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 , 음미하는 음악 , 공감하는 음악이 되어야 합니다

                     음악과 현실 사이에서

   교회음악. 음미하는 음악, 공감하는 음악이 되어야 합니다 

   
 

작곡가 세 사람을 소개하렵니다. 차이점이 워낙 많은데 공통점도 있어요.  뭐가 더 재밌으신가요? 차이점. 공통점. 자. 문제 들어갑니다. 

첫째 작곡가는 헨델입니다. 오라토리오 메시아 가 제일 유명하죠. 우리가 학교 다닐때 음악의 어머니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전 어렸을때 여자인줄 알았어요. 언제 음악시험엔바하와 헨델의 가발로 음악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려내는 고도의 문제를 풀도록 원인제공한 사람입니다.

 그의 메시아중에는 대중음악.즉 술집에서 불렀음직한 노래의 선율을 가져와서 명합창곡을 만든 곡이 있습니다. 12번 합창곡이 대표적 예인데요. 그녀가 나를 버리다니…란 내용이지만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로지 헨델의 대위법적 작곡의 우수성에 묻혔기 때문이죠.

둘째 작곡가는 벨라 바르토크입니다. 헝가리 작곡가로서 헝가리 민속음악을 평생 채보하여 현대음악을 만드는데 성공한 사람입니다. 특히 피아노를 타악기화하여 원시적인 음악적 표현을 통해 민족음악의 물꼬를 트는데 기여한 사람입니다.

 셋째 음악가는 코다이입니다. 바르톡과 함께 그의 일생을 민요채보에 헌신하면서 민속음악교육과 일반 음악교육에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자,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기존 음악적 질서를 따르지 않고도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냈습니다. 민속적 선율을 더욱 예술적 상상녁으로 승화시킨 공을 세웠죠.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음악재료가 각기 다르고 표출방식이 각자의 특성에 맞게 달라집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위치를 정확히 빛내고 있습니다. 

왜 이 세명의 작곡가를 비교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의 교회음악을 되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각자의 주어진 상황과 처지에 맞춰 음악재료와 방식을 달리해도 너무나, 오히려 더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가지 않습니까?

 우리네 교회음악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개성이 모일때 더 큰 은혜의 찬양이 될수 있음입니다. 

 어찌 생각하시나요? 

   
 

 열창이여, 이제 그만. 

좋아하는 가수 많으시죠?  언젠가 나가수를 즐겨본적이 있습니다.   참신한 편곡으로 듣는 귀를 참 즐겁게 하였죠. 근데 나오는 가수들이 순위에 집착한 결과 모두 열창의 무대를 선물했고 청중은 소름돋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열창을 계속 기대한다면,  그리고 이들 가수를 사랑한다면, 열창을 하게하지 마세요.  

우리가 사랑하는 가수들의 성대를 보호해줘야 합니다. 열창부르기? 성대 오래 못갑니다.한번 손상을 입으면 노래는 하나 윤택한 소리. 장수하는 소리 들을수 없음입니다. 잔인한 청중이 되는거죠. 잔잔한 감동은 열창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음악으로 가 볼까요? 

제가 순천에 있을때의 이야기입니다. 전 2부성가대를 맡고 있었죠. 들리는 이야기는 대충 이러합니다. 여성지휘자를 3부 본성가대에 배치안한게 다행이야. 부르는 곡이 죄다 여성스러워. 그때 3부는 매주일 포르테 시모로 끝나는 찬양곡을 불렀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저러면 소리 다 가버리는데.  우려했던 일은 그리 멀리 가지도 않았습니다.  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지친 소리들이었습니다.

 누가 만들었을까요?

청중입니다. 포르테로 끝나야 아멘.하는 습성을 지닌 청중들의 작품이죠.  예를들어 볼까요?  헨델의 메시아 중에 우리는 주로 할렐루야를 선호합니다.  멋있게 끝나죠. 보편화된 찬양이라서도 선호의 이유가 있지만 포르테로 끝나는 것의 안도감이 선호의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과연 이 포르테종지를 수없이 듣고 안도감을 찾을수 있을까요? 지칠걸요.

 포르테 선호심리. 이것이 노래하는 분들의 성대를 망가뜨리는 원인입니다. 포르테 선호하지 맙시다.  사랑하는 가수의 성대를 지켜줍시다. 

   

 

 

교회음악.  눈을 감고 음미하는 음악이 되어야 합니다.  공감하는 음악이 되어야 합니다. 음악인들 고음과 포르테를 자랑으로 여기면 아니 아니 되옵니다

  "고영근 목민 연구소"를 주도하고 있는 고성휘 집사는 한국 기독교의 추모문화의 한획을 긋는 새로운 기독교 문화의 시도로 치루어진 “목사 고영근 3주기 추모축제” 이후 새로운 선교 축제를 기대하며 다시 기독교 문화와 작곡.편곡 공부와 피아노 노래 다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고성휘 집사는 고영근 목사 3주기 이후 “기독교 문화 협동조합”등을 모색하는 등 한국 기독교에 기독교 문화운동의 새로운 불길이 일길 기도하고 있는 중에 있다. 새로운 기독교 문화 운동에 관심이 계신 분들은 “고영근 목민 연구소”로 연락을 바란다. (예장 뉴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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