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파송받은 교회와 계약하는 것(2)

                          목회자는 파송받은 교회와 계약하는 것(2)

장로교단에서 신학교육과 고시를 마친 목사후보생이 목회자로 안수받거나 안수받은 목사가 개 교회로 파송을 받으려면 반드시 청빙을 원하는 교회의 제직회 청빙서와 생활대책(사택과 월 생활비 약조) 증서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적어도 교단법은 목회자를 사역할 임지 없이 안수하거나 이명을 허락하거나 파송하지 않는 것으로 생활대책을 목사 개인에게 맡기지 않는 다는 전제이다. 

이런 법을 만든 것은 장로교회의 본산인 영국 코틀랜드로 우리는 미국 장로교회의 전통을 받아드린 것이다.  그 이유는 총회는 무임목사를 양산하지 않는 다는 것과 안수받은 목사로 하여금 목회이외의 일로 밥을 먹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시무지에서 목회를 책임지고 교회는 그 교회의 형편에 맞게 예우한다는 소박한 논리에서  출발한 목회자들의 사례비 지금 어떻게 되었을 까?

교회 목회자들의 사례는 거의 100% 교인들이 낸 헌금에서 지급된다. 그 중에는 외부활동(부흥회, 강연회)과 부인들이 사회활동을 하는 수는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그 목회자의 최저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pck는 이미 오래전부터 노회가 적정선(평준화)을 정하고 나머지를 지원하는 것을 실천하고 있다. 다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교단이 적정선의 목사후보생을 받거나 배출하지 않고 학원들의 요구로 목사후보생들이 늘어나 임지가 없는 무임목사가 늘고 있다.

목사가 큰 소명을 안고 부름을 받고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여 끝내는 시무지가 없거나 청빙받지 못하여 목회 길을 떠난 것은 예외로 하지만 자기 생존을 위한 개척이 늘고 있다. 천주교는 신부 개인이 성당을 세울 수 없고 스님들도 개인적으로 암자나 사찰을 만들어 신도들을 모으고 기도도량으로 장사질을 하기도 하지만 장로교회 교회의 원리는 목사 개인이 교회를 세울 수 없게 되어 있다. 

노회의 전도부가 개척지와 후보자를 택하고 목사를 파송하거나 위탁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인이 먼져 개척하고 가입해달라기도 하는 식이다.  개인적으로나 겉으로는 사명, 소명 운운하지만 임지가 없거나 졸업후 생활대책겸 사명겸 해서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정직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렇게 세운 교회들이 모두가 자립하고 성장을 한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런 꿈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 자립이나 성공률 10%도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자기가 결단하고 자력으로 한 개척이니 고생이든 영광이든 본인이 알아서 하라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교단은 이미 생활비 평준화에서 이제는 자립화 대상교회등으로 같은 교단에서 같은 사역을 하는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일정액의 기준점을 맞추려고 하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나온 얘기는 같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인데 이는 사회법이기는 하지만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의 임금격차가 10배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오래된 이론이다.  그것은 윤리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짐승은 제배나 새끼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하거나 먹지 않는 다. 그러나 사람만은 그렇지 못한 데  먹고 배가 물러도 나중에 먹을 것을 구하고 자식이 먹을 것 까지  구한다. 더우기  지금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먹고 더 많이 먹자는 것이 문제로 대두되었다.  거기다가 단순히 먹는 문제가 아니고 더 쌓자는 문제다. 

그런 풍조는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있지만 자본주의사회가 잉여의 돈이 있는 이들을 가만히 두지를 않고 있는 데 투기를 부추키고 있다. 그러니 평범한 목사나 부인들까지도 부동산과 건물을 사놓고 펀드와 주식에 심지여 증권과 중고차에 보험 장사까지 하는 이들도 버젓이 있다. 이것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거대한 욕망덩어리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목사의 생활은 신앙 안에서 최소한의 윤리성은 지켜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세속에 사는 신도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성직자나 그 가족까지 이런 식으로 내몰린다면 그래도 목회를 해야 할까?  

교인들은 자신들이 헌금해서 섬기는 교회 목회자의 생활비가 정확히 얼마를 받고 있는지를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목사와 직접적 관계가 있는 재정부는 거의 목사의 사람들로  본봉과 부대비용으로 나눠서 분산시켜 놓고 있다. 그 외 자녀교육비 도서비 목회등을 합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많다. 교인들중에는  여유가 있는 분도 있지만 사실 어려운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신도들은 목회자들이 자신들 보다 여유있는 생활에 대하여 그렇게 반감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 이런 것을 이용하여 “주의 종이 축복을 받고 잘살아야 한다" 거나 목회자가 생활로 인하여 근심하거나 어려운 생활을 하는 것은 덕이 안 되거나 안타까운 것으로 생각하도록 하는 신화를 만들고 조장하는 것이 문제다. 

목사는 그 교회와 계약을 맺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매년 물가상승에 비례하여 일정액을 증액하기도 하고 동결하기도 하고 스스로 겸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교회에서는 사례비외에 목회자가 갖은 항목으로 지출하는 비용으로 인하여 불만들이 높다. 그외에도 개인적으로 목사에게 따로 봉투를 주는 분들도 없잖아 많다. 따라서 개 교회 차원이 아닌 공무원 처럼 목회자도 안수와 시무년한에 따른 호봉표를 만들어서 통일을 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사실 아무리 은혜스러운 설교를 하고 죽는 시늉을 해도 물질을 다루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을 알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 감리교회의 창설자 요한 웨슬레는 "당신의 물질(주머니) 가 회개하지 않는 한 회개했다고 볼수 없다" 라는 극단적인 말을 했다고 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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