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사회전기’ 개념을 통해 본 민중신학의 변화 가능성
1)장동민
Ⅰ. 서론 : 민중신학에서 생명신학으로
1. ‘민중의 사회전기’ : ‘역사’인가
Ⅱ. 민중신학 분석 : 민중해방운동과 ‘신화’인가
민중문화운동의 합류
2. 민중의 언어 : ‘역사적 진리’인가 ‘이야기로서의 진리’인가
1. 민중의 해방에 대한 신학적 성찰
2. 민중문화운동
3. 예수와 민중의 관계 : 예수는 개인인가 집단인가?
3.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운동의 융합과 그 기초
4. 마가복음의 예수상 : 정치적 변혁인가 종교적 승화인가
Ⅲ. 민중신학에서의 마가복음 해석: ‘민중의 사회전기’
Ⅳ. 결론
Ⅰ. 서론 : 민중신학에서 생명신학으로
1970∼80년대 한국 신학계를 풍미하던 민중신학은 민주화 이후 다양한 변화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1990년대 민중신학의 중요한 계기인 민중해방운동의 필요성이 삭감되면서, 민중신학의 존폐여부가 문제가 될 정도로 담론의 중심 주제에서는 빗겨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시기에 많이 쓰인 용어는 ‘민중’이 아니라 ‘시민’이었다. 그러나 최근 민중신학을 재평가하면서 21세기를 위한 신학으로 거듭나기 위한 갖가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안병무ㆍ서남동ㆍ김용복 등 제1세대 민중신학자의 의제(議題)와 중요 개념을 새로운 환경에서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인 것이다. 그 새로운 환경이란, 물질적으로는 세계화이고,1) 사상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 방식의 만연,2) 생태학적 관심, 신학계에서의 영성운동의 발흥, 근본주의의 부흥 등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민중신학운동을 크게 보자면 대체로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민중’ 개념의 외연 확대이다. 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노동시장의 유연화, 국제 교류의 활성화, 이주 노동자의 등장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세계화는 IMF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중산층을 축소시키고 빈부의 격차를 벌려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0∼80년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의 외연을 가지던 ‘민중’이, 비정규직 노동자, 저소득계층, 환경파괴로 인하여 고통받는 자, 장애인, 자유무역으로 인하여 살 길을 잃은 농민, 외국인 이주노동자, 학대받는 여성과 어린이 등으로 확대되었다. ‘민중’은 다양화되고, 국제화되고, 모든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이 된 것이다.3) 결국 이들을 ‘시민’으로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민중신학이 해야 할 일은 새롭게 생겨난 ‘민중’을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하고,4) 또한 이들에 대한 신학적 분석과 대답을 주는 일일 것이다.5)
두 번째 방향은 영성(靈性)의 강조이다. 합리성에 최고의 가치를 둔 근대가 그 한계를 드러내면서 영성을 재발견한 것은 이미 전세계적 추세이다. 새로운 세대의 민중신학자들도 과학적인 사회분석 뿐 아니라 영성의 계발을 강조한다. 먼저 영성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민중교회를 실험하던 이들이다. 이들은 교회가 민중해방운동의 전위부대가 되는 것의 한계를 강하게 느꼈다. ‘민중’을 계급론적 관점으로 환원시키려는 것을 반대하기도 하고,6) 제2세대 민중신학과 민중교회 지도자들의 영성 부재를 한탄하기도 하고,7) 민중교회에서의 ‘성품’과 ‘영성’을 강조하기도 하고,8) 다원성을 전제하면서 이 다원성의 풍성함을 영(靈)의 다양한 역사라고 규정하기도 하고,9) 마음속에 있는 ‘빛’을 찾기 위하여 함석헌과 퀘이커운동에 호소하기도 한다.10)
이러한 두 가지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또한 생태신학의 강한 도전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발전한 것이 바로 ‘생명신학’ 혹은 ‘민중생명신학’이다. 민중신학자로 일컬어지는 박재순이《한국생명신학의 모색》이라는 책을 저술한 것이나, 원시 기독교를 사회학적으로 조명하던 김명수가《초대 기독교의 민중생명신학 담론》11)이라는 책을 쓴 것이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 준다. ‘세계화의 덫’이 결국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았고, 그래서 민중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한다. 문명과 개발을 거부하고 소박하게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영성인데, 바로 기독교적 영성이 이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민중신학과 생명신학은 그 내용에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민중신학이 민중의 해방과 자기 초월에 초점을 맞춘다면, 생명신학은 자연과 인간의 생명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 민중신학에서 생명신학으로의 ‘변신’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필자는 제1세대 민중신학자들의 신학방법론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이러한 변화의 기초를 천착해 보고자 한다. 그 변화를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원래 민중신학은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 / 종교 운동이라는 두 지평이 합류하여 형성된 "퓨전(fusion)신학"이다. 민중해방운동은 계급투쟁적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민중문화운동은 좀더 실존적이고, 신비적이고, 영적인 운동이다. 서로 반대의 성격을 가진 이 두 전통이 민중신학자들에 의하여 하나로 합해졌다. 전자는 억압하는 세계의 분석과 이에 대한 적극적인 투쟁을 강조하고, 후자는 민중의 자기 정체성 의식과 자기 초월을 강조한다. 이 두 가지 성격이 ‘길항성'(拮抗性)과 ‘상보성'(相補性)을 띠면서 발전해 왔다.12) ② 제2세대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의 계급적 성격을 분석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는 계급투쟁의 필요성이 격감하면서, 또한 영적 고갈을 느끼면서 영성에 좀더 강조를 두게 되었다. 민중신학의 두 모티브인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 / 종교운동의 각각의 특징이 구체화되어 갔다는 말이다. ③ 이제 한국적 생명신학의 탄생으로서 위의 두 전통이 다시 통합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이 두 운동이 가진 특성이 변화된 사상적 흐름 속에서 좀더 세련되게 조우(遭遇)하는 것이 생명신학인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우선 민중신학 자체를 분석하려 한다.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운동이 합류하는 과정과 그 합류의 기초를 분석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나서 본 논문의 주된 논지로서, 그 두 운동이 어떤 식으로 합류할 수 있었는지를 마가복음 해석의 방법론을 통하여 살펴보려 한다. 마가복음을 ‘민중의 사회전기’로 보는 해석법이 어떻게 민중신학에서 생명신학으로의 전이를 가능하게 하였는지를 보려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민중신학의 마가복음 해석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려 하지 않는다. 또는 새로운 신학적 시도인 생명신학에 대하여도 그 시도의 정당성을 물으려 하지 않는다. 단지 새 시대의 신학이라고 일컬어지는 ‘생명신학’ 혹은 ‘민중생명신학’의 사상적 궤적을 추적하려 할 뿐이다.
