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성교회 화해시도 자체로 의미있어
이성곤 목사는 사임후 치료차 미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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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성교회 김창인 목사는 1993년 제 78회 총회장을 지낸 분이다. 합동측 충현교회에도 김창인 목사가 있어 김창인 목사라는 이름은 유명세가 있다. 김 목사는 이북 황해도에서 출생하시고 한국전쟁시 월남하셨지만 첫 기착지는 목포였다. 신안군 도초의 염전에서 일하다가 큰 뜻을 품고 대도시 부산으로 간다. 향학열에 불타는 소년 김창인은 주경야독하며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부산장신에 입학한다. 그후 총회법에 의하여 장신대를 거쳐야 하기에 과정의 수료을 하고 다시 영적인 고향 부산으로 가서 첫 목회를 시작한다.
그런 인연으로 이북 분이시지만 부산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갖고 모교인 부산장신대의 발전을 위하여 평생 헌신하시는 한편 현직 목회자로 어려울 때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1966년 다시 서울로 와 한강대교와 광나루 다리가 유일하던 때 광주군의 서울 관문 광나루다리 남단 당시 경기도 광주군 풍납동에 천막을 치고 시작한 교회가 광성교회이다. 당시 강도사의 신분이었으니 안수후 목사로 한 교회만 시무한 분이다.
당시 천호동은 구도심으로 원주민 외에는 토지도 없고 주택공급도 없어 인구가 더 이상 늘 수가 없었다. 그러나 광나루 다리 밑과 남단을 중심으로 무허가 주책들이 늘어나기 시작하여 천호동교회의 최덕환 장로, 홍상현 집사, 유달수 집사, 박원섭 집사와 힘을 합쳐 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이다(광성교회 홈페이지 참조)
주변은 넓은 농토였고 도시로 이농한 이들은 늘어만 갔다. 잠실은 배가 없이는 왕래할 수가 없어 그나마 풍납동은 광진교가 있어 서울입성의 관문이었다. 인근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목회는 날로 부흥을 한다. 김 목사 자신이 전쟁통에 생사를 넘나들었으며 가난을 경험하여 이농한 이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을 심령을 어루만지는 영감의 메시지로 변두리 인생들은 큰 위로와 평안의 안식처가 된 것이다.
총회적으로는 남노회에서 동남노회 노회장을 지내고 총회적으로는 서기를 지냈으니 부총회장에 당선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또 당시 총회장은 최초로 장로 총회장 한영제 장로여서 총회 일은 배나 바쁘게 일하셨다. 그렇게 광성교회를 강남의 변두리지만 명성교회 이전에 가장 큰 교회로 부흥시키고 광성기도원, 영신여고, 대북사업등 굶직한 일들을 했다. 그리고 2003년 12월 명예롭게 은퇴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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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세대들이 그러했듯이 카리스마있는 지도력으로 후임은 공채고 뭐고 광성교회서 부목을 지내고 같은 동남노회 대양교회 담임목사였던 이성곤 목사를 전격적으로 데려온다. 광성교회의 김창인 목사가 막상 은퇴를 했다고 하여도 교회에서 누구라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인내하고 시간을 기다려여 할 이성곤 목사의 반기는 우선 총회 정서상 용납할 수 없었다.
아들 같은 후임자로 부터 공격을 받자 김창인 목사는 대양교회에서 시무중이던 이성곤을 데여올 때 당회도 그렇고 헌법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으니 자신을 치리해 달라고 정면승부를 걸었다. 그러나 이성곤 목사는 메몰차게 영적 아버지의 가장 아픈 부문에 비수를 들이댄다. 북한지원사업에 대한 증빙자료 문제등 파렴치범으로 몰아간다.
김 목사는 자신이 구상한 대북사업과 영신여고에서 은퇴를 했지만 손을 떼기 어려운 일들에 대하여 마음에 드는 후임이 오면 큰 이변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이성곤 목사의 태도에 분노하며 직접나서서 손을 보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시련이 찾아온 것은 어쩌면 두 분의 문제가 아닌 사탄의 시험이었일까? 영적아들과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길고 긴 분쟁과 싸움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교회는 반토막이 난다.
퇴임 1년만인 2004년에 시작된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싸움이 12년 되는 해에 의외로 싱겁게 막을 내렸다. 그것은 100회 총회 채영남 목사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치유 화해 생명” 선언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총회 최초로 설치될 사면복권위원회에 대한 기대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성곤 목사의 통큰 결단이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일이다.
보도에 의하면 이성곤 목사가 김창인 목사를 찾아가 먼져 머리를 숙였다고 했다. 그 자신의 표현으로 하자면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원로 김창인 목사는 그의 진심어린 사죄와 용서를 받아드렸다고 한다. 사실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뒷배경 생각치 않으시고 받아주신 그 아량에 감사할 뿐이다. 이로써 모든 것은 끝난 것이다. 또 이성곤 목사는 교회도 사임하겠다고 했다고 하니 그대로 되기를 바란다. 이렇게 낮아지고 백의종군 하는 자세로 하면 안될 일이 없다.
