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 예장 목회자 연대 "에큐마당" 열려
제 101회 총회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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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101회 총회가 끝난지 한 달 여, 지난 10월 20일(목) 저녁 동숭동 아가페드림교회(정여임 목사)에서 사전 예고된 에큐마당 토론회가 열렸다. 이미 교계 언론들과 관심자들의 총회 평은 무수하다. 그러나 우리 교회개혁예장목회자연대(이하, 예목연)의 관심과 시각으로 바라 본 제 101회 총회에 대하여 애정과 진지함으로 뒤돌아 보는 시간이었다.
예목연에서 주관하는 에큐마당은 예장 통합에 소속된 개혁성향의 목회자들이 교회개혁과 에큐메니칼 활동을 공유하고 연대하기 위한 모임이다. 창립 이전부터 이런 의제들을 놓고 매월 목요일 셋째 주에 모였던 대화 모임이다. 그 동안 예목연 활동이 소강 상태에 있어 모이지 못하다가 근 1년 여 만에 모임을 재개했는데 20명의 목회자들이 모여 열띤 논의의 시간을 가졌다.
예장뉴스 편집인 유재무 목사의 사회로 대표회장 이상진 목사가 “교단 총회 이대로 좋은가?” 라는 주제에 대하여, 직전 사회봉사부 총무 이승열 목사가 “제 101회 총회의 의제와 결과”에 대하여 그리고 여교역자회의 “여성 총대 할당제에 대한 의의와 평가” 등을 듣고 참석자들과 자유 토론을 하였다.
지난 100년 간 매년 교단 총회가 열렸고 많은 부문에서 내용의 진보와 발전을 가져왔다고 하지만 아직도 선진 해외 장로교단들의 선행된 제도와 내용들에 비하면 여러 가지로 낙후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총회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정파적 이해 없이 우리 예목연이 지향해야 하는 총회는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의제로 대화를 나눈 뜻 깊은 자리였다.
한편 발제자 이상진 목사는 강원 장청 회장을 지내고 현대신학연구회와 건목협 회장을 거쳐 지난 2년 예목연의 제 1기 공동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대표회장을 맡고 있다. 총회 주요 부서의 실행위원과 평신도 지도위원회 위원장, 현재는 고시위원회 서기로 오래 동안 총회 총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승열 목사도 독일에서 사회봉사학으로 신학박사를 받고 목회와 강의를 하다가 지난 8년간 총회 사회봉사부 총무로 총회를 섬겼다. 특히 지난 2년 전 세월호 사태 이후 NCCK 세월호 대책위원장을 맡아 앞장서서 일한 바 있다.
전체 토론을 정리한 내용
총회의 하이라이트는 첫날 저녁에 이뤄지는 부총회장 선거이다. 그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모두 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총회 지도력은 이북세에서 지역으로 다시 친목 구도로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신총련으로 그리고 올해부터 학연이 부각되고 분화되는 구도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는 이전투구를 하였어도 이후 절묘하게 봉합되고 이합집산하는 식으로 총회 지도력은 유지되고 있다.
이번 부총회장 선거의 평가는 과거와 같은 금권 선거는 잦아들었지만 지연과 학연에 기반한 현상은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런 선거 과열과 사회적 과비용을 절감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그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총회장 임기 2년 상임제는 부결이 되었다.
그에 대한 반론을 아직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 사무총장제를 채택하고 장로교회의 제도를 고수하는 한 감독제나 회중제식의 회장 상근제는 근본적으로 상충된다. 총회장의 상근제는 장로교회의 골격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회장이 월급을 받고 일하는 한 그 권위는 반감될 것으로 본다. 지금과 같이 총회장이 권위가 있는 것은 지교회 목회를 하면서 의장직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지난 100회기 총회장 사면 파동을 보면서 총회장의 직무를 명료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명실상부한 사무총장제를 정착시켜 유엔 총회나 YMCA, NCCK와 같이 회장은 총회와 임원회의 회장이 되면서 교단 총회를 법적으로나 외교적으로 대표하는 선에 머물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주장도 있다.
총대구성 이대로 좋은가?
