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로 끌려 나온 십자가

길거리로 끌려 나온 십자가

/ 박찬희 목사(기둥교회, 성결동행, 서울신대 교회사 강사)

오늘, 오후 2시 대학로에서 소위 ‘탄기국’ 집회 전에 평강제일교회, 예루살렘교회, 스룹바벨선교회 뭐 이런데 속한 사람들이 대형 십자가를 들고 행진했다고 한다. 참 공교롭게도 이들은 정통 기독교에서는 모종의 의문을 품고 있는 단체들이라는 것이 의미롭다.

   
*  오늘 대학로에 등장한 십자가

뭐 그렇다고 기성 기독교단이 쓸만하다는 것은 아니다. 기성교단이 저들과 차별성을 갖고 있다면 저들이 이 시국에 저꼴로 나대지는 못했으리라.

영광의 십자가를 지향하는 한국교회여.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정의없는 곳에 평화는 없다. 나는 믿는다. 교회가 외면하면 예수도 교회를 외면할 것이다. 예수의 정신에서 훼절한 신앙, 예수의 길을 왜곡하는 자들, 그것은 그들은 십자가를 들 자격이 없다.

오늘은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종말을 가져오게 한 모티프가 된 박종철 열사 30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는 없고 나는 있다. 그와 동년배인 나는 그에게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막고 세워야 했을 지난 30년, 다시 87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간 현실에 박종철 열사야말로 높이 들어야 할 민중의 십자가, 민족의 십자가가 아닌가!

어쨌든,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 높이 들린 말끔히 깎인 십자가가 참 고생이다. 이들은 과연 십자가가 오늘 우리에게 일갈하는 바를 알까?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니 오래 전 운영했던 홈피에 써놓았던 십자가의 역사를 포스팅한다. 무지무지 긴 글이니 머리 아픈 분은 그냥 패스하시라!

– 십자가 처형 –

헤로도투스에 의하면 십자가 처형은 페르시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리고 알렉산더 대제가 이집트와 카르타고에서 사용했다. 이전에는 십자가 처형이 로마인들에게서 성행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카르타고인들로부터 도입했다. 십자가 처형은 가장 고통스런 고문이었으며 동시에 수치의 형벌이었다.

아주 서서히 극심한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게 하는 가장 무자비하고 잔인한 형벌의 극치로서 대개는 반란 노예나 모반죄를 지은 자들 그리고 아주 중대한 죄를 지은 자들과 탈영한 군인들에게 가해지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처형법은 십자가 아래의 사람들에게 일종의 경고로서의 역할도 했다. 로마 시민에게는 십자가 처형은 물론 채찍질도 가할 수 없었다. 로마인들은 십자가 처형을 "노예들이 받는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헤로도투스의 "알렉산더의 역사"에 의하면 성경에도 언급된 다리우스 왕은 BC 519년에 3000명이나 되는 바벨로니아인들을 십자가에 처형했다. 또한 후에 알렉산더 대제가 정복지에서 십자가 처형법을 사용했다. 이 책에 기록된 루푸스(Curtius Rufus)의 말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두로를 정복한 후 2000명을 이 방법으로 처형했다. 로마가 헬라제국을 점령해 가면서 카르타고의 처형 관습도 자연히 도입되었는데 인도, 앗시리아, 시리아 그리고 켈트족 등의 이방인들에게 이 형벌을 사용했다. 헹겔(Martin Hengel)에 의하면 이 방법은 후에 게르만족과 영국인들도 사용했다.

로마의 키케로(Cicero)는 이 처형을 보고 "가장 잔인하며 혐오스런 형벌"이며 "최고의 형벌"이라고 한 바 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 또한 이 처형을 직접 보고 "가장 지독한 죽음"이라고 했다. 로마의 법학자 파울루스(Julius Paulus)는 이 당시의 처형법들 즉 화형이나 목을 베는 것이나 짐승들에게 던져지는 것보다 십자가 처형이 가장 최악의 것이라고 했고 세네카는 이 처형이 가장 특별한 방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스파르타쿠스에서 노예들의 폭동이 일어났을 때 로마의 장군 크라수스는 6000명의 노예들을 로마도 들어오는 길목인 아피온 거리에서 십자가로 처형함으로서 경고로 삼았다. 요세푸스는 AD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Titus)가 예루살렘을 포위했던 때에 하루에 500명이상이 같은 방법으로 처형되었다고 기록하면서 "예루살렘에는 십자가를 세울 곳이 더 이상 없고 사용할 십자가가 부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초기에 페르시아에서 대개 처형대상자의 발은 땅에서 1피트 정도 들어 올려 져 나무에 묶이거나 기둥에 못 박혔다. 그 이후에는 십자가 형태가 사용되었는데 기둥을 세워 놓고 수평으로 된 나무에 묶이거나 못이 박힌 채 들어 올려 져 기둥에 고정되었다. 로마는 팔레스틴 지역에서 T자 형태의 타우 크로스를 주로 사용했고 라틴 크로스의 형태 혹은 X자 형태의 십자가 처형도 있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타우 크로스일 가능성이 많다.

