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력과 절기의 타락
부활절을 40일 앞두고 사순절(四旬節)로 한 주간 전을 고난주간(6일) 시작해 종려주일이라고 지킨 지는 좀 되었다. 그런데 웬만한 교회들은 언제 부터인지 교회력이나 절기들을 부쩍 강조한다. 이게 예배학이라는 전공자들 덕도 있지만 서구의 것을 무비판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 가 한다. 그중에 종교개혁가들이 구교의 전통과 결별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버린 것들도 없지 않아 있다.
중세 교회개혁 이전에는 교회가 국가와 인간사회를 지배했고 교회의 권위가 세속의 권위보다 더 위에 있었다. 모든 사회질서나 문화는 교회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묵인되야 했다. 교황, 군주, 영주, 제후,사제, 기사, 상인, 농민, 농노, 말,마차,농기구,토지, 돌맹이, 풀, 흙까지 신분제다. 이것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면 사회법과 교회법에 의하여 처벌했다. 그러나 그 이후도 정도는 달라졌지만 힘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중세는 제정일치 시대
당시는 국가와 종교(교회) 가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았던 사회로 교회의 질서는 곧 사회의 질서다. 교회는 왜 그런 절기나 질서를 유지하게 했는가? 아니 이렇게 묻는 것이 더 좋을 지 모른다. 그걸 지키면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그러나 누구에게 좋은 것은 누군가에게는 나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질서의 결과는 교황과 사제, 왕과 영주들 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한마디로 종교계율로 사회를 통치하고 다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교회질서와 사제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이 교양이 있는 사람이고 성인이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장남은 성직자를 만들어 신께 드리고 둘째는 음악과 미술을 셋째는 법률을 공부해서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당시 상류층의 전형적인 대물림으로 유럽에서 시작된 최초의 대학도 권력자들이나 천주교의 지배를 위한 자녀교육기관이었다.
그러나 어느 사회이든 대다수 평민과 농민, 농노는 그런 체제(중세봉건제도와 종교제도)를 유지하는 하부구조(subaltern)였다. 왕과 영주, 기사와 평민. 농노라는 신분제를 유지하는 것은 그 사회의 법이기도 하지만 체제만으로가 아닌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질서의 천부적 권위로 누르고 있었는 데 그래야 요동이 없기 때문이다. 신정체제(테오크라시) 인데 중국의 천자사상이나 일본의 천황제도 신인동일체다.
루터에 의하여 촉발된 종교개혁운동은 이미 르네쌍스와 인문주의로 시작으로 유럽의 지성의 발흥을 이뤘다. 이후 프랑스의 사롱등에서 지식인들이 성당에서 사제의 통치가 아닌 술과 음악이 겉들여진 지성과 학문의 발전을 가져왔다. 체코의 얀 후스는 그보다 이미 100년 전에 개혁사상을 이유로 구교의 희생물이 된다. 교회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식으로든 지성과 과학을 억압(지동설과 고전연구) 했고 죽였던 것이다. 이는 홍길동의 저자 당시 가장 불온한 사상의 전파자 허준의 죽음과도 맞닿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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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종교 개혁가 토마스 뭔쩌
그러나 아직은 신이나 교회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지만 초기 인문주의자들은 과학과 학문에서 꽃을 피운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이 이런 것이다. 종교에 의하여 채색된 미신과 무지를 거둬냈고 성직자와 지체 높은 이들을 졸홍하고 비웃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프랑스 혁명과 유물론자들에 의하여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로막는 최종 힘은 죽은 신으로 겨냥된다. 그래서 무신론이 나오는 것이다. 당시 사회질서에 대한 반란은 다시 말해 신에 대한 저항이었고 훗날 개혁가들이 교회력과 성상을 버린 이유다.
개혁의 선도자 루터는 구교의 탄압을 받게 되지만 독일의 봉건 영주들의 후원을 받았고 나중에는 농민과 농노들의 환영도 받지만 서로의 목적들은 달랐다 제후들은 바티칸으로 부터의 정치적 경제적 독립을 통하여 더 부자가 되는 것을 원했으나 농민과 농노들은 독일 내 제후들이나 교회와 영주들로 부터의 이중착취에 대하여 벗어나고 싶었다. 이런 자료와 문헌은 북부 독일 뮐하우젠의 토마스 뮌쩌의 저술들에서 언급되고 있다.
