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

이런 말은 사실 억지다. 그러나 시장의 원리로 보면 학교에 가장 많은 이들이 학생이고 그들이 내는 돈으로 학교가 운영된다면 경제적인 주체라고 볼 수 있다. 법적인 주인은 법인 이사회이고 국가와와 관계에서 본다면 교직원이고 학교의 원리로 보면 당연히 교수들도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왠 주인 얘긴가? 지금 장신대의 주인이고 미래의 주인공인 신학생이 학칙문제가 아님에도 학교 분란을 일으키고 교수와의 관계를 공개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지목하여 찍어내기 중인데 아마도 보기 좋은 명분을 만들어서 겉으로는 포장들을 하겠지만 여론은 과연 누가 누구를 징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 없기 바란다.

대학은 사회의 것이다.
동아시아에서의 대학 역사는 중국 주나라 때 국학기관이나 BC 387년경에 플라톤이 설립한 아카데미아 등에서 기원을 찾기도 하나 근대적 의미의 대학은 중세 말경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는데 최초는 이탈리아의 살레르노대학(의학)과 볼로냐대학(법학), 프랑스의 파리대학 으로서 12세기에 창설되었다.

이후 영국의 옥스퍼드대학(1167)과 케임브리지대학(1209)도 초기 대학으로 근대화 현대를 잇는 역사와 전통이 전해져 오고 있다. 18∼19세기 민족국가의 출현은 대학 발전에 새로운 양상을 띠게 하였다. 근대 학제의 효시는 1810년에 세워진 독일의 베를린대학을 꼽는 다.

독일에서 대학의 위상은 공공성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동시에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곳으로 정착이 되었다. 특히 독일의 대학들은 자유를 중요시하고 학자들을 양성하는 좋은 선례를 남긴 곳이다. 특수한 목적대학은 1808년 나폴레옹이 세운 제국대학인데 중앙집권적인 교육행정조직의 기능인을 길러낸다.

그 후에 독특한 관료조직과 국가시험제도를 발전시킴으로써 대학교육은 주로 관리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은 오랫동안 귀족계급을 중심으로 인격교육을 존중하는 학풍을 가짐으로써 신사도의 함양과 지도자의 양성 등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 후 런던대학(1836)을 비롯하여 신제대학이 설립됨으로써 대학은 평민화되었고, 교육의 내용과 방법에서도 새로운 변혁이 일어났다. 반면 영국의 대학은 신사교육, 인격교육, 지도자 양성을 중시하는 전통을 견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하버드대학(1636)을 비롯한 초기의 대학은 영국대학의 모형을 본받아 설립되지만 국가나 종교단체의 간섭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대학은 19세기 초부터 독일대학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대학원제도는 19세기 이후에 독일대학의 영향을 받아 발달된 것이다. 19세기 미국의 대학은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즉, 미국의 대학교육은 학문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학풍이 확립되었고, 대학의 문호도 크게 개방되었다.

특히 대학의 문호개방은 시민적 고양을 강조하는 미국의 독특한 환경에서 20세기에 미국 특유의 초급대학이 발전되었다. 이와 같이 대학은 각국의 독특한 배경에 따라 발전되었다. 오늘날 대학은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있으며, 그 성격과 기능은 국가에 따라서 형태와 종류를 달리하고 있다.

한국대학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 국립대학인 태학을 두어 경학(經學)·문학·무예를 가르쳤고, 신라는 551년 국립대학인 국학을 설립하여 서경(書經)을 가르치는 외에 천문·의학 등을 교육하는 직업교육기관을 설치해 운영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 조선시대는 학자들과 양반자제들을 위한 소쇄원이라는 민간대학도 지방에 세워졌다

조선시대 성균관은 유교와 관리의 고등교육기관이었다. 한말 및 일제강점기에는 사립으로 세브란스(지금의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전신), 보성(지금의 고려대학교 전신), 이화(지금의 이화여자대학교 전신), 연희(지금의 연세대학교 전신), 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뒤에 혜화, 지금의 동국대학교 전신), 숙명(지금의 숙명여자대학교 전신) 등의 고등교육기관이 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대학이라는 명칭으로 설립된 것은 일본 정부가 설립한 경성제국대학(지금의 서울대학교 전신)뿐이었으나, 광복 후 전문학교가 모두 대학으로 승격하였고, 그후 많은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이 각지에 설립되었다. 현행 고등교육법상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의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교수·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제28조). 단과대학인 대학과 종합대학인 대학교가 있다.

