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회(1979년) 총회장
고 임택진 목사는 1916년 평안남도 중화에서 태어나 평양서 장신대를 나온 후 월남하여 경희대를 졸업한다. 1952년 제주노회서 목사 안수를 받고 피난민목회를 하시다가 1959년 청량리중앙교회에 부임해 1981년까지 시무하고 원로목사로 추대됐다. 1986년경 장신대 졸업반의 현장 목회실습 과목을 가르치시기도 하셨는 데 현장 목회 경험이 일천한 교수들이 부족한 면을 체워주시는 역할을 한다.
특히 총회장 재직은 1979년 으로 당시 고영근목사는 단양의 한 교회서 부흥회중 설교내용으로 구속되여 있었고 인명진목사는 청주에서 한 강연중 당시 YH사태에 대하여 말하다가 유언비어 죄로 구속 상태였다. 인목사는 당시 YH노조가 신민당사로 농성을 들어갈 때 이를 당대표에게 연락하는 중책을 맡은 바 있었다는 것이 훗날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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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당시 총회는 전도부 안에 설치된 총회 인권위원회 위원장 조남기목사 주최로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고영근 인명진 목사 석방을 위한 시국기도회를 열고 임택진목사가 직접 나와 설교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이는 총회적으로 구속된 시국사범으로 분류된 목사을 위한 최초의 기도회라고 할 수 있다. 장로교단 총회장의 관심과 총회의 이러한 공개적 활동으로 두 분은 큰 고생을 면하고 석방되는 데 기여를 했다는 후문이다.
은퇴후 장신대 주선애 교수와 제자 손은경목사가 함께 목회지원 센타를 조직하여 당시 개척교회 특히 민중목회 사역을 하는 후배들을 지원하였다. 총회활동을 할 때에 서울동노회장, 한국찬송가위원장, 제62회 총회장, 대광학원 이사, 이천 하나원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7권의 신앙 저작 전집을 비롯해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사모 박순희 권사와 장남 임해경 장로 등 2남 4녀가 있다. 2007년 8월 7일 주일 오전 7시 40분 노환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 데 향년 91세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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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가 기억하는 임택진 목사
임택진 목사님은 나를 디모데처럼 키우셨다. 교단 총회장이 되셨을 때 일년 동안 목회 전체를 나에게 위임해 주시고 당신은 주일 설교만 하셨었다. 목회계획과 예산편성 그리고 목회 전체를 31살이었던 나에게 맡겨주시고 위임해 주셨다. 그 때 많이 클 수 있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대학원을 가라고 하셨다. 해마다 대학원을 권유하셨다. 삼년 째 되는 해에는 당시 약국을 경영하고 있던 세 자녀들로부터 대학원 등록금을 걷어(?)가지고 나에게 주시며 대학원 가라고 거의 명령하셨다. 논문을 쓸 때가 절정이었다. 목사님은 교회 일을 많이 줄여 주셨다. 전임전도사였는데 파트타임 전도사처럼 일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살았다. 그 때 그나마 뒤늦게 공부다운 공부를 한 것이 평생 목회의 큰 본전이 되었다.
목사님이 어느 큰 교회 잡지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었다. ‘디모데를 보는 바울의 심정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1981년 12월 마지막 주일에 23년 동안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신 임택진 목사님의 은퇴식이 있었다. 임택진 목사님은 내가 자라난 청량리중앙교회의 원로목사님이셨다. 내게는 스승이며 영적인 아버지와 같은 분이다. 당시 부목사였던 내가 사회를 맡은 은퇴식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임 목사님의 인사였다.
목사님의 인사는 약 10초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명한대로 행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라는 누가복음 17장 9-10절 말씀을 암송하신 후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 인사를 마치셨다.
