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의 "역사 속의 오늘"
루터의 두 왕국론
1522년 9월 21일 루터가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번역한 신약성서가 출간되었다.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거하는 동안 주요과제로 삼고 많은 시간을 투여한 결과물이었다. 이 작품은 <9월성경>이라 불리운다. 11월 7일에 이웃의 영주인 게오르그는 자신의 영지에서 이를 판매하는 것을 금하는 영을 내리게 되며, 여러 제후들이 이를 따르려 하였다. 다급해진 루터는 다음 해 3월에, <세속정부, 어디까지 순종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발표하고, 신앙의 사안에 세상권력이 간섭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게 된다.
게오르그는 영주 중에서도 신학적인 식견이 뛰어난 특이한 인물이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사제로 키우려고도 하였다. 그 아버지는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하였는데, 지옥에서 고통당한다고 생각하여, 아들이 신부가 되어 외할아버지를 신원하기를 바랐다. 이러한 연유로 게오르그는 구교진영의 논리를 펴는 일에서 신학자 못지 않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게오르그의 방어막은 루터가 대적하기에 가장 까다로웠고 위력이 있었다.
루터의 주장은 부메랑이 되어 괴롭힌다. 그러면 교회도, 세속정부가 하는 일을 구경만 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생각에서 루터교의 정치윤리에 해당되는 “두 왕국 사상”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개혁교회의 논리인 “그리스도의 왕권 이론”과의 갈등은, 20세기 중반에 50년 정도 진행된 루터교회와 개혁교회의 논쟁에 국한시켜서 이해하는 것이 적합하다. 한국의 신학에서는 이를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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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동판화는 성서번역자 히에로니무스로 변신한 루터. 사자는 히에로니무스를 나타내는 그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