의 초점을 향해 나가기 때문에 긍극적 목표를 같이 한다고 ‘떼 아르데 샤르뎅’은 말하였다. 종교에서의 희생이란 자신이 믿는 종교로 통하여, 자신이 얼마만큼의 육체적 노력으로 땀을 흘리며, 정신과 마음을 수양하며, 사회나 이웃에게 얼마큼의 봉사를 하였는가에 달린 헌신을 의미 한 것이다. 인간을 이용 하거나, 개인을 신으로 받드는 종교지도자나 교단은 개인적 사교이며, 바른 종교로 볼 수 없는 사기 집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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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으며 우리 한국사회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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