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직접적 정치 비판은 신중해야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전 6:23-24)

개 교회 성명서 발표는 용기있는 일이지만, 교회와 교인들 먼져 생각해야  

바야흐로 한국정치의 후진성의 민낮을 드러냈다. 윤은 임기초 부터 주술에 의존하고 대통령실 이전 강행등 혼란을 자처했다. 그 결과 그를 찍은 지지자들로 부터도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급기야 여사와 장모는 봐주고 정적은 제거하는 식의 검찰정치를 해왔다. 급기야 지 승질대로 인지 임기 반 만에 초 강수를 둔 것인데 스스로 명을 재촉했는 데 충격적인 비상 계엄선포다

이는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게 되고 여권마져 분열시켜 사면초가로 정치를 힘으로 풀려는 정치 초년생의 불장난을 불안해 하는 국민들로 부터 버림을 받을 것이다. 그가 임명한 고위공무원이나 가까운 인사들, 정치적 동반자 검찰출신 결국 한동훈과도 결별할 정도의 인격이라면 말다한 것이다. 국가 최고 권력자리고 해서 그 권한이 무소불위도 아닌 데 앞으로 무거운 법의 심판과 응징을 받겠지만 앞으로 국가와 국민적 피해가 큰 문제다.

이로 인한 국민갈등은 폭팔해 온 오프의 여론광장에서 사회전반에 대해서  발언하고 행동하는 중으로 기독인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교회 이름을 갖고 정치현상을 비판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나도 한 때 정치 비판에서 그 장을 가리지 않고 했었다. 그러나 87년 이후 절차적 민주성이 확보된 이후는 달라졌다. 지금의 상황은 45년전 80년 계엄 상황과 흡사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한가지가 있다.

그것은 이후 정권 교체를 했다는 점인데  이전에는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 한나라당은 집권시기와 이름과 사람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하나였다. 그러나 19978년 김대중 국민의 정부 등장이후 참여정부나 문재인정부 까지 3번의 민주정부가 집권을 하는 과정에서 정치발언의 톤이나 그 광장은 넓어졌으며 노조와 공무원 종교, 제 3의 세력들도 그렇고 SNS도 그렇고 정치 유투버들의 등장으로 정치 환경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성경에서도 있는 예언자적 목소리는 폭군이나 독재에 대한로 저항이었다. 두려워 아무소리를 내지 못할 때에 경고의 나팔을 부는 파수꾼은 예언자의 역할이 있었다.  따라서 아무도 말하지 못할 때 교회는 목소리를 낼 필요는 있다. 성경에도 파수꾼은 듣던 말던 나팔을 불라고 했다. 그러나 진영의 싸움엔 교회는 가담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야당이나 메이져 언론들이 제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달라진 정치지형으로 생긴 선동 유투버들의 개인 성향도 잘봐야 한다.

   
 

윤석열 탄핵은 정치행위다.  

지금 윤석열을 탄핵시키면 한덕수 총리가 권한 대행을 할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국민이 원하는 방식의 정치를 하겠는 가? 그는 계엄선포에 대한 내각수반으로 책임이 없지 않기 떄문이다. 그러니 자기를 임명한 여당인 국힘과 제1 야당들의 눈치를 볼 것이다. 이전 대통령 권한 대행을 했던 고건이나 황교안과는 달리 개인적 정치욕망은 없다고 할 수는 있으나 탄핵이냐 하야냐 내란혐의 수사냐에 따라서 그이  길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목회자도 개인으로 정치 발언이나 행동은 교회가 아닌 나가서 하는 것은 모르나 교회 이름으로 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게 이 글의 결론이다. 교회공동체의 본질에 대하여 논쟁이 되겠지만 우선 하나 확실한 것은 교회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맡겨진 사역의 장이라는 점이다. 이는 공교회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점으로 우리는 교권주의자들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바 "나의 의 양을 먹이라" 3번이 강조하신 것은 그 양떼는 내(목사) 의 양이 아니라는 게 성경의 원리고 교회사의 관행이다.

나도 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사역인 1983년 뚝섬에 노동교회를 설립하고 이후 광산지대에서 민중지향적 목회를 해왔지만 교회공동체 자체를 정치적 결사체로 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메시지에 성경적 관점에서 시대를 보는 안목이나 자세는 가르쳤지만 같이 나가서 시위를 하자거나 특정한 정치인을 강단이나 공개적으로 지지나 비판하는 데 조심했다. 외부 시민 단체들을 통하여는 정치적인 발언이나 의사를 표현했지만 개인참여 였다

달라진 목회 환경

이번 1203 계엄은 윤석열정부의 막장 자충수 막장 드라마로 온 국민적 비판을 받는 중이다. 그러나 목회자 자신이 섬기는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집단적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유념해야 하는 데 부천의 이음교회라고 하는 곳에서 성명을 낸 것을 보았다. 어떤 교회인지 누가 목사이며 어떤 절차를 거쳤는 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른 교회들이 본 받을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그 목사는 아마 큰 용기와 정의감으로 그 일을 했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교회에 비해 대단한 자부심은 갖었을 것이다.

