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헌금 감소가 과연 좋은 소식일까?
/ 최태선 목사(tschoi45@hanmail.net) * 미주 뉴스 M과의 기사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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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정위가 명성교회 3월 25일 주일 낮 출석자를 계수하여 발표한 자료 | ||
목회 세습으로 떠들썩한 명성교회에서 예배하는 교인 수와 헌금이 줄고 있다는 소식을 보았다. 이 소식을 반가워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특히 세습반대를 외쳐왔던 이들은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이러한 현상은 결과적으로 오래 전 ‘신앙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참된 교회와 복음에 치명적인 결함을 안겨 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인들에게 성서가 말씀하는 ‘유무상통하는 공동체’를 말하면 의심의 시선을 먼저 보낸다. 교회의 공동체성에 대해 조금만 강조해도 이단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말도 안 되는 성서 해석으로 무장한 이단들에게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이단들의 강한 결속력, 다시 말해 이단들에 오히려 살아 있는 공동체성이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이단들에는 일종의 공동체성이 살아 있다. 그들은 강력하게 자신들의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지원한다. 때로는 물질로 때로는 노력 봉사로 구성원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들이 처한 위험에 대처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아가 그들이 나아갈 방향까지 제시해 준다.
그러나 오늘날 정통을 주장하는 교회들에서는 이러한 공동체성을 찾아보기 어렵고 있다고 해도 미미하거나 형식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대형교회들의 경우는 더 심각하여 구성원들이 한 지체라는 의식도 거의 없고, 그들이 잘려나갈 때의 고통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왜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지 그 이유도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유감스럽지만 그런 교회를 교회라 부를 수는 없다. 유기체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생명없는 조직이라는 표현도 온당하지 않다. 그런 교회는 다단계 영업 구조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묘사일 것이다. 이렇게 이단들은 그냥 사라지지 않고 정통 교회의 공동체성을 앗아간다. 공동체성을 잃은 교회는 복음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교회들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예배하는 이들이 줄고 헌금이 줄어드는 현상은 공동체성이 사그라진 정통교회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는 치명적인 말기증상이다.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다른 교회에 출석하기도 하고 방송으로 예배를 대치하기도 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더 이상 예배를 드리지 않는 사람들이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예배 자체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된다.
헌금이 줄어드는 현상은 더욱 치명적이다. 헌금을 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헌금이라는 행위의 의미는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리는 것이다. "보물이 가있는 곳에 실제로 자신의 마음도 있기 때문'(마 6:21)이다. 그래서 헌금은 신앙의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헌금이라는 행위를 통해 돈으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무력화시킨다. 다시 말해 돈이 더 이상 자기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 돈이 생명을 대신 할 수 없음을 헌금이라는 행위를 통해 입증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성서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리고 그렇게 드려진 헌금은 형제애의 실현과 이웃 사랑이라는 복음의 요구를 수용하고 실천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헌금은 교회의 공동체성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도구이다.
아무리 예배에 참석하는 이가 아무리 줄고 헌금이 줄어도 명성교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세습(목회 대물림) 역시 철회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상은 그리스도의 몸인 공교회 전체에 치명적인 해악이 된다 사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신이 반대하는 교회라고 해서 그 교회의 교인수가 줄고 헌금이 줄고 있다는 것을 반기는 일은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다. 그것은 암세포를 죽이려고 몸 전체를 죽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명성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는 이가 줄고 헌금이 줄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