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회는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노회는 안녕하십니까?

전북지역의 모 노회인 전북노회(노회장 고영환 목사, 금성교회)가 165회로 개회하여 임원을 개선하고는 다시 속회하지 못하여 산회하였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이런 일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 임시노회로 다시 모여서 미진한 안건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경비도 그렇고 시간도 사회적 비용이 만만치 않다. 누가 의도하고 바란 것이 아님에도 나 하나 쯤이야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일으킨 일이다. 지역의 역사만큼이나 인물도 많이 나왔고 유서 깊은 교회들이 있는 노회인데 큰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몇 년전부터는 형제와 같은 노회와의 갈등도 그렇고 과거에 없는 일들로 노회원들의 마음도 상한 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100회 총회의 주제인 화해- 치유- 생명에 따라서 두 노회가 과거의 앙금을 씻고 화해를 위하여 총회장 채영남 목사가 방문한 것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는 총회가 이 두 노회를 해벌하기로 하고 6일과 13일 각각 참석하여 노회간의 화해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로 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전북노회 전주 노회 노회장과 채영남 총회장

그런데 지난 6일 열린 가을노회에서 이런 해프닝이 벌어지고 말았다. 임원개선을 위한 투표 후 많은 총대들이 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오지 않는 바람에 개회 성수가 되지 않아 그대로 폐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노회나 지 교회의 피해는 더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갈 것이다. 특히 지 교회에서 노회에 헌의된 안건부터 시작하여 임직을 준비하고 있는 교회들과 노회의 부서회의등 모든 업무가 정지 내지는 마비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충격은 목사 안수식을 앞두고 준비한 본인들과 교인들 가족들 지인들 식사를 대접하려고 예약한 업소의 손해 등 일파만파로 마른 하늘에 날벼력을 맞았다는 것이다. 한복에 머리까지 올리고 준비하고 간 사모들의 수고도 헛수고가 된 것이다. 원근 각처에서 축하하기 위하여 복된 발걸음을 한 분들의 마음도 그렇고 이런 황당한 일에 발길을 돌린 이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노회의 회원들이 노회 일에 너무 과도하게 집착하여 자리나 일을 좌우지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에 못지않게 노회에 무관심을 하는 것도 큰 문제로 보인다. 모름지기 노회란 업무처리만이 아니라 지난 6개월 동안의 지 교회들의 형편을 보고 받고 격려하는 자리가 아닌가? 잘 되고 넉넉한 살림살이를 살았다면 나누고 베풀어야 하고 아프고 힘들었다면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하는 곳이다. 특히 미 자립. 개척교회, 전도목사와 무임목사들의 외로움과 소외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노회만 열리면 발언과 주장을 독점하는 이들도 있지만 보고거리도 자랑거리도 없어 죄 지은 사람처럼 뒷좌석에 앉아있는 회원들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모두 자중해야 할 것이다. 노회는 모든 회원들이 공교회의 일원으로 하나되는 경험을 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찌기 전북노회 출신의 남정길 목사(유신시절 전북대 교수에서  해직후 장신대을 거쳐서 목사가 되여 목회를 하시다가 다시 복직하여 은퇴) 가 번역한 유대인 철학자 마틴 부버의 "나 너 그리고 영원한 너" 라는 책에서 언급한 말이다. 이번 전북노회의 산회는 무책임함으로 일어난 우연이지만 짜여진 각본대로 임원이나 나눠 먹고 가버린 것은 아닌가. 하지만 어느 누구를 탓할 것 없이 모두의 책임으로 보인다.

사실 노회나 총회에는 나서고자 하는 이들은 많고 자리는 적으니 선의의 경쟁은 불가피하여 이합집산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무언가 하려고 하는 에너지이니 탓할 일도 아니다.  모든 노회에는 나름대로 질서가 있는 데  그  기저는 신앙이다, 그 위에서 여러가지 변수들인 전입 순, 안수 순. 기여도 같은 것도 고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이전투구의 경쟁구도에 앞장서 뛰어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아예 외면하는 이들과 방관하는 이들로 나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자기와 관계 있는 사람들을 밀어주고 원치 않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외면하는 식의 노회 운영에 한계가 온 것이다. 이것은 이것은 전북노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작년 가을에 서울의 강남지역의 한 노회에서는 장로들이 노회 정치에 대한 불만이 관철되지 않았다 하여 인위적으로 불참, 개회 성수가 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아예 개회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헌의된 안건과 안수 등 모든 노회의 일은 약 6개월 동안 중지 되고 말았다. 한 마디로 사고노회가 된 것이다.

또한 한 이북노회에서도 지난 봄 노회에서 임원문제로 이해관계가 엇갈려 개회는 했으나 정회 후 속회를 못하게 하여  결국 노회를 분립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고 나서 속회가 된 적도 있다. 사실  노회가 열리지 못하거나 정상적으로 폐회되지 못하면 임원개선은 물론 총대선출 등 자체안건을 처리하지 못한다. 노회의 업무가 중단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노회는 정족수 유지를 위하여 임원개선이나 총대선출을 회의의 중간이나 폐회 직전으로 변경을 하는 등 묘안을 내고 있지만 여의치가 않다. 이런 책임은 노회정치를 주도적으로 감당하는 것과 정치에 대해서 뒷짐지고 있는 입장 등 모두,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동일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노회도 스스로를 감시하고 제어하는 제도가 없어 이런 일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복잡해지고 세분화되는 사회 속에서 교회는 아직 그 순수성이 보존 되고는 있지만 이제 총회는 말할 것도 없고 노회마저 정치의 각축 장이 됨으로 인하여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몇사람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제 개인의 신앙과 상식에 의존한 성 노회를 말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는 의미다. 국회나 지자체의 의정 활동을 감시하기 위하여 시민 옴브즈맨 제도를 도입하듯 자연보호를 위한 환경단체나 인권단체, 시민단체가 출현했듯이 노회도 그 활동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감독관을 상회가 파송을 하거나 개 교회 평신도들이 참여하게 하는 등의 대책이 나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참고, 전북노회의 약사

전라노회조직
1911년 9월 18일 조선노회(총회)에서 전국 7개 노회로 조직하는데, 이에 전라노회 승인을 받고 1911년 10월 15일 오후 2시 전주 서문밭예배당에서 전라노회로 조직 

전남노회에서 전북노회로 분할
1917년 10월 10일 전주 서문밭교회에서 열린 제8회 전라노회 때부터 전북노회 명칭을 사용하다. 

군산노회 분립
1939년 9월 제28회 총회(신의주 제이교회)에서 군산노회를 분립하기로 결의하다. 

김제노회 분립
1949년 4월 제35회 총회(서울새문안교회당)에서 김제노회를 분립

 전서노회 분립
1955년 3월 8일 전북노회 제48회 정기노회 결의로 1955년 4월 22일 제 40회 총회(서울승동교회당)에서 허락됨으로 전서노회가 분립되다.

 군산노회로 편출
1956년 9월 20일 제41회 총회(서울새문안교회당)의 결의로 본 노회의 익산시찰은 군산노회로, 금산시찰은 대전노회로 각각 편출 

전북동노회 분립
1989년 9월 25일 제74회 총회(서울영락교회당)의 결의에 따라 1989년 10월 24일 전북노회 제106회 정기노회(완산교회당)에서 남원시찰과 임순시찰을 전북남노회로 분립하다. 

전주노회 분립
1992년 10월 18일 전주노회 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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