Ⅱ. 민중신학 분석 :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운동의 합류
1. 민중의 해방에 대한 신학적 성찰
민중신학이 가지는 첫 번째 계기는 민중을 그 질곡으로부터 해방시키자는 것이다. 60년대와 70년대의 한국사회는 냉전체제에서 기인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던 사회였다. 남북의 군사적 대결, 미국의 신식민지화, 군사정권의 산업화 주도, 도시로의 인구집중, 이로 인한 사회악과 구조악의 만연, 인권의 침해 등의 사회모순을 경험하였고, 민중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 빠졌다. 그러나 한국의 신학계는 이러한 사회 현상에 대하여 신학적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교회성장에만 치중하였다. 도시산업선교회를 중심으로 노동자와 도시빈민에 대한 선교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미미한 수준이었고, ‘산업선교’가 신학적으로 정립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러다가 전태일의 분신 사건이 발생하였다. 전태일은 모든 민중의 고난이 사회의 기본적인 모순 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근로기준법과 함께 자신을 불살랐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노동자들은 체제하에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게 되었고, 조직적인 노동운동이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에 자극을 받은 학생과 지식인들이 대거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13)
그 때까지 상아탑 속에만 갇혀 있던 신학자들도 이러한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들은 이 전태일 사건을 민중의 한 사람인 전태일이 자기가 처해 있는 현실을 자각하고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제물로 바친 ‘자기초월’이었다고 규정하고 이 사건을 신학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민중신학의 한 중요한 계기였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60년대에는 불트만의 양식사적 성서해석과 실존주의적 신학을 신봉하고 있었으나, 70년대에 들어와 유신정권으로 더욱 가속된 사회악과 이에 대항하는 노동운동에 자극을 받고 민중신학을 주창하였다.14) 이제 신학자들은 한반도의 정치 경제 사회의 여러 모순을 극복하려는 민중해방의 운동을 신학의 의제로 삼게 된 것이다.
민중신학자들이 먼저 손을 댄 것은 한국 민중의 항쟁사 연구였다. 때맞추어 한국사학자들이 민중운동에 관한 저서들을 내어놓기 시작하였다. 민중신학자들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한민족의 민중운동사를 ‘전거'(典據)로 삼아서 민중신학의 한 계기로 삼으려 하였다.15) 역사 속의 수많은 민중운동 가운데서 민중신학자들이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1894년에 일어난 동학혁명이다. 밖으로 외국자본의 침입을 배척하고 안으로는 양반 중심의 봉건적 사회체제에 반기를 든 민중들은, 군사적 혁명을 일으켜 잠시 동안 그리고 제한적인 지역에서나마 민중의 자치 정부를 구성하고 민중정치를 실현하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은 단지 정치적 운동을 일으킨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정치적 운동의 배후에 동학(東學)이라는 종교가 있었다는 점이다. 인내천(人乃天) 사상은 인간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상으로서 단순한 정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종말론적 메시아 왕국에 대한 갈망을 그 속에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16)
2. 민중문화운동
민중신학운동이 개신교 신학자들에 의해서 일어나게 된 두 번째의 계기는 민중문화운동이다. 70년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 고유의 전통적인 탈춤을 재현하자는 문화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났다. 이 운동의 주도자들은 이 탈춤이 단지 전통적인 한국의 미학을 담지하고 있는 것뿐 아니라, 민중 사건의 종교적 예술적 표현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즉 탈춤은 민중의 정치의식의 발현이면서 동시에, 예술적ㆍ종교적 의미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신학자 현영학은 한국의 대표적인 탈놀이인 봉산탈춤을 연구하였다.17) 봉산탈춤은 모두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장에서는 땀흘리며 고생하고 살아야 하는 민중의 삶과 유리된 종교제도인 조선시대 불교의 허구성을 풍자하고 비판한다. 둘째 장에서는 체제를 등에 업고 민중을 수탈하면서 민중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양반을 풍자하며, 셋째 장에서는 민중 자신의 고난과 그로부터 비롯된 죄악과 부도덕을 풍자한다. 이러한 탈놀이를 통하여 민중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체제와 그 제도 그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풍자를 통하여 비판함으로 이들을 초월한다. 민중은 고통스런 삶의 경험으로부터 이러한 비판적 초월의 종교적 원천을 제공받는다. 그들은 탈놀이를 통하여, 맺혔던 한(恨)이 의식화되며 차원 높게 정화(淨化)되고 또한 미래에 완전한 승리와 극복이 성취되리라는 소망을 제공받는다. 이러한 민중의 에너지는 때로는 종교적인 것으로 전이되어 현실의 고통 가운데서도 웃으면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극히 드문 경우지만 혁명적 분출을 위한 용기(勇氣)로 전화(轉化)되기도 한다.
