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신학 세미나
Ⅰ. 한국 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
민중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무래도 ‘민중 구원’에 대한 신학적 정립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민중 구원’의 신학적 정립을 논의할 때 민중신학의 정체성과 관련해서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민중신학이란 곧 한국의 신학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신학은 ‘한국’이라는 삶의 현장에서 민중에게 필요한 구원의 원리를 찾아 독자적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 안에 ‘계시된’ 그리스도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민중사(民衆史) 속에도 우리 나름의 ‘그리스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우리에게 절실한 현실적인 구원을 우리 스스로 찾아보려는 것이다. 그 시도가 구체화된 것이 다름 아닌 민중신학이다.
Ⅱ. 민중신학의 태동과 그 배경
1. 민중신학의 태동
‘민중’을 신학의 주제로 삼기 시작한 때를 민중신학의 태동기라고 한다면, 그 때를 1970년 초로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신학사적인 차원에서 ‘민중신학’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나타나고 그 이름으로 글이 발표된 때를 민중신학의 시작으로 본다면, 그것은 1975년 4월초, 『기독교사상』에 발표된 서남동1)의 “민중의 신학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는 민중신학의 발단을 안병무2)의 민중 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안병무는 1975년 3월 1일, 민주 인사들의 출옥을 기념하는 모임에서 “민족, 민중, 교회”라는 강연을 통해서 지배 집단이 민족을 내세워 민중을 착취했기 때문에 결국 한국 역사에서 끊임없는 민중운동사가 이러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안병무는 4.19당시, 그리스도교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피의 싸움을 보면서도 죽은 듯이 잠잠했던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동에 반역하는 비겁”이었다고 외쳤다. 서남동과 함께 안병무는 민중신학의 뿌리와 기둥이 되게 하기에 넉넉했다.
그런데 민중신학의 발단을 물을 적에 서남동과 안병무보다 먼저 언급해야 할 학자가 현영학이다. 그는 1973년 6월에 『한국신학보』에서 그리스도교는 “민중 속에 성육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서 예수는 민중의 친구였는데, 그를 믿는 그리스도교는 콘스탄틴 황제 때 국교가 되면서 “죄인(민중)의 친구의 입장에서 죄인(민중)을 다스리는 입장에 오르게 되었다”고 개탄하면서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민중의 친구가 되어 민중과 함께 살고 함께 생각하고 함께 보고 함께 느낄 수 있어야”하며, “민중 속에 담겨져 있는 지혜와 참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문화적인 대변혁기, 서양 사람들이 탈기독교시대라고 말하는 이 시점에서 기독교와 그 신학도 일대 변혁을 일으켜서 히 버림받은 자들(민중)의 친구가 되어야하지 않을까?”라는 물음으로 글을 끝맺고 있다. 그는 우리 나라의 신학자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한국의) 그리스도교 신학은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신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했다.
