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사키 천주교 성지 순방기

        일본 나가사키와 고토 열도의 잠복 기리시탄

이희숙목사(구로FM 라디오마을공동체 이희숙의 사과꽃향기이야기 진행자, 은종선교회, 장신대학부 신대원,이화여대 교육대학원,총회 교육부, 장로교출판사)

이 글은 지난 2025년 2월 17일- 21일 차정식 교수와 함께한 역사 문화기행기 일원으로 참가한 기행문이다(일본 권요섭 선교사 가이드)

   
 

따스한 봄볕 아래 제주 4.3사건의 상징인 동백꽃이 만발하여 어디서든 서울에서 겨울을 안고 온 이방인을 반겨준다. 작은 얼굴에 하얀 수선화와 눈 맞추고 홍매화 청매화, 유채꽃과 활짝 핀 팬지 꽃도 보고, 처음 보는 낯선 꽃 가득한 꽃동네도 걷는다. 숲길에서는 볕뉘도 살핀다. 구마모토에 잠시 거주했던 유명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정원에서는 치자나무 꽃 앞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섬나라 임을 확증하는 센 바람으로, 곁을 주기 어려운 봄맞이를 한다. 다시 겨울로 가는가? 하면서 봄꽃향기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틈에 M 1-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를 떠올리며 순례길에 조심스럽게 봄 향기를 맡는다. 꽃을 생각하니 랑게(Lange)의 꽃노래, 이승희의 플룻과 김영아의 피아노 연주의 호흡을 함께 한다. 또한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중에 ‘꽃의 왈츠’ 등이 생각난다.

소토메와 고토열도의 절벽과 해안, 숲과 산이 대마도와 제주도를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그곳엔 다채로운 파랑색과 초록색 물감 가득 품은 바다 위에서 윤슬이 노닌다. 또한 드넓은 바다 위 하늘에 펼쳐진 구름들이 마치 안온하게 두 팔 벌려 감싸 안아주는 듯, 환영하며 환대받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섬의 특성대로 모자를 날리는 바람은 세게 불었으나 구름들의 멋진 쇼가, 아틀란타의 드넓은 하늘에서 만난 구름들처럼 또 다른 멋으로 기억하고 싶다. 여행 내내 청명한 날씨와 하늘의 구름이 아름다웠다. M 2- 박두진 시, 이흥열 곡인 ‘꽃구름 속에’가 떠오른다.

1. 기독교 전파시작
유럽에서 대항해의 시대가 열리면서 동양에 대한 관심으로 해외선교가 시작된다. 고토 열도에서의 기독교 전파시작은, 1549년 예수회(Jesuiten) 소속 신부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Xavier)부터이다. 예수회는 독일 종교개혁운동 이후 가톨릭 자체 안에 반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신부에 의해 생겨난 교파이다. 예수회에서 파송된 일본선교사가 사비에르이다. 그가 가고시마에 상륙하고, 1550년에 하라도에서 선교를 시작한다. 1560년대부터 예수회 신부들, 프랑스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페루 신부들의 포교활동이 이어진다. 그러나 일본 전통 종교 불교와 여러 잡신을 섬기는 문화에서. 유일신을 섬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선교기가 시작되지만,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금교령과 선교사 추방령이 발표되고,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 니시자카에서 26명이 순교하면서 박해기를 맞는다. 순교자 26성인(聖人) 중에는 고토 출신의 19세의 성 요한도 포함되고, 성인들 중에는 부자(아버지와 12세 아들)간이 함께 포함되기도 한다.
1614년 막부가 전국에 금교령을 선포한 이후, 선교사들이 추방된다. 1790년 잠복기에 잠복 기리시탄들이 나가사키 우라카미에서 검거되고, 소토메의 기리시탄들이, 기독교박해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고토(섬)으로 박해를 피해,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숨어들어간 기리시탄들이 3,000명이나 된다. 이들을 잠복 기리시탄(가쿠레 기리시탄)이라고 한다. 이후 1873년 천주교 금지령 해제로부터 부흥기에 이르게 된다.