민중신학자들은 탈춤의 분석 외에도 여러 가지의 형태의 한국고유의 민중문화를 분석하고 정리하여, 이들에게 ‘민중(民衆)의 사회전기(社會傳記)’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홍길동전 같은 소설, 농민의 노래, 민담 등도 모두 민중의 언어로 구전되는 민중의 사회전기의 일종이라고 한다. 그것들 가운데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판소리에 대한 분석이다.18) 판소리는 조선 말엽에 구전되어 내려오던 민담을 민중의 언어를 사용하여 긴 노래로 엮은 것이다. 춘향전의 경우 두 가지의 주제―’표면적 주제’와 ‘실제적 주제’―가 있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전통적인 유교의 윤리인 정절이 그 주제인 것 같지만, 그 내면의 실제의 주제는 "신분제약으로부터의 인간해방 및 탐관오리 응징"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중이 민중의 사회전기를 전승할 때에 그 사회의 지배이념의 언어를 빌려 쓴다. 지배이념의 언어가 너무 지배적이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서는 민중이 자신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민중의 사회전기는 어느 정도는 민중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민중은 그 지배이념의 언어 속에 숨어있는 실제적 주제를 파악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민중문화학자들이나 민중신학자들이 해야 할 일은 이 지배언어 속에 ‘암호'(code)로 숨어 있는 민중의 언어를 ‘해독'(decode)해 내는 것이다.
이 판소리의 표면적 주제와 실질적 주제의 구분은 후에 민중신학자들이 성서해석을 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즉 구약성서는 왕조 중심으로 신약성서는 제도적 교회를 중심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서 왕실의 혹은 제도적 교회의 언어를 가지고 그들의 종교적 체험과 그들의 윤리를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서를 흐르고 있는 맥은 민중 사건이며 실질적 주제는 민중의 해방이고 그 전승의 주체는 민중이다. 성경 안에는 민중사와 왕조사가 혼합되어 있으므로 옥석 구분이 필요하며 암호의 해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민중신학에서는 한국 고유의 평민의 예술 형식인 민담, 판소리, 탈춤 등이 단순한 예술행위가 아니라, 민중의 고통과 희망을 담은 일종의 ‘사회전기’라고 하였고, 이를 민중해방운동과 접맥시킴으로서 민중신학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3.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운동의 융합(fusion)과 그 기초
이제까지 이야기한 대로 민중신학을 이루었던 두 가지의 계기는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운동이다.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개념을 가지고 민중해방의 사건과 민중문화를 ‘융합’ (fusion)시켰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는가? 민중해방운동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인 혁명운동이요 민중문화운동은 예술적 종교적 자기초월의 행위이다. 민중해방은 뚜렷한 이데올로기와 영웅적 지도자에 의해서 가능하게 되고, 반면 민중문화운동에서는 행동지침도 없고 지도자와 추종자의 구별이 불가능하다. 민중신학자들은 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운동을 어떻게 융합할 수 있었는가?
첫째, 이 두 운동은 모두 민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민중해방운동은 권력자들 간의 다툼과 달리 민중들이 주체가 되어 지배자들을 물리치고 자신들이 자신들의 운명의 결정자가 되려 하는 운동이다. 동학혁명이 그러했고 전태일 분신사건에서 비롯된 노동운동이 그러했다. 민중문화운동의 주체도 역시 민중이다. 민중은 판소리와 탈춤을 통해 지배자들에 의해 압박과 고통 가운데에 놓이게 된 자신들의 처지를 직시하고 그것을 초월하고 웃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종말론적 희망을 가지게 된다.
둘째, 이 두 운동의 모범이 되는 사건들은 각각 다른 운동의 요소를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태일 사건에서 우리는 ‘민중의 자기초월’이라고 하는 종교적인 차원을 볼 수 있고, 동학혁명에서도 역시 정치적 운동이면서 동시에 종교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19) 탈춤의 경우에도 이것이 분명 문화운동이지만, 민중의 고통과 그로부터의 해방의 염원이 그 속에 배어 있기 때문에, 탈춤을 통하여 민중해방운동의 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이 두 운동의 결합을 가능하게 해 주는 도구로서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김용복이 정의한 바 ‘민중의 사회전기’는 단순한 민중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민중이 자기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표출하는 한 방법이다. 민중은 자신의 이야기를 말과 글과 노래로써 표현함으로 ‘자기 초월’을 이룰 수 있다. 제1세대 민중신학자들이 한사코 ‘민중’ 개념을 정의하려 하지 않았던 이유도 민중 자신이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규정할 때에야 비로소 민중이 되기 때문이다.20) ‘민중의 사회전기’는 단순히 민중을 의식화시켜서 혁명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이데올로기도 될 수 없고, 또 고통받는 민중의 한풀이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이는 민중이 자기를 규정하려는 종교적인 노력의 산물이요 또한 민중의 사회적 현실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혁명적 에너지를 발산토록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민중신학자들이 어떻게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개념을 마가복음 해석의 기본 틀로 사용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려 한다. 마가복음 해석의 어떤 점이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운동의 양 계기를 융합시키는 해석적 틀이 제공해 줄 수 있었는가? 민중해방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실천 강령이라면 정확한 통계에 근거한 역사성을 가져야 하고, 지도자와 조직이 적시되어야 하며, 일정한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져야 할 것이다. 반면 초월을 목적으로 한 예술적ㆍ문화적ㆍ종교적 문서라면 ‘이야기’ 체의 구성 형식을 갖춘 신비적이고 영적인 내용을 담은 책이어야 할 것이다. 과연 민중신학자들이 말하는 바, ‘민중의 사회전기’로서의 마가복음은 어떠한가?
