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CK 목요기도회 30년사 1권 출판
동연출판사 500쪽, 정가 35,000원, 판매가 3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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츨판사의 책소개
한국 현대사에 가장 긴 저항을 한 NCCK 목요기도회를 정리한 본 연구서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긴 저항 공론장을 형성하였던 NCC 목요기도회의 토대 연구서이다.
목요기도회는 사실상 종교적 행사가 아니었다. 결국 수십 년이 흐른 후 대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당시 징역형을 언도받았던 사건들이 모두 무죄로 판정을 받게 된, 그때 그 시절, ‘긴급조치’로 대변되는 유신독재 시절, 그나마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건 바로 종교 행사를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처음 목요기도회는 삼삼오오 구속자 가족들이 울분을 토로할 장소, 신께 그 억울함을 아뢰는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모든 억울한 정치적 구속과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긴급조치라는 초법적 조치하에 이적단체나 간첩으로 몰린 사형수들, 노동조합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사람들, 정권 유지라는 정략적 판단에 따른 조작된 사건으로 불법 구금당한 사람들, ‘막걸리 보안법’이라 불린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구속된 평범한 일반 시민들, 학생 시위로 구속당한 학생들…. 목요기도회는 이들 모두의 공간이 되었다.
1974년부터 2003년까지 존재했던 목요기도회는 여섯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몇몇 소장파 목회자들의 의지로 시작하고, 이에 구속자 가족들과 연합하여 목요정기기도회의 이름으로 이끌어갔던 첫 번째 시기, 즉 1974년 7월부터 1976년 5월까지 자발적 공론장 형성 시기를 다루고 있다.
본 연구서는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 기여한 1970년대 시민 세력, 그중에서도 특히 개신교인들의 자발적인 저항 과정이 우리 사회가 시민사회를 형성하게 되는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온 역사를 다룬다. 그 과정에서 개신교가 시민사회와 어떻게 상호 소통을 해나갔는지 그리고 당시의 노력과 그와 같은 방식들이 사료로서의 가치를 넘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떤 유의미함을 갖는지 살펴보는 데 의의를 갖는 도서이다.
NCC 목요기도회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긴 저항 공론장을 형성하였던 NCC 목요기도회의 토대 연구서이다. 목요기도회는 사실상 종교적 행사가 아니었다. 결국 수십 년이 흐른 후 대법원 확정판결을 통해 당시 징역형을 언도받았던 사건들이 모두 무죄로 판정을 받게 된, 그때 그 시절, ‘긴급조치’로 대변되는 유신독재 시절, 그나마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던 건 바로 종교 행사를 통해서였기 때문이다. 처음 목요기도회는 삼삼오오 구속자 가족들이 울분을 토로할 장소, 신께 그 억울함을 아뢰는 공간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모든 억울한 정치적 구속과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공간으로 발전했다.
긴급조치라는 초법적 조치하에 이적단체나 간첩으로 몰린 사형수들, 노동조합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사람들, 정권 유지라는 정략적 판단에 따른 조작된 사건으로 불법 구금당한 사람들, ‘막걸리 보안법’이라 불린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구속된 평범한 일반 시민들, 학생 시위로 구속당한 학생들…. 목요기도회는 이들 모두의 공간이 되었다.
1974년부터 2003년까지 존재했던 목요기도회는 여섯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몇몇 소장파 목회자들의 의지로 시작하고, 이에 구속자 가족들과 연합하여 목요정기기도회의 이름으로 이끌어갔던 첫 번째 시기, 즉 1974년 7월부터 1976년 5월까지 자발적 공론장 형성 시기를 다루고 있다.
본 연구서는 한국 민주화 운동사에 기여한 1970년대 시민 세력, 그중에서도 특히 개신교인들의 자발적인 저항 과정이 우리 사회가 시민사회를 형성하게 되는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어 온 역사를 다룬다. 그 과정에서 개신교가 시민사회와 어떻게 상호 소통을 해나갔는지 그리고 당시의 노력과 그와 같은 방식들이 사료로서의 가치를 넘어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어떤 유의미함을 갖는지 살펴보는 데 의의를 갖는 도서이다.
