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교회(1946-) 창립 80주년

                                   80년간 단 3분의 목회자가 시무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강북노회 덕수교회(김만준 목사 시무)가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아 지난 80년의 은혜를 돌아보며 다음 세대를 향한 새로운 도약을 다짐했다. 덕수교회의 시초는 1946년 안국동의 안동교회가 광화문 인근에 개척해 초대 목회자로는 최거덕 목사가 2대 손인웅 목사, 현재 김만준 목사에 이르기까지 세 명의 목회자가 80년 동안 단 3분의 목회자를 모신 드문 교회로 목회자들도 그렇치만 교회들의 구성원들도 신사적이고 순수한 신앙의 공동체라는 평가를 받는 다.

최거덕 목사 부친은 한성판윤(현 서울시장격)을 지낸 서울 토박이로 피어선학원 원장을 겸직한다. 교회는 덕수궁 옆으로 손목사는 경북대 기독학생  전국대회에 다녀 당시 덕수교회 대학생들과 교류하면서 서울을 오면 만나곤 했는 데 그게 인연이 되어 장신대에 온 후 출석하게 된다. 그렇게 전도사와 부목사를 거쳐 2대 목사로 약 44년을 한 교회서 시무하신 분이다. 그후 도심의 개발과 교인들의 증가로 이전을 준비하면서 서울노회에서 서울북노회 지역인 성북구로 예배당을 이전 건축 한다.

                                                           *광화문시절 교회 앞에서 손목사 가족 

손 목사는 경북 안동이 고향으로 대구서 대학시절 박맹술목사가 시무하던 대봉교회에 출석하면서 기독학생운동에 가담해 CCC와 KSCF와 통합을 하면서 경북지회장도 지내고 에큐메니칼의식과 사회의식에 눈을 뜬다. 경북대 60학번으로 4.19을 겪으며 민족과 민주주의에 대한 공부와 관심도 갖게 되면서 이후 서울에서 목회적 역량을 인정받아 자리를 잡은 분이다. 한목협을 고 옥한음목사와 같이 세우고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세우는 등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앞장선 지도자다.

손목사는 이미 경북대 시절부터 기독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적 지도력을 발휘하는 데 당시 수산대 오창학목사 차선각목사, 숭실대 주연도, 이용남목사등과 같이 여름캠프서 만난다. 한때 우리 총회 부총회장 후보로도 거론되었지만 살아오신 바대로 명예와 자리추구, 교권정치에 초연하신 성품대로 한 교회 만을 섬기며 은퇴하셨다. 2012년 그 뒤를 이어 김만준 목사가 10년간의 독일유학을 마치고 지인의 소개로 손목사를 잘 모른 체 부임한 바 있다고 한 바 있다.

모태 신앙인 김만준 목사는 부친이 월남한 실향민으로 부산영락교회서 성장하며 학생시절엔 부모님을 따라 기도원을 가는 등 강한 영성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임시 당회장이었던 고 김소영 목사(전 부산장신 학장, NCC총무 역임)의 권유로 장신대에 입학하고 선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독일로 유학을 가게 된다. 유학전엔 장현교회와 염산교회 부교역자를 지냈고 유학중엔 유학생 목회을 하기도 한다.

선대 손인웅목사와는 출신이나 시대적 환경은 많이 다르고 신학적 배경이나 목회경륜도 달랐지만 비슷한 점은 조용한 성격에 발산적이고 인위적인 부흥회나 방언, 공격적이고 왕성한 전도활동은 소극적이었다 이는 뒤 늦게 이주한 성북동에서 나름 자리를 잡기 위하여 다른 종교나 주민들과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지 않키 위함이었을 것이다. 손목사도 김목사도 그 흔한 부흥회 전도 프로그램도 안했다. 다만 교회공동체의 기본인 예배,섬김,교육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 교회 대표들과 80주년 기념 케익 커팅

김만준목사 약력

부산영락교회 출신으로 장신대 학부와 신대원을 나온 후 독일 베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수학후 빌레펠트대학교 조직신학(성령론)으로 박사학위 취득 (Dr. Theol) 했다. 염산교회(서울 서노회) 교육전도사, 전임전도사, 부목사, 독일 빌레펠트 한인교회 담임목사 (2005.12 – 2009.11)와 장로회신학대학교 겸임교수로 있다. 아드폰테스 라는 개혁적 목회자 구룹의 창립자로 현재 부회장이다.  