Ⅲ. 민중신학에서의 마가복음 해석 : ‘민중의 사회전기’
1. ‘민중의 사회전기’ : ‘역사'(history)인가 ‘신화'(myth)인가?
안병무는 마가복음이 역사에 기초해 있음을 강조한다. 한동안 신봉하였던 양식사 비평에 근거한 성서의 실존론적 이해를 비판하면서, 성서에 나타난 사건의 역사성을 주장하였다. 서구의 신학이 ‘신학을 위한 신학’이라면, 민중신학은 ‘사건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양식사학자 불트만은 마가복음 3장 23∼28절에 나오는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는 사건을 단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아포프테그마'(apophthegma)를 위하여 후대의 교회가 전승하는 과정에서 덧붙여 놓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민중신학에서는 예수의 말의 전승보다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을 수밖에 없었던 민중들의 배고픈 현실을 해석의 앞에 놓는다. 민중신학자들의 십자가 이해에서도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십자가의 사건을 무시하고 그 사건을 신학화시킨 최초의 인물은 사도 바울인데, 그는 하나의 정치적 사건이었던 십자가형으로부터 신학적인 의미를 추출해내어 십자가라는 교리를 중심으로 하는 신학 체계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십자가라는 교리보다 십자가형과 그 형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21)
자연히 민중신학에서는 ‘역사적 예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예수의 사회적 정치적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한 예수 시대의 사회학적 분석이 중요하다. 이들은 사회학적 성서비평을 통하여 예수의 시대를 분석함으로써 예수 운동이 가지는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포착하려 한다. 그리하여 민중신학자들의 마가복음 해석에서는 예수 시대의 상황분석 즉, 로마제국의 일부로서의 팔레스틴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 이 지방의 종교운동,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갈등 상황 등을 자세히 분석한다.22)
그러나 안병무가 신약의 역사성을 말하는 것은,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역사성과는 다른 의미이다. 민중신학에서는 역사비평적 방법의 일종인 사회학적 해석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마가복음에 기록된 전부를 예수시대에 일어났던 사실로 보는 것은 아니다. 마가복음 속에는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이야기를 전승한 마가공동체의 삶의 자리와 그 공동체의 해석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한다. 즉 마가복음은 마가공동체라는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말이다. 마가복음의 ‘전승모체'(傳承母體)인 마가공동체는 예수의 이야기를 빌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마가공동체는 왜 40년 전에 있었던 예수의 이야기를 다시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민중신학자들이 묘사하는 마가복음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민중의 한이 맺힌 지방인 팔레스틴의 갈릴리 지역에 예수라는 한 청년이 그 시대의 억압의 구조에 대항하여 민중운동을 벌였다. 그 모든 모순의 총화가 예루살렘의 통치 기구라는 것을 발견하고는 예루살렘으로 행진하여 그 체제에 대항하는 행동[성전 청결]을 하였으나 역부족으로 실패하고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다는 이야기이다. 민중신학자들에 의하면, 이 이야기를 전한 모체인 마가공동체는 자신들도 나라를 잃고 유리 방황하고 있었는데, 한마디 대항도 못하고 불의의 세력에 의해서 죽어간 예수의 전기를 통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하였다고 한다.23) 무릇 모든 민중의 사회전기는 민중의 고난의 이야기이다. 민중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재현되는 이 예수의 전기를 통하여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역사적 주체성을 회복하고 그리고는 열린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민중의 자기초월’이요 ‘부활 사건의 경험’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 자기초월에서 비롯된 동력은 사회를 개혁하는 힘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현재의 처지를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민중의 사회전기인 마가복음은 역사(history)에 기초하고 있으면서 또한 신화(myth)를 창조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마가복음이 일종의 사회전기로서 역사적인 면과 신화적인 면의 양자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민중신학자들의 민중개념 분석에서도 잘 나타난다. 민중신학자들은 민중 개념을 두 가지의 범주를 사용해서 정의한다. 첫째는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정의이다. 경제적으로 착취의 대상이고, 정치적으로는 압박을 받으며,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민중이라 한다. 그러므로 그 압박자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서 민중은 유동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B.C. 13세기의 애굽에서는 강제노역을 하는 노동자들이었고, 예수 당시에는 갈릴리 지역에 살고 있었던 백성들이었고, 구한말에는 지방수령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던 농민이었고, 70년대 한국에서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이 대표적인 민중들의 유형이었다. 인종갈등이 격심한 곳에서는 소수민족이 민중이요, 때로는 여성이나 아이들이 민중일 수도 있다. 둘째, 민중을 규정하는 범주는 바로 민중의 사회전기이다. "민중은 자기가 자기를 규정할 뿐인데……민중이 지니고 엮어 가는 민중의 이야기에 의하여 자기규정이 가능해진다."24) 민중은 자신들의 고난과 희망을 이야기로 표현하는 민중의 사회전기에 의해서 자기를 이해하고 자신을 규정한다. 민중은 자신들의 언어인 사회전기에 의해 자신들의 처해 있는 위치와 역사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이처럼 자신을 규정하는 민중은 남에 의해서 타율적으로 객관적으로 수치적으로 규정될 수 없다. 민중 개념은 그러므로 인격적인 것이요, 심지어 종교적인 것이다.
2. 민중의 언어 : ‘역사적 진리'(historical truth)인가 ‘이야기로서의 진리(narrative truth)인가?
