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화백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유재무목사(예장뉴스 편집인)
광부 화가 황재형(1952-2036) 화백이 2월 27일(금) 췌장암으로 별세를 했다는 소식이다. 오랫동안 뵙지는 못했지만 젊은 날 함께 속 깊은 얘기들을 많이 나눈 분이다. 키가 구척에 100키로가 되는 덩치지만 늘 웃는 모습에 마음은 어린이처럼 맑고 순수한 분이다. 태백에서 있던 화실 1층이 내가 있는 광산노동상담소라 가까이 지냈다. 어려서 살던 고향 보성과 땅끝 바닷가의 율포 해변 추억을 들은 적이 있다. 서울로 오르내리며 화순 탄광도 본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낸 책의 표지 십화로 황화백이 그린 광부의 삽에다가 만원짜리 그림 사용을 허락받기도 했다.
그 후 나는 1998년 태백을 떠났고 황화백은 그 즘 아마 나름 가난에서 벗어나 화가로써 명망도 얻고 자가용도 사 부인이 운전을 해드린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 원주로 작업실을 옮겼다는 소식을 듣기도 하였는 데 다시 태백으로 내려가 최근 까지 전시실겸 작업실서 활동하신 것으로 알려졌다. 태백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강원대 학생운동 출신들과 광산노동운동가들과 광산 노동운동, 문화운동을 하며 가까이 지내셨다
황화백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1호, 입관/2월 28일(토) 13시, 발인/3월 1일(일)07시40분,
장지/ 수원 연화장서 화장후 봉안 예정, 유족/ 배우자 모진명, 자녀 황제윤. 황정아
상주 말씀/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던 사람들. 황재형 화백은 1984년 첫 개인전 이후 40여년간 노동하는 인간의 실존을 화폭에 담아왔습니다. “질기다 질긴 고무를 씹는 것과 같았던” 그 작업의 여정이 이제 마침표를 찍습니다.

황화백 약력
1952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고 서을서 대학을 다녔지만 그의 극적인 인생의 대부분은 1983년 태백으로 내려오면서가 중요하다. 정동, 사북 탄광 등에서 직접 광부생활을 하면서 그림 소재는 탄광촌의 일상과 생활을 작품에 담았다. 3년간 광부로 일하며 갱속의 일상과 광부들의 삶의 자취가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으나 그의 손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미술이런 시각적 아름다움 만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재는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좁고 어두운 갱도와 선탄부의 광구와 달고 달은 곡갱이와 삽, 마스크, 검은 작업복, 때 묻은 전표 와 등이 광산의 현실을 대변한다. 그렇게 막장의 광부들의 삶을 그린 황화백의 그림을 화단에서 민중미술가로 평가 받기 시작한다. 2007년 중앙무대인 가나아트서 초청 받은 그의 그림은 신선한 충격을 주며 높은 가격에 판매 된 것도 있다고 들었다
그의 어린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해 밀레의 만종을 보면서 그 그림에서 소리가 들었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림은 그냥 그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면서 종이에 그린 그림이 종이를 뚫고 나오는 느낌이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하고 남도의 유명작가들에게 그림공부를 하지만 통제된 고등 교육의 부조리에 순응하지 못하고 고등학교 때 자퇴도 한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미대에 입학해 1982년에 졸업한다.
*황화백이 가장 아낀다는 ‘아버지의 자리’
중앙대학교 회화과 시절 복학생들과 함께 1982년에 결성한 ‘임술년’은 ‘지금’ 에서 현실의 부조리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며 그의 시선은 강의실에 머무르지 않고 그리은 기술이 아닌 진실이자 정신이라 믿고, 이를 찾으려 삶의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서울, 창원 등의 공업단지에서 일하고 마지막으로 인생 막장이라는 태백에 정착한다. 이렇게 대표적인 광산도시 태백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털보 화백이 된다. 화려한 색채를 쓰지 않은 그림들 중 일부는 독일의 여성 판화가 케테 골베즈의 먹 판화와 흡사하기도 하다.
1990년대 쇠락해가는 폐광촌의 풍경을 화면에 담았고, 2010년 이후에는 머리카락과 흑연을 활용해 탄광촌 인물과 동시대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은 개발과 성장의 이면에 가려진 시대의 구조적 모순을 기록한 작업이라고 평가받는다. 2017년 제1회 박수근미술상을 받았고,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예술적 성취를 조명하는 개인전 ‘회천’을 열었다. 그리고 2025년 연말 홍콩 여왕의 거리(Queen’s road central)에 위치한 여왕빌딩에서 ‘황재형 화백, 10만 개의 머리카락 전’을 개최해 현지 예술가들로부터 경탄을 받기도 했다.
생전에 그를 인터뷰 기사를 보면 “문화예술로 새로운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 북서부의 작은 도시 게이츠헤드는 암울한 폐광촌이었다. 그런데 1998년 지역의 예술가들이 16억 원을 들여 만든 ‘북방의 천사’들이라는 작품이 기적을 만들었다. 연간 40만이 넘는 관광객과 3000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곳은 100여 명의 예술가와 공무원들이 현재의 태백만큼 어둡고 스산한 폐광촌을 공공미술을 통해 미래지향적이며 활기찬 도시로 개조했다.
SPECIAL ARITSIT : 황재형 – 월간미술 (monthlyar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