                                                                * 80주년 영상 축하  부총회장 권위영목사 

80년간 3분의 목회자가

후임인 김목사도  손목사님이 교회 안팎에서 주창하신 디아코니아목회에는 대을 이어 기존 덕수 유치원, 어린이 집에 이어 데이케어와 카페. 독거 노인돌봄,  노숙자 장애인 사역과 복지관도 운영중이다.  이런 섬김의 사역들은 독자적인 것도 있지만 이웃 종교인 천주교 불교와 함께 하는 사랑 나눔바자회는 2025년 기준 14회를 맞으며 대표적인 마을목회 사역이자 에큐메니컬의 활동이라고 한다.  

김 목사는 “디아코니아 사역은 공공성의 회복이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마을 속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며 “교회의 문이 열리니 마을 주민들의 마음도 열렸고 교회를 향한 인식의 변화도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의 5대 목회철학은 화목한 교회, 신학적 목회, 찬양하는 교회, 천국 보내는 목회, 하나님 나라 목회다. 그중 화목이라는 덕목은 지역 특성상 부유층과 저소득층,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가 함께 있는 덕수교회의 특징을 반영한다.

교계 활동으로는 ‘아드폰테스’ 라는 우리교단 중진 중대형교회 목회자들로 이뤄진 개혁적 구룹의 중심 지도력이다. 과천교회 주현신목사등과 함께 시작한 조직으로 드러나게는 아니지만 교권정치를 배제한 단체로 회원들의 자기 개발과 한국교회의 비전을 조망하는 모임을 매년 진행 중이다. 이번에 맞는 80주년 기념 주일은 김목사 부임하여 맞는 가장 큰 행사로  8일 창립기념예배서는 50년 근속 100여 명에 대한 기록남기기와 전임 손인웅목사에 대한 극진한 존경과 사랑을 나누는 시간도 갖았다.

축하행사에는 평소 가까이 지내시던 안동교회 유경재 원로목사와 장로회신학대학교 박경수 총장, 총회 부총회장 권위영 목사가 축하 메시지도 있었다. 교회는 ‘은혜의 80년, 함께 걸어온 시간’을 주제로 사진 전시회와 교회 내 문화재급 건물인 ‘일관정’에서 교회의 역사와 사역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됐다. 기념 예배 후에는 미래목회와말씀연구원(이사장:김지철)과 공동으로 ‘다음세대를 위한 포럼’을 개최했는 데 주제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다음 세대 신앙 전수와 미래 목회의 방향을 모색이었다.

손인웅목사 약력
경북대학교 사대 국어과와 장신대를 나온 후 미국 McCormick 신학대학원(D.Min)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고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실천신학박사( Th.D in Practical theology, Hon.)와 장로회신학대학교 명예신학박사(D.D)를 받았다. 한목협 대표회장과 (재)국민문화재단 이사장, (사)한국교회희망봉사단 이사장, (학)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이사장, (사)한국샬롬노인복지원 이사장, (재)대한성서공회 이사장 역임, (재)덕수장학재단 이사장, (사)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 이사장

다음 세대를 위한 포럼

“핵개인 시대에 ‘다음 세대’를 말하다” 라는 창립 기념 세미나가 미래목회와말씀연구원과 연계하여 지난 3월 8일(주) 오후에 열었다. 이는 지역 교회를 찾아가는 미목연의 ‘인카운터포럼’ 의 일환으로 1차는 “핵개인 시대에 ‘외로움’을 말하다”(연동교회), 2차 “핵개인 시대에 혼(婚)을 말하다”(과천교회), 3차 “핵개인 시대, AI세대 청년을 말하다”(포항제일교회) 였으며 이번 4차를 덕수교회서 “핵개인 시대, 다음 세대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함께 한 것이다.

포럼내용은 장신대 신현호 교수(기독교교육), 정병오 장로님(좋은교사운동 이사장), 노희태 목사님(전 온누리교회 차세대본부장)가 발제하고 김만준 목사의 총평으로 이어졌다. 이어 장신대 이상조 교수의 인도로 참여자들의 질의응답을 하였다. 주일이라 시간상 길지 않았지만 1회성 축제로 머무지 않고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시간으로 배우고, 도전받고, 함께 다음 세대의 길을 묻는 시간이 되었다는 평이다.