따라서 ‘민중신학’의 태동은 현영학에게서 그리고 그 신학의 발단은 서남동에게서 그리고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민중신학을 시작한 안병무에게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 민중신학의 사회적, 사상적 배경
1) 민중신학의 사회적 배경으로서의 전태일 사건과 노동운동
민중신학이 한국에서 태동하게 된 데는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사상적 배경이 있다.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사회적 ․ 역사적 배경은 1970년대 한국의 사회 ․ 정치 ․ 경제적 현실이다. “경제적으로는 고도 성장과 산업화와 도시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치적으로는 ‘유신체제’라고 하는 한국적 독재정치의 억압 속에서, ‘비상조치’를 무기로 삼는 군사독재정치에 맞서 싸우면서” “민중과 경험을 나누고 그들의 한과 희망을 대변하는 가운데서” 한국의 신학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체험을 신학적으로 성찰하면서 마침내 민중신학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우리가 주목할 것은 1970년대 일어난 한국의 ‘민중운동’이다. 그리스도교 밖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민중운동을 통해서 자각된 신학자들의 ‘민중 의식’에서 민중신학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신학자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건은 전태일의 분신자살 사건이다. 이 사건은 서남동이나 안병무가 그들의 신학적 관심과 주제를 관심게 맞추기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비단 이 두 학자뿐 아니라 ‘독단의 잠’에건이다있던 한국의 와 신학자들은 이 사건의 빛에건놀라 잠을 깨었다. 따라서 전태일 사건이야말로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사회적 기폭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2) 민중신학의 사상적 배경
첫째, 민중신학의 철학적 배경으로서 함석헌의 ‘씨ᄋᆞᆯ사상’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함석헌은 “씨ᄋᆞᆯ”의 ᄋᆞᆯ자를 풀이하는데, “ㅇ는 초월적인 하늘을 표시하고, ․ 은 내재적인 하늘, 곧 자아를 나타내며, ㄹ은 활동하는 생명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씨ᄋᆞᆯ로서의 ‘나’의 존재 의의는 ‘하나 곧 전체’의 실현에 있게 된다. 그런데 씨ᄋᆞᆯ은 ‘하나 곧 전체’의 실현에 있어서 안으로는 이기욕, 밖으로는 사회악에 도전을 받는다. 씨ᄋᆞᆯ은 여기에 능동적으로 대들어 사회적 저항을 해야 한다. 함석헌의 ‘대듦’은 씨ᄋᆞᆯ의 자존, 자주에 바탕한 주체적 행동이다. 다만 씨ᄋᆞᆯ은 사회, 정치, 경제의 영역에서 소외된 계층을 가리키는 ‘민중’보다는 더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은 씨ᄋᆞᆯ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개념이고, 씨ᄋᆞᆯ은 민중의 존재론적 개념이다.
둘째, 민중신학의 태동을 예비해 준 사상적 근거로는 민중사관의 대두를 들 수 있다. 1960년대가 끝나면서 한국의 신학자들은 신민지사관을 극복하고 지배사관에 맞서, 역사를 이끌어온 것은 민중이라고 주장하는 민중사관을 내놓기 시작했다.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라는 민중사관은 지배 권력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당히 심도 있게 논의 되었다. 이것은 민중신학의 기본적인 명제 가운데 하나가 “민중은 역사의 주체이다”라는 점을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셋째, 민중신학의 형성을 뒷받침한 것은 ‘민중문학운동’이다. 해방 이후 지배적이었던 민족문학은 1970년대 중반부터 차츰 민중문학으로 전환되었다. 『창작과 비판』을 중심으로 한 민중문학운동은 지식인들에게 민중의식을 불러일으켰는데, 신학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넷째,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배경으로서 민중문화운동을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60년대의 저항의 표제어는 ‘자유’였는데,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정의’가 전면에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노동자, 농민,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연대에서 비롯된다. 이와 때를 같이 해서 ‘탈춤’이 대학가를 풍미했다. 탈춤은 억눌린 민중의 전형적인 가면극으로 대학의 젊은이들이 벌인 탈춤마당은 민중과의 연대성이라는 점에 그 의의를 가지고 있다.
결국 민중신학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살아 운동하는 민중 현장과 거기에 대한 다양하고 진지한 신학외적 접근이 있었기 때문이다.
Ⅲ. 민중 구원의 실상
1. 민중과 그 구원의 의미
1) 누가 민중인가?
일반적으로 ‘민중’이라고 하면 정치적으로 억눌리고 경제적으로 빼앗기고 사회적으로 천대받으며 문화적으로 제쳐지고 종교적으로 밀려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탈주체화(脫主體化)된 소외 계층 전체를 일컫는다는 데는 다 동의한다. 이처럼 민중을 ‘소외 계층’으로 규정하지만, 그 소외성은 유동성을 띤 것이기 때문에 민중신학자들을 대체로 이것을 열어두고(안병무), 민중은 민중 스스로에 의해서 규정되기를 바란다(김용복).
