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순목사 소천(1950-2026)

                                      함석헌 선생 연구자

1950년  충남 논산 출생으로 대전고와 서울대 철학과, 한국신학대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는 다.  이후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장을 하다가 아람회 하건으로 잡혀가 고문문을 당하고 실형을 산다. .  성공회대 겸임교수와 한신대 연구교수를 거쳐 씨알사상연구소 소장과 씨알재단 상임이사를 지냈다. 가족으로는 이화여대 박경미 교수가 부인이시며 외동 딸로 박예람이 있다.  청년 시절 ‘풀무원’ 원경선 선생등이 설립한 ‘한국정농회’ 가 주최한 수련회에 참여하여 원선생님의 생명 평화사상 겅의에 큰 감동과 도전을 받기도 한다. 네 살 때 전신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평생을 장애를 갖고 살았다. 그러나 이런 장애에도 불구하고 박 목사는 “쓰러질 때 일어나는 것은 인생의 진리이면서 성경의 진리이기도 하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다. 부활은 일어섬이다.” 으로 고백하며 모든 것을 감사로 받아드렸다.  

 

젊은 시절 대전 충남지역에서 한울회라는 기독교 교양 독서 모임의 리더로 큰 곤욕을 치뤘다. 공안당국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했다며 1981년 3월경 불법 연행과 고문 수사로 충남 지역 기독교 지성인들중 교사, 대학생, 청년 신학도 등 6명이 기소됐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실형 또는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됐다. 

박재순은 안창호, 유영모(1890~1981), 함석헌 세 사람을 별개의 인물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 생명철학의 흐름으로 읽어냈다. 다산 정약용과 천주교의 만남에서 시작해 박지원, 박규수, 안창호를 거쳐 유영모와 함석헌에 이르러 완성되는 씨알사상의 역사를, 그는 ‘두물머리’라는 비유로 즐겨 설명했다. 서로 다른 물줄기가 만나 하나의 큰 강을 이루듯, 조선 후기 실학과 개화사상과 독립운동이 마침내 씨알사상이라는 하나의 생명철학으로 합류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저서로 『다석 유영모의 철학과 사상』, 『함석헌의 철학과 사상』, 『삼일운동의 정신과 철학』, 『애기애타: 안창호의 삶과 사상』, 『도산철학과 씨알철학』, 『함석헌 씨알사상』 등을 남겼다. 

 

그는 책상물림 학자가 아니었다. 2008년 세계철학자대회에서 필자와 함께 유영모·함석헌 철학 발표회를, 2009년 한일철학포럼에서 씨알철학과 공공철학의 대화를 직접 조직해, 씨알사상을 세계 철학의 언어로 옮기려 애썼다.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전광훈류의 기복신앙과 샤머니즘에 빠진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며, 도산·다석·함석헌이야말로 이를 극복하고 청산한 “민주적, 과학적이며 깊은 도덕과 영성을 지닌” 생명철학자였다고 전병생목사는 남겼다.

 

 

 

 1978년 단체 기념사진 앞줄 세 번째 이충근, 네 번째, 홍응표 목사, 일곱번째, 박재순 목사(노란 색) 둘째 줄 왼쪽 첫 번, 이규호 씨, 오른쪽 끝이 이건종 목사. 맨 뒷줄 왼쪽, 김종생 목사, 네 번째, 임세영 한국과학기술교육대학교 명예교수. [한울모임 편집위원회 제공)

젊은 시절 대전 충남지역에서 한울회라는 기독교 교양 독서 모임의 리더로 큰 곤욕을 치뤘다. 공안당국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했다며 1981년 3월경 불법 연행과 고문 수사로 충남 지역 기독교 지성인들중 교사, 대학생, 청년 신학도 등 6명이 기소됐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실형 또는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나 사건 발생 42년여가 지난 2025년 12월 진실화해위는 조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 폭행, 고문, 가혹행위, 진술 강요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하고서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을 권고했다. 피고인들은 올해 2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재심 개시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 이들은 43년간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는 멍에를 벗지 못했다.

박재순 목사는 어려서 부터 소아마비 증세로 아람회사건에서도 석방될 수 있음에도 청년 학생들만 놓고 나올 수 없어 함께 재판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그 사건 여파로 박 목사는 부인과 독일로 신학공부을 하려고 입학 허가와 장학금까지 받았으나 이 사건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한신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공안 사범으로 낙인이 찍힌 탓에 제대로 된 자리에 정착하지 못하고 강사로 전전했다.

진보 신학자들 가장 국내파로  학구적이며 진지하고 서민적인 분이라는 평이다. 평생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현실속에서 깊은 사유와 진지함으로 민중신학으로 시작해 함석헌의 씨앗사상을 연구하신 분이다. 많은 분들로 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은 학자시다.   