이후 몇 개의 교회가 나왔지만  교회까지 정치 비판을 공개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대단한 일이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일은 교회 분열의 단초가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하고 다른 교회들이 따라할 일도 아니다. 예외지만 오래전 부터 외부 시위에 자기네 교회 깃발을 들고 늘 참여하는 교회는 예외다. 그렇게 교회를 알려서 덕도 보았다고 하는 데 이에 따른 희생과 분열 아픔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많은 지식인 반정부 인사들이 나가게 되었다는 소리도 들었다. 교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므로 나름 숫적 부흥도 이뤘다는 평이다. 그러나 이런 것도 아무나 따라 할 일은 아니다. 그 교회는 오랜 전통과 경험을 갖고 목회자들도 그런 신앙관을 갖은 분들을 청빙하여 분위기가 정치적 목소리를 안내면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들이 속한 교단에서도 그런 목회자는 대우받을 수 있을 지 몰라도 우리는 다르다. 

한편 기장총회는 12월 8일(주일)을 ”나라와 민족을 위한 특별예배“로 정하고 총회장 특별서신을 나누워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예배로 드린다고 한다. 교단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장로교회는 이에 대한 수용여부는 지교회의 자유이다.  정치경험이 있는 교단의 경우 이런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치변동과 정권창출에서 범시민사회 세력중 하나이기 보다는 기독교 이름을 정확히 결고 빨라진 대선 시계에서 정권창출에 기여하므로 일정한 지분도 요구할 줄 알기 때문이다. 

성경적 근거를 기본으로 해야   

그러나 보수적 교단이의 소속이나 작은교회 상대적으로 장로나 성인 교인들이 없거나 한 교회서는 몰라도 당회가 있고 규모가 있는 곳에서는 언감생심 꿈도 못꾸는 일이다. 간혹 진보성향의 목회자나 교인들 추동으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경우는 있지만 나름 분위기가 되야 한다. 그러나 앞에 언급한 것 처럼 아무도 못하고 안할 때라면 몰라도 언론가 열려있는 상황속에서는  교회 이름까지 내가면서 할 필요까지 있을 까 하는 생각이다. 이는 다른 교회와 관계도 그렇고 동역자들 사이에서도 분열의 요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니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탄핵정국에 일단은 정치적으로 이를 반대하는 당들이 존재하고 언론이나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이상 이를 통하여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모르나 목사가 앞장서서 교회 이름으로 성명까지 내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목회자는 긴 호흡으로 교인들의 신앙이나 세계관의 올바른 변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가르치고 노력해야 한다. 왜냐 하면  교회는 생각이 다른 분들이 있게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인위적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떠난 후 다른 생각을 갖은 목회자가 부임한다면 그야말로 목사들로 인하여 교인들은 큰 혼란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과 노력은 기우리지만 근본적으로 교인들 생각을 바꿔야 껬다는 것은 오만이다. 설교로도 필요할 때 한두번 성경적 관점에서 무리하지 않게 권면하는 수준이어야지 탄핵이든 정치 얘기든 도를 넘으면 안된다.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빗대 비판하고 묵인하는 것은 똑같은 자들이라거나 동조자라는 식으로 교회에서 조차 정치적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거나 공격해서는 안될 것이다. 유신시절에는 한 때 기득권층이나 대형교회로부터 아주 낮은 차원의 민주적이고 진보적 생각을 갖은 목회자나 성도들을 용공,  좌경으로 매도한 때가 있었다. 그 때 우리가 고생하고 비판했었는 데 역으로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교회가 성명을 내려면 나름 제직회든 공식 회의서 그것을 다뤄야 할 것이다. 다행이도 반대자가 없다면 몰라도 다수가 소수를 압도하는 식으로 가게 내게 되면 교회는 괜히 안해도 되는 일을 하여 자제 분열을 조장하는 목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목회자도 사회구성원으로 교단이나 단체등에 속하여 참여하는 것은 몰라도 자기가 세운 교회라고 혹은 자기를 따르는 지지자들을 앞세워 성명을 내고 하는 것은 잘못하면 동역자들 간에도 잘난척 하는 사람이 되고 고립화 할 수 있다. 

   
                                                                      *  평화나무 신비롬 기자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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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이음교회 시국성명서 

[하나님! 속히 악인을 몰아내주십시오.]

<어쩌다가 성실하던 마을이 창녀가 되었는가! 법이 살아 있고 정의가 깃들이던 곳이 살인자들의 천지가 되었는가!너의 지도자들은 반역자요, 도둑의 무리가 되었다. 모두들 뇌물에만 마음이 있고 선물에만 생각이 있어 고아의 인권을 짓밟고 과부의 송사를 외면한다. 그런즉 이스라엘의 강하신 이 주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아! 내가 원수들을 속 시원히 물리치고, 적에게 보복하리라. 이사야1장 21,23,24절>

악인의 길,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길을 선택한 자가 대통령의 자리에 앉아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바르게 세워져야 할 정의와 공의가 무참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위임받은 5년의 권력이 사적인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고, 국민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경제가 붕괴되어 나라가 쇠락해가고 있습니다. 이에 예언자적인 마음을 담아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교회로서 가만히 두고만 볼 수 없어서 성명서를 냅니다.

