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주의 영화 읽기
김인주 목사(서울대,장신대,독일 본대학, 에어랑켄 대학 수학) 현재 제주도 봉성교회 시무
1861년 4월 12일 미국은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서 전면전에 돌입하였다. 흑인 노동력을 남부에서는 대단위 목화 농장의 노예로 부리기를 원했고, 공업화에서 앞선 북부에서는 공장 노동자로 활용하기를 바랐다. 인도적 측면에서 벌어지는 노예 해방에 관한 논쟁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스토우 부인의 “엉클 톰스 캐빈”(1852)이 출간되어 여론전에 힘을 실어주었다.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취임하기도 전에 남부의 일곱 주는 연방을 탈퇴하고 남부연합을 조직하였다. 전쟁은 4년 남짓 벌어지는 동안 양측 모두 큰 희생을 치렀는데, 결국 북부가 남부를 제압하여 종식되었다.
전쟁 막바지에 링컨 대통령과 군 수뇌부인 셔먼, 그랜트, 포터와 함께 의논하는 장면이 그림으로 남았다. 그랜트는 거듭 실패하는 인생여정에서 고전하다가, 참전 이후 전공을 세우며 지위가 수직상승하였다. 승전 장군으로 명예를 얻었고, 1869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는데, 당시 46세로 최연소 대통령의 기록이었다. 경험 없이 뛰어든 정치계에서 당대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비판의 수위도 낮아졌다.
영화 <러브 미 텐더 1956>에 전쟁 말기 그리고 그 이후 상황이 반영되었다. 남부에서 형제 셋이 입대하고, 말기에 북군의 군자금을 탈취하는 작전에 성공한다. 그 순간 전쟁이 종료되자, 관련자들이 나눠 갖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각자의 몫은 200달러, 당시에는 큰돈이다. 집에 남았던 막내는 이웃집 처녀와 결혼했다. 모든 형제들이 마음에 두었고, 큰형과 맺어질 것으로 모두가 공인하는 사이였다. 전쟁으로 처녀의 가족이 모두 사망하고, 형들은 전사하였다는 잘못된 통보가 있었으니,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첫 영화이자 히트곡으로, 전쟁시 남부에서 널리 부르던 노래를 약간 다듬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