2. 소토메에서 고토로
소토메는 엔도 슈샤쿠의 소설 침묵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소토메 해안에 자리한 엔도 슈사쿠 문학관, 침묵의 비에 적힌 글귀가 있다. “주여, 우리는 이렇게나 슬픈데, 바다는 어찌 이리도 푸르기만 합니까?” 이 말 속에는 절망감이 아닌 희망이 섞여 있는 듯하다. 그곳의 해안경관은 빼어나 엔도가 좋아하는 곳이라고 한다.

소설 침묵에서는 박해 당시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고, 순교와 배교가 공존한다. 소토메에 살던 기리시탄들은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고토 섬으로 피신한다. 고토 열도는 5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지고, 나가사키 항에서 후쿠에 항까지 페리를 타고 1시간 50분 거리에 고토 섬이 길게 자리하고 있다. 지금이야 기술의 발달로 1시간 50분이지만 몇 백 년 전 당시, 박해를 피해 그곳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토 섬은 그들에게 개종을 요구하는 고문과 박해를 피해 무인도로 목숨을 내놓고 신앙의 자유를 위해 숨어들어간 곳이다. 일본어로 키리(切, 절, 자른다는 뜻)에는 목을 자른다는 뜻도 있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목숨을 내어놓을 만큼 신앙이 대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역의 관리가 기독교인을 색출하는 방법으로 후미에(예수님의 얼굴이나 십자가 그림 등 상징이 그려진 것)를 밟고 지나가게 한다. 밟지 않으면 박해를 당하다가 죽임을 당하고 순교자가 된다. 후미에 앞에서 떨고 있는 기리시탄은 생각한다. ‘나는 고통받는데 신은 침묵하시나요? 어디 계신가요?’ 신은 말씀하신다. ‘내가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네 발과 함께 고통받고 있단다.’

이러한 말씀으로 위로받은 기리시탄들은, 섬으로 피신하여 해안의 바위 속에서, 산속의 굴에 숨어 살면서 신앙의 힘으로 살아간다. 그야말로 잠복, 잠복 그리스도인(가쿠레 기리시탄)들이다. 그들은 위대한 신앙인이다. 고토는 5개의 섬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북쪽 고토 섬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배를 타고 나라오 항으로 간다.

3. 순교와 배교, 잠복 기리시탄, 면종복배(面従腹背)
나가사키에서 26명의 순교자가 성인이 된다. 순교자는 성인(聖人)이다. 성화(聖化)에 이어 영화(榮化)롭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연약함으로 순교자가 아닌 배교자가 된다. 배교 후에 뒤돌아서서는 내면 깊은 곳에서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를 수없이 고백한다. 이것을 면종복배라고 한다. 관리 앞에서는 일본 신을 섬긴다고 복종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이들은 마음속에 예수님을 품고 일평생 속죄하며 살아가는 잠복 기리시탄들이다.

기리시탄이라는 말은 키리(切)시(支)탄(丹)이라고 새긴 인두를 만들어, 배교하지 않는 신자를 고문할 때 키리시탄이라는 사실을 낙인 찍기 위해 인두로 이마를 지졌다고 함에 기인한다. 그러면 순교인가 배교인가? 순교가 답인가? 모두 다 순교자가 된다면, 어떻게, 누가 신앙을 전수할 것인가? 이신칭의(以信稱義), 예수를 마음속에 믿고 입으로 고백하면 의롭게 되는 것 아닐까?

바위 속에 굴속에 숨어살던 기리시탄들 생각에 로마의 지하 카타콤이 생각난다. 핍박을 피해 지하로 숨어들어 예배하던 그리스도인들, 멀리 갈 이유도 없이 우리나라도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믿음의 선진들이 있지 않은가!

1614년 선교사 추방 이후, 이러한 익명의 잠복 기리시탄이 있었기에, 신앙을 전수하고 믿음을 계승할 수 있지 않았을까? 1865년 3월 17일 우라카미 마을의 기리시탄들이 오우라 성당에 찾아가 프티장 신부에게 고백하는 사건이 있었다. 숨어서 250여 년 동안 신앙을 지킨. 신자 발견의 기쁨도 맛보는 것이다. 이후에도 박해는 계속된다.