역사적 사실과 신화, 정치와 종교의 양 계기를 포괄하는 민중의 사회전기는 특수한 언어를 사용한다. 민중의 사회전기의 언어의 특징은 한 마디로 말해서 ‘유언비어'(流言蜚語)이다.
우리는 한국 민중문화운동을 분석하면서, 한국의 판소리와 민담이 민중의 고통과 애환과 유머와 희망을 그 속에 간직할 수 있는 도구로서 사용되었음을 살펴보았다. 또한 민중문화운동 분석가들은 판소리의 주제를 "표면적 주제"와 "실제적 주제"로 구분한다는 것도 이야기하였다. 그것들의 주제가 외형적으로 보기에는 지배계층이 주도하는 사회에서 그 윤리적 기반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예 : 정절ㆍ효도ㆍ충성 등) 사실상의 이면적인 주제는 민중의 삶의 탄식이며 민중해방의 염원이라는 것이다.
민중신학자들이 신구약성서를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고 있다. 구약성경의 기사들은 두 가지의 전통이 얽혀져서 구성되어 있다. 그 하나는 왕조전통(royal trajectory)이고 다른 하나는 해방전통(liberation trajectory)이다. 민중중심의 평등한 사회와 종교제도를 꿈꾸는 해방전통은 출애굽사건을 시발로 하여, 사사시대의 200년 동안의 부족동맹국가 때에 그 꽃을 피웠으나, 곧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이 들어서면서 왕조 전통으로 대치된다. 왕과 환관들과 어용 제사장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던 민중들을 대변하기 위하여 아모스ㆍ미가와 같은 선지자들이 해방전통을 이어서 부족동맹국가로 돌아가기를 설교하였고, 이 전통은 다시 묵시문학으로 연결되며 예수 그리스도에 와서 정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왕조시대의 많은 어용 관리들과 역사가들이 왕조 중심의 역사를 서술하였으나, 도도히 흐르는 민중의 정신을 거역할 수 없었고 그래서 민중해방의 이야기가 구약성서 곳곳에 ‘억압된 기억'(repressed memory)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한다.25)
신약성서도 같은 특징을 지닌다. 안병무는 마가복음이야말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전승시킨 복음서라고 주장한다. 민중신학자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케리그마를 정리했던 자들과는 명백히 구별되는 다른 ‘전승모체'(傳承母體=마가공동체)가 있어 그들이 예수사건의 내용을 각색하고 전달했다는 전제를 가지고 마가복음에 접근한다. 마가복음에서는 유난히도 제자들을 비판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고, 이에 반하여 세리와 창기, 여인들을 예수와 동일시하고 그들을 칭찬하는 곳이 많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안병무에 의하면, 바로 마가복음의 전승모체가 제자들을 주축으로 한 제도적 교권주의자(사도 바울, 마태복음, 누가복음의 전승모체)들을 비판하면서 생생한 예수 사건을 전승함으로써 자신들이 처해 있는 역사적 상황을 극복해 보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가복음의 전승자들은 특수한 언어, 즉 ‘유언비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국 고대의 민담이나 판소리가 사용하였던 언어이고, 탈춤에서 양반과 승려계층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언어이고, 70년대 유신정권 치하에서 숱한 노동자와 농민과 민중운동가들이 자신들이 본 바를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던 언어이다. 안병무는 유언비어의 특징을 다섯 가지로 이야기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유언비어는 정치 사회적인 박해의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② 유언비어는 어떤 한 사회적인 그룹의 운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그 그룹의 구성원들의 노력에 의하여 발생한다. ③ 유언비어는 그 성격상 공적인 성격을 띠지 못하고 비밀리에 회자된다. ④ 유언비어는 그 그룹의 지도자들이 그 사건의 진상을 발표할 수 없거나 발표하지 않으려고 할 때 혹은 어떠한 이유에서 그들이 이를 숨기려고 하는 상황에서 민중들 사이에 회자된다. ⑤ 유언비어는 과거의 그 사건이 현재의 그 그룹의 실존적 상황과 연관이 있을 때에 더 활발해 진다.26)
그리고 이 다섯 가지의 특징은 모두 마가복음의 특징과 일치한다고 한다. 마가복음은 박해를 받던 민중들이 몰래 당국자들의 눈을 피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진 예수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마가공동체는 유다 전쟁 이후 실향민으로서 유리 방황하며 그날 그 날의 실존적 불안에 떨고 있었고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한 수난 가운데서 당시 교권의 체계가 자기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고 있음을 비판하면서 ‘예수 사건의 이야기'(유언비어)를 활성화시킨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이 생기는 것은 이러한 유언비어로 기록된 마가의 복음이 얼마만큼의 역사적 진실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정확한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지도 아니하였고, 책임 있는 당국자의 발표도 아니고, 그저 같은 수난 가운데 있는 평민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달한 유언비어가 과연 진실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김용복도 "민중의 언어는 단편적이고 산발적이며 일관성이 결여된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다.27) 때로 유언비어는 그 전달자에 의해 그 내용이 과장되기도 하고 덧붙여지기도 하고 또는 전달자의 감정이 들어가기도 하고 상스러운 말이나 방언이 첨가되기도 한다. 여기에 과학성ㆍ정밀성ㆍ일관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민중신학자들은 말하기를, "그러나 민중의 언어는 역사적 현실을 더욱 참되게 계시하여 준다. 따라서 민중의 언어는 ‘믿을’ 수 있다." 이 민중의 언어는 정확한 개념 정의와 수치로 다룰 수 있는 객관적인 사회과학과, 주관적이며, 주체적이며 또는 종교적이기까지 한 민중의 경험을 포괄할 수 있는 총체적이며 통일적인 도구라는 것이다.28)