총회의 총대 1,500명은 전국의 67개의 노회에서 할당된 숫자만큼 목사와 장로 동수로 각 노회에서 무기명 투표로 선출한다. 총대 수의 배당은 세례교인 수이다. 하지만 모든 노회에 기본으로 목사 장로 각 2인을 주기도 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아무리 작은 노회라도 노회에 대한 의미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총대의 선출은 노회마다 다르다. 봄노회에서 총대들이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지만 전체 숫자를 노회를 구성하는 시찰별로 안배를 하거나 시찰과 전체 회의로 반분하는 경우도 있다. 노회장과 서기를 자동 총대로 하고 장로 부노회장을 포함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구도에서 총대가 되려고 하면 해 노회에서 적어도 한 10년 이상은 목회를 하고 50대의 중견 목회자는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한 마디로 총대가 되려고 하면 한 노회에서 중진이 되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노회마다 총대 입후보제를 채택하고 있는 데 명분은 앞서 말한 대로 총대가 대형교회 혹은 고참 순으로 독식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민주적으로 자유롭게 누구나 입후보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는 의문이다.
이를 도입한 강원동노회에서는 지난 가을 노회에 이를 폐기했는데 총대 입후보제도는 새로운 방식의 기존 총대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기탁금제도 문제이다. 이런 모든 발상은 총회 총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이해보다는 총대가 되는 것에 목표를 두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총대는 봉사하는 것이고 자신의 의견보다 자신을 파송한 기관을 위하여 복무하라는 것이 취지이므로 추대가 아니라 자기가 하겠다고 입후보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국회의원의 지역구와 비교할 수도 있다. 의원들이 지역구도서만 나오면 국민를 대변하는 다양성과 전문성이 간과될 수 있기에 전국구(직능 대표)을 두는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 총회도 직능 대표들을 받아드려야 한다. 가장 썩고 부패한 정치권도 명실상부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는 데 민주주의와 평등을 추구하고 가르치는 교회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총대는 각 노회에서 선출하여 파송한 총회 대의원이다. 장로교회의 근간인 대의제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총회 총대는 각 노회를 대표하는 목사와 장로 1인씩만 해도 부족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총회는 숫자 싸움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총대는 노회처럼 임원을 조직하고 지교회의 설립과 문제들을 돌아보고 각종 청원 건을 허락해주고 노고를 격려하며 다시 파송하는 등 보다 큰 총회의 살림을 구성하는 대의원이다.
그런데 현재 세례교인 숫자 위주의 총대 수 배정은 대형교회 일색이 되어 공 교회성과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본질이 무색할 정도로 그 균형이 깨진다. 많은 경우 한 당회가 노회 총대 1/3을 점하는 노회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계산되어서는 안 된다. 발언권은 한 사람으로 족하다. 많이 간다고 해서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총대직도 은사가 있는 분은 가서 활동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자리나 채우다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어느 노회에서는 총대 활동을 모니터링 하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한 당회의 노회 총대 수를 제한하여 다른 당회도 참여할 기회를 나누는 것도 필요하다. 이미 어떤 노회에서는 한 당회의 총대 독식을 막기 위하여 목사와 장로 2인 이내로 제한을 한 경우도 있다. 총대는 머리 수 싸움을 하러 가는 곳이 아니고 입으로 토론을 하러 가는 곳이니 한 당회에서 목사와 장로 한 사람씩이면 충분하다. 더 많은 교회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맞는 원리이다.
현재 구도로는 헌의안 심의 제대로 할 수 없다.