(김동호, "참 좋은사람" (도서출판 가이드포스트, 2007). P.22~25)
내가 서울에 볼일이 있을 때 명일동에 있는 임 목사님 댁을 방문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어떤 때는 눈치도 없이 점심식사 시간에 들러 목사님 내외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내가 댁으로 가서 모시고 나와 점심대접을 하려고 연락을 드렸을 때였다. 전화를 받으신 목사님은 "멀리까지 들어올 것 없다"고 말씀하시고 장신대 전철역 ‘만남의 장소’에서 만나, 광장동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장신대역 만남의 장소는 그 후에도 몇 차례나 목사님과 나와의 약속장소가 되었다. 함께 얘기를 나눌 때면 목사님의 화두는 언제나 한국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은 후 해가 바뀌고 많은 시간이 흐르고 임 목사님을 만났을 때였다. 장신대 앞 조용한 경양식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목사님은 요즘도 많은 액수에 해당하는 봉투를 쥐여 주고 달아나듯 음식점을 나가셨다. 나는 두고 나가신 안경을 전해드리려 한참이나 목사님을 뒤좇아 가야 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총장 김운용 박사, 이하 장신대)는 지난 2월 23일 故 임진택 목사(청량리중앙교회 원로, 증경총회장)의 유족이 2억 원의 장학기금을 약정했다고 전했다. 1992년부터 2022년까지 45명에게 5천 300여만 원이 지급된 ‘故 임택진 목사 장학기금’은 임진택 목사가 생전에 장신대 신학대학원에서 목회실습 등의 과목을 가르치면서 받은 강사비를 모아 후배들을 위해 장학기금으로 기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번 장학기금 약정식은 장학기금의 이자로 지급해오던 장학금이 금리가 낮아짐에 따라 장학금을 제대로 지급할 수 없다는 소식을 들은 임 목사 자녀들의 추가 기부로 비롯됐다. 약정 내용은 2023학년도부터 신학대학원생 1~3학년까지 각 1명에게 1년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데, 재원은 故 임택진 목사 장학기금의 이자와 에스겔선교회가 기탁하는 장학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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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에 장학금 기증
김운용 총장은 “이 어려운 시기에, 신학생을 위해 귀한 장학기금과 장학금을 출연해주신 유족과 에스겔선교회에 장신인 모두의 마음을 담아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회답했다. 1981년 12월 마지막 주일에 23년 동안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신 임택진 목사님의 은퇴식이 있었다. 임택진 목사님은 내가 자라난 청량리중앙교회의 원로목사님이셨다. 내게는 스승이며 영적인 아버지와 같은 분이다. 당시 부목사였던 내가 사회를 맡은 은퇴식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임 목사님의 인사였다.
목사님의 인사는 약 10초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명한대로 행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라는 누가복음 17장 9-10절 말씀을 암송하신 후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 인사를 마치셨다. 당신의 23년간의 목회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시는 것 같았다. 자신의 공적이 분명히 있는 목회였는데도 그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분 같아 보였다. 헌법이 정한 은퇴를 5년이나 앞당겨 하시면서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고 근사하게 물러나셨다.
은퇴하신 후 후임 목사님이 자리를 잡기 전까지는 교회에 오지도 않으셨고, 교회에 그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으셨다.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은 예배당을 허물고 새로 건축하려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배당을 새로 지어야 할 만큼 교인이 많은 것도 아니고, 예배당이 쓸 수 없을 만큼 낡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예배당을 리모델링하고 차라리 교육관을 하나 더 짓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임 목사님과 우연히 식사할 기회가 생겨 예배당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에 대해 약간의 불만이 있었던 나는 “거 쓸데없는 데 돈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왔다. 나는 당연히 임 목사님이 “그러게 말이야.” 하고 말씀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임 목사님은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내 교회인가 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교회에 대해 전혀 애정이 없는 줄 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임 목사님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목회하신 교회인지. 그런데 그 입에서 “내 교회인가 뭐.” 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은퇴했다면 교회에 대한 모든 생각과 판단도 은퇴를 해야 한다는 것이 목사님의 생각이었다. 예배당을 허물든 새로 짓든 모든 판단과 결정은 새로온 목사를 중심으로 당회가 하는 것이지 은퇴한 목사가 그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과 판단을 하게 되면 교회가 시험에 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저런 말은 고사하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영적인 높은 수준에 이른 사람의 말이다. ‘나도 이 다음에 은퇴할 때 임 목사님처럼 10초의 은퇴사를 해야지 은퇴를 한 후 누가 와서 후임 목사와 교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면 “내 교회인가 뭐.” 하며 한 마디로 끊어야지.’ 나는 교회개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원로목사를 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그런 내 의견에 “후임 목사가 와서 죽을 쑤면 어떻게 합니까?” 하며 찬성하지 않는 분이 있었다. 후임 목사가 와서 죽을 쑬 때 원로목사라도 있어야 교회가 수습되는 것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원로목사가 손댄다고 죽이 밥이 되나? 괜히 죽만 더 질어지지….” 임 목사님보다 더 크게 사역하신 분들은 참 많이 보았다. 그러나 임 목사님만큼 끝이 깨끗한 분은 이제껏 보지 못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의 공적과 성공을 너무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섬긴 사역의 성공이 자신 때문인지 하나님 때문인지를 착각하게 된다.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만 생각은 그렇지 않다. 그와 같은 착각에 빠지면 끝이 흐려져 추하게 된다. 그리고 점점 어리석어진다. 그 같은 어리석음은 성공적인 목회 사역을 일순간에 무너뜨리고 만다.
참 좋은사람 (서울:도서출판 가이드포스트, 2007). PP.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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