1990년부터는 교육대학도 대학교라고 하게 되었다. 수업 연한은 4~6년이다. 이 밖에 고등교육법상 대학의 이름이 있는 교육기관으로 전문대학·산업대학, 방송통신대학·기술대학 등이 있다. 교육과정은 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운영되며, 교과 이수는 평점 및 학점 등에 의하되 학점당 필요한 이수 시간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수업 방법은 주간수업·야간수업·계절수업 및 방송·통신에 의한 수업 등이 있으며, 학칙에 따라 실습학기제를 운영할 수 있다.

신학대학도 교단의 것만은 아니다.
신학교는 교단이 성직자들을 양성하기 위하여 세운 곳이지만 국가법을 지켜야 한다. 아무리 종교기관의 위탁교육 기관이라도 한 사회의 발전에 따라서 이에 준하는 실력의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이 정한 교원의 숫자와 규모를 갖추지 못하면 안된다, 그래서 무인가 신학교가 무자격 성직자들이 양산되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교단만 해도 전국에 7개의 총회 직영 신학교가 있고 설립자나 재단과 관련있는 있는 곳만 해도 숭실대(이사장: 김삼환 목사) 서울여대(이사장: 이수영 목사) 한남대(이사장: 이성희 목사) 를 포함한 한다면 그야 말로 가장 많은 기독교 교육기관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 가장 오래되고 교단과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것은 장로회신학대학이다. 지금은 7개 학교에서 신대원 과정을 거쳐 안수까지 가지만 이전에는 장신대을 나와야만 목사고시를 볼 수 있고 안수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장신대도 세계적인 대학답게 국가법과 교회법을 고민해야하는 시점이 온 것으로 보인다.

장로회신학대학이 이런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은 작년 102회기 총회에서 신학대학 이사장 협의회장 고만호 목사의 발언으로 촉발된 "직영신학대학에 교직원들과 동성애지지자의 입학금지"  가 당석 결의 되어 법이되었다.  이런 결정이 다른 사안처럼 심도 있는 검토와 토론 없이 법으로 제정이 된 것에 대해서는 비판도 있었고 현재도 문제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지난 5월 31일부로 장신대는 신학대학원 학칙 시행규칙 2-2-2-8 13.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동성애에 관한 결의에 반하는 행위를 한 학생’ 을 추가했다. 장신대가 이 조항을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능동적이 아니라 외부의 압력에 밀려서 인데 근거 없는 장신대가 동성애 문제에 대하여 우호적이며 교수들도 동조한다는 비판을 이겨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단대처 세반운동 처럼 교수들이 단결하에 대처 하지 못한 게 원인이다. 

그것은 일부 학생들이 지적호기심과 관심사로 사회적으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와 배제에 대하여 인권과 신앙적 차원에서 보호와 지지를 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외에도 그렇고 대학은 판에 박힌 것 만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들에 관심갖고 성장하는 것으로 사실 예전 같으면 특별히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학생은 역사의 원동력 
프랑스의 63혁명이나 독일의 학생운동도 국가의 기틀을 잡는  현대화 과정에서도 보면 학생들의 사회참여가 역사변혁을 이룬 것은 본다. 우리나라도 청년, 학생들은 군사 반독재운동의 주력군으로 변혁기에 큰 역할들을 한 것이다. 4.19와 유신헌법 반대, 6.29선언의 배경, 박근혜 대통령 선거당시의 국정원의 선거개입 폭로와 세월호의 진상규명요구. 박근혜 탄핵를 가져온 촛불집회의 주력군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학생들에게 당시나 지금이나 "학점 따는 공부나 하고 어른들 말이나 듣고 학칙이나 지키고 범생이 되라" 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역사발전에서 아무런 의미없는 판박이를 찍어내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기성세대를 뛰어넘는 학생들이 나오는 것을 반가워 해야 하는 데 이들이 토인비가 말하는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자라고 하여 역사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모든 종은 다음 세대가 자기보다 강한 생명력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신이 준 DNA일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기성세대가 후대들에게 우리보다 더 강하고 의미 있게 살아남고 우리의 전통과 사역을 이어가기를 바란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교육을 해야 할 까? 그것은 사변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론이나 신학자들의 잡설은 아니라고 본다.

정신을 물려줘야 한다. 선교초기 주경야독하면서 복음과 전도의 열정과 희생의 정신 가난속에서도 청빈으로 섬기며 순수한 기도와 복음의 열정자들의 신앙정신을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 지금 우리 신학대학에 그런 정신이 활활 타오르고 그것에 체화된 학생들이 지금 나오고 있는 가?

