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새벽기도 45년

                 명성 새벽기도를 한국교회 기도운동으로 확산한다.   

   
                                   * 지난 봄 명성교회 창립 45주년 새벽기도 

1980년에 명일동 버스 종점 홍우상가에 명성교회를 개척한 김삼환목사는 당시 사택을 따로 구입할 수 없어 교회로 임대한 층의 한쪽을 막아 사용했다고 한다. 설립 초기 교인은 많치 않았지만 목사의 사명은 기도와 말씀연구라고 보고 한 새벽기도가 오늘의 기적을 이뤘다는 말을 한다. 당대 선배 목회자들은 교인이 많건 적건 목사가 해야 하는 첫번째 일은 기도이고 그 다음이 말씀증거와 전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세태는 목회 좀 한다 하면 기도와 말씀연구와 전하는 일보다 회의와 모임도 그렇고 잦은 해외 출타가 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삼환목사는 단순히 교회를 키우고 교인을 모으려는 것이 목적이 아닌 주어진 목양에 최선을 다한 결과 교회 부흥을 이룬 산증인이다. 이로 인하여 당시 임지 없이 배출되던 목회자들에게 개척의 용기와 결단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적으로 신흥 도시와 주거지에 많은 교회들이 들어서도 모두 자립과 성장을 이뤄 우리총회를 든든히 하고 노회에도 큰 힘이 되는 계기가 된다. 여기서 그 업적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의 45년 목회성과를 돌아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 청년시절의 김삼환목사

김삼환목사는 학벌도 돈도 빽도 없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목회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간증한 바 있다. 개척 초기 부터 성실하게 이 사명을 감당할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도우심과 은혜를 체험한다. 이에 함께 한 교인들도 감동하여 함께 열심을 낸 결과가 오늘의 명성교회로 세계 장로교회 역사상 가장 큰 교회로 기록된다(재적 10만명) 사람은 공칠삼과로 다 명암이 있게 마련인데 김삼환목사는 아무래도 새벽기도와 교회성장은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업적중 하나다. 

한 때 김삼환목사의 목회 멘토는 광성교회 고 김창인목사였다고 하는 데 광성교회는 그나마 광나루다리 건너 바로 천호동 4거리에 있다. 지금의 강동구 인구 증가 1번지로 성장을 이룬다. 이를 봐온 김원로도 교회도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는 확신으로 큰 비전을 갖고 목회했는 데  그 부흥의 동력은 바로 철저한 준비를 통한 새벽기도회로 전국적으로 크게 붐을 일으키면서 명성교회나 김삼환목사의 브랜드가 된다. 

   
                                              * 1980년 7월 6일 설립 예배 주보  

김원로는 경북 영양군 청기면에서 1남 7녀중 외동으로 누이들 사랑 많이 받고 모친과 함께 교회에 나가 배우고 성장해 경안성서학원과 피어선신학교 장신대를 71기로 졸업한다. 시골도 목회자리가 없어 하남시 한 장로의 회사서 노동자들과 예배를 드리는 사역을 자전거를 타니며 한다. 또 보증금도 없고 서울 시내는 언감생신이라 종점에서 개척한 것이다. 이후 부흥이 되면서 한 때 문제가정의 가장들을 위해 부인들이 명성교회를 다니기 위하여 실제 명일동으로 이사를 온 가정들도 없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김목사가 기도만 하고 성경만 본 것도 아닌 게 그의 독서량이나 분야는 폭 넓은 데 2005년 출판된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역작 "총.균.쇠" 를 초판에 구입해 독파 한다. 한국교회가 시무 목사에게 도서비를 지급하는 목적이 지도자의 지적소양을 위한 것이다. 그런 탐구열이 있었기에 오늘 날 설교나 대화에 인문학적 지식이나 식견이 묻어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정치 9단 김영삼대통령, 경제 9단 정주영 회장, 목회 9단 김삼환목사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간증에서 설교가 시원찮다는 이유로 장로에게 교회서 쫒겨난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 게 믿어지지 않는 다. 은퇴후 지난 10년간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큰 굴곡은 있었지만 교회는 더욱 단단하게 되었다는 평이다. 김하나목사도 후임이 된지 10년으로 이제 홀로서기를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여전히 부친을 따르는 이들도 그렇고 그늘이 워낙 커 시기를 조절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회가 존재하는 한 기도한다는 각오로 올해 45년을 기해 침체된 한국교회에 기도운동에 불을 마지막으로 붙히자는 것이다. 

모든 성장한 교회의 이면에는 남다른 서사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영락교회는 광복후 혼란기와 한국전쟁이후 월남한 분들의 한을 달래는 위로와 평강을 목회로 성장한다. 교단은 다르지만 여의도순복음도 가난을 딛고 산업화와 도시화속을 이룬 이농민들의 애환을 영적으로 승화한 것이다. 명성교회도 도시외곽의 신흥 주택가서 대형교회 목회자의 권위주의가 없이 언제든지 어디나 있는 머슴같고 이웃같은 친근한 목사상을 보여준 목회자다.     

   
 

지난 봄 새벽기도회는 후임 김하나목사가 주관하였고 이번 9월부터 열리는 가을 새벽기도는 "기도가 답입니다" 라는 주제로 K-크리스천을 위해 김삼환 원로가 직접 나선다. 전통적으로 가족과 어린이들 까지 강단까지 꽉들어 차는 광경은 요즘 볼 수 없는 명성교회만의 진풍경이다. 2일(화) 부터 열리는 새벽집회는 오전 5시 50분에 시작하는 데 마지막 6일(토)은 기도회 후 외부 참가자들을 위해 조식후 세미나에 참여하고 11시 20분 중식으로 마무리 한다. 

오래전부터 이 새벽기도회를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어 봄 가을 열리는 이 새벽기도회에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특별새벽기도 마지막 날은 김삼환 원로 목사가 인도하고 직접 강의도 한다. 이를 위하여 한국교회 ‘특새준비위원회’ 도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결과론적이지만 만약에 명성 후임이 아들이 아니었다면 가부를 떠나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인데 장로들이나 교인들은 모든 것을 감안해 이런 차선의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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