민중3)의 기본스런 특징은 ‘피압박 ․ 소외 계층’이라는데 있다. “민중이란 일차적으로 지배자에 대해서 피지배자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 계층을 양분하는 단순성에 대한 비판이 따르지만, 어쨌든 분명한 것은 민중신학에서는 피억압 ․ 소외 계층으로서의 민중 편에 서서 그들의 구원을 일차적으로 묻는다는 사실이다.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민중신학의 사상은 서남동의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의 메시아성으로 표출된다. 그에 따르면 역사를 담당할 주체 세력, 새 시대를 열 역사의 주역이 민중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땅에 자유와 해방, 정의와 평화를 이룩할 메시아 구실을 하는 것이 민중이라는 사실이다. 민중신학에서는, 사회과학에서 규정한 피지배계층에서조차 소외된 계층으로서의 민중에 주목한다. 철저하게 버려진 계층(outcast)이 민중신학에서 일의적으로 관심하는 ‘민중’이다. 예수는 바로 이 민중에게서 자기동일성을 구했다. 이처럼 철저하게 버려진 “예수의 민중”을 민중의 참 뜻으로 보는 데서 민중신학의 민중은 일반민중론자들의 민중 규정과 결정적인 차이를 갖는다.
민중 개념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버림받음’이란 말에 대해서 민중은 버린다고 버려지고 짓밟는다고 짓밟혀지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계층 의식이 빚기 쉬운 민중 경시의 위험 요소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민중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예수가 민중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도 일체 하지 않았고, 반면에 지배 계층에 대해서는 혹평했는데, 이것은 민중 이해의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2) 민중 구원의 의미
민중이 피지배 ․ 소외 계층을 뜻한다면, 민중의 구원이란 민중이 지배 계층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소외를 극복함으로써 인간화를 실현하는 일이다. 따라서 민중의 구원은 민중의 자유와 해방을 의미한다. 안병무 역시 구원이란 말뜻을 ‘해방’으로 규정하고 그것을 “비인간화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안병무는 민중을 억압하고 소외시키는 실체를 ‘구조악’으로 특징짓는다. 억압의 체제가 악의 실체라는 것이다. 죄로부터의 구원이란 악한 체제에서의 해방으로 풀이된다. 군주 체제의 구조악이 민중을 억누르고 짓밟는 현실을 낳는데, 이것이 다름 아닌 ‘죄’이다. 서남동은 죄는 지배자가 그 지배에 거역하는 사람들에게 붙이는 ‘딱지’이고 한갓 지배자의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라서 ‘죄인’이란 억울하게 ‘범죄를 당한’ 사람을 의미한다. 민중은 죄인이 아니라 죄인으로 몰렸을 뿐이다. 진정한 죄인은 민중을 억누름으로써 비인간화의 길로 치닫는 지배자들이다.
구조악의 기원과 표출에 대해서 안병무는 그것을 “공(公)의 사유화”에서 찾고 있다. 구조악도 따지고 보면 “공의 사유화4)”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민중의 해방은 구조악에서 벗어나는 것, 곧 공의 사유화를 정당화하는 체제를 타파하는데 있다.
‘공의 사유화’에 대한 안병무의 거부는 ‘평등’이라는 민중 구원의 큰 원칙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크게 평가되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민중 구원이란 민중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일체의 체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이고, 나아가 민중들이 평등한 사회를 이루어 인간화의 세계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민중구원의 실현 – 그 주체와 방법
민중 구원을 실현하고 성취하는 주체는 민중 자신이다. 또한 민중신학은, 진정으로 구원을 얻어야 할 대상은 민중이 아니라 지배자들이라고 선언한다. 죄를 ‘소외’나 ‘비안간화’라고 규정할 때 그 죄를 저지른 자들은 지배자들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지배자들이라면, 구원받아야 할 대상도 지배자들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이것은 특히 안병무의 민중신학에서 강조된 구원 대상의 전도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은 지배자들의 구원이며,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무서운 죄에서 해방된다면 민중의 해방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구원받아야할 쪽은 민중이 아니라 지배 계층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제 지배 계층은 참으로 뉘우쳐 전향(회개)함으로써 민중 해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자신들의 구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배자들이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도록 민중 쪽에서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지배 계층과의 싸움을 불가피하게 한다. 그러나 이 싸움은 지배 계층의 파멸이 아니라, 그들의 구원이 목적이다. 민중을 억누르고 짓밟는 ‘죄’에서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구원받을 쪽이 지배 계층이라는 주장은 민중의 투쟁을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화시키는 것이 된다.
