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승만 목사 한국 추모예식 열려

고 이승만 목사 한국 추모예식 열려

민족 화해의 제물이 되신 분

   
서울 연동교회당에서 열린 추모예배 광경

2015년 1월 15일(금) 한국인으로 일찍이 도미하여 미국장로교회와 세계교회의 지도자가 된 고 이승만 목사(Syngman Rhee/1931.5.25-2015.1.14)가 소천하였다. 그는 미국장로교회의 전 총회장으로 루이즈빌과 유니온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교수로도 사역하신 분으로 의전에 따라 격조있는 장례를 치를 수도 있었지만 평소의 유언대로 아주 조촐한 가족장으로 이국 땅에서의 여정을 끝내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다. 그러나 그의 유골은 유언대로 육신의 고향인 북한과 신앙적 고향인 남한, 행정적 고향인 미국에 각각 뿌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의 소천을 안타까워 하고 추억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과 그로부터 배움과 사랑을 받은 이들이 모여 한국의 추모예배로 1월  9일(월) 11시 서울의 연동교회에서 드렸다. 추운 날씨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400여 명)이 참석하여 숙연한 마음으로 평소 그 분의 체취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증언과 고인의 영상설교, 오랜 친구와 동지들의 회고, 육신의 동생 이승규 장로(소망교회)의 인사, 림인식 목사(전 총회장)의 축도와 참가자들의 헌화가 있었다. 참석자는 유의웅 목사, 홍성현 목사, 노정선 목사, 이삼열 박사, 안재웅 총무, 조성기 목사, 한국일 교수, 김도일 교수, 정종훈 교수, 배현주 교수, 정종훈 교수 등이 참여했다.   

   
목사님의 소천으로 한국교회에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이 예식의 집례는 이 추모 예식을 준비하고 주관한 PCK 총회장 정영택 목사가 설교는 전 총회장 손달익 목사가 했으며 고인의 약력 보고는 손춘식 목사(미국장로교 한국선교회 대표)가 조사는 미국 유학생 시절에 함께하며 PCUSA의 목사로 안수 받고 목회했던 노정선 박사(연대 명예교수) 추모사는 박상증(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박종화 목사(경동교회) 박원호 목사(유니온 신학교 한국 동문회장)와 미국 현지에서 장례를 직접 집례한 김정호 목사(아틀란타 한인교회)의 영상 인사가 있었다.

고 이승만 목사를 기억하는 분들의 하나같은 고백은 고인은 "따뜻하고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 분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결코 마음 상하지 않게 하는 포용력으로 일을 하시는 분이었다는 것이다. 또 자신이 민족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피해자로서 그것을 화해자의 신앙으로 승화시킨 분이라는 것이다. 그의 업적과 신학, 저술이 앞으로 연구되어 밝혀지겠지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화해는 자"의 신학으로 구체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고 이승만 목사의 동생 이승규장로(대덕 장로교회) 회고

실제로 버지니아 유니온 신학교에서 유학 중 당시 선교학 교수로 아시안센터 소장으로 있던 이 목사님과 만난 경험을 박상진 교수(장신대)가 국민일보에 회고하였는 데  이 목사님의 삶은 다섯 단어로 묘사하고 있다. 첫째 겸손이고 둘째는 열정이며 셋째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목사님은 소외되고 약한 자를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 없고  항상 긍휼과 자비로 살펴 주셨다는 것이다. 넷째는 비전이며 다섯째는 화해라고 쓰고 있다. 목사님은 막힌 담을 허시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를 도와 흑백 인종 간의 화해를 위해서 헌신하셨고, 남과 북의 화해를 위해 평생을 바치셨다고 한다. 