처형 대상자는 채찍질이 끝난 후 성벽 밖에 기둥이 세워진 처형장으로 백부장이 이끄는 병사들에 둘러싸여 자기가 못 박힐 수평 통나무를 지고 가야만 했다. 세워진 기둥은 약 136kg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것이었다. 죄수가 지고 가는 통나무는 35~57kg 정도의 무게였다고 한다. 이것을 채찍질로 다 헤어진 어깨에 지고 가는 죽음의 길은 고통의 길 그 자체였을 것이다. 죄목을 쓰는 현판은 때때로 병사들이나 주위에 있는 다른 죄수에 의해 운반되었고 기둥 꼭대기에 게시되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의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처형장은 예루살렘 성벽 밖의 골고다처럼 로마의 에스쿠빌리누스(Esqulinus)라는 곳에도 있었다고 한다. 처형 장소 근처에는 주검을 던져놓는 곳이 있었는데 그런 까닭에 "골고다"를 "해골을 두는 곳"이라고 불렀다.

죄수는 발가벗겨진 채 두 팔을 수평막대기에 묶이거나 혹 못이 박힌 후 수직 기둥으로 들어올려진다. 발이 닿을 만한 부분에는 돌출 부분이 있어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 손을 묶는 것은 하중이 아래로 쏠려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못은 발에 박히는데 혹 양 손목에도 박히게 된다. 복음서는 주님의 양 손에도 못이 박혔다고 증언하는데 아마 손바닥보다는 손목이었을 것이다. 1

968년 예루살렘 북쪽의 고대 무덤에서 한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이 유골은 예수님 당시 즉 1세기경의 것으로 하콜의 아들 요하난(Jehohanan ben Hagqol)이란 사람의 것이었다. 그 유골을 보면 발과 손목에 약 7인치 정도 크기의 쇠못이 박혀있었고 나무의 재질은 올리브 나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성서에는 예수님의 손에 못이 박혔다고 했는데 이는 고대인들이 손목까지를 손으로 간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채찍에 맞았다. 이 당시 유대인의 법률로는 죄인에게 39대의 채찍질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은 신명기 25:3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찌니"라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유대인 관원들과 로마 병사들은 예수의 벗은 몸에 왕의 색깔인 자색 옷을 입히고 손에는 황금 홀 대신 갈대를 쥐어주었다.

머리에는 가시로 만든 관을 씌우고 가시관을 막대기로 내리치고 예수님의 뒤를 맴돌며 조롱했다. 채찍질은 보통 두 명의 병사에 의해 가해졌다. 가차없는 채찍질은 출혈과 극심한 고통을 주기 위해 온몸을 벗기고 기둥에 뒤로 돌려세워진 후 다리와 엉덩이를 묶은 후에 가사상태에 빠질 정도까지 이어졌다. 가죽으로 된 서로 다른 길이의 두 가닥 채찍 끝에는 쇠붙이나 양의 뼈로 만든 작은 갈고리를 매달아 한 대의 채찍에도 살점이 뜯겨 나가도록 고안되어 있었다.

   
*  주후 80년경 콜롯세움에 그려진 십자가

살점이 뜯기고 갈라진 피부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채찍질에 예수께서는 점차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음식과 물은 제공되지 않고 심지어 잠조차 재우지 않았다. 채찍질은 십자가 처형 이전에 더욱 고통을 주고 동시에 구경꾼들의 본보기로서 가장 좋은 끔찍한 형벌이었다.

실제로 십자가 처형 이전에 이미 이 채찍질로 인해 죽는 자들이 속출했고 비록 죽지 않아도 육체와 정신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이런 채찍질은 보통 십자가에 달린 자가 하루 혹은 건장한 자는 일주일 정도를 매달려 있던 반면에 예수께서 6시간 만에 운명하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죄수가 십자가에서 거의 가사상태에 이르면 약 20인치 길이의 갈대를 사용해 마취성분이 있는 몰약이나 쓸개즙 혹은 신 포도주나 유럽산 박하의 일종인 우슬초를 주기도 하는데 이것은 고통을 덜어주는 역할과 그가 아직 생존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방법이기도 했다.

당시 십자가의 크기는 총 길이가 7피트를 넘지 않는 비교적 작은 것과 높이가 그보다는 훨씬 높은 것이 있었는데 예수께 이것이 제공되었다는 것을 보아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의 크기는 지상에서 1피트 정도 들어 올려진 약 7피트 높이의 작은 십자가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것을 받지 않으셨는데 그것은 우리를 위한 죽음의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지 않으시려는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십자가 처형에서는 보통 다리의 관절을 꺾는데 이것은 죄수가 죽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관절을 꺾어버림으로 몸의 하중을 받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 예수님에게 이것은 예외가 되었는데 그것은 이미 예수님의 죽음이 확실하여 하중을 받치려는 모습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  1세기에 십자가에서 처형된 요하난 벤 하콜의 유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보통 며칠 동안의 지속적인 고통이다. 피비린내는 온갖 곤충들을 불러 모으고 신음하는 입속으로, 눈으로 피가 흐르는 환부로, 노출된 모든 부분으로 몰려들어 고통을 준다.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은 우선은 신체가 못에 박힌 것에서 오지만, 그것 이외의 더 큰 고통이 있었다. 의학자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호흡은 손을 가지런히 내린 편한 자세에서 가장 쉽다고 하는데 양 팔을 벌리고 발이 못에 고정된 채 시간이 지나면 출혈로 인한 탈진과 함께 숨을 내쉬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또한 중력에 의해 몸이 아래로 쏠리면서 못박힌 부위의 통증이 더해가고 몸을 들어 올리려 하기 때문에 발에 힘을 주고 관절을 비틀게 되어 통증이 더해간다는 것이다. 자연히 몸은 거친 기둥의 단면을 부벼 댐으로 채찍질로 헤어진 몸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이런 고통은 죄수를 죽음으로 이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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