3. 예수와 민중의 관계 : 예수는 개인(individual)인가 집단(corporate)인가?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예수는 민중이다"라고 말할 뿐만 아니라, "민중은 예수다"라고 말한다.29) 과연 안병무가 이런 말을 할 때에 그 진의가 어떤 것인가? 또, 어떤 논리를 가지고 이를 정당화시킬 것인가? 우선 "예수는 민중이다"라는 주장을 살펴보자. 안병무의 분석에 의하면, 예수는 민중의 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민중과 같이 행동을 하였고, 민중이 있는 곳에 예수가, 예수가 있는 곳에 민중이 있었으며, 시종일관 민중의 언어를 사용하였으며, 아무런 신의 특수한 간섭이 없이 하나의 민중으로 처형을 당하였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안병무는 마가복음에 자주 등장하는 오클로스(ochlos)라는 단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서 예수가 자신을 오클로스와 동일시하고 이 오클로스를 중심으로 마가복음의 이야기가 엮어져 나가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 오클로스가 과연 ‘민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예수가 민중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30)
그러나 "민중이 예수이다"라는 주장에는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안병무가 민중과 예수를 동일시 할 때 그 외연(外延)이 같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예수는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인물이었고 분명 예수 당시의 민중이나 마가공동체의 민중은 예수와 외연적으로 구별되는 사람들이었다. 그가 민중이 예수라고 말 할 때에는 예수를 "집단의 표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서남동교수의 언어를 빌자면, 예수는 "민중의 인격화, 민중의 상징"이었다. 예수는 갈릴리 민중의 "집단의 표상"으로서 버림을 받고 부당하게 처형당하였다.31) 그리고 마가복음을 전승한 마가공동체는 예수의 처형 가운데서 민중의 운명을 보고 있었다.
예수가 민중이라는 집단의 표상이고 민중의 상징이라는 말이 무엇인가? 민중신학자들은 이 말을 하면서 예수가 민중을 "위한" 지도자, 해방자, 교육자라는 개념을 강하게 부정한다. 예수는 민중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를 대신 드린 것이 아니다. 예수는 민중이라는 대상을 의식화시켜서 그들로 하여금 해방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주체가 아니다. 또한 예수가 민중의 대표라고 말할 때에는 예수가 민중의 역할 모델(role model)로서 민중이 본받고 따라가야 할 모범이라는 뜻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도덕적 모범으로서 이를 따라서 선한 일을 하여야 구원을 얻는다는 구원론은 역시 서구화된 기독교의 구원론이지 성서적인 것은 아니다. 민중이 예수라는 말은 논리적으로(시간적으로가 아니라) 예수의 이야기와 민중의 자기체험은 동시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뜻이다. 아무 저항도 못하고 예루살렘의 세력 앞에서 무력하게 죽어 가는 예수 당시의 민중들이 없었다면 예수 사건의 이야기는 전승되지도 못했을 것이요, 또한 나라를 잃고 유랑하던 마가공동체가 없었더라면 예수의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의 이야기는 민중을 의식화시켜주고, 민중의 자기 이해는 예수의 이야기를 존재할 수 있게 해 주는 전승의 모체가 되었다. 민중신학자들은, 예수를 한 주체로 보고 예수의 주위에 있던 민중들을 구원의 대상으로 보는 전통적인 신학을, ‘인격’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힘으로 개인주의에 빠진 서구인의 병폐라고 지적한다.32)
안병무는 예수의 사건과 성서와 교회사와 한국의 역사 속에 나타난 민중사건의 관계를 화산맥의 은유를 사용하여 설명한다.33) 출애굽 사건, 예수 사건, 70년대 한국의 전태일 사건은 우뚝 솟아 있는 화산의 봉우리들이고, 이 봉우리들의 영향하에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계속 분출되어지는 크고 작은 화산의 맥이 바로 민중사건들이다. 그 화산맥의 내부에는 민중의 고통과 그로부터 기인하는 한(恨)이 끓고 있고 때로 그것이 분출되기도 한다. 그 분출되는 사건은 예수나 전태일과 같은 뚜렷한 ‘민중의 자기초월’―민중이 자신이 역사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자기를 희생해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고 하는 결심―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자기초월적인 행동은 결코 그 화산의 내부에 잠재해 있는 민중들의 고통과 유리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예수의 행동은 결코 영웅주의적인 것이 아니고 민중 속에 잠재해 있는 한과 분노의 표출일 뿐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의 이러한 집단적인 인격의 개념이 개개인의 인격을 집단적 자아 속으로 귀속시키지는 않는다고 한다. 민중신학자들은 개인의 실존적 자아가 무시된 채, 파시즘적 집단주의로 나가는 것을 또한 경계한다. 예수라는 개인과 민중을 동일시하는 집단주의 속에도 개인의 실존적 결단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한다.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모습은 민중과 함께 죽어 가는 민중의 대표자이었을 뿐만 아니라, 한을 안고 있는 민중의 현실을 자기의 한 몸을 죽여 가면서 끊어보려고 하는 한 민중의 처절한 고투의 모습이다. 70년대 초의 한국의 전태일은 평화시장 노동자의 한을 그 한 몸에 안고 불에 탄 초월한 민중의 모습이다. 이러한 민중의 이야기, 즉 ‘민중의 사회전기’를 통하여 민중은 자기를 새롭게 규정하고 새로 태어난다. 이 예수의 이야기를 듣고 읽는 민중이 실존적 자아를 발견할 때, 그들이 개인적인 자격에서 하느냐 혹은 한 집단이 이를 감행하느냐 하고 묻는 것은 이미 서구의 주객도식이 그 가운데 들어가 있는 어리석은 물음이다. 민중신학은 개인과 사회의 연대성을 무시함으로 결국 나르시스트를 양산해내는 서구의 주관주의를 경계하면서도, 개인을 집단에 몰입시켜 그 실존적 결단을 도외시함으로써 민중을 소외시키는 정치적 메시아니즘을 또한 반대한다.