남북한 화해를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2015년 올 한해는 남북한 지도자들이 그 동안의 군사적 긴장를 종식할 이정표가 될 남북정상 회담을 형식과 내용,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열겠다는 선언들이 나왔다. 통일을 염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개신교의 교회연합회와 교단들의 신년하례회에서도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 한해를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들을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우리 PCK 교단은 이미 2년전부터 총회 정책으로 치유와 화해와 생명(치화생)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연차 별 프로그램들을 발표하고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이 내용들을 더욱 구체화하는 계획이 발표 되었다. 사실 이런 행사와 사업은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 동안의 일회성 행사와 프로그램 위주로 끝났던 전철을 밟지 말고 보다 실제적인 통일 논의의 공간을 확보하고 진전시키기 위하여 좀더 치밀한 준비와 세심한 관심을 기우려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렇게 올 한해의 시작과 함께 금방될 것 같은 풍성한 통일 논의들이 반가우면서도 걱정과 우려가 앞서는 것은 교회가 하는 일방적인 통일 논의의 위험성과 타성에 대한 과거의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논의들의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 방식이 전혀 다른 통일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대형교회의 지도자들 위주로 진행되는 내용없는 통일 기도회와 논의는 잘못하면 한 순간에 일과성 행사들로 끝나는 통일논의가 되거나 예전처럼 반핵, 반김과 같은 체제비난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http://www.1907reviv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636 (감상적 일과성 월요 통일기도회)
http://blog.daum.net/cjkim826/16873311 (교회와 사회단체의 아전인수격 통일기도회)

그런데 가운데 이승만 목사의 소천은 이 민족의 숙원인 평화통일을 위한 새로운 기풍으로 한 해를 열어야 하는 벽두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선각자적 삶을 살아오신 그 열정과 헌신을 이 민족의 제단에 다시 한 번 화해의 제물이 되게 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을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화해를 위한 다짐을 새롭게 결단하라고 하시는 일로 받아 드려야 할 것이다. 분단 70년을 지나면서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민족통일 논의를 진전시키고 공간을 열어가는 일에 대한 과제를 주신 것이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에서 화해의 사도로
이 목사는 북한 공산치하에서 1931년 출생하였고 목사였던 부친이 북한정권에 의하여 순교당하자 어머니와 여동생들을 둔채 동생과 월남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원수들에 대한 보복과 분단에 대한 적개심으로 젊은 혈기에 해병대 입대를 한다. 그리고 우연찮은 기회에 미국에 군 연수를 다녀온 후 보다 큰 배움과 도전을 위하여 다시 도미하게 된다.

도미하여 여러 대학에서 폭넓고 자유로운 미국의 지성과 신학의 학문적 분위기에서 성숙한 연마의 과정을 겪으면서 미국 국적의 자유로운 신분으로 북한을 30여 차례 방문, 부친과 모친의 묘소를 방문하고 여동생들을 만난다. 이렇게 그는 통일을 위한다면 원수까지도 끌어 안아야 한다는 성경의 말씀을 현실화 시키기 위하여 통일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젊은 시절의 감성적 반공주의 신앙에서 원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 인간적인 아픔과 감정들을 내려놓고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한 긴 걸음을 걷게 된다. 물론 이로 인한 오해와 박해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그는 또 미국장로교회에서 탁월한 화해혁과 업무 감각을 인정받아 중동 문제와 아시아 문제를 책임지는 고위직을 거친 다음 동양인이며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장로교회의 총회장과 북미 NCC-USA의 회장을 역임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 민주화 운동의 후견인으로 인권 운동과 해직교수 언론인들을 후원하는 모임을 주도하는 일을 통하여 한국의 민주화 소식을 전 세계의 교회로 전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증언은 이미 오재식 원장(전 월드비젼 회장)의 회고록 “나에게 꽃으로 다가오는 현장”(대한 기독교서회, 2012년 간, 219~226쪽) 에서 언급된 바 있는 데 "1975년 제 5차 WCC 총회(케냐 나이로비)를 계기로 한국의 민주화에 관심이 있는 각국의 대표단들이 제네바에서 긴급 회동(會同)을 하게 되고 캐나다의 김재준 목사와 이상철 목사, 독일의 장성환 목사, 이삼열 학생, 이승만 목사(PC-USA 아시아 담당 간사) 와 손명걸 목사(미국 UMC 아시아 담당 간사)  그리고 당시 유학 중이던 노정선 목사가 뉴욕의 한 지하실에서 기도하는 모임을 시작으로 해외 교회와 기독자들과의 네트워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모임의 결정에 따라 1975년 11월 7일 <한국 민주화를 위한 세계협의회>(World Council for Democracy in Korea)가 조직 되었고, 1977년에는 <한국 민주화 운동 기독교 동지회>(The International Council for the National Democracy of Korea;ICNDK, 일명 ‘민주동지회’)로 명칭이 바뀌어 불리게 되었으며 의장은 캐나다의 김재준 목사가, 총무는 WCC 국제부에 있는 박상증 목사가 담당했었노라고 오늘 추모예배의 조사에서도 언급하였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연평도 폭격, 천안함 사건 등을 통하여 남북은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금강산 관광 폐쇄와 개성공단의 철수, 위축으로 그 이전의 김대중ㆍ노무현 정부가 이룩한 최소한의 긴장완화와 평화기반들이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와 같은 분단국가였으나 통일을 이루어 금년으로 통일 25주년을 맞이하는 통일 독일의 니콜라이 교회당에서의 기도회을 너도나도 예를 들지만  배울 것을 제대로 배워야 할 것이다. 올해 우리 민족은 광복 70년과 함께 분단 70년을 맞는 하는 해인 데 독일은 이미 통일을 넘어 사회통합을 이루어내고 유럽의 중심국가로 재도약하고 있으며 이 일에 큰 기여를 한 독일교회의 역할과 경험은 여전히 분단 상황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독일은 분단 45년이 되던 해인 1990년 독일 민족의 재통일(Wiedervereinigung, 10.3)을 이루어냈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유발한 구동독 라이프치히 교회당에서의 월요기도회는 분단 독일의 통일에 기여한 독일교회들의 실제적 역할 중 하나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이 기도회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이전부터 서독의 교회는 동독의 교회와 함께 감금된 양심적인 지식인, 정치인들의 석방을 위하여 많은 재정을 아끼지 않고 지원했다. 이렇게 기도회와 더불어 보다 많은 실천적 행위들이 수반되였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양쪽의 교회는 양 체제하의 독일 민족에게 끊임없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교회에 대한 비전과 소망을 제시하는 역할을 감당했던 것이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의 종전 직후 분단되면서 교회까지 나뉘여 동-서교회는 그들의 분단을 초래한 나치 체제 하에서 교회가 철저히 항거하지 못하고 불의에 침묵한 일에 대해 회개하는 <슈투트가르트 죄책 고백>(Stuttgarter Schuldbekentnis, 1945.10) 채택하였고, 이를 계기로 신학적으로 이미 단일 교회를 형성했던 것이다.