1. 나라가 이러다 정말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씨의 악행을 보면서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대통령과 그 부인이 한통속이 되어 못된 짓, 나쁜 짓을 해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대신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어리석다는 정신이 온 나라에 흑암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온 나라가 불의를 행해도 힘만 있으면 된다, 어떤 짓을 해서든지 돈과 권력만 가지면 된다는 천박한 정신이 나라를 집어 삼킬 것 같습니다.

2. 정의와 공의를 바르게 집행하고 실현해야 할 법이 구부러져 있습니다. 재판관들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기소하고, 판결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실천하려는 자들을 억압하고 악인들의 편에 서서 의로운 자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법을 수호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검찰청과 법원은 악인들의 보호자와 방패를 자처하면서 의인들에게 날카로운 칼을 무자비하게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판검사들이 권력의 충견이 되어 칼춤을 춥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법 수호가 아니라 국회 탄핵에 맞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려고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검사들의 뻔뻔한 민낯을 보고 있으니 구역질이 납니다.

3. 본대로 들은 대로 정직하게 소식을 전해야 할 언론은 왜곡을 넘어 거짓말을 물마시듯 하는 권력자들의 충실한 개가 되었습니다. 명품 가방을 조그마한 파우치라고 대통령 앞에서 충실히 꼬리를 흔들던 한 언론인은 어느새 공영방송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권력에 아첨해야 한자리 얻을 수 있다는 모범 사례가 되었습니다. 진실을 밝히는 언론은 사망했습니다. 대통령한테 계란말이 한 점, 김치찌개 한 국자 얻어먹으려고 조아리던 기자들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이제 기자가 아니라 기레기, 더 나아가 기더기라고 부르는 것이 더 잘 어울립니다.

4.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인 이태원에서 꽃 같은 우리의 젊은이들 159명이 허망하게 죽었는데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자들도 없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서 왜 죽어야 했는지 진실을 은폐하고 있을 뿐입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간 젊은 채수근 해병을 허망하게 죽게 했음에도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하고 있으며, 젊은 부하의 억울한 죽임을 밝히겠다는 참군인 박정훈 대령의 입을 틀어막고, 항명죄로 몰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할 국가의 책무는 더 이상 바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각자도생이 이제 국가 이념이 되고 있습니다.

5. 평화를 사랑하던 민족정신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수없이 많은 침략을 당했고 그로 인해 남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정신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윤석열씨는 자주와 평화를 수호할 국방을 이웃나라를 위협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형제를 죽이는 살인도구로 변질시켰으며, 전쟁의 선동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전쟁에 혈안이 된 윤석열 정부에 의해 한반도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6.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국가의 면모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일하는 자들은 하나같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친일을 넘어서 매국으로 가고 있고, 일본에 종노릇과 대변인 노릇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등재도 정부가 일본에 바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외교 참사라는 말로 부족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를 통째로 일본에 바칠 기세입니다. 이 정권에서 독도가 다케시마로 바뀌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7.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죽게 되는 현실에 직면하였습니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던 의료 선진국이 아니라 의료 후진국으로 추락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의료를 망가뜨리고 회복시킬 의지도, 회복시킬 능력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방치수준을 넘어서 국민의 생명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극복할 때 전 세계의 선망이 되었던 K-의료는 더 이상 바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

8. 노동자를 저렴한 상품과 일하는 기계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일하다 노동자가 죽어도 국가는 근로 감독에 손을 놓고 나몰라라 합니다. 수 조원의 법인세 감면은 일사천리로 추진하면서 노동자 생명과 안전에는 인색합니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대신 하루 24시간, 주 120시간 일해야 한다는 윤석열씨의 사고는 끔찍합니다. 자본의 목소리에는 귀를 쫑끗하지만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눈과 귀를 막고 있습니다. 무능한 윤석열 정부에서 얼마나 노동자가 죽어 나갈지 걱정입니다.

어느 곳 하나 바른 곳이 없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일하겠다고 손대는 것마다 망가지고, 무너지며, 깨지고 부서집니다. 평화가 깨지고. 생명이 죽어가고, 정의가 무너지고 파괴됩니다. 정상적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무지(無知)하고, 무능(無能)하며, 무책임(無責任)하고, 무법(無法)한 정부로 인해 나라가 거덜나고 있습니다. 국민의 삶과 생명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악한 자가 대통령에 자리에 계속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공적인 권력을 사사로이 사용하는 자가 대통령의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부천 이음교회 성도들은 한마음을 모아 대통령 윤석열씨가 속히 대통령의 자리에서 내려오기를 요구합니다. 정의의 하나님! 속히 악인의 길,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길을 가고 있는 대통령 윤석열씨와 김건희씨를 물리쳐주십시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바르게 세워주십시오.

                             2024년 11월 30일 부천이음교회 교우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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