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양치기를 꿈꾸며

                              디지털 시대에 양치기를 꿈꾸며 

 이종록교수(한일장신대)

   
 

양떼를 이끌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양치는 것을 유목(遊牧)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들을 유목민(遊牧民)이라고 한다. ‘유목’이라는 말은 왠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준다. 하지만 모든 것이 디지털로 이루어지는 이 첨단시대에 놀랍게도 ‘유목’은 이 시대를 파악하는 중요한 코드 가운데 하나다.
한곳에 정착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유목은 상스러운 것이다.

조상들로 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근본으로 생각하고 그 토지를 중심으로 씨족공동체를 이루어 한곳에 모여 살던 농경사회에서는 이리저리 정처없이 떠도는 유목은 매우 불순한 것이었다. 그때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는 말처럼, 자기가 태어난 곳을 떠나면 죽는 것으로 생각했고, ‘짐승도 죽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래서 ‘객사’(客死)하는 것을 가장 불운하게 생각했다. 그런 사회에서 가장 심한 욕은 아마 ‘너,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야’ ‘근본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 였을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는 새로운 유목시대이다. 물론 사람들이 실제로 양을 치는 것은 아니다. ‘유목민 의식’을 갖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여기저기를 자유롭게 떠돌면서, 유목민 의식을 함양하는데, 이러한 유목민 의식은 정착적인 의식과는 반대되는 새로운 삶의 유형을 만들어낸다. 가능하면 모든 것을 간소화하려는 유목민 의식과는 달리, 정착적인 의식은 더 많이 가지려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사람들은 살림살이를 자꾸 늘려가고, 대형화되는 살림살이를 웬만큼 갖추고 살기 위해서는 그만큼 공간을 더 넓혀야 한다.

그러다보니 두세 사람이 사는데도 50평 100평도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평생, 아니 영원히 살 것인 양, 자리를 늘려가고, 또 계속 늘리고 싶어한다. 교회도 이런 경향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런 의식은 전근대적이지 결코 디지털적이지 않다.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도 우리는 예전보다 더 고착적이고 더 많이 갖고 싶어하는데, 이런 점에서는 농경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훨씬 더 디지털적이었던 같다. 요즘엔 고정식 침대를 쓰지만, 예전엔 요와 이불을 사용했는데, 그런 식이면 방을 얼마나 넓게 쓸 수 있는가? 그리고 짐을 운반할 때 외에도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던 보자기는 볼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대학로에 자주 가는 한식당이 있는데, 그 식당은 손님들이 가면 텅빈 대청같은 곳에 사람들을 차례로 앉히고, 주방에서 아예 상을 차려 들여온다. 그리고 손님이 식사를 마치면 상을 내간다. 그렇게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을 보면서, 저런 게 유목적인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 식당이 보여주는 공간의 자유로운 활용은 고정된 테이블들로 꽉찬 식당의 공간과는 얼마나 다른가. 그것을 보면서 교회를 그렇게 사용할 수는 없을까 생각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서 떠돌 때 만들었던 이동식 성전인 성막 개념을, 이제는 정착을 넘어서서 고착과 확장에만 주력하는 현대 교회에 도입하면 어떨까? 현대 교회는 긴 의자들로 꽉 차 있어서 사람이 없어도 공간을 달리 활용할 수 없는데, 아예 그 식당처럼 평소에는 교회 공간을 비워놓고, 오는 사람마다 의자를 들고가서 앞줄부터 앉게 하고, 나올 때 의자를 들고 나오게 하면 어떨까? 그러면 예배드릴 때 외에도 그 공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고, 보기만 해도 시원함을 느낄 것이다.

이런 공간활용과 그 간소함. 이런 것들이 디지털적인 유목민 사고가 아닐까? 이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나는 옛스런 양치기를 꿈꾸며 외쳐본다. 나는 유목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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