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성목사의 내부식민지 주민?

             이주노동자는 내부식민지 주민

고용허가제는 내부식민지 주요 통치 수단

포천에서 사역중인 김달성목사는 국내 이주노동자들의 억울하고 힘든 사정을 돌보는 사역을 한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봉천동 산동네서 희망교회 빈민목회로 시작하여 인천등에서 노동자교회와 일반목회를 하다가 15여 년전 포천의 이주노동자 집단 거주지를 대상으로 사역하면서 페이스북에 이주노동자들의 인권과 피해를 알리는 글을 쓰고 있다. 또 매주 토요일에는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코이노니아 밥상모임을 몇 년 째 실행중이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하지만 누구나 함께 참여하여 식사와 대화를 통한 밥상 공동체의 자리로 친교의 모임을 이끌어 가고 있다.

   
 

김목사는 국내서는 처음으로 이주 노동자를 가르켜 “내부식민지 주민” 이라는 말을 썼다. 이 말을 처음 나온 것은 사회학자들로 미국과 남미의 특수한 관계속에서 형성된 이주노동자들 역사가 깊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이 용어를 일반화 시킨 것은 김달성목사로 이 사회의 바닥에서 일하는 일하는 사람들 그중에 특히 이주노동자들은 인권의 사각지대에 대한 고발적 성격이다. 물론 일하는 사람들은 다 힘들고 어렵지만 낮선 이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우선 체류문제인 고용허가제라는 법과 언어와 문화적 차이로 배나 힘든 생활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힘들게 기여하는 노동자들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치 않다.

이주노동자들은 선주민들이 꺼리는 힘들고 위험한 일을 도맡아 하고 있지만(150만 이주노동자가 한해에 한국경제에 생산과 소비로 주는 효과가 138조에 이른다는 연구 조사가 있다 하지만 이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구조적 차별 아래서 장시간 고강도노동, 낮은 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그리고 산재를 당해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은 마치 과거 식민지의 피지배 주민들처럼 억압 착취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지난 29일(화) 오전 11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괴롭힘과 폭력은 중범죄다! 사업장 변경의 자유 보장하라! 차별적 법제도를 철폐하라!’는 제목으로 공동 기자회견을 열리기도 했다. 

   
 

특히 고용허가제는 이들을 더욱 옥죄는 옥죄고 있는 데 국회가 만들고 정부가 집행하며 사법부가 강력 뒷받침하는 이 제도는 내부식민지 통치를 위한 주요 수단이다. 이 제도에서 고용주의 동의 없이는 일터를 옮길 수 없다는 규정은, 이들을 고용주에게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는 다. 이뿐만 아니라, 고용 연장의 권한이 전적으로 고용주에게 있다는 점은 이주노동자들이 불합리한 처우를 당해도 이를 감내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는 단순한 고용 관계를 넘어, 사실상 노예적인 주종 관계를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업주 개인적인 차원이나 개별 기업의 차별을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낸다. 법과 제도가 이주노동자들의 차별과 불평등,억압과 착취를 공고히 하고 있다. 불법적인 숙소 문제, 낮은 산재 신청률, 극심한 임금 체불이나 임금 도둑질 등은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내국인 국민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꼴등 시민’처럼 취급받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데 이들은 국민 밖의 국민이고 계급 밖의 계급으로 착취 공장형 재벌왕국사회 먹이사슬 맨 끄트머리에 고정되어 있다.

김목사는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현실을 통해, 한국 사회의 민낯을 늘 본다고 한다. "경제 성장을 위해 착취공장형 재벌왕국의 번성을 위해 그들의 노동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면서도, 정작 이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는 않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을 날마다 생생하게 봅니다. 저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주노동자가 오는 것은 사람이 오는 것입니다.단지 인력이 오는 게 아닙니다" 

   
 

내부식민지론을 주장하는 해외 학자

‘내부식민지론(Internal Colonialism Theory)’은 한 국가 내에서 지배적인 집단이 소수 집단을 식민지와 같이 지배하고 착취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러한 이론을 발전시키거나 적용한 학자는 다음과 같다.

*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블라우너(Robert Blauner)는 내부식민지론을 미국의 인종 문제에 적용한 대표적인 학자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백인 지배 집단에 의해 외부 식민지처럼 통제되고 착취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블라우너는 외부 식민지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통제가 미국 내에서 인종 차별과 인종적 격리 형태로 나타난다고 보았다.Robert Blauner (1956) | UC Berkeley Sociology Department

* 맥시코의 사회학자 파블로 곤잘레스 가사노바가 있다. Pablo González Casanova – Wikipedia

   
          * 이주노동자를 지게차에 묶어 가혹행위를 한 뉴스 

김달성목사

청주가 고향인 김목사는 의대를 중퇴하고 서울의 감신대 재학중 1978년도 고향 청주에 온다. 마침 주일을 맞아 교회에 가려고 알아보다가 누가 모교인 "청주고등학교 옆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 가 봐" 라는 말을 듣고  청주산선 노동교회에 처음 가게 된다. 예배당 전면에는 참나무로 된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투박한 십자가가 다른 교회와는 무언가 다르겠구나라는 예감이 들게 했다.

그 런데 예배자들은 대부분이 허름한 옷을 입은 노동자와 농민들로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로 이 교회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단식을 하고 있는지 듣고 면서 ‘초대교회가 이런 모습이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정진동을 참 목자(牧者)라고 생각하며 정목사 장남 고 정법영의 의문사를 목도후  6개월간 주말마다 서울에서 청주로 내려와 청주산선에서 예배를 봤다.

이를 계기로 ‘예수의 제자’로 살기로 작정한 김달성은 1978년 구로공단 대한광학에 위장 취업한. 3000명이 일하는 대기업이었다. 당시까지 육체노동 한 번 해보지 않은 김달성은 3개월 만에 그곳을 나와야 했다. 각혈을 하고 평소 지병으로 앓고 있던 늑막염이 재발했기 때문이다.

치료 후에 선배가 시작한 사당동과 봉천동의 희망교회로 부임한다. 여기서 공부방을 운영하고, 빈민들의 벗으로 살았지만 정권의 강제철거 정책에 떠밀려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85년부터 인천 주안공단에서 노동 선교를 하며 한국민중교회운동연합 총무 일도 봤다. 그렇게 살던 그에게 정치적 환경의 변화에 따른 심정의 변화가 생겼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노동 선교를 중심으로 전개한 민중교회운동의 역할과 소임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일반 목회를 시작하지만 1997년 IMF 때 교회운영의 위기가 닥쳐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실의에 빠진 그는 5년간 슬럼프에 빠졌다. 슬럼프에서 빠져나온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2011년 경기도 포천으로 갔는 데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15만 포천인구 가운데 이주민이 약 2만명 거주중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임금 체불과 산업재해의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었다. 잠자리도 쪽방이나 농장기숙사였다. 심지어 자신들의 나라에 송금할 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김달성은 2018년부터 여생을 이주노동자와 함께하겠다고 결심하고, 2025년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진동 정신으로 사는 포천의 참 목자다.

   
                                * 1980년 초 봉천동 산동네서의 아이들과 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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