이러한 마가복음에서의 민중신학의 개인과 집단의 관계는 민중신학이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운동의 계기를 수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탈춤의 몸짓 가운데서 또한 광대의 판소리에서 민중들은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를 찾게 된다. 탈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특이한 영웅도 아니고 그저 어디서나 만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한 민중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를 관람, 아니 이에 참여하는 민중들은 쉽게 자신의 모습을 그 광대의 모습과 일치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실존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연기자와 관객이 따로 없고, 이야기 속의 사건과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구분되지 않는다. 물론 민중해방운동은 좀더 과학적이고 좀더 조직적이며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지도자의 인격이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진정한 민중혁명의 경우에는―예를 들어 동학혁명―이러한 영웅의 역할이 극소화되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한다.
4. 마가복음의 예수상(像) : 정치적 변혁인가 종교적 승화인가?
민중의 상징으로서의 예수가 갈릴리에서 한 일은 무엇이었는가? 민중신학자들은 우선 ‘예수 사건’이 일어났던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민중 개념 자체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의미를 가진 것이므로, 서구 신약학자들이 마가복음의 배경을 단지 교회적 신학적 배경 하에서만 연구하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안병무는 못박는다. 경제적으로 갈릴리는 비옥한 지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의 과세와 유대의 부재지주들로부터 이중의 압박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소작인과 날품팔이들 그리고 유랑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이 바로 갈릴리의 민중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경제적 착취 외에도 그들은 이전 수백 년에 걸쳐 정치적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다. 반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지방은 로마가 통치하고 있었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갈릴리로부터의 잉여 자본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그리 가난하지 않았고 또한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가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갈릴리는 민중들이 사는 곳이었으며 예루살렘은 압박자들의 도시였다. 갈릴리는 고대 부족 동맹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었고 예루살렘은 왕조전통을 이어받고 있었다 한다.34)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예수는 갈릴리에 가서 과연 무슨 일을 하였는가? 마가복음에 있는 대로 그는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어 주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고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였다. 안병무는 이러한 예수의 행위의 의미를 세 가지로 이야기하였다. 첫째는 민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행위이다. 그는 죄인들을 불러서 회개시키려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하며, 둘러앉은 무리들(ochlos)을 향하여 "보라, 여기 내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다"고 선언하였다. 둘째, 그는 이런 민중과의 동일시를 통하여 "강자가 만든 전통 사회의 관념에서 저들을 해방"하고자 하였다. 셋째, 이러한 과정 가운데에서 불가피하게 부딪히는 것이 민중을 속박하고 있는 체제와의 대결이었다. 예수는 갈릴리에서 바리새인이 만들어 놓은 안식일법, 정결법과 대결하고 로마의 사탄적 지배, 즉 구조악으로부터 민중을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예수는 점차로 그 모든 민중의 경제적, 정치적 압박과 종교적 소외의 근원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에 접하게 된다. 그는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도도하고도 공개적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였다. 유월절 군중 앞에서 그는 그 모든 악의 근원지인 성전을 그들이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버린 데 대하여 분개하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었다. 바로 이 행동, 즉 예루살렘 체제와의 직접적인 대결의 행동 때문에 예수는 산헤드린에 잡히게 된다. 심문 당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로마의 체제와 다시 한번 대결을 해야 했고 급기야 로마의 정치범을 처형하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35)
과연 예수의 프로그램이 무엇이었을까? 예수는 무슨 의도로 예루살렘에 들어갔는가? 예수가 예루살렘의 체제와 대결하였을 때, 그는 어떤 뜻을 품고 있었는가? 또 이 죽음을 지켜본 민중들이 무엇을 생각하였으며, 이를 전승한 마가공동체는 이 죽음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우선 민중신학자들이 예수의 행태가 그 당시를 풍미하고 있던 메시아 운동과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예수 당시에 수많은 메시아 운동가가 나타나서 민중들을 로마의 압제와 부패한 예루살렘의 체제에 대항하기 위하여 칼을 들고 봉기하였다(예 : 젤롯당). 메시아 운동가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공산주의나 학생운동과 같은 이데올로기 운동이다. 그들은 민중을 ‘위하여’ 분연히 일어나서 일정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다. 그러나 민중신학자들은 예수 당시의 메시아 운동가와 현대의 이데올로기 운동을 강하게 비판한다. 아니, 이러한 메시아 운동을 민중신학이 가지고 있는 단지 ‘하나의’ 측면이라고 하면서 이를 민중신학의 한 계기로서 파악하고자 한다.36)