그는 처음에는 평범함 사제였지만 민중들의 고역에 대하여 침묵할 수 없었다. 민중들의 저항을 폭력을 진압하는 영주들에게 대항하는 ‘광야의 검’ 이 된 것이다. 단순히 봉건 영주의 착취로 부터의 해방뿐아니라 교회력을 통하여 지배하는 교회의 틀까지 벗어나고 싶어 하는 농민들의 지도자가 된 것이다. 그래서 좌파개혁가들은 루터의 개혁은 종교의 영역에 머문 것이고 독일 상층부와 타협하고 권력을 얻은 제한적인 개혁가라고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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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는 제한적 개혁가
루터를 죽이려는 구교회의 탄압으로 부터 그를 피신시키고 후원하고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하도록 후원한 것은 독일의 제후들이다. 그런데 개혁과정에서 그들이 두려워 한 것은 바티칸이 아니라. 뮌춰가 옹호하는 북부 농민들의 봉기와 저항으로 이것이 들불처럼 펀져 갈 것을 두려워한다. 자기 영내 농민과 교구신자들이 두려운 이들이 민중들이 성당과 십일조외에도 영주들은 산에서 베는 나무와 산채 심지여 시냇물 사용의 세까지 거둬가는 사제와 권력에 분노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의 비율을 조정해달라고 그리고 폐지를 헌의했지만 묵살 당하자 저항한 것이다. 제후들과 교회는 물리적 제압을 하게 되고 농민들은 칼과 농기구로 저항했다. 그러나 저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제후나 영주들의 이익은 감소할 것이고 당시 사회는 붕괴 될 것으로 보았다. 그러자 마침내 루터조차도 "하나님은 무정부 상태 보다 폭력으로라도 유지되는 질서를 더 원하신다" 는 말로 제후들의 폭력적 진압을 신학적으로 뒷밭침했고 대 학살이 이뤄진 것이다.
뮌춰는 처음에는 중재만하려고 했지만 농민들을 배신 할수가 없어 그들과 함께 끝까지 투쟁하다가 화형을 당한다. 가톨릭은 물론 중세 마녀 사냥도 그렇고 개혁교회들 까지도 생각이 다른 자들을 이단자로 몰아 화형으로 다스렸다. 칼빈도 신학적인 차이로 동료 세르베투스가 화형을 당하는 데 허락(방조?)하기도 했다. 그래서 교회력이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교회안에서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질서(Order)있는 사회를 위해서 사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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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8세기 예언자들 외침
일부 교회나 성직자들은 더 잘먹고 잘살기 위하여 또 그들에게 그런 지위를 부여하는 정치와 문화에 봉사한 것이다. 교회는 백성을 순응하게 하고 교양있고 품위있게 하고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주전 8세기의 아모스 선지자는 5:21에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라고 탄식한다.
예레미야도 6:20 "세바에서 들여온 향가루, 먼 나라에서 들여온 향료가 나에게 무슨 소용이냐? 너희가 바치는 번제가 나는 싫다. 너희의 친교제도 역겹다" 라고 했는데 왜 그런 말들을 했을 까? 그것은 당시 종교가 교회력을 이용하여 하나님께 드린다는 예물의 대부분과 영광을 사제계급들이 가로체 그 가족이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확언컨데 어떤 신도 인간들이 드린 제물을 먹었다거나 가져간 적이 없다. 그런데도 각 종교들은 신에게 열납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기분좋게 드리기 때문이다. 이것을 거록하고 세련되게 연출하는 것이 바로 교회력과 예전이라는 비즈니스다 . 이걸 잘하면 대형교회가 되는 것이다. 거기 무슨 다른 작용은 없다.
암5: 2-23 에도 "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친교제물로 바치는 살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23.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이게 무슨 말씀인가? 타락된 절기를 비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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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기 예배
잘 연출되고 짜여진 예배형식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절기와 예전은 누구를 위해서인가? 더 멋찌고 우아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나의 구원과 성도들과의 연합을 확증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말씀의 능력과 정수가 떨어진 교회는 이런 이벤트로라도 신도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성전이나 강단은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식하고 곡을 만들고 연출하지만 성경의 예언자들은 이미 그것들을 불경이라고 비판하고 있었다.
