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의 "역사 속의 오늘"
도미니쿠스(1170-1221) 스페인의 수도자였다. 알비파의 지역에서 신자들과 밤새워 토론하며 설득하는 과정에서, 바르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취지에서 세워진 수도단이 도미니칸 수도회(OP)로서, 설교자들과 신학자들을 많이 양성하게 되었다. 적은 수로 시작했지만, 몇 해 안에 많은 수도자가 모여들었다. 지성에 바탕을 둔 선교활동은 금세 큰 세력을 형성하였고, 근대에는 교육과 선교에 큰 실적을 올렸다.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는데, 알베르투스, 토마스, 사보나롤라…
프란치스코와 같은 세대의 인물이면서, 서로 불편한 경쟁을 하지 않고, 공존의 길을 택하였다.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감성에 호소하고, 도미니칸은 합리성에 바탕을 둔 설교로서 설득한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면서도, 비이성적으로 과도하게 교리를 확장하는 데는,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성모무염시태 등, 여러 주제에서 신학적으로 대립하였다. 오히려, 현대에 들어오면서 천주교가 마리아 교리를 공식적으로 채택하였는데, 도미니칸은 소극적으로 수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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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중세 혹은 근세의 절대주의 시대에 횡행한 이단심문의 전면에 도미니칸이 서 있다는 점이다. 천주교로서는 가장 준비가 되어 있고 믿을만한 수도회에게 이 일을 많이 맡겼는데,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오죽하면, 도미니칸을 “하느님의 사냥개”라고 풀어 이해하게 되었을까! 도미누스(주)와 카니스(개)를 합쳐서 도미니쿠스란 이름이 지어졌다는 이야기다. 유명한 종교재판 주역이 대부분 이 선교회 소속이었으니, 피할 수 없긴 하지만, 지나친 말장난이다. 도미니쿠스 자신은 이단재판과는 무관하였다. 그는 8월 6일 선종하였으나, 축일로 지키는 것은 8월 8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