예수가 자신을 민중과 동일시했다는 민중신학의 주장은, 예수를 본(paradigm)으로 삼아 민중이 민중 구원의 주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예수는 민중해방운동을 벌이다가 마침내 그 때문에 권력자에 의해 살해되었다. 예수가 자신을 민중과 동일시했을 뿐 아니라 민중해방운동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했다는 이 사실은 곧 민중운동의 주체가 민중 자신임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예수를 민중의 전형으로 삼을 때, 안병무에 따르면 나사렛 예수는 어느 메시아상과도 맞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맞지 않는 것이 그의 처참한 ‘죽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의 대속론적인 그리스도성은 와해된다. 민중신학에서는 법적-제의적 사고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것은 민중이 대속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중의 구원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민중 스스로가 성취할 따름이다. 그리고 민중은 저항과 혁명이라는 것을 통해서 자신들의 해방을 성취한다. 여기에 대한 전거는 물론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사건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민중해방을 실현하는 방법을 암시한다. 예수는 민중해방운동을 펴다가 마침내 십자가 형틀에서 처형당했다. 그의 ‘죽임’은 민중해방운동을 위해서 겪게 마련인 민중들의 고난을 반영한다.
사실상 민중의 수난은 당하기만 하는 수난은 아니다. 그것은 무서운 저항으로 이어진다. 수난 자체가 하나의 무서운 저항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의 민중들은 예수의 ‘죽임당함’에서 수난만을 보지 않고, 세계의 변혁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안병무는 억압의 종식을 민중이 당하고 맞서는 수난의 양면성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다.
이 수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역설로 이어진다. 그것은 ‘부활’이다. 부활의 본뜻은 ‘일어난다’에 있는데, 그 중의 중요한 뜻은 정치적인 봉기이다. 안병무의 말을 빌면 “저들은 예수의 죽음에서 자기들의 죽음을 경험했고, 그의 아픔이 자기들의 아픔임을 경험”함으로 각성케 괴어 실의와 좌절을 딛고 일어나 봉기했을 것이다.
결국 민중신학은, 민중 구원ㅡ해방이 각성된 민중 스스로의 수난과 죽음을 통한 저항과 봉기, 혁명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곧 민중 해방의 실현 방법은 ‘싸우는 것’ 밖에 없다는 혁명론을 민중신학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중 해방을 위해서는 구조악을 척결해야 하기 때문에 체제를 전제로 한 개혁보다는 체제의 변혁을 꾀하는 혁명 쪽을 택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혁명은 무력적 혁명일 수는 없다. 민중신학이 말하는 혁명은 비폭력적 투쟁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민중이 자신들의 해방을 쟁취하기 위해서 구사하는 ‘폭력’과 구별되어야 한다. 지배를 위한 폭력과 해방을 향한 ‘힘’이 같은 수는 없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삼갈 수밖에 없다.
민중 항쟁이 민중의 ‘한풀이’나 보복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복의 악순환을 끊는 것, 권력 쟁탈의 악순환을 끊는 것, 그래서 인간화가 실현된 ‘민중의 나라’를 실현하는 데에만 매진하는 것이 한과 단의 변증법이 제시하는 길이다.
3. 민중 해방의 세계
민중 해방의 싸움은 그 말 그대로 민중이 해방된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민중이 해방된 세계는 ‘민중의 나라’이며, ‘하느님의 나라5)’이다. 그것은 자유와 정의, 평등과 평화가 실현된 세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하느님 나라의 현실성을 강조한 민중신학은 하느님의 나라를 하느님 나라 운동과 분리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나라는 극단적으로 말해서 민중의 해방운동 안에 실재한다.