1949년 동서독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전 독일의 교회는 하나의 조직을 유지하면서 <교회의 날>(Kirchentag) 행사를 양 지역을 교차하며 개최하였다. 교회의 이러한 교류와 협력은 베를린 장벽(1961)이 세워지고 육로가 완전 봉쇄된 1969년에야 중단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철의 장막’ 시기에도 양 지역의 교회는 에큐메니칼 교회연합을 통해 하나됨을 꾸준히 추구하였다. “칼을 쳐서 보습으로”라는 기치로 1981년 부터 동서 양 교회에서 매년 11월에 열흘간 집중적으로 전개된 <평화기원운동>(Friedensdekade)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며 라이프치히 성 니콜라이 교회당에서의 평화 월요기도회가 바로 그 출발이었던 것이다.

   
라이프니찌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당 전경

평화 통일은 분단의 고착 이후의 시간과 질곡 만큼이나 어렵고 원상 회복은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다. 이미 다음 세대들은 통일에 대하여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하나인 이 민족의 온전한 회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이런 민족 화해의 정신을 그 중심에서 이어가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부 자칭 반공주의자라는 이들의 북한 붕괴론, 남한주도의 통일론, 민간차원의 기획 박탈, 북으로 ‘삐라’ 날리기 등은 자제 되어야만 한다. 통일은 언제 어떻게 오는 지 알 수 없지만 교회는 끊임없이 통일을 위하여 화해와 대화의 기반을 조성하는 일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 이승만 목사의 추모예배는 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 특별한 인물의 생애에 대한 회상만으로 일종의 감성적인 우상화에 그쳐서는 안 된다. 분단은 우리 민족사의 아픔 만큼이나 오늘 우리에게도 잔존한 현실 문제들을 타계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결코 구호나 선전이 아니며 해도 좋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이 민족사의 질곡으로 남아있는 모순을 해결하는 궁극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국토만이 아니라 이념과 사회 문화의 분단과 상호 적대적 상황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민족적 역량의 낭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분단의 고착과 체제 유지를 위한 민주주의의 탄압, 언론의 자유 통제, 국가 보안법으로 인한 공안정국 조성과 그로 인한 물질적 정치적 반사 이익 챙기기라는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실질적인 논의와 노력이 바로 고 이승만 목사의 소천으로 우리 한국교회에 남겨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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