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이중직 허용 바른 처방 아니다.
어느 사회나 조직이든지 안정된 이들의 기득권을 더 보호하는 법을 만들지 않는 다. 그리고 그 조직의 기득권자인 안정된 다수가 존재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먹고 사는 것이 문제인 이들이 있는데도 더 잘먹고 더 잘살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따라서 더 잘되려고 하는 이들을 위한 법은 도덕적으로 온당하지 않다.
자립되고 안정된 다수가 존재해야 안정되지 못한 이들의 짊을 져 줄 수 있다. 교회로 치면 총회는 자립된 교회들이 많이 있어 상회비도 내고 그,외 기부금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총회는 모든 교회들이 자립화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과 함께 자립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약한 지체들을 돌봐야 한다. 신학교는 목사후보생들을 온전하게 훈련시켜 오직 목회에만 전념하고 살수 있는 이들을 길러내야 한다.
총회와 노회들은 그동안 미자립 교회의 목회자들의 생활을 돕는 일을 해왔다. 모두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미자립교회와 목회자들을 위한다고 하는 일중에 이중직 허용 논의는 그 자체로 많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중직은 어렵다.
이중직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노회 법에는 노회의 허락없이 시무중인 목사가 목회외 일을 하는 것을 금한다. 한마디로 허락받은 시무교회외에서의 사역은 안된다. 특히 그곳에서 수익을 얻는 것은 안된다. 사실 목회란 두가지 일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여유있는 일이 아니다. 목사의 사역은 출퇴근하면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교인들을 돌보는 사역의 연장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행정을 하는 등 전념해도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중 해외에서 유학하여 학위도 있고 교회에서 대우도 넉넉함에도 학교에 가서 겸임교수를 하고 외부 강의나 집회을 많이 하는 분들이 없지 않다. 또 그런 목회자들의 부인들 중에는 교사나 의사 약사 공무원, 복지사등 전문직종에 있는 분들도 있어 실제 부부 수입을 합산하면 대단하다.
어떤 교회들은 이런 목회자들을 교회는 좋아하지는 않치만 또 환영을 받기도 하는 데 목사의 생활비 지급 부담를 줄이기 위해서다. 그러나문제는 교회도 어려워 생활비를 받지 못하고 사모 마져도 변변한 직장 없이 생활을 하는 이들이 문제다. 그래서 “이중직 허용” 논의는 미자립교회인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은 데도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능력있고 실력있는 이들의 ‘투잡’ 을 허용하는 식이 될 수도 있다.
이중직에 부정적인 사람들
문제는 목회 현장을 잘모르는 이들은 대부분이 적극 찬성을 하는 것 같다. 총회적으로도 긍정적인데 그것은 한 개만 알고 두 개는 모르는 발상이다. 이 문제는 지금 어려움에 있는 목회자들을 돕는 다고 하는 일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을 들어 최근 신학교를 졸업했거나 아직은 단독이나 풀타임 사역자로 사역하고 있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문제는 어떻게 보여질까?
이들은 아직 정식으로 목회도 시작해 보지 못하고 있는 데 이런 식으로 대우받는 선배들이나 교단의 풍토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이것이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하고 그럼 기술을 배우라는 얘긴가? 그리고 앞으로 목회를 하라는 것인지 겸업을 준비하라는 것인지 헷갈릴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지금 이중직 허용의 대상은 이미 기성목회자로 목회현장의 양극화 과정에서의 희생자로 5-10년이상 단독목회를 해도 자립하지 못한 목회자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통계를 보면 침례교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류교단들은 이 이중직을 금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중직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공론의 장에 오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다. 올해 감리교회는 교단적으로 이중직을 허락했고 PCK의 경우 2015년에 연구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기타 연구 단체들에서는 ‘목회자 이중직’ 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해 오고 있다.
지난 2015년 12월 14일 서울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목회윤리연구소(소장 김승호) 주최로 열린 ‘목회자 이중직, 미래목회의 한 유형’이란 주제의 포럼이 그것이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를 맡은 김승호 교수(영남신대)와 정재영 교수(실천신대)는 ‘목회자의 이중직’ 곧 ‘이중직 목회’를 ‘전임제 목회’와 같이 목회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또 다른 유형의 목회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했다.
김승호 교수는 “이중직 목회와 관련 신약에 등장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천막제조 일을 하면서 동시에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이라며 “바울의 모습은 오늘날 ‘전임제 목회’만이 유일한 목회 유형이라는 주장을 재고하게 한다”고 밝혔다. 말이 야 쉬운 일이지만 일하다가 목회하다가 한다면 그것은 목회자라고 보기 어렵다.