2007년 창립된 재단법인 씨알을 통하여 유영모와 함석헌의 생명평화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연구를 이어갔다. 박재순 박사는 창비가 제작하는 한국사상가 30인중 함석헌을 집필했는 데 마지막 유작이라고 한다.  기독교인으로는 함석헌선생,  유영모선생, 김재준 목사가 유일하다고 한다. 고인의 장례예식은 성북교회가 주관한다. 

한겨례 기자로 ‘휴심정’ 이라는 유투브를 운영하는 조 현 기자 영상 좌담 
*  박재순 목사 한울회 사건 |  YouTube

 

다음은 박재순 박사 제자 유정현의 공개 추모 글입니다. 

[박재순 선생님 나의 선생님]

-하늘에서 처럼 땅에서도

그 곱던 하늘 빛도 다만 슬픈 아침입니다.  오늘 문득 찾아온 이 이별의 황망함을 어떻게 다 담아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모진 진눈깨비 같은 시련 속에서도 현미경처럼 예리한 지성과 어머니처럼 따스한 품으로 시대의 양심을 꼿꼿이 지켜주셨던 우리 선생님. 이제 그 영원한 안식의 품으로 선생님을 보내드려야 하는 이 길이 너무나 막막하여 당혹스럽기만한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1950년에 이 땅에 오셔서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깊은 사유의 뿌리를 내리시고 우리 한신대학교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으시며 한국적 토양 위에 진리의 거대한 탑을 쌓아 올리셨지요. 한신대 연구교수와 성공회대 겸임교수로서 수많은 후학들을 포근히 품어 안아 학문의 길을 밝혀주셨던 선생님. 그럴 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의 험난한 현장마다 묵묵히 동행하시며 시대의 아픔에 결코 눈 감지 않으셨던 그 거룩한 ‘행동하는 지식인’의 길을 저는 오늘까지 몸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네 살 때 앓으신 소아마비로 평생 육신의 무거운 짐과 연약함을 지고 살아가셨지만 선생님께서는 그 육신의 한계를 도리어 찬란한 부활의 의지와 불굴의 영혼으로 승화시키셨습니다.  “넘어지면 아프고 부끄러워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시며 저와 우리에게 건네주시던 그 투박하지만 단단했던 삶의 발걸음은 제 영혼을 깨우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었습니다. 선생님으로 인해 늦둥이 신학생이던 저는 A. 애들러를 더 살갑고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요.

특히 서양 신학의 틀과 외세의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던 관행에서 벗어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주체적 자아 각성과 개조 정신 그리고 다석 유영모 선생님의 깊은 얼, 더하여 함석헌 선생님의 씨알사상을 하나의 거대한 줄기로 꿰어내시며 우리 겨레의 토착적인 ‘생명·씨알 철학’의 위대한 계보를 묵묵히 다져오셨지요. 재단법인 씨알의 상임이사이자 씨알사상 연구회 초대 회장으로서 그 고매한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생명 평화 운동의 바다로 꽃피워내신 그 발자취는 제 가슴속에 영원히 지지 않는 별빛으로 남을 것입니다.

선생님 나의 선생님
이제 육신의 모든 무거운 짐과 아픔은 이 세상에 다 내려놓으시고 평생토록 온 마음으로 흠모하고 닮고자 하셨던 그 영원한 생명의 품에서 이제는 평안히 영면하소서.

우리가 딛고 선 이 황무지 같은 세상에 씨알의 고귀한 생명과 평화의 정신을 한 알의 밀알처럼 깊이 심어주신 그 크나큰 가르침 이제 슬픔을 거두고 가슴 깊이 새기며 제자로서 그 거룩한 길을 조용히 또 묵묵히 걸어가 보겠습니다.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지금 더욱 선생님의 가르침과 숨결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냥 계시기만 해도 든든한 버팀목이요 비빌 언덕이었던 선생님. 부디 꿈결에서라도 가끔 제가 가야 할 길을 문득 가르쳐 주십시오. 아!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은 그저 눈물 바람뿐인 것을….

선생님 모쪼록 모든 고통 없는 그곳에서 따스한 바람처럼 영원한 평안과 안식을 누리시기를 두 손 모아 빕니다.

(고 고재식 선생님 가시는 길에 우리가 드렸던 ‘목포의 눈물’을 발칙하게 나눕니다.)

못난 유정현 올림

 

배우자/ 박경미, 딸/ 박예람

임종일/ 2026년 09월 20일(일) 17시 34분

입관일/ 2026년 09월 21일(월) 18시 00분

발인일/ 2026년 09월 22일(화) 10시 00분

장례식/ 신촌세브란스병원장례식장 8호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후 모실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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