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관 교수의 민중신학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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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를 은퇴한 권진관박사의 민중신학 강좌가 지난 매주 3회 열렸다. 은퇴후 대만 장영대학, 독일 마인츠대학, 미국의 밴터빌드대학등에서 민중신학으로 연구와 강의를 한 바 있다. 현재 평신도 중심교회 새길교회(설교자:홍인식목사)의 운영자중 한분이다. 서남동기념사업회 대표이며 성공회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쳤지만 출신은 예장 새문안교회 대학부다. 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에서 공부하고 기장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권박사는 경복고와 서울대, 미국 피츠버그에서 공부하고 그후 드류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유학파치고 번영과 성장의 신학이 아닌 변방의 신학을 갖고 평생을 버틴 것이다. 지식인이지만 청년시절 갖었던 민중을 위한 민중신학을 배우고 가르치고 지금도 공부하는 학자다. 최근 K-POP, Food등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가운데 민중신학은 K-신학이라고 할 만큼 그 기초는 되어 있다고 보고 세계로 진출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연구중이다.
자신이 직접 1세대 민중신학자들인 안병무 서남동 선생님들께 배운 후학으로 빛진자의 심정으로 민중신학 2세대 맏이로써 고분분투중이다. 지금 안박사가 설립한 한국신학연구소도 그렇고 신학사상도 운영조차 할 수 없어 한신대로 넘어간 것으로 안다. 한 때 이 연구소에서 일한 분들도 많을 것인데 한신에서 조차 유행되는 AI나 무슨 생태신학등 돈대는 것은 모르나 과목도 없고 교수나 연구자, 논문조차 나오지 않는 풍토지만 민중신학은 세계적으로 내놀만한 신학이라는 확신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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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광화문으로 신축 이전한 향린교회내 안병무도서관에 자원하여 도서관 지기로 봉사하면서 자신이 맡은 시간에 이번 강좌를 개설한 것이다. 민중신학을 연구하는 후진들이나 관심자들의 참여가 아쉽기는 하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라도 권진관 박사와 함께 계속해서 한국민중신학회도 그렇고 민중신학의 담론을 잇는 연구와 발표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권박사는 더 이상 안병무, 서남동 선생님이 이런 얘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닌 신학도 학문이니 이론적 발전을 위한 연구에 성원을 보낸다.
이번 주제들중 1,2회는 1세대 학자들에 대한 회고와 노동자 농민, 빈민들에 대한 것이지만 신학적 해석이 아닌 학문으로써의 담론을 시도 중이라 그런지 다소 어렵다는 평이다. 그러나 학자는 두가지를 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는 남이 하지 않는 학문화(이론화 작업과 대중화) 인데 둘 다를 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 선보인 헤겔철학이나 라깡의 이론으로 민중신학 담론을 풀어보려는 노력은 더 진전되기를 바란다.
모든 학문은 연구자가 가르치고 비판받으며 논쟁과 대응을 통하여 더 정교해지고 풍성한 것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신학의 풍토란 교단에 소속한 신학대학이 주류로 교파가 원하는 성직자를 양성하는 것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미국의 유니온신학대학은 교파로 부터 자유로운 학문을 하라고 지식인들이 기부하여 세운 대학이다. 그러나 재야 학자들도 기성교단이나 학교 탓만하지 말고 밖에서라도 연구의 장을 열고 논쟁하고 비판하고 도전하는 풍토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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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교수도 관련된 1979년 YWCA 위장 결혼사건 주동자들(무죄선고후 찍은 사진) | ||
이번에 첫 강좌에 대하여 권박사와 오랜 지기인 송진섭(49년 수원출생) 전 안산시장이 애정을 갖고 첫번쨰 영상을 보고 쓴 감상을 소개한다. 송진섭 전 시장은 덕수상고 졸업후 제일은행서 노조활동을 시작으로 전장청, EYC 회장을 지내고 총회 사회부 간사, 영등포산선 간사을 지낸다. 이후 안사에서 공장 노동도 하고 안산에 85년 노동상담소 개소해 소장을 지냈으며 88년엔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지역구 출마를 한 이래 95년 초대 안산시장을 민주당으로 이후 2002년 3대 시장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지냈다.