잠복 기리시탄들이 기독교 신앙을 지도자 없이, 평신도 중심으로 예전을 따르며 신앙전통을 전승하고 계승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순교만이 답이 아닌, 잠복 기리시탄들의 배교의 역사가 공존한다. 선교사 추방령에서도 신도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한 신부님들, 잠복 신부님도 일부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 대목에서는 M 3- 라흐마니노프의 기도(피아노협주곡 2번 2악장)을 떠올린다.

4. 성전건축과 기리시탄
규슈 남쪽에 자리한 섬 고토에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무인도로 숨어들어간 기리시탄들이 세운 천주당(天主堂)이 51개라고 한다. 후미에를 밟는 것을 피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피한 잠복 기리시탄들은 1873년 천주교 금지령에 ‘어떻게 지켜온 신앙인데…’ 감격한다. 금지령 해제 이후 신앙의 자유를 얻은 기쁨을 성당건축이라는 헌신의 형태로, 자신들의 소중한 재산과 노동력으로 성전건축에 기쁘게 참여하며 헌신한다. 그들은 성당의 벽돌 한장한장을 산중으로 옮기고, 성벽을 세운다. 그들의 숨결과 흔적, 발걸음을 역사적 현장을 함께 오르내리며 걷는다.

주님의 자비하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식하며 그 거룩한 뜻에 함당한 것들을 구하는 소망으로 기도한다. 그들의 처절한 순교의 역사를 보고 기리시탄들의 숭고하고 놀라운 신앙을, 몰래 지켜온 신앙을 마주하게 된다.

1899년에 처음으로 성당을 설계하고 시공하며 그후에 많은 서양식 교회들이 건축된다. 보통 교회들은 해안이거나 언덕, 산중에 높은 곳에 자리하는 경우가 많다. 성당의 건축양식은 서양의 것으로 신부의 조언에 따라 건축된다. 성전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츠가와 요스케’는 일본 근대 건축사에 빛나는 공을 세웠으나 평생 불교도로 살았다고 한다.

성전들이 아름다워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 여러 곳이다. 세계문화유산들은 관람권을 사야 관람할 수 있다. 자료관이나 박물관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 그곳에는 대부분 한글로 된 책자들이 있어서 이해에 도움을 받는다. 한국의 가톨릭신자들의 방문이 많음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이 대목에서 M 4-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1번을 피아노가 아닌 만돌린의 연주로 듣는다.

   
 

5. 기억에 남는 일들

1) 일본 26성인 기념비
스페인 국적 산펠레페(San Felipe) 호가 필리핀 마닐라에서 멕시코로 향하던 중, 스페인 선원들의 일본침략 발언으로 프란치스코회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1596년에 히데요시는 교토와 오사카에 있는 프란체스코 회 선교사와 신자들을 잡아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1596년 교토와 오사카에서 체포된 기리시탄 24명은 나가사키까지 천 여 킬로미터를 끌려서 간다. 중간에 스스로 2명이 합류하고, 26명이 된다.

그 중에 20명은 일본 기리시탄이고, 6명은 프란치스코회 선교사이다. 한달 동안 길고긴 거리에 구경꺼리로 삼고, 얼마나 참혹하고 비참한 상황인가! 그들은 나가사키 니사자카 언덕에서 1597년 2월 5일 처형된다. 국가 권력에 의한 최초의 대규모 순교이다.  기독교 금지령으로 순교 당한 성인 26인의 순교자가 실물크기 그대로 부조되어 넓은 벽면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도 손을 모으고 길게 늘어서서 사진을 찍는다. 순교자의 마음일까?

   
 

2) 도자키성당
나가사키에서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물이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당에는 26인 성인 중의 고토출신 요한의 상이 숙연하게 높이 매달려 있다. 마치 부끄러운 우리를 내려다 보듯, 고토에서는 처음으로 도자키 성당에서 첫 성탄미사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도자키 성당으로 향하는 해변에는 두 개의 크지 않은 동그마한 바위가 있다. Apple 바위라고 한다. 일행 중 누군가가 내게 알려준다. 밀물 때에는 물속에 살짝 잠긴 Apple, 둥둥 떠 있는 Apple은 정말 멋진 광경이리라. 한국에서 온 사과꽃향기나는 애플을 맞아주고 있다.