하느님의 나라의 현실화의 모습에 대해 안병무는 하느님의 나라를 물(物)이 공동으로 분배되는 ‘나눔의 질서’라고 일컫는다. 이른바 ‘밥상 공동체6)’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나눔의 공동체는 나눔을 방해하는 실체와 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눔의 공동체는 ‘싸움의 공동체’가 된다.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교회는 민중운동을 일으키는 이 민중 공동체 곧 바닥 공동체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교회적 실재이다.
굶주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세계, 목마른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세계, 병든 사람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세계, 감옥에 갇힌 사람이 풀려날 수 있는 세계, 이것이 물질적인 현실로서의 하느님의 나라라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민중신학에서는 하느님의 나라의 추상화나 정신화를 거부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에서는 이처럼 하느님 나라가 역사의 현장에서 구체적인(물화된) 상(像)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실재로서의 이상적 형태도 배제하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는 상 이상의 상이기 때문이다.
Ⅳ. 민중신학의 앞으로의 과제
민중신학의 중심 주제인 민중구원론은 민중의 해방운동에 근거해 있고 또 그것을 지시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민중구원론이 민중운동의 발전과 심화에 따라 그 틀과 속을 수정, 보완, 발전시켜 나갈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안병무가 제시한 민중신학의 과제, 곧 “성서에 나타난 민중 해방 전통과 오늘도 계속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의 민중 해방을 어떻게 연관시킬 것”인가 하는 것은 민중신학이 기본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과제이다.
민중신학은 단순히 하느님의 나라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를 하느님의 나라로 변혁시키는데 본뜻이 있다. 따라서 민중신학은 한국민중운동의 흐름에 더욱 밀착하여 그 흐름을 주목하고 지지하고 또 비판해야 하며 거기서 제기되는 현안들을 자신의 구체적인 과제로 받아 씨름해 나가야 할 것이다.
Ⅴ. 웨슬리와 감리교회의 사회 개혁
웨슬리의 목회는 사회의 여러 측면에서 복음과 삶, 그리고 개인적 경건과 사회적 경건을 결합시키는 목회였다. 웨슬리는 수많은 사회사업을 통하여 사회 개혁과 사회적 성결을 추구하였다.
첫째로 웨슬리는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하여 감리교인들로 하여금 주례적인 모금운동을 하게 하였다. 모금된 금액은 세심한 논의를 거쳐 필요한 이들에게 배분되었다. 감리교회는 구제기금으로 가난하고 재난을 만난 사람들을 책임지고 돕는 것을 감리교회의 중요한 선교 사업으로 생각하였다.
둘째로 웨슬리는 대여금고(lending stock)를 설립하여 가나나한 자들과 형편이 어려운 자들에게 무이자로 빌려주어 고리대금업자들에게 가는 것을 막고, 고리대금업자들의 횡포에 의해 감옥에 가는 것을 막았다.
셋째로 할 수 있는 한 나누고 베풀라는 웨슬리의 복음적 가르침은 감리교인들로 하여금 형편이 어려운 자들을 위해 처소를 마련하여 그들을 보호하고 돕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였다. 감리교회는 고아와 어린이뿐만 아니라 과부와 노인들을 위한 집, 그리고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숙소와 식사를 겸한 안식처인 “나그네 동무회”(The Strangers’ Friendly Society)를 설립하여 집 없는 사람들과 곤궁에 처한 산업노동자들의 안식처가 되게 하였다.
넷째로 웨슬리는 가난하여 의료적 혜택을 보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1747년에 『원초적인 약품: 질병치료의 쉽고 자연적인 방법』(Primitive Physic: An Easy and Natural Method of Curing Most Diseases)을 출판하여 243종의 다양한 종류의 질병에 대하여 모두 725가지의 치료법과 약을 소개하였다. 또한 의사, 약제사, 약국의 협조를 얻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진료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웨슬리는 의료팀을 조직하여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브리스톨 광산촌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약을 주었다. 무상 의료활동은 영국 역사상 웨슬 리가 처음으로 실천한 운동이었다.