지난 2014년 220회 미네소타에서 열린 미국장로교(CPUSA) 총회에 참석했던 이승렬 목사의 경험을 들으면 미국 총회는 노회 당 목사 장로 각기 2인이 기본으로 그 외 청년들과 여성 등 교회와 노회 내의 각 그룹들을 대변하는 평신도들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와 같이 목사와 장로들만 1,500명이 모여서 총회의 주요한 사안을 며칠만에 결정한다는 것은 무리다. 모두의 총회가 되기 위해서는 실제 논의는 총대들만 하고 나머지는 교회내 모든 부서의 대표들이 참가하는 축제형의 총회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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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CUSA WP 222차 총회 총대 구성비 | ||
금년 포틀랜드에서 열린 제 222차 미국 장로교 총회의 총대 구성을 보면 지교회 파송은 68% 이고 나머지는 청년, 신학생, 기관, 선교사, 에큐메니칼 그룹들에게 배분하고 있다. 우리교단이 현재와 같이 총대의 구성비를 노회원으로만 한정하면 성공한 중년 목회자와 시니어 장로들만 나오기에 교단 전체를 아우르는 총회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미국장로교회의 총회 주기는 2년이다. 총회는 총대권을 가진 이들만이 아니라 투표권은 없지만 교단 총회의 일원으로 모든 계층이 참가한다. 총회장 선거에 청년들이 정견 발표도 같이 듣고 질의도 하고 시전투표를 하는데 청년들의 결정이 거의 반영된다고 한다. 이렇게 총회에서 어른들은 청년들의 결정을 보고 청년들은 어른들의 회의 과정과 결정들을 보면서 신구세대가 함께 성장을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총회의 헌의은 지교회의 당회가 노회로 노회는 총회로 올린다. 그러면 헌의안의 내용에 따라 각 부서로 배정하지만 정작 관계가 있는 위원회서 심도있는 토의를 거치지는 못한다. 총대들은 부서로 조직을 하지만 3박 4일 총회 기간 중 부서 조직을 하기도 바쁘다. 따라서 본 회의에서 관련자가 없는 경우, 중요도에서 밀리면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해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헌의안이 허다하다.
이런 식의 총회는 이제 지양해야 한다. 그 동안 총회는 기구개혁위나 장기발전위원회 등에서 여러 가지 각도로 안들을 내놓았지만 실제로 가동되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일정이 한정된 총회에서 헌의안을 효율적으로 다루려면 사전에 걸러내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즉 총회 전에 전국 노회를 대표하여 헌의안을 분석하고 통합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합동측은 실행위원회 제도 도입
합동측은 다른 것은 몰라도 총회에 관한한 우리 보다 앞서고 있다. 비대해지는 총회장에 대한 권한을 제한하는 직무 매뉴얼도 준비하고 있고, 이번 총회에서는 기구혁신위원회(위원장:김창근 목사)가 가동되어 총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어느 총회나 그렇듯이 늘 헌의안과 방문 인사 등 예상치 않는 안건으로 늘 시간에 쫓겨 결국 “나머지는 총회 임원회로!”가 단골 메뉴로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것은 합동측 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경우도 늘 시간에 쫒긴다. 총회임에도 마치 발표회장 같이 목사 부인회와 여전도회의 특별찬양, 부서 보고 시 남녀선교회의 전국 회장들의 인사와 소개, 군목들의 특송에 영상 보고, 총회장 표창 등으로 시간은 한정되었는데 출연자와 보고자와 내용은 늘어만 간다. 근절해야 할 대목이다. 그래서 합동측은 헌의안을 총회 전에 사전 심의하는 기구로 기존 정치부에서 1차 검토 후 실행위원회에서 정치부 보고 채택 후 총회 보고 – 총회 결의’ 순서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 실행위원회는 총회임원회를 확대한 것으로 각 노회에서 파송한 목사 장로 각 1인씩으로 약 310명으로 구성되는 데 임무는 △총회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해서 총회에 제안 △총회 정치부에서 처리한 사항을 심의 확정해서 총회에 보고 △총회 대내외 긴급사안을 처리 등이다. 회의는 9월 총회를 앞두고 7월 첫째주 화요일에 정기실행위원회를 개최하고, 긴급사항이 발생했을 때 회의를 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연구를 해볼만하다. 전국의 67개 노회에서 2인(목사, 장로)씩이면 약 140명쯤 된다. 거기에다가 각 상임위위원장과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합하여 200명 내외로 하면 된다. 개회 예배와 총회 조직을 끝내고 첫째 날은 축제의 한마당으로 하고 다음 날부터는 전체 업무를 축소된 실행위원회에 일임하여 헌의안을 다루게 하는 것이다.
