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의 비극적 죽음을 추모하는 그리스도인 연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39)’는 계명을 받들어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최근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의 죽음 앞에 말할 수 없는 비통함과 회개하는 마음으로 국민 여러분과 정부에 호소합니다.
더 이상 우리의 이웃이 죽게 해서는 안됩니다!
집세를 낼 돈이 없어서 죽어야 하고, 몸이 아픈데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어야 하고, 아픈 장애인 아들을 치료할 길이 없어서 죽어야 하고, 아픈 가족이 자신 때문에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죽어야 하고, 노동 현장에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다 해고되고 고발당해 죽어야 하고, 빚을 졌다고 죽어야 하는 이 비참하고 안타까운 일들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연이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 제일의 의무인 대한민국 정부는 어디 있습니까? 약자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법은 어디에 있으며,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한 삶을 보장해주어야 할 사회복지, 사회보장, 사회 안정망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넘어졌다고 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넘어질 수 있고 상처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넘어지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다시 일어나는 일을 너무나 힘겹게 만들어버린 이 사회가,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지 못하는 이 공동체가 더 큰 죄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소외되고 그늘진 곳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괴로워했던 이웃을 돌보지 못한 우리 자신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우리 이웃들이 고통 가운데 죽어 가는데도 그들을 도울 수 없었던 시민 정신, 공동체 정신의 붕괴에 대해서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고 살아야 함에도 그러지 못한 가장 큰 죄인인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주변을 바라보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겠습니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가장 고귀한 생명이 돈 때문에, 질병 때문에, 빚 때문에, 외로움 때문에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기도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정부 당국에 호소하고 촉구합니다.
1. 최근의 사태에 대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지고 정부의 입장과 대책이 무엇인지를 즉각 밝혀주기를 바랍니다.
2. 연이은 빈곤 가족의 집단 자살 문제에 대한 대책을 공정하고 심도 있게 세워 나갈 수 있는 범정부, 범사회적 기구를 당장 설치하시기 바랍니다.
3. 각종의 사회보장, 사회복지 수준을 축소하려는 시도를 중단하십시오. 실업률과 빈곤층의 증가, 이로 인한 양극화, 사회불안과 사회적 갈등의 심화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법과 제도, 정책을 마련해주기를 바랍니다.
4. 최저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국민기초 생활 보장법 상의 최저 생계비 제도 철폐 시도 중단, 공공 의료제도 확대, 절대적으로 부족한 저소득 계층을 위한 공공 공영 임대주택 공급 확대, 오히려 부담을 가중케 하는 각종의 서민금융정책 개선 등 당장 취할 수 있는 정책을 즉각 시행하기 바랍니다.
5. 관계와 상황을 불문하고 모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부양 의무제도의 철폐, 법과 제도의 미비로 인해 조사의 실효성도 없고 시민들과 일선 공무원들에게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는 실태조사 지시, 수급권자들에게 반 인권적 모욕감을 주는 부정수급자 색출작업을 즉각 중단하고 세 모녀처럼 실질적인 복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1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수급권자로서의 권리를 부여하기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사회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누려야 하는 권리이자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존엄한 삶과 인권을 지키기 위한 제도로 인식되고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으나 1999년도에 여/야/정과 광범위한 시민사회의 합의하에 제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해 이를 선언하고 시행해오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더 정부에 촉구합니다.
권리, 인권의 보장이라는 사회복지, 사회보장의 기본 정신을 망각하고 훼손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수급권의 대상과 범위를 대폭 확장하는 것이 빈곤, 양극화, 사회갈등의 심화를 막고 사회 통합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첩경임을, 이 길만이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낼 수 있는 바른 방법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자를 우선적으로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약한 이와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불쌍한 이와 가련한 이에게 정의를 베풀어라.(시편 82:3)‘ 고 말씀하시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권리를 되찾고 그들에게 정의가 베풀어질 때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 비극적인 죽음이 멈추어질 때까지 뜻을 함께 하는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호소합니다.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죽게 해서는 절대로, 절대로 안 됩니다!
세 모녀의 비극적 죽음을 추모하는 그리스도인 연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성공회 나눔의 집 협의회, 성공회 정의평화 사제단,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예수회 인권연대 센터,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