다섯 번째로 웨슬리는 옥스퍼드대학 시절부터 신성클럽을 조직하여 정기적으로 교도소를 방문하여 그들에게 설교하고, 상담하고,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억울한 재판을 위하여 변호사를 중재했고, 직업을 알선했고, 경제적으로도 지원했다. 이를 위하여 좋은 옷과 음식을 자제하고 금식까지 하였다. 웨슬리는 여러 신문과 단행본을 통하여 지옥과 같이 어둡고, 불결한 교도소들의 환경을 개선할 것을 촉구했고, 교도소의 생활이 오히려 범죄를 배우는 생활이 되고 있음을 경고하였으며, 긴 재판과정과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에 대한 불공평한 재판처리에 항의 하였다.
여섯 번째로 웨슬리는 1739년 킹스우드에 가난한 광부들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교사와 목사 또는 유능한 평신도들로 하여금 읽기, 쓰기, 계산법 및 기독교 신앙에 대한 수업을 하게 하였다. 웨슬리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활동의 동기는 먼저 예수가 명하신 계명들을 실천하려는데 있고, 또 다른 동기는 더 높은 목표, 즉 영혼 구원을 위하여 노력함으로 자신의 구원의 행복에 도달하려는데 있었다.
마지막으로 웨슬리는 당시의 인권과 노예제도에 관심을 갖고, 노예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와 학대 또는 폭행의 부당성을 과감하게 주장하고, 1770년부터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노력하였다. 웨슬리는 노예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입장 표명이나 또는 노예해방을 위한 기도와 금식을 요구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반노예제도 운동에 참여하여 국회에서 반노예제도 운동을 관철시키려고 시도하였다. 또한 웨슬리는 여성들을 교회 지도자로서 봉사하도록 하여 여권신장(女權伸張)에 기여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이웃과 사회가 교회에 대하여 냉소적, 비판적, 부정적, 공격적 태도를 보이는 것은 교회가 개혁의 길을 가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오늘날 자신의 교회만을 살찌우려는 교회는 웨슬리 신학에 의거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성화만을 위하여 뛰는 것에서 돌이켜 이웃과 사회의 성화를 위해 뛰는 개혁의 길을 가야만 할 것이다.
Ⅵ. 웨슬리와 민중신학 비교
민중신학은 예수를 민중을 위한 지도자로 제한한여 좁은 시각으로 보고 있지만, 웨슬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웃사랑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을 지향한다. 또한 웨슬리는 가난한 자의 범위를 더욱 확대하여 당시에 노예들에게 가해지는 박해와 학대에 반대하여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노력하였다. 또한 여성 지도자들의 대한 필요성을 말하며 민중신학과는 다른 폭넓은 소외 계층의 관심을 기울였다.
