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의 역사 속의 오늘

                                          김인주의 역사 속의 오늘

쯔빙글리(1484-1531)가 10월 11일 카펠전투에서 패하였고, 처참하게 죽어갔다. 1929년 10월 초, 마르부르크에서 그는 루터를 설득하는 데 실패하였다. 양측의 성찬에 관한 견해는 좁혀지지 않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사라졌다. 1530년 6월에 소집된 제국의회에서는 개인적으로 신앙고백을 제시하였지만,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이 확산되었다고 하나, 산악지대는 아직도 천주교가 지배하고 있었다.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하며, 전쟁도 불사한다는 태세를 갖추었다. 평야지대의 개신교 진영은 물자공급을 봉쇄하며 압박하였다. 1530년 두 번째 전투가 벌어지고, 열세의 병력으로 전장에 나갔던 개신교 진영의 대패로 종결되었다. 쯔빙글리의 시신은 찢겨졌고, 화장되어, 사방으로 뿌려졌다. 그의 역할이 병사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는 군종장교는 아니었다고 보인다.

열세의 전쟁터로 나가면서, 자신의 최후를 예견하였다. 카펠은 쮜리히 남쪽방향 7km 정도 되는 지점이다. 그의 아내 안라 라인하르트(1487-1538)은 1522년부터 그와 동거하다가, 1524년 4월 2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세 자녀가 있는 과부였는데, 첫 결혼을 시부모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어려운 처지였다. 개혁자와의 사이에서는 네 자녀를 낳았다. 후임자 불링어가 유족을 돌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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