기성세대, 뭘 더 가르칠까.
여기서부터 지금 우리신학대학들은 판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짜야 할 것 이다. 더 이상 책속의 신학자나 소개하는 식의 교육은 종언을 고해야 한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장신대의 이런 학풍은 약 5년전 부터 일기 시작한다. 뚜렷한 변화는 학생들의 게시판 참여다. 학생들은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이전 세대들과 격을 달리한다.

가장 먼져는 지난 2013년 학교 사경회에서 류영모 목사의 설교에 대한 비판 글로부터 시작된다. 지금도 그렇고 교수들 강의나 언행에 대하여는 봐주는 태세다. 그러나 성공한 대형교회 목회자의 건방떠는 가벼움에 참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 대선에서의 국정원 개입 비판, 김철홍 교수의 교만과 경직된 사고에 대한 촌철살인의 글들에서 나는 장신대의 희망을 보았고 장신대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들은 신학생다운 방식으로 학내외에서 집단지성으로 강의실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으로부터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시대의 아픔 팽목항에서 안산에서 광화문에서 세월호의 아픔과 함께 했고 김철홍 교수와의 논쟁에 참가하면서 저항하는 구룹들이 생겼고 소기천 교수의 언행을 비판하며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소수자와 약자의 눈물과 아픔에 대하여 공감하며 함께하게 된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지난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의 날에 상징적인 깃발을 차마 들지는 못한 체 어깨에 두르고 옷을 입고 채플을 조용히 드린 후 강단에 나가서 그들만의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그리고 기념사진을 찍어 개인 페이스북에 공개한 것이 전부다. 무슨 구호나 성명서를 낭독한 것도 예배를 방해하거나 불쾌감을 준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교단에서 그간  WCC 반대와 천주교와의 직제 일치 운동 반대,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 이슬람 반대등 극단주의자들이 교단에서 말이 안먹히자 이에 대한 불만을 풀곳이 없자 가장 약한 고리인 교수들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신학춘추의 보도 해프닝이다. 물론 학생들 내부에서의 이의 제기도 있었지만 그대로 학교에서 두웠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교수들은 끌고 들어 왔고 총장까지 연루시킨 것이다.

이런 흐름을 간과한 학교당국자는 골치가 아프니 홈피 게시판을 폐쇄하고 학생들과의 관계로 보아 이단옹호는 아니니 적당히 지나가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총회서도 홈피 개편을 이유로 자유게시판을 폐쇄하여 이 지경이 된 것이다. 한마디로 공중화장실이 없어지나 노상방뇨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언로를 잃은 이들이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는 데 장신대 교수들에 대한 불만으로 일련의 학생들 행동에 대하여 묵인한다고 보고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라고 다소 왜곡된 선동용 문구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장신대 교수중에 그런 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총장이나 교수들은 의연하고 당당하게 나가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더 큰 문제를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에 학생들을 어떤식으로든 징계를 한다면 이는 외부의 주장에 떠밀려서 한 다는 소릴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총장이 저 혼자 살려고 제 자식을 내준다는 표현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총장이라면 총회장이나 신학교육부 이사회의 지시가 아니라면 이런 정도에 대해서는 " 내 학생들이나 문제를 삼으려면 나를 문제삼으로 라" 고 배수진을 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 눈치보다 밀려서 내는 이런 변명보다 주체적인 방안을 내놔야 한다.

일개 노회 서명에 불과  
그런데 노회 반동성애 대책위가 7월 초순 장로회연합회 수련회에서 서명을 받으며 총장 해임과 교수들을 공격을 하자 혼비백산한 장신대는 조사위를 징계위로 회부하고 임성빈 총장은 이사장과 총동문회장 학부 동문회장과 끌어드려 공동성명서를 낸다. 내용은 아쉽게도 교육포기 선언이고 항복문서로 총장이 왜 그렇게 조급하게 대응을 했느냐는 비판이다.

사실 이것은 장신대에 대하여 비판이 아니라 공격이다. 한마디로 치리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래서 적어도 총장이라면 우리학교 학생들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한다. 문제를 삼으려면 나와 교수들이 문제다. 학생들은 우리가 학교의 법대로 교육하고 가르쳐 갈 것이라고 야단을 쳤어야 한다. 아니 사실 응답을 할 필요도 가치도 없는 일에 말려 든 것이다.