목차
머리말
1장╻역사적 경험이 우리를 이끌다
I. 유신에 균열을 내다(1973. 4.~1973. 12.)
1. 긴급조치 이전 개신교의 저항
2. 10. 2 서울대 시위의 전국 확산
II. 민청학련 사건(1974. 1.~1974. 6.)
1. 긴급조치 1호
2. 긴급조치 4호, 민청학련 사건
III. NCC, 인권위원회를 열다(1974. 4.)
2장╻여성, 시대의 새벽을 열다
I. “이보시오, 내 아들 좀 살려주시오”(1974. 7.~1974. 9.)
1. 마리아의 애통함으로 목요기도회와 함께하다
2. 구속자가족협의회를 구성하다
II. 투사가 된 여성들(1974. 10.~ )
1. 확고한 연대
2. 생사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당당히 선다
III. 조국근대화론을 박차고 나온 기독 여성(1974~ )
1. 한국교회여성연합회와 기장 여신도회 활동더보기
책속으로
NCC는 1973년 11월 23~24일, 서울 분도회관에서 인권협의회를 개최하였다. ‘신앙과 인권’이라는 주제를 갖고 비공개로 모였다. 이 모임에는 언론계, 학계, 노사, 여성, 신학, 교계, 법조계에서 34명이 참석하였다. 교계에서는 안병무, 한철하, 김관석, 김윤식, 김재준, 마경일, 마삼락, 박달진, 박형규, 배명준, 서광선, 우령성, 이영민, 장형일, 조향록이 참가했다. 인권을 주제로 한 첫 세미나로서 11월 24일 ‘인권은 하나님이 주신 지상의 가치’이며 ‘교회는 인권의 확립을 지상의 과제로 믿고 교회는 시대적 사명이 개인의 생존 근거이며 사회발전의 기초인 인권 확립을 확신한다’라는 <인권선언>을 채택했다.
<1장╻III. NCC, 인권위원회를 열다(1974. 4.)> 중에서
그리고 정치 공론장으로서 기독교의 공공성을 드러내는 공론장이었다. 억압적 권력 하에서도 30년이란 긴 기간 동안 다양한 정치적 공론장을 이어갔으며 공론장이 사건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생명력이 강했다. 또한 현장성, 실천성, 공개성을 존속한 민주적 공간이었다. 특히 기독교적 초월성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치유의 공간으로 작용하였다. 또한 더욱 주시해야 할 일은 보편성이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하나님의 공통 언어로 하나 된 체험을 맛본 초대교회의 은혜가 목요기도회의 공간에도 임하여 민중의 호소와 울부짖음에 서로 존재 조건은 다를지라도 공통의 마음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저항언어로 표출되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였다. <5장╻II. 목요기도회 30년 역사의 초입에 서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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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총회장 목민교회 원로 김동엽 목사와 고성휘 박사 | ||
저자 고성휘박사(목민 고영근목사 2녀)
한국교원대학교 교육학박사과정 수료
성공회대학교 신학박사학위(Ph. D.) 취득
장로회신학대학교 박사 후 연구원 (한국연구재단)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고영근목민연구소 대표
주요 저서 및 연구논문
『민중·민주·민족을 향한 여정』, 『선교적 교회교육』(공저), 『다시, 목민』(공저), 『내 양을 먹이라: 교회사 속의 목회』(공저) 외 다수
“세월호 담론투쟁과 주체의 전이현상 연구”, “억압적 권력에 저항한 기독교의 공공성 연구”, “1980년대 기독교 공론장의 공통적 가치와 공공성: 목요예배와 교양강좌회”, “개별자로서의 주체가 삶을 마주하는 방식에 대하여-1970년대 여성노동자 생애사” 외 다수
"최근작 : <시대와 함께하는 용기 (1974. 7.-1976. 5.)>,<민중.민주.민족을 향한 여정>,<다시, 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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