최근 추세는 위임제도의 강화이다. 국가도 기업도 전체가 모이는 회의는 많지 않다. 실무자들에게 일하게 하고 그것을 관리 감독하는 기능만 철저히 하면 된다. 또 일꾼을 세웠으면 믿고 맡겨야 한다. 현재와 같이총대 1,500명이 첫날부터 앉아서 회무를 진행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더러 개회 정족수가 되지 않아서 올해 총회처럼 규칙부 개정안을 논의도 못하는 사태가 반복될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단 사면결정과 철회, 그 후유증
제 100회기 총회장 채영남 목사의 의욕이 앞선 사면위 활동은 그 조직 내부에서부터 파열음이 나왔다. 총회 이대위와의 소통 부재로 사면위 위원장 김규 목사가 부담을 느껴 총회 1주일전 위원장 직을 사임했다. 이러면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감지하고 논의를 순연시켰어야 했지만 총회장과 사면위가 밀어붙힌 결과다. 다행히도 총회장이 체면을 구기기는 하였으나 사면 선포를 취소함으로 그나마 마무리가 된 것으로 평가한다.
전 총회장들의 반대 여론과 총회 산하 신학대학 교수들의 반란, 노회들의 반대 기류로 채영남 총회장은 결국 손을 든 것이다. 그러나 총회에서 총대들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사면 선포 행위도 문제지만 절차의 무시와 위임된 안건의 아전인수격 해석과 집행에 대하여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한껏 몸을 낮춘 채영남 총회장과 신임 총회장 이성희 목사의 거듭된 사과로 그만하게 지나갔다고 보지만 사면선포 취소로 인한 소송 문제나 그 후유증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이 문제는 임원회장 채영남 목사가 청원한 사무총장 이홍정 목사의 연임안이 투표에 부쳐져 부결되는(425:845) 불상사를 끝으로 총회 석상에서는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사무총장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있었으나 업친데 덥친 격이었다. 이번 일은 총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총회 역사상 처음있는 일로 임원회가 추천한 사무총장 안을 총대들이 거부했다는 것은 임원회가 불신임을 당한 것과 진배없다.
그런데 이 문제는 부결로만 끝난지 않았다. 이 총장은 자신에 대한 연임 부결이 발표되자 가방을 들고 단상을 떠나려 일어섰다. 이를 만류하는 총회장 이성희 목사의 표정이나 마지 못해서 자리에 앉은 이 총장이나 참으로 딱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총회 개회 중에는 의장의 허락 없이는 발언할 수 없고 누구도 자리를 떠서는 안 되는 건 상식이다. 심지어 의장의 발언도 회중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의장도 자리를 뜨려면 사회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회중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회의의 기본법이다. 의장이 많은 권한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나 그가 갈 수 있는 것은 단상의 그 공간 뿐이다. 오히려 총대는 맘대로 움직이고 별 일을 다 할 수가 있다는 점에서 의장은 고독한 것이다. 이번에 총장 연임을 부결시킨 총대들이지만 지난 4년간 업무적으로 고생하고 수고한 이 총장을 박수로 격려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했다. 총장이 인사도 없이 사라진 것도 역사에 없는 일이고……
전 총회장단의 죄책 고백
매년 전 총회장들을 소개하고 인사하는 순서 말미에 가장 연장자인 림인식 목사가 대표 발의로 과거 우리 총회의 지도자들로 신사참배와 각종 선거에서의 좋지 않은 유산들에 대한 고백과 사과의 시간은 의외였다. 이에 총대들이 이를 받아 “결단과 죄책 고백 선언”을 채택한 것도 처음있는 일이다. 그러나 선언문이 너무 과거의 죄책 고백에만 머물러 교단의 미래를 향한 희망과 결단의 모습은 적었다는 비평이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
2017년에 맞이하는 종교개혁 500주년은 용어부터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총회적으로 사업위원회(위원장 이만규 목사)가 조직되고 사업 내용도 나왔으나 아무래도 기념행사 위주가 될 전망이 크다. 따라서 우선 종교개혁을 "교회개혁" 으로 수정해야 하며 우리 연대(예목연)는 11월에 열리는 정기 에큐마당을 시작으로 신학선언을 준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여성 총대 할당문제
여성 안수 20년 만에 총회 임원회까지 여성이 올랐다. 이제 전체 여교역자나 장로들의 숫자는 미미하지만 교인들의 구성으로는 여성이 60%이상인 점을 고려할 때 노회당 여성 총대 1인의 요구는 그렇게 무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헌의안을 다룰 때 그 취지와 의견을 자세히 듣지도 않은 채 반대를 외치는 총대는 무슨 자격으로 그 자리에 와 있는 지를 모르는 자들이다.