주일 날 이런 보고를 위하여 강단에 서는 이성곤 목사에게 교인들은 모두 반기는 것 같지는 않치만 우뢰같은 박수도 일단은 환영을 하였다. 그는 이렇게 입을 때였다. "저는 원로목사님께 무릎을 꿇고 교회를 분쟁으로 이끌어간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를 하였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도 저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주셨습니다. " 다시 한번 박수를 받는 대목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광성교회는 교회에서 있어서는 안될 온갖 부적절한 일을 보여준 교회였다. 예배방해, 용역동원, 폭력난무, 법정소송, 교단탈퇴, 탈퇴무효등 그러나 이제는 그런 아픔을 뒤로 하고 용서와 화해의 공동체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형제와 화목하고 사랑하라는 신앙의 공동체에서 누구보다 길고 질긴 갈등과 분쟁의 현실에 있는 사람들도 화해를 원하지 않는 이는 없다. 다만 이런 화해와 용서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성곤 목사가 모든 것을 잠재하고 그런 결단했다는 것은 칭찮하고 싶다.
그의 용기와 겸손 영적 아버지와 같은 원로 목사에 대한 첫 마음의 회복은 잘한 것이라는 격려가 많다. 이성곤 목사의 이 아름다운 선택를 통하여 지금도 원로들과 현역들간의 갈등과 분쟁을 하는 교회들이 회복되는 교훈을 얻기를 바란다.
속 사정이야 어떻튼 여론은 이성곤 목사와 김창인 목사의 화해를 반기는 분위기다. 둘의 담대한 결단과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언론들도 공교회와 교인들을 분쟁의 구렁텅이로 몰고간 지도자들에게 대하여 가리지 않고 싸잡아서 비난하고 아프게 비난했던 것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분쟁을 겪고 있는 교회들이 이 분들을 본받았으면 좋겠다.
김창인 목사에게 훈련을 받은 부목사 출신들도 이 열병을 같이 앓아야 했는 데 교단의 중진이 된 이들에게도 이 소식은 희소식이 된 것으로 보인다. 안현수 목사, 이성주 목사, 김호곤 목사 정성진 목사, 일본의 임태호 목사도 이제는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이성곤 목사의 보고문
사랑하는 광성교회 성도여러분. 먼저, 지나온 시간 동안 교회를 향한 열정과 최선을 다하는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로서 성도님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큰 혼란과 그로 인한 좌절과 실망을 안겨드려 가슴깊이 송구하고 죄송합니다.
그 동안 CMO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부지법에서 패소하여 소송당자인 46명의 성도들과 광성교회를 사랑하는 많은 성도님들에게 아픔을 드린 것에 대해 무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교회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까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기도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회와 소송 당사자들의 모임에서 새로운 생각으로 우리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해 보려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였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서준 젊은 집사님들의 용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짧은 시간동안에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많은 수고를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교회는 더 혼란스러워져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저는 광성교회의 성도님 중 어느 한분에게라도 어떠한 피해를 드려선 안된다는 일념하에 이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을 위해 담임목사직에서 사임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이 사실을 당회에 알렸고 이에 당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해산하고 저와 김영수장로님과 대리인으로 이성주목사님에게 협상을 위한 전권을 주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당회의 이와같은 결의 후 저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결단하고 전권을 받은 다음날 즉, 목요일 아침 8시 김창인 원로목사님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저는 원로목사님께 무릎을 꿇고 교회를 분쟁으로 이끌어간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사과를 하였습니다. 원로목사님께서도 저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리고 목요일 저녁 8시 당회에 이 사실을 알렸고 금요일 오전 10시 구역회에서도 알렸습니다. 그 용서와 화해의 자리로 가기까지가 너무나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용기를 주셨고 당회에서 저에게 권한을 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와 화해의 장이 마련되어 양측은 한국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화해를 위해 협의에 들어갈 것입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크게 놀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러 가지 다른 의견들도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결단 한 것은 누가복음 15장의 말씀을 가지고 “탕자 아닌 탕자”라는 설교를 했던 제가 즉, 자기 만을 생각하고,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기를 모르고 사는 자가 탕자라는 말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기에 그 말씀에 순종하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교회의 회복과 성도님 개개인, 그리고 가정에 어떠한 피해도 있어선 안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용단임을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와 모든 광성교회의 성도님들은 지난 십여년 동안 하나님 앞에서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먼저 내려놓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요구하심에 순종하여 우리 광성교회가 하나로 회복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제는 온 성도님들에게도 내려놓음을 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내려놓으라는 명령에 순종한다면 우리 교회는 이전의 잘못을 바로잡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진정한 교회로 거듭나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모델이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13년동안 우리 광성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고 세상 앞에서도 당당한 교회가 되도록 노력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리며 여기까지의 노력만도 하나님으로부터 큰 칭찬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또 다른 명령하심에 순종하여 우리 광성교회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교회로 만드는 이 역사적인 일에 힘을 보태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교회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그 모습을 목도하시기 위해 끝까지 우리 광성교회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자리를 지켜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