3) 미이라쿠성당

성당 밖 정면에 도기 모자이크로 믿음소망사랑이라고 라틴어로 써 있고, 여러 성인들의 모습이 있다. 그 옆 건물 외벽에는 추수할 것은 많으나 추수할 일꾼이 적다(눅 10:2)는 말씀과 함께 추수하는 그림이 모자이크로 되어 있다. 또한 단아한 내부의 유리창, 스테인드글라스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4) 가시라가시마성당 – 꼬불꼬불 긴 산길과 먼 바다를 바라보며 다다른 곳, 그곳에 천혜의 자연풍광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에 성당이 있다. 신자들이 오랜 세월 사암을 쌓아 만든 석조성당이고 외관에서 풍기는 중후함이 있다. 6각형 원형 돔 위에 십자가가 있다. 성당으로 오기 전에 높은 산길에서 저 아래 골짜기에 서 있는 초록종탑을 보았다. 혹시 우리가 가려는 곳이 저곳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역시 그곳이다. 지금은 10명이 살고 주일에는 5명이 예배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 전 그 동네 한 가구만 빼고 전교인이었다고 한다.

산 아래 골짜기에 오염되지 않은 맑고 파란 바다, 교회 앞 바닷가에 묘원이 자리하고 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모든 역사, 순교와 배교의 역사를 안고 잠들어 있는 곳이다. 그 묘원은 꽃들이 필 때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이다. 고토시에서는 고토 섬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5) 오우라성당
일본 26성인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프랑스 신부 프티장 신부가 건립했고 신자발견의 무대가 된 곳이다. 일본의 유일의 서양식 건물이고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경내에 부속건물에는 박물관이 있고 과거의 신학교?로 사용되었다고 하던가? 역시 세계문화유산이다.

6) 운젠성당 –
그동안 방문한 천주당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듯 느껴진다. 가까운 곳에 운젠지옥계곡이 있어서, 가톨릭신자 탄압 때 온천물로 박해와 고문 당한 순교자가 100명이라고 한다. 운젠지옥에서 순교한 성인들을 기리기 위해, 나가사키에 교황방문 기념하여 헌당되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곳에는 유황온천이 끓고 있고 그 냄새가 진동한다.  마침 우리가 운젠성당을 방문했을 때, 폴란드에서 성지순례 온 신자들이 모여 미사드리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폴란드 콜베 신부 이야기도 들었다. 콜베 신부가 잠시 운젠성당에서 사역했었다고 한다.

7) 구마모토 밴드 봉교기념지비
구마모토 서양학교 외국인 교사인 르로이 제인스를 초청하여 구마모토 서양학교를 건립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중에 기독교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인도하고, 1875년 말경부터 신앙고백하는 3-40명의 신앙부흥기에 이르고, 1876년 1월 35명의 학생들이 하나오카 산에 올라가서 봉교를 서약한 것을 기념하는 비이다. 개신교를 기억하는 최초의 기념비이다.

   
 

8) 나가사키 원폭자료관과 우라카미성당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에 시계는 멈췄다. 원자폭탄 투하로 버섯구름이 순식간에 나가사키 하늘을 덮는다. 도시는 폐허로 변하고, 피폭자들의 상황도 끔찍하다. 자료관에는 원폭에 의한 피해와 참상을 사진과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방사선에 의한 피해, 폭풍으로, 열선으로 피해를 입는다. 당시 우라카미성당에서 고해하던 신부 2명과 신자 여러 명도 건물 더미 속에서 전원 사망한다. 피폭된 우라카미 성당의 일부도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이후 우라카미성당은 1959년에 예전 모습 그대로 재건되고, 1962년 이후 나가사키 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이며 건물과 신도수로는 일본 최대 규모의 가톨릭 성당이다.

