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부 탓 언제까지
두 스님이 기거하던 절로 돌아가는 길에 물이 불은 강을 만났다 그런데 그 강가에서 한 여자가 울고 있어 왜 울고 있는지 묻자 집에 아기가 있어서 빨리 가야 하는데 물이 불어서 건널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한 스님이 그 여자를 업고 강을 건넜고 여자는 그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두 스님은 계속 가던 길을 갔다.
한참을 걷다가 한 스님이 여자를 업고 강을 건넨 스님에게 불법에서 여자를 만져서도 안되는 데 여자와 말을 섞고, 만지기까지 했다고 핀찮을 주었다. 이에 그 스님이 답하기를 나는 강을 건너후 그 여자를 내려놓았는 데 스님은 아직도 그 여자를 업고 계십니까? 했다고 한다.
이 얘기는 인도에서 전해온다고 하고 여러 가지로 전해지는 데 결론은 외적인 경건이나 법의 준수보다 내면의 경건과 다스림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그리고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심으로 화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로는 정의나 공의를 말하지만 평생 남 탓만 하고 사는 것이다.
화, 두려움, 외로움, 좌절은 모두 내면의 스트레스인데 이런 괴로움은 외부로 부터만 오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것에 대한 나의 느낌 혹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으로 보면 내면의 평정이 아닌 질투심과 경쟁심인데 이를 정의나 공의도 있지만 이는 평정심을 잃은 결과이며 대결하려거나 이기려는 질투심으로 마음의 고요를 잃었기 때문이다.
내면의 평화를 이루고 아름다움에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보던 감사하고 경외롭다. 문제를 볼 때도 나를 먼져 보고 그 다음에 타인을 본다. 우리를 실패하게 하고 정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타인의 불의나 잘못이 그 원인이지만 유독 나 자신이 집착하는 것은 자신이 심판자라는 자기 의인화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 지 모른다.
끝난 윤정부 되돌아 보면
이런 주제를 한국의 정치현장으로 가져와 보자 이 정부 임기 5년의 중반을 넘었다. 그러나 말끝마다 이전 정부 탓이 과하다는 평이다. 아니 그래서 정권을 가져 온 것 아닌 가? 그러면 처음 한두번은 몰라도 이제는 이를 극복하고 제자리로 돌여놔야 하는 책임이 이 정부에게 있는 것 아닌 가? 라는 말이 맞다.
이것을 국민들이 정치적 지표로 증명해 준 것이 바로 2024년 4월에 열린 22대 총선 결과아니 겠는 가? 집권여당이 잘했으면 국민들이 야당에게 180석을 주었겠는 가? 자기들의 실정으로 과반수도 얻지 못한 이유로 당대표가 물러나고 사과했던 것 아닌 가? 따라서 정권을 책임졌다면 더 이상은 전 정권 탓하면 안된다. 모든 것은 자기들 할 탓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최종 실정 자임은 바로 느닷없는 계엄령소동이다. 계엄령은 특히 우리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5.16이나 유신, 80년 신군부도 그렇고 큰 트라우마가 있다. 이로 인하여 죽고 감옥에 가고 시민권이 박탈당하고 입은 피해와 손해가 크다. 그리고 지난 40년간 이런 군에 의한 물리력은 극복되고 문민통치가 되었다고 자부할 즈음 또 다시 친위 쿠태타로 비상계엄을 당했으니 그 놀라움과 분노는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는 이 정부가 민주적 통치 능력을 상실한 것을 자임한 것이다.
그러고도 아직도 국민을 속이고 계몽령이니 야당 탓이나 시국 탓을 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정치는 정쟁을 기초로 하지만 타협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대보다는 힘에 의한 지배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다. 결국은 내란죄로 탄핵으로 제 눈을 찌른 것으로 야당 탓 시민단체 탓 국민 탓을 하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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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단 고질병 과거 탓
이 얘기를 교단 안으로도 가져와 보자 지난 109회 총회서 나타난 전 총회장의 리스크로 인하여 아직도 아물지 않아 총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이전에는 명성교회 세습으로 인하여 갈등으로 지난 10년간 총회는 안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는 어떻게 되든 우리는 이를 털었고 이제는 미래로 가야 하는 데 그런 책임은 총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정의든 진리든 이루지 못한 한에 분풀이성 발언을 끊치 못하는 분들이 있는 데 이것도 작지만 권력에 대한 집착이다. 털고 잊고 자기 길을 가면 될 것인데 무슨 말만 나오면 김삼환을 소환하고 총회를 흉보고 비난하고 교권 탓을 하는 데 도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할 것인가? 개인적 감정풀이의 연장으로 공의회를 비난하니 하는 말이다.
이 말은 내가 명성교회 편을 들고 총회를 옹호하기 위하여 하는 말이 아니다. 총회가 지난 10일 부터 올해 선교140주년을 맞아 전도컨퍼런스 & 성령부흥집회를 했다. 총회는 그들의 일을 것인데 그것을 비아냥거리고 하는 것은 유감이다. 그들이 거기서 먹고 노는 것도 아니고 주어진 일을 하는 것으로 억지로 누구를 불러 강제와 억압을 하는 것도 아닌 데 개나 소나 같이 다른 기준을 들어서 비난하니 하는 말이다.
잘못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하지만 다른 것과 비교하여 비판하는 것은 맞지 않다. 장소 편의를 위하여 원주 명성 수양관을 정한 것도 강사를 정하는 것도 그렇고 필요해서 하는 일이다. 그 분들이 거기 섰다고 해서 교단이 흔들리는 것도 아니고 기저가 변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체 싫고 저주스러우면 나가던지 떠나든지 하는 게 편한 것 아닌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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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와 결론
명성교회 출신 정태윤집사의 명성교회와 김삼환목사 비난에 모든 것을 연계시키려는 집착은 이해가 가지만 그럴수록 본인의 상처도 간단치 않다. 이는 개인 소송으로 인한 경제적 정신적 피해가 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총회적으로나 동남노회서 척을 진 분들은 형식적으로나마 화해를 하고 수습에 동의한 분들은 예외다. 마음속으로는 몰라도 더 이상 이 주제와 관련하여 말을 안하는 게 예의다.
그런데 무슨 말만 나오고 일만 나오면 명성교회와 연계하여 총회든 일이든 비난을 확산하는 데 이는 정신적으로 보면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아닌 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면에서는 권력투쟁이든 힘의 논리든 이미 결정이 난 사안에 대하여 끝을 내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제는 누구처럼 이전 정부 탓만하다가 실기하지 말고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고 가기를 권면한다.
109회기 김영걸 총회장은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 다음 날인 4일에 목회서신을 내고 국민들의 입장에서 계엄의 시기나 방식에 대하여 비판적 입장을 좀 이르게 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교총의 중요 지도자로 합동측이 대표회장이고 보수적인 지도자들이 많음에도 현재 헌재판결을 불복하려는 이들과 달리 헌재 판결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관철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 총회장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이 있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를 계기로 보수의 리더 여의도손복음교회 이영훈목사까지 3월 9일 주일에 헌재판결을 따라야 하고 이정부의 무속에 대해서도 우려와 경고를 표명하였다. 건전한 중도를 보수 우익이 아닌 중도의 광장으로 이끌어 낸 것이다. 총회장은 나름 그의 위치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개인처럼 집회에 시위에 나올 수는 없겠지만 교단의 큰 흐름을 견지하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하는 분은 하는 것이니 총회는 겸손하게 듣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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