그것은 형식적인 예배에 대한 질타요 세속에서의 경건한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 절기와 예전위주의 종교생활 비판이다. 그런 말을 자주한 예레미아는 돌칼에 아모는도 그 최후를 알 수 없다. 미가도 그렇고 성경속의 예언자나 비판자들은 모두 제명에 죽지 못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회질서에 대한 저항과 불경으로 처단되었기 때문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죽여야 뒷탈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죽음도 마찮가지다. 예수는 부자와 권력자들 종교지도자들을 먼져 비판했는 데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마 오늘의 시대에도 살아남긴 힘들다. 교회에서는 출교를 당할 것이고 이단이라고 낙인 찍을 것이다. 복음서에 예수를 재판한 가야바와 빌라도의 법정은 죄목을 "유대인의 왕"(INRI)인데 이는 ‘국가전복자’ 라는 의미다 그리고 자칭 하나님의 아들 이라는 불경죄를 추가 한다. 그래야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을 정죄하고 격리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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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된 교회력
부활절이라는 절기가 개신교 4절기중 가장 귀하고 실제가 되려면 부활 이전의 예수의 삶을 상고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활은 무엇 때문에 그분이 죽으셨는 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부활절이나 교회의 모든 절기들이 의미를 갖으려면 그 출현과 이유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리고 부활은 그것을 믿는 신앙만이 아니라 부활의 現顯를 믿어야 한다. 그렇치 않는 교회력은 교회와 성직자나 실찌우고 유지 확대 재생산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것을 의미 있고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지금도 교회력과 예전을 강조하고 그것에 맞게 설교를 해야 한다고 하고 성서일과를 정하고 따르도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안다면 신도들은 내는 자이고 성직자는 거두는 자다. 누가 더 이익인가? 교회는 성례전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성도들은 그 댓가로 아깝지 않게 번돈을 드리는 것이다.
교회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아픔을 기억하고 부활의 약속을 믿는 댓가를 요구하도록 가르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더 멋드러지고 세련된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교회와 성직자들은 성도들에게 우리처럼 살자고 한다. 그런 기준을 따르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게으름과 믿음의 부족을 자책하게하고 용서를 구하고 회개를 해야 한다.
지금 일부 개신교들까지 그 교회력을 교회의 역사속에서 꺼내 사순절에 고난주간에 금식을 하며 재를 바리고 향유를 뿌리고 자선과 청빈을 권한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연합예배 순서를 가지고 자리 경쟁을 하고 부활절 감사헌금이 얼마일지 관심 갖는 다. 진짜 부활의 의미는 가르치지 않고 제사보다 제법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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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원래 의미
부활은 실제고 그래서 사실이라지만 그것 믿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문답에서 그걸 믿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사실은 의미 없다. 부활을 믿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누가 죽였는지, 왜 죽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그것들은 어떤 의미들을 생각하는 것이 되야 한다. 성경에도 사두개인은 부활과 천사와 영을 믿지 않는 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로마에 저항한 노사제 마카비왕조의 힐카누스와 맛사다 최후항전에서 왔을 수 있다. 경건한 하시딤은 안식일 규례대로 습격을 받아 죽기도 했는 데 개죽음이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의롭게 죽은 자의 영혼을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사상속에서 계시록이 쓰여지고 흰 옷입은 이들 의인이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사상이 나온 후에 기록이 된 것이다.
그렇게 최종 정리가 된 것이 바로 부활신앙이고 부활정신인데 부활절은 예수가 돌아가신 날을 추도하는 제사 날이 아닌 이유다. 예수처럼 말하고 체제에 도전하고 부정하면 그렇게 죽는 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니아가 역사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억울한 죽엄들에 대하여 그들의 정신과 외침과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이 대망한 파루시아가 그것이다.
따라서 세속의 역사속에서 권력과 힘에 의하여 반란이라고 진압되고 죽어간 무고한 자항자들과 민초인 로마 스팔타쿠스란, 세보이 난, 동학 농민 전쟁이나 3.1 혁명 제주 4.3 모두 한 시대 역사속에서 권력과 억압으로 짓눌릴 사람들의 자유와 해방의 저항이었고 인권의 평등을 주창한 운동이라고 보는 것이다. 폭력과 착취에 저항한 인간의 몸부림이었다.
그래서 죽은 자가 산자를 부르고 산자들이 억울 하게 죽은 자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토록 하는 것이다. 4.16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권력과 힘으로 감추고 덮으려고 하기에 그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과 국내외 시민단체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한과 가족의 원을 무시한 정권 정치가는 영원히 용서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복수가 아니라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하여 생명과 안전에 대한 정기를 세우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