9) 대부분의 천주당 본당의 건물은 원형 돔식 지붕과 8각형의 모자를 쓴 듯 종탑이 인상적이다. 또한 고토 섬 곳곳에서 교회에 부속건물로 유아원, 유치원을 쉽게 만난다. 그 섬에 아이들이 많이 있다는 반증이다. 기독교유아교육 전문가로서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지방에 어린아이들이 없어, 입학생도 없어 폐교한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는데…,

10) 일본인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4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지진, 번개, 화재, 그리고 아버지라고 한다. 일본에서 기독교라고 하는 가톨릭의 역사와 성당을 둘러보면서, 일본의 기리시탄들에게서 배우는 깊은 영감과 신앙심과 통찰들을 배운다. 우리는 Protestant로서 Protestant 정신으로 믿음의 담금질을 해야 할 것이다. 새롭게 가다듬고, 새롭게 다짐하고,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것은 진정 무엇일까?

   
 

6. 시간의 기억들을 나누며 
M 5- 폰켈리(Ponchielli)의 라조콘다(LaGioconda) 중 시간의 춤이 흐른다.
2025년, 나가사키는 슬픈 역사를 기억한다. 나가사키는 기독교 박해지이자 히로시마와 함께 원폭피해지이다. 그들에게는 피폭 80년이고, 우리에게는 해방 80년이다. 천주당 강단에 걸린 흰 깃발에는 피폭 80년이라는 글이 써 있다. 원폭자료관도 둘러보고, 핵무기 없는 세상을 꿈꾼다.
가톨릭 성지에서 만난, 목숨걸고 신앙을 지킨 수많은 신앙인들의 숨결을 느끼며, 그들의 발길과 자취를 좇으며 우리 주님의 사랑에 순전한 기쁨과 열정으로 헌신한다.

1919년 3월 1일을 106년 전에 서울 파고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간 그 시간을 기억한다. 대한독립만세~!!! 피 흘린 수많은 유관순 언니들의 외침처럼…
오늘 2025년 3월 5일은 사순절이 시작되는 성회수요일이다. 40일간 참회의 길을 걸으며, 십자가를 묵상하며 부활을 소망한다. 또한 24절기의 경칩이다. 땅속에서 움직이며 밖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개구리와 벌레들의 깨어남, 용솟음치는 대지에 새생명을 기대한다. 이 봄(Spring)에 새싹이 움트고 곧, 앞다투어 봄꽃들이 속삭이며 인사를 건넬 것이다. M 6- 들리브(Delibes)의 오페라 라크메 중에서 ‘꽃의 이중창’을 들려드리고 싶다.

1884년 우리나라에 처음 기독교가 들어왔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해외 선교사님들이 모여 2024년 11월, 성공보다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이라는 주제로 선교 140주년을 기념했다. 1884년, 우리나라 기독교 시작은 일본보다 상당히 늦은 시간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Protestant 정신으로? 순교와 배교 사이에서, 나의 후미에는 무엇일까? 이시대의 후미에는 무엇인가? 사울이 바울이 되는 지점에서, 헌신과 나태함의 사이에서, 신사참배 반대의 정신을 일깨운다. 다시 사순절에 십자가를 묵상하며, 다시 봄(Spring)으로 용수철(spring)처럼 다시 깨어남을 기대한다. 저녁을 보내고 다시 시작되는 새날 아침, 부서지는 햇살 아래 부드러운 봄바람 속에 볕뉘를 다시 본다.
끝으로 M 7-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가 울려 퍼진다. 이 음악은 영화 ‘쇼생크의 탈출’에서 주인공 엔디가 방송실 문을 걸어 잠그고, 온 교도소 안에 울려 퍼지게 한 음악이기도 하다.   

   
 

* 도움을 위한 도서들 – 엔도 슈사쿠의 침묵, 여자의 일생 1, 2부와 총구(한국장로교출판사), 권요섭 선교사의 엔도 슈사쿠와 기리시탄(엘까미노, 2025)
* 이 기록은 개인적인 기억의 편린을 남긴 것이다. 클래식 음악 방송원고 쓰듯, 내용을 더욱 실감나게 연상되는 음악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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