이 행사를 주관한 김지철목사(전 소망교회)는 다음 세대는 미래의 손님이 아니라, 오늘 우리 곁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언어로 복음을 다시 말하고,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돕는 일, 바로 그 일이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붙들어야 할 거룩한 사명임을 깊이 마음에 새긴 시간이었다고 하시며 환대 해 주신 덕수교회 담임목사님과 장로님들, 그리고 온 교우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참 고맙고도 소중한 포럼이었다고 인사을 전했다.

창립 80주년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고 연중 기념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내부적으로는 전 성도가 참여하는 ‘성경 1독 챌린지’를 통해 성경 묵상과 창립 80주년을 의미한 80개 기관을 후원하는 선교 프로젝트를 추진중인데 이는 1980년 시작된 ‘천원선교회’ 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작은 정성을 모아 ‘사랑과 선교의 현장실천’ 으로 발전한 것으로 앞으로 80개 기관에는 자립 대상 교회와 이주민 사역신학 연구기관과 시민단체, 복지기관, 어린이·청소년 기관, 군경 선교, 해외 선교지 등을 지원한다고 한다.

                                                 * 덕수교회서 열린 손목사 8순 기념책자 발간과 축하행사

덕수교회와 일관정(一觀亭) 1900년대 지어진 이종석의 별장

성북동 덕수교회를 설계한 분은 김한근장로로 정동 예배당의 이미지를 잘 살려낸 명작으로 이후 김장로는 전국의약 20여 교회를 설계했을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훗날 한국건축가협회 회장도 지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교회 이전 후 손목사는  담장을 마주한 산윗쪽 구 한옥이 눈에 들어와 연유를 알아보니 소유주는 인근 ‘순교복자성직수도회’ 소유로 교회 도로 건너편 복자수도원을 운영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담당 신부를 만난다.

그 때가 1986년이었는 데 손목사는 찾아가 자신을 소개한 후 교회 옆 구 한옥에 관심이 있는 데 혹시 파실 수 있으신 묻는 다. 손목사의 소회는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의외로 “저희도 관리가 어려워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하여 매입후 한옥 누마루에 붙어있던 ‘일관정’(一觀亭)을 그대로 사용하였는 데 나중에 알아보니 ‘성북동 이종석 별장’(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10호)로 1900년대 초반 집 주인으로 보인학교를 설립하신 분이었다.

그 후 이 집은 소설가 이태준, 시인 정지용 이은상, 수필가 이효석 등이 문학 작품 활동을 했던 유서 깊은 공간이기도 한 곳이었다. 손목사는 이곳으로 아예 사택을 이주해 17년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름별장식으로 지어져 난방이 문제고 목조라 벌레도 많고 쥐가 뛰어 다녔지만 사택비도 절약겸 정을 붙이고 거주하셨다고 한다.

그후 2003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고 추수감사주일에 재개관했다. 보수공사 후 영접실로 이후는 영성훈련원으로 사용한다. 교회학교 학생들은 한옥체험도 하고 덕수유치원 원생들은 이곳에서 다도(茶道)를 배운다. 무엇보다 교회에서 결혼식이 열리면 이곳이 폐백실로 사용해왔다고 한다. 일관정은 1987년 정명훈 지휘자(집사)가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회에 손목사를 초대했는 데 아들을 데리고 갔다가 보니 뒤에 김수환 추기경이 혼자 앉아 계셨다. 그렇게 해서 김 추기경에게 덕수교회 손인웅 목사라고 인사를 하게 된다.

그러자 바로 “아니, 여기서 만나네요. 사실 새 교회 부지 전체를 매입해 복자수도원과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습니다. 너무 아깝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한 번 만나려 했습니다. 혹시 저희에게 다시….” 추기경님도 아쉬운 마음에 하신 말씀이었다. 하지만 그날 연주회 중간 중간 추기경님과 일관정을 주제로 많은 대화를 나눈 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 덕분인지 교회는 이웃한 길상사나 복자수도원과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 일관정이 그런 인연이라고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에서 손목사님이 회고하셨다.

pckgoodnews

예장뉴스 편집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