그렇게 되니 이 학생들을 지지하고 두둔하는 동문들이 나서서 총장을 비판하자 장고 끝에 다시 낸 것이 지난 20일의 총장 명의 서신이다. 이전 보다 달라진 것은 "현 사태에 총장의 책임을 통감" 이다. 이로 인하여 임성빈 목사는 그동안은 직책으로의 월급쟁이 총장에서 명실상부한 장신공동체의 총장이 된 것 보인다.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학교의 어른이며 거기서부터 배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교수들이 그 철 어린 학생들을 조사위가 아니라 식당이나 카페로 불러 밥과 차를 나누면서 격의 없는 대화부터 먼져했어야 한다고 본다. 학교의 사정과 처지를 말해주고 고민했어야 한다고 본다. 과거 선배교수들도 지금 처럼 무책임하고 기회주의고 비겁하기는 같았으나 미안해하는 마음들은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장신대 교수들은 주제가 더럽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에서 도피하여 무관심과 의연함으로 위장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가장 비참하다. 외부에서 제 자식을 내놓으라고 하자 한다는 짓이 징계위에 가동인데 누군가가 양아치 삥 뜯는듯한 빈정거림의 문초다. 그런 인격이 지금 신대원장이란다. 지금 학교의 난처함이 있다면 학생들의 손을 잡고 붙잡고 기도하고 울어도 시원찮은 날에 학칙이나 뭐니 하는 말로 징계 명분이나 쌓고 있다. 그러나 징계의 경중으로 학생들을 분열시키려는 수작이나 한다면 결코 학생들만 당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원 다 죽이던지 살리던지 밖에 없어 보인다.

대견한 장신대 학생들
7월 24일(화) 처음으로 문제가 된 학생 몇 명을 장신대에 가서 만났다. 그동안 뒷 조정을 한다는 소리도 그렇고 학생들 하는 일에 나서고 싶지도 않았지만 조사가 다 끝났다고 하니 위로와 격려도 하고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 학생은 만약에 우리를 선별 징계하면 받아드리지 않을 것이며 똑 같은 징계를 청원할 것이라고 하는 말에서 할말를 잃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식으로 가는 학교는 물론 교단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아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장신대가 징계를 한다면 그것은 총장이 학생에게가 아니라 학생들이 장신대와 우리교단을 징계하는 것으로 받아드려야 한다고 본다. 제 돈들 내고 어른들로부터 조롱받고 인격모독을 느낀다는 것이 의견이다. 이는 학교나 교수들에 대한 애정상실이다.

   
* 문제의 이 사진을 언론들과 공격자들이 악의적으로 사용하는 데 법적조치가 필요하다  

학생과 교수들을 지키는 것이 총장의 의무다.
학생으로부터 영적 사망신고를 받는 학교는 없어져야 마땅하다. 더 이상 교직원들이나 먹려살리는 시장으로의 광장은 파해야 한다고 본다. 진짜 예수의 제자를 길러내지 못하는 신학교는 문을 닫아야 한다. 누가 하나 학생들의 처지를 동정하며 교수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SNS상으로 의미있는 사인을 주는 분들은 있지만 아무도 학생들을 동정하고 변호하고 지켜주려는 분은 없어 보인다. 이 점이 가장 슬픔일이다. 이미 학교이전 문제도 그렇고 과거 학칙과 룰이라는 잣대로 입학을 불허하고 멋대로 학생들에게 가했던 폭력의 채찍을 여전히 들고 사용하려고 한다면 큰 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채찍은 자신에게 돌아갈 것이다. 아마도 법정다틈과 세계의 양심들과 직면하여 시달릴 수도 있다.

학생을 지켜주지 못하는 학교고 총장이라면 그자리에서 내러와야 한다. 지금의 학생들은 20년전의 우리가 아니다. 만약에 장신대가 이번에 학생들 징계를 예전 처럼 생각없이 교수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서 학생들만 잡는 다면 그 뒷일은 예상해야 한다. 총장이 제 새끼를 말도 안되는 주장에 내놓고도 건재한다면 그곳은 신학교가 아니다.

총장이 "현 사태에 책임을 통감" 한 이상 학생들만 징계하고 버젓이 자가용을 타고 거액의 년봉을 받는 다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다시 질문해 보자 장신대의 주인은 누구인가? 그런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학교는 학생들이 돈을 안내면 운영되지 못한다. 이미 다른 대학에서는 총장선출에도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고 있다. 이런 요구에 조응하지 못한다면 방들을 뺼 분이 한두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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