Ⅶ. 조원들의 생각
ㅡ 발제를 준비하면서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이 단순히 민중들의 해방이 아니라 진정 구원받아야 할 대상은 피지배자인 민중들이 아닌 죄를 범하고 있는 지배자들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민중들의 구원은 지배자들의 구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 민중들의 구원은 스스로 이루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질문들이 생겼는데, 민중과 예수를 동일시함에서 오는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문제점은 없을까 라는 것과 사람(민중)이 사람(지배자)를 구원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 그리고 자신이 구원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이루어 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해보게 되었다. 또한 민중신학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은 초월적 세계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민중신학에서 초월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ㅡ 역사적 상황 속에서 민중신학이 생겨나고 발전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환경이나 사건,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나의 위치는 계속해서 바뀔 수 있다. 내가 민중이 될 수도 있고 지배자가 될 수도 있다. 또한 나는 민중이라고 생각하지만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민중이냐 지배자냐, 어느 위치에 속해 있는지가 아니라,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다.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들의 구원 문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면 내가 어느 위치에 있던지 그건 아무 소용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ㅡ 저는 민중신학이 민중이라는 언어에 발목이 잡힌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민중신학이 탁월한 해석학이라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민중이라는 언어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있다고 생각됩니다. 민중신학은 민중사건을 축으로 발전된 신학이기 때문에 애초부터 민중이라는 말에 얽혀있는 신학입니다. 따라서 민중이라는 개념이 모호해지면 민중신학의 정체성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민중신학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민중신학의 탁월한 창조적 해석학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발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만약 민중을 축으로 하면서도 신학의 이름을 달리하였더라면 민중신학은 얼마든지 다양성을 포섭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사람의 이름이 중요하듯이, 사상의 이름은 더욱 중요합니다. 이름은 단순히 수동적 호칭이 아니라 사람을 규정하고 사상을 규정하는 능동적 역할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빈자의 신학이 가난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면, 거지의 신학은 거지만을 대상으로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욕구와 실천이 사회 도처에서 분출하는 오늘날의 다원화사회에서 민중신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개념을 확대하던지, 또는 민중이라는 언어를 버리든지 해야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중신학의 수정 노선이 되든지 아예 민중신학으로 정체되든지 선택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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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남동은 이미 1973년부터 민중신학에 관한 논의를 본격화했고, 그것을 1975년 2월 『기독교사상』에 “예수 ․ 교회사 ․ 한국 교회”라는 주제로서 그 내용을 발표했다. 서남동은 예수의 출현 자체를 “경제적 빈곤, 사회적 ․ 문화적 편견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인간의 해방 작업”으로 해석한다. 예수는 자신을 무조건 민중과 동일시하고 바로 그 민중 해방에서 자기동일성을 구하고 민중 해방 운동을 펴다가 마침내 십자가 형틀에서 살해당했다고 한다.
2) 안병무는 “예수는 민중의 친구로 민중의 편에 섰다가 민중을 위해 쓰러졌다”라는 외침에 이어 그는 한국 교회가 취해야 할 태도를 열거했다. 첫째, 한국 교회는 “민중에 의한, 민중의, 민중을 위한”것이 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교는 민중의 권리를 찾는 사랑의 새 가치관을 형성해야 한다. 셋째, 이 사랑의 민중운동은 연대적 책임 아래 조직화되어야 하고, 거기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넷째, 이 민중운동은 폭력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폭력에 저항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3) 서남동에 따르면 우선 민중은 ‘백성’과 구별된다. 백성은 예속과 복종을 당연시하지만 민중은 주체성을 그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민중은 ‘시민’과 다르다. 시민은 시대에 따라 민중적인 성격을 띠기도 하고 지배자로 군림하기도 한다. 또한 민중이란 프롤레타리아와도 다르다. 민중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노동자에게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중은 대중과도 다르다. 민중은 지식인도 부자도 포함되는 단순한 대중(집단)이 아니라는 것이다.
4) 민중의 것을 지배 계층의 독점물로 삼으려는 것은 구조악의 표상이다. 원래 ‘소외’라는 말은 자기의 것이 남의 것이 되는 ‘타유화’(他有化)를 의미하는데, 오늘날 죄를 ‘소외’로 보려는 해석은 공의 사유화라는 안병무의 착상에서 사회적 의미를 확보하게 된다고 하겠다. 지배자의 자기 신격화라는 교만은 민중의 비인간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5) 민중신학은 초월적인 세계로서의 ‘하느님 나라’에는 크게 관심하지 않는다. 아울러 종말론적인 미래성에도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에 관심한다. 그것은 민중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6) 먹을 것, 입을 것, 곧 모든 소유와 함께 자유와 권리와 생명까지도 같이 나눌 수 있는 ‘나눔의 공동체’가 그것이다. 가진 자는 이 ‘나눔’에 동참해야 한다. 그들의 권력과 소유에서 벗어나 눌린 자와 가난한 자의 해방에 참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해방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나눔의 공동체는 가진 자와 가난한 자, 누른 자와 눌린 자가 다 해방되는 ‘해방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