예수가 메시아 운동가가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하였는가? 민중신학자들에 의하면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치면 맞고, 찌르면 피가 나고, 죽고, 못 먹으면 굶고, 한계에 도달하면 죽은 그런 너무나 힘없는 그리고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는" 그런 죽음을 당한다. 예수 당시의 그리고 마가복음을 전승한 민중들은 이러한 예수의 처형사건에서 두 가지를 경험한다. 하나는 "그 죽음에서 바로 자기들의 죽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예수의 절규 속에서 자기들의 음성을 듣는다. 다른 하나는, 이와 같은 소외와 버림받음과 절망의 외침 속에서 자기 스스로를 내던져 죽어 가는 예수가 "힘은 힘으로, 폭력은 폭력으로라는 악순환에 대한 ‘단'(斷)의 현실을 보았다." 자기를 죽이려는 로마와 예루살렘 세력의 제도적 폭력 앞에 끝끝내 침묵을 지키는 예수 앞에서 그들의 추악한 모습이 드러날 뿐이었다. 예수의 사건은 민중의 자기초월의 사건이다. 이러한 예수의 사건을 목격한 민중은 자신들의 부활을 체험하였다. 이는 갈릴리 민중의 되살아남이었고 마가 공동체의 자기발견이며 자기규정이었던 것이다.37)
예수의 민중운동은 단순한 정치적 운동과는 달리 종교적 운동이었다. 단지 피상적으로 민중의 외적인 삶을 변형시키려는 운동가들의 정치 프로그램이 아니었고 민중의 실존을 문제삼는 종교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이를 김용복은 ‘메시아적 정치학'(Messianic Politics)이라고 명명하며, ‘정치적 메시아니즘'(Political Messianism)과 대립관계에 있는 것으로 본다. 정치적 메시아니즘의 예로서는 일본의 제국주의, 북한의 공산주의, 남한의 기술관료사회 등을 들 수 있다. 이 운동의 특징은 "하나님의 정당성이 기존 정부 조직 속에 내재"하는 것이므로 민중은 늘 정치의 대상이 될 뿐 정치의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이와 반대로 메시아적 정치학에서의 민중과 메시아의 관계는 고난 가운데서 얻어지는 동일시와 교제(koinonia)이고 민중은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38)
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민중운동이 정치적 프로그램을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수가 폭력에 대항하지 아니하고 단지 자기를 버려 단(斷)의 행위를 하였던 것은 우리도 그렇게 늘 비폭력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예수는 자기의 비폭력적 정치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정치적인 행위가 또한 좀더 심오한 종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을 보여 주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건을 통하여 자신들의 부활을 체험한 민중들은 반드시 비폭력 저항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도 역사의 주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역성(易姓)혁명이나 반정부혁명을 기도한다고 하여도 그들의 행위는 또한 종교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포함해야 하는 것이다. 예수의 비폭력적 대결은 단지 그 운동의 종교적 차원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늘 민중운동이 비폭력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39) 폭력이냐 비폭력이냐, 개혁이냐 혁명이냐, 한의 종교적 승화냐 그것의 정치적 표출이냐 하는 것은 단지 역사적 상황에 따른 선택의 문제이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민중신학자들의 이와 같은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상(像)에 관한 기술은 또한 민중신학이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운동의 두 갈래의 전통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성서에 나타난 민중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그 속에서 자신을 규정해 나가고 부활 사건을 체험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로부터 힘을 얻어서 해방운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국의 민중은 노래와 탈춤과 판소리와 연극을 통하여 자신의 처지를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속에 쌓여 있던 한을 삭이며 이를 해학적으로 극복하기도 한다. 또는 지배체제와 대결하여 무장투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투쟁의 방법에서도 전태일과 같이 자신을 불사르기도 하고 홍경래의 난, 동학혁명과 같이 조직적으로 정치적 메시아니즘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이와 같은 여러 갈래의 반응을 보이는 민중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가슴 속 깊이 있는 한 속에는 이러한 갖가지의 잠재성들이 복합적으로 내재하여 있고 분출구를 만날 때에 적당한 형식을 빌어 터져 나온다고 한다.
Ⅳ. 결 론
우리는 위에서 민중신학의 방법적 틀로서 ‘민중의 사회전기’ 개념을 이야기하고, 그 틀이 마가복음 해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살폈다. 민중신학은 민중해방운동과 민중문화운동의 두 전통을 ‘민중’이라는 공통점을 기반으로 하여 융합시킨 신학적 시도였다. ‘민중’이라는 개념을 신학의 주제로 삼은 점이나 혹은 우리의 상황과 성경을 연결시키려 하였다든지 하는 점을 민중신학의 공헌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에서 말한 것처럼 민중신학은 민중해방운동이라는 정치적 운동과 문화ㆍ종교적 운동을 융합시키려 하였다는 것이 그 중대한 공헌일 것이다. 민중신학은 마가복음을 역사(history)로 볼 것이냐 신화(myth)로 볼 것이냐 하는 물음에 대하여 이분법적 태도를 지양하고 이를 통합하려 하였다. 진리관(觀)에서도 ‘유언비어’ 개념을 소개함으로 역사적ㆍ과학적 진리(historical truth)와 이야기로서의 진리(narrative truth)의 이분법을 극복하려 하였다. 더 나아가서 민중과 예수를 동일시하고 ‘민중의 사회전기’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 개인주의와 집단주의의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 분열을 극복하려 하였다. 예수의 운동이 종교적 운동이며 동시에 종교에 근거한 메시아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적 운동이라는 사실도 강조되었다. 민중신학의 마가복음 해석에서도 신화―이야기로서의 진리―개인의 실존―종교적 승화라는 초월의 한 축과 역사―역사적 진리―집단―메시아적 정치학 등의 내재 사이를 통합하려 하였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민중신학의 노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 달라진 물질적ㆍ사상적 환경에서 신학을 하는 민중신학자들은 민중생명운동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였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민중’의 범위가 넓어지고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사회과학적으로 규명해야 할 작업도 더 복잡해졌다. 새로운 의미의 ‘영성’이 두드러지게 강조된다.40) ‘민중’ 개념의 확대와 영성에 대한 강조를 결합시킨 생명신학 운동의 내부구조에는 제1세대 민중신학자들의 민중해방운동과 민중종교ㆍ문화운동의 결합이라는 틀이 자리하고 있다. 민중신학은 새로운 아젠다를 가진 새로운 세대에 생명신학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