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치함의 심리학

 
                                                                                          문재진 칼럼 
 
문재진목사(서울강북노회 푸른빛광성교회,미래교회전략연구소장, 총회다음세대비전위원회전문위원) 
 
 
최근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의 주인공 황동만은 20년째 데뷔하지 못한 만년 영화감독 준비생이다. 데뷔작과 평판과 직함에만 저울을 걸어두며,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이러한 생각은 타인과의 비교에 기대는 값이라 손에 넣어도 허기가 남는다.
 
그가 인생의 바닥에서 그 만남을 지나며 서서히 자신의 가치를 다시 깨닫는다. 무가치감은 이겨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나를 재는지 저울을 바꿔 다는 일이다. 누구나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 바람은 삶을 밀고 나가는 힘이 되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은 결국 사회에도 무언가를 돌려주게 된다. 그런데 살다 보면 그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과 마주한다. 깊이의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사람에게 그런 순간은 찾아온다. <무가치함의 심리학> 무가치감의 정체를 밝히고 거기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한다. 무가치감은 그 사람이 살아온 방식 자체와 얽혀 있다.
 
마음가짐을 조금 고쳐먹는다고 사라질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고, 겉을 그럴듯하게 꾸민다고 해결되지도 않는다. 자신을 ‘진정한 나’로 키워내면서 내 안의 힘을 실감하는 경험, 그것이 쌓일 때 무가치감은 자연스레 물러난다. 저자 자신이 오랫동안 짙은 무가치감에 시달리며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이다. 마음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일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자기 안의 무가치감을 걷어내고 평안과 즐거움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연구 주제로 삼았다. 이 책은 그 오랜 자기 탐구의 결과이자 심리학자로서의 사명감이 낳은 책이라 할 수 있다. 무가치감은 결국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의식이고,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에서 비껴난 듯한 느낌 때문에 아픈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 그런 정답은 없다. 완벽하지 않아도 되고 보통이면 충분하며 조금 더 잘하면 더없이 좋다. <무가치함의 심리학>은 무가치함과 싸우는 이들에게 그런 태도로 살아가는 길을 적극적으로 일러준다. 저자의 따뜻하고 지극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가치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1. 왜 사는 게 버거울까
 
어떤 사람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맡은 일은 반드시 해내고 그만큼 신뢰도 얻지만, 정작 본인의 어깨는 늘 무겁다. 옆에서는 요령껏 일을 넘기는 동료가 가볍게 살아가는데 성실한 쪽이 뒷감당을 떠안는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업무량이 아니라 동기다. 자기 존재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남보다 두 배로 애써 특별해질 이유가 없다. 애써야만 겨우 괜찮은 사람이 된다는 감각, 그것이 삶을 버겁게 만든다. 이 무게의 뿌리에는 ‘자기 자신의 부재’가 있다. 우리는 자라면서 본래의 자신을 눌러두고 주변의 마음에 들 만한 모습을 따로 만들어낸다. 저자는 이것을 보상적 자아라고 부른다. 내 감정과 욕구보다 상대의 기대와 요구가 먼저다.
 
무가치감이 깊을수록 이 껍데기는 단단해진다. 자신을 낮춰서 받아들여지려 하지만 그 태도가 상황과 어긋나면 오히려 겉돌고 굴욕감만 남는다. 그 상처는 다시 무가치감을 키우는 연료가 된다. 행동도 함께 위축된다. 회의에서 의견을 삼키고, 폐를 끼칠까 봐 모임을 피하고, 초대를 거절한다. 내가 다가가면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눈에 띄지 않게, 방해가 되지 않게, 책임질 일이 생기지 않게. 그렇게 몸을 사리다 보면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리에서조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자신이 초라해진다. 사는 게 버거운 이유는 삶이 유독 가혹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매 순간 힘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2. 무가치감이란 무엇인가
 
무가치감은 기분이 아니라 구조다. 저자는 자기가치감을 두 층으로 나눈다. 깊은 곳에 놓인 기저적 자기가치감과 표면에서 오르내리는 상황적 자기가치감이다. 기저층은 유아기의 충분한 애정과 적절한 양육에서 만들어진다. 아이가 안심할 수 있을 것, 자신이 바깥 세계와 잘 맞는다고 느낄 것, 부모에게 무조건 환영받는 존재라고 느낄 것. 이 세 가지가 채워지면 아이는 자기 가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반대로 애정이 결여되거나 애정은 있으나 결이 맞지 않는 양육에서는, 아이는 자신이 어딘가 어긋난 존재라고 느낀다. 표층인 상황적 자기가치감은 아동기 이후 평생에 걸쳐 변한다. 타인과의 교류, 타인의 인정, 그리고 자기 힘이 커졌다는 자각이 그 원천이다. 문제는 기저의 결핍을 표층으로 메우려 할 때 생긴다. 인정받는 데 집착하고, 남보다 몇 배로 노력하고, 자기희생이 몸에 밴다.
 