성 총회가 교단 내 동반자들의 사정을 듣지도 않으려는 것은 교회와 노회를 대의할 자격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여성들도 여성 안수가 이루어지기까지 선배들이 보여준 길고 지속적인 활동으로 여성 안수를 쟁취했듯이 여성 총대를 늘려가는 것도 하나의 운동적인 과제로 삼아 계속해서 적어도 30% 까지는 여성 총대들이 구성될 수 있도록 해 나가야 할 것이다.
총회 동반성장위원회
이 위원회의 이름은 이미 여러 번 바뀌어 왔다. 개척교회 지원, 미자립교회 지원, 교역자 생활비 평준화, 교회 자립화 위원 등이다. 골자는 자립하지 못하는 교회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데서 출발한다. 사실 한국사회의 성장 이면에는 농촌과 시골에서 자라나서 도회지로 나온 노동력을 기반으로 해서 이만한 산업과 부를 이룬 것이라는 배경이 있다. 교회도 마찮가지다. 모두 농촌교회를 모판으로 하여 도시로 나와서 도시의 대형교회들을 이룬 것이다.
시대적 산물로 농촌교회가 어려운 것을 넉넉한 도시의 교회들이 짐을 나누어지자는 취지이다. 그래서 농촌교회가 개별적으로 지원금을 얻어내던 방식에서 노회 별로 결연을 하여 지원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도시의 교회들도 어려워지면서 지원을 끊거나 줄이는 방식을 너무 세속적인 경제논리로 한다는 것이다.
성경적으로도 그렇고 남을 구제하고 도와준다는 것은 귀한 일이고 복 받을 일이다. 또 남을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도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한 지체인 공교회와 동역자들을 단순히 수혜자들로 관리할 대하고 삼고 특히 지원을 받는 자의 심정과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배포된 자립대상 교회의 실정 보고서의 상식 이하의 내용과 형식은 물론 동반 성장이라고 하면서 여전히 시혜자들의 갑질 문화를 버리지 못하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남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비극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러나 나 하나의 생존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미 세워진 교회들을 지키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사그라드는 교회들을 운명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목회자들의 사역을 존중하면서 정책 당사자들은 자구책과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농민들과 함께 사는 마을 목회, 복지 목회 또는 협동조합, 인근 교회들과의 연대와 통합 등의 보다 실질적인 대안들이 절실다. 이것은 어느 한 교회나 노회의 문제가 아니라 총회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일률적으로 평준화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누구인들 평생 남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목회하려고 소명에 응하였겠는가? 서로 돌아보고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은 자원들을 나누고 베풀며 그야말로 동반 성장해야는 일은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총회의 제도개혁은 총대 구성의 다양성에서 출발해야
각 노회마다 다른 총대 선출 법규를 명문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리고 총대란 장로교의 근간인 대의제의 중심이기에 이에 걸맞게 교회의 전체 구성원들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변화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이 요구하는 각 노회당 1인의 여성 총대를 할당 건은 받아드려져야 한다.
이에 못지 않게 남녀전도회와 청년 학생 대표들도 업서버로 참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명실상부한 교단 총회의 축제의 장이 될 수 있다. 교회의 모든 구성들이 총회로 모이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다.
현재 세계교회 총회나 장로교회의 총대 구성은 1인이 성직자이면 그 다음은 반드시 평신도이어야 하고 여성이어야 하며 그 다음은 30세 미만의 청년이어야 한다. 이런 비율로 총대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들이 총대로 가면 일을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금물이다. 그들은 인터넷과 모바일에 능숙하고 세계 정보에 누구보다도 앞서 있다. 노년과 중년 청년들이 조화롭게 총회를 구성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아무리 큰 교회라고 하더라도 한 당회에 목사와 장로 각 1인이면 소속 기관의 의견 개진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총회는 정쟁을 하고 논쟁을 하러 가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총대 구성의 다변화를 위한 총회의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 교회에 청년이 없고 주일학교가 안 된다는 주장을 하기 전에 그들을 우리의 동반자로 친구로 삼는 일을 먼저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양한 사역을 하는 기관, 전도, 선교사 등의 사역자들을 총회에서 동반자로 받아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총회는 50대 이상 성공한 중견 목회자들과 노인 장로들만 회합 되고 관심 외의 건은 개회 정족수가 미달되어 논의도 하지 못하는 식의 총회를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