정재영 교수도 “오늘날 현실에서 목회자의 이중직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따라서 목회를 전통적인 관점에서 ‘교회 안에서의 활동’만으로 한정하기 어렵게 되고 있다”고 하며 “기존의 관점에서는 목회 활동이라고 보기 어려운 영역에 대해서도 자비량 목회의 일부로 생각하거나, 그 영역 자체를 선교 영역으로 이해한다면 훨씬 폭넓은 일에 대해서 목회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며 “이제는 이중직에 대해서 좀 더 유연한 태도들 가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감리교는 목회자 이중직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한해 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조건적 허용이었지만,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논의만 무성하던 상황에서 획기적인 시도였다는 평가다. 이에 본지는 한국교회의 현실로 다가온 목회자 이중직에 대해 교단과 연구단체들의 논의와 이에 대한 문제는 없는 지 분석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목회자 이중직을 논할 때 나오는 말은 성경적으로도 사도바울은 세속적 직업을 갖았으며 그는 천막을 만들며 생활비를 충당했다는 것을 근거로 든다. 또 번역과 파트 타임 목수, 숙박시설 운영 등 몇가지의 지 직업을 가졌던 종교개혁자 루터의 예도 든다. 그러나 이것들을 평면적으로 놓고 논의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미 현장에서 이미 목회를 하면서도 교수나 교사 상담 의사등의 영역에서의 이중직을 수행하는 이들은 있어 왔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분야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생각하고 문제를 삼거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의 세속적 직업에 대하여는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예장합동을 비롯한 대부분의 교단이 목회자 이중직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자립 일선 목회자들에게 이중직은 낮설지 않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즉 교회에서의 대우로는 생활을 할 수가 없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2년 전 목회사회학연구소(소장 조성돈)가 목회자 9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66.7%는 월 사례비로 당시 4인 가족 월 최저 생계비인 163만 원(현재는 166만 8329원)도 받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아예 교회로부터 사례비를 받지 않는다고 응답한 목회자도 15%나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적잖은 목회자들이 생계를 위해 또 다른 직업을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중직을 갖고 있는 목회자 중에는 생계적인 이유 외에도 무보수 목회, 선교 영역 확장 등 특별한 소명에 따라서 겸직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너벌어 너먹기는 안되
그러나 이중직 목회자들의 합법화는 현실적인 것이지만 그런식으로 목회자들의 문제를 목사개인적 문제로 해결하려는 경향은 안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교단이나 총회는 좀 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다. 목회자 이중직은 불가피할 수 있지만 그런 식으로 목회자의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앞으로 교회와 목회의 본질적인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목회자 이중직 관련 연구를 진행해온 종교사회학자 정재영 교수(실천신대)는 “과거 각 교단에서 목회자들의 이중직을 금지했을 때는 주로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신학교수 등을 겸직함으로써 수입원을 두 가지 이상 갖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면, 지금의 요구 상황은 그것과는 정반대로 현실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중직을 가진 목회자들이 생계 유지만을 목적으로 겸직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목회자 이중직의 유형은 생계형만 있는 것도 아니다. 천성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이들도 많다. 도의원을 한 분도 있었고 의사나 전업 작가, 중고 차 판매원과 보험원도 있다.
그러나 야간운전과 배달, 경비, 공장 잡부, 택배 배달원, 야간 경비나 점원등 공개하기 어려운 직종의 목회자들도 상당수가 존재한다. 이들의 이중직은 교회 사례비로만은 생활 할 수 없는 분들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이들은 더 벌고 더 잘살기 위하여 이중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중직의 긍정적인 이론으로는 이중직에 나선 목회자들은 목회와 일을 병행한 뒤 교인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으며, 기존 사례비로 사용되던 성도들의 헌금을 선교 등의 일에 사용함으로써 교회가 건강해짐을 느낀다는 등의 장점을 역설하기도 한다지만 이것은 만들어 낸 말에 불과하다.
이중직 허용은 그동안 노회와 교회간의 자매결연을 맺어서 지원하던 것 조차도 끊고 이제는 너벌어 너먹기식의 논리가 되서도 안된다. 교회는 전념하여 목회해도 부족하다. 그런데 목회도 안되는 데 다시 시간을 돈을 버는 데 할애한다면 앞으로 그 목회가 잘될 수는 없을 것이 뻔 하다.
이것은 문제의 해결방안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신학교을 졸업해도 임지는 없고 목사는 넘친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환경이 도래하고 있다. 그런 시기에 목회현장 문제를 총회적 대처가 아닌 개인이 알아서 서바이블을 하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
해법은 입학생이나 목회자 배출을 총회가 조절하여 노회가 온전하게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교회의 숫자 조절에도 상호가 관여해야 한다. 무책임하게 안수하고 개척시켜도 자립 성공율은 매우 낮다. 이런 식은 목회자에게 어떻게 하던지 살아 남던지 죽던지 하라고 방치하고 "너벌어 너먹으라" 는 식은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