그럴 능력이나 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욕구는 굴절된 형태로 나온다. 노력을 아예 방치하기, 평가에 무관심한 척하기, 빈정대기, 사소한 일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몸과 마음의 불편을 호소하기. 모두 자기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우회로다.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타고난 과민성이 큰 요인이 되기도 하고, 동생의 출생이나 부모가 바란 성별, 부모와 자식의 기질 차이처럼 애정과 무관한 사정도 있다. 과보호는 ‘너는 무력하다’는 메시지를, 과잉 간섭은 ‘너의 모습 그대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배우기 전에 훈육이 앞서면, 자신을 지우고 타인에게 봉사하는 지나치게 엄격한 양심이 자란다. 무가치감은 결국 자신에 대한 실감이 희박해진 상태다.
 
3. 무가치감에서 벗어나는 대처법
 
첫째, 어느 쪽 가치에 무게를 둘지 다시 정한다. 자기 가치에는 성실함, 인내심, 배려처럼 인격에 속한 내면적 가치와 업적, 평판, 학력, 직업처럼 사회적 시선에 속한 외면적 가치가 있다. 외면적 가치는 타인과의 비교에 기대는 것이라 아무리 손에 넣어도 진짜 만족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은 노력과 근면 같은 내면적 가치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균형을 유지하되 무게중심은 안쪽에 두 편이 낫다. 둘째, 자아 찾기를 그만둔다. 자기긍정감을 얻는 법은 알겠는데 적용이 안 된다며 계속 책을 뒤지는 것은, 저자가 보기에 일종의 도피다. 자기 안을 아무리 뒤져도 발견될 것은 없다. 되고 싶은 모습을 또렷하게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아 찾기가 아니라 자아 만들기다.  셋째, 서두르지 않는다. 심리적 기술도 신체적 기술처럼 연습해야 는다. 능력은 직선이 아니라 계단 모양으로 오르므로, 제자리걸음처럼 느껴지는 구간을 견디는 것이 관건이다. 무가치감이 강한 사람은 자기 자원과 에너지를 괴로움이라는 감정에 다 써버린다. 그 에너지를 작은 성과를 쌓는 쪽으로 돌리고, 나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해준다. 넷째, 인생 설계를 세운다. 원하는 것을 삶의 지침으로 삼지 않으면 상황에 끌려다니게 된다. 갖고 싶은 것을 종이에 다 적은 뒤 필수적이지 않은 것을 지워보면, 자신이 얼마나 물질적 욕구와 인정 욕구에 메여 있었는지 드러난다. 남은 항목을 축으로 15년, 5년, 1년 목표를 세우고 상황에 맞게 다시 손본다. 오래 품어온 꿈은 버리지 말고 현실적인 형태로 일상에 들여놓는다.
 
4. 무가치하지 않은 존재로 살아가는 방법
 
무가치감은 관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랑에 대하여 자신을 지우고 상대의 요구에 맞추는 일로 여기거나, 자신을 속박해줄 사람을 골라 안심하거나, 결실 없는 관계를 알면서도 놓지 못한다. 애착 유형도 겹친다. 회피형은 문제가 생기면 혼자 틀어박히고, 불안형은 사소한 지적에도 원인을 상대에게 돌린다. 관계에서 기쁨을 얻으려면 두 사람의 자립과 관용이 필요하다. 비난하고 싶을 때 그 말을 먼저 자신에게 돌려보는 것, 충돌한 지점에서 누군가 먼저 굽히는 것. 유연함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이다. 사랑에 대해서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드라마 속 로맨스는 없다. 누구나 이 사람을 계속 만나도 될까 흔들리면서 관계를 이어간다. 애정이 넘쳐도 일상에는 잡일이 쌓이고 설렘은 옅어진다.
 
사랑은 그 수고로움과 환멸까지 받아들이겠다는 각오다. 행복이 지금 여기가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에 있다고 믿는 한, 평범한 하루를 함께 보내는 일의 가치는 보이지 않는다. 상대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경쟁도 내려놓아야 한다. 상대는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아온 별개의 인격체이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아끼는 것이 사랑이다. 가치는 생각보다 작은 데서 확인된다.

저자는 졸업식에서 한 학생에게, 교수의 미소 덕에 마음이 편안해져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는 인사를 들었다. 그저 웃었을 뿐인데 그것으로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보통이면 충분하고, 조금 더 잘하면 더없이 좋다. 이런 확인을 쌓아가는 동안 무가치감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내준다. 행복은 도달점이 아니라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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