그 과정에서 정적들과 고질적인 정당의 구조로 인하여 피해를 보고 감옥까지 갔지만 무죄를 받는 다. 이후 정치 역정은 가시밭길이었는 데 고졸출신으로는 역부족이였다. 그러나 송선배가 전라도 사람이거나 서울대를 나왔다면 그렇게 험하게 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평화민주당으로 시작해 민주당까지는 몰라도 국민당에 한나라당, 친박연대까지 갔지만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분으로 시장 퇴임후 안산공대 크로스터 교수를 지내고 후배들 공장에서 일도 하였다. 공직으로는 안산 도시공사 사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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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비 비봉면 시골에서 송진섭
지난 12일(화)에 권진관교수께서 진행한 "민중신학" 강의에 직접 참석은 못하고 유튜브 방송을 통해 들었는데(사회적협동조합 길목TV) 한번 듣기로는 충분치 않아 수일 지난후 두번째로 권진관교수의 유튜브강의를 또 반복해서 들었다
(1)권교수님은 자신의 71년 대학입학ㅡ민청학련 사건 구속ㆍ제적 그리고 이후 안병무박사님이 초대원장이셨던 선교교육원(기장)의 신학공부를거치면서 신학전공의 길에 들어섰던 지난 시간을 회고한 후(이후 권교수님은 저랑 함께 EYC 총무ㆍ간사하면서 79년말 다시 감옥생활을 하고 선교 교육원졸업후 80년대 미국유학을 떠난다.) 민중신학에 관한 내용정의와 민중신학의 세대구분과 그 이유를 설명한다, 교수님에 의하면 민중신학은 1~3세대로 구분짓는데 1세대는 70년 전태일의 죽음 그리고 산업선교가 맹활약했던 70년대~ 80년대 전반 그리고 동일방직사건과 원풍모방사건 이 종결된 83년까지ㅡㅡ강의에서 산업선교가 여성노동자중심의 현장에서 놀라운 헌신과 결과를 만들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인천산선의 경우 조화순목사님, 고 김근태의원도 있었고 그리고 영등포산선에 조지송,인명진목사님의 헌신과 노력을 설명하고 있다.
(2) 그리고 83년 이후 민중신학의 2세대가 이어지는데 이미 이시기는 산업선교의 시대가 바뀌면서 노동자들 스스로 조직을 통한 새로운 노총운동의 시대로 전환되었음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래서 95년 새로운 민주노총의 설립을 깃점으로 민중신학의 토대가 크게 약화되는 변화를 목격하게 되는데 이것이 95년이고 그 이후(3세대) 민중신학에서 노동의 문제가 약체화되고 가령 수도권의 여러 민중교회들이 설립초기의 노동자교회의 성격으로는 힘들어지고 그와 동시에 민중신학에 맞서 새로운 사조(思潮)가 출현하여 대치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3) 95년이후 민중신학 3세대와 관련해서는 산업선교에서 벗어난 노동운동의 독립이 이루어지면서 그 자리에는 이른바 포스트 모던이즘이 물밀 듯 다가오는데 가령 사회변화의 억압적 성격, 강고한 막시즘이나 민중신학은 안된다는 이념적이고 논쟁적인 사조(思潮)인데 이것은 진보적이지만 엄청난 대립구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주창한 학자로는 스피노자, 에이트 헤드 같은 사람들이다. 결국 이들의 강조점은 신물질주의 혹은 신유물론의 팽배로써 설명되는데 민중신학과 신학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4) 민중신학을 대체하면서 생태환경문제,지구온난화문제, 성차별금지문제 등 잇슈를 크게 제기한 반면 노동문제는 상실되어 왔다. 결국 새로운 포스트 모던이즘과 여러 사회적 잇슈의 문제본질 또한 노동과 자본의 대립의 성격을 피할수 없는것인데 민중신학에서 멀어져 갔다.
권교수님은 바로 이 지점에서 ”3세대 민중신학에 문제가 있을수 있다는 것이 본인의 분석결과이다“ 라고 말한다. 과거 혹은 지금에서도 사회 여러분제들의 바닥과 본질은 노동의 문제가 있다.모든 사회문제를 관통하는 것은 노동문제이다. 그럼 신학은 어떻게 해야 했는가? 그것은 과학화 즉 근본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라고 권교수님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신학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민중신학을 과학화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민중신학의 기본은 성서텍스트를 갖고 논의하지만 논의의 바닥에는 물질적인 관계를 강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부분에 와서 헷갈렸다. 즉 권교수님은 다양한 포스트 모던이즘의 잇슈들이 성서를 벗어나며 신물질주의(신유물론)에 치우쳤다는 비판이 있으면서 새로운 민중신학의 과학화, 혹은 이슈의 물질적 관계를 말하는 것의 모순이라할까 상충되고 있음이 보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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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시장의 기독교민주화운동 동지들 부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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