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운목사의 ‘비하인드 스토리’ 책으로

                        지난 50년의 사역 회고

‘비하인드’ 라는 의미는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로 실제 일어난 일이지만 공개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전주 효자동교회서 은퇴하신 백남운 목사의 숨은 50년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PCK 교단에  목사가 수도 없이 많고 그중 목회적으로나 세상적으로 이름이 난 분들이 없지 않치만 전북 전주를 대표하는 인물로는 가장 첫번째로 꼽힌다. 그렇다고 해서 백남운목사가 큰 교회를 이루고 명설교가나 교권정치로 이름을 내고 명예을 얻은 분은 아니다. 

백목사는 얼핏 보기에는 작고 말 없는 평범한 분으로 보이지만 그 내공이나 경륜은 만만치 않은 분이다. 이런 고백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 지난  1월 11일(주) 11시 전북 전주 인선협회관에서 공개했다.  책의 출판 기념 모임을 좀 알리고 하자는 지인들의 권유를 물리고  외부인은 참가할 수 없게 주일 11시로 한 것도 백목사 스타일이다. 행사 이름은  ‘ 백남운목사 목회 50주년 기념 비하인드스토리 출판감사예배’ 다.

이 날 사회는 이옥희선교사가 설교는 채규방목사, 서평은 허종현신부, 축사에 정동영집사, 축도는 김동건목사가 하셨다. 그리고 국회와 통일부 장관 일정으로 바빠 참석이 불투명했던 정동영집사도 어렵게 시간을 내서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고 한다. 그외 교인들위주로 조촐하게 지냈는 데 좀 섭섭한 감이 있어 기사화를 통하여 역사에 남기고자 한다. 

우리교단에는 지방노회에 현존하는  인권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하고 예장목회자운동에도 참여한 귀한 선배들이 많이 계시다. 백남운목사는   전북지역을 대표하는 분으로 목회자운동가들에게는 유명하다. 1980년대 우리교단은  당시 사회 한면을 장식한  뉴스의 주역으로  도시산업선교가 있다.  영등포산선에서의 조지송 인명진목사의 활동과 이전 신상길목사나 경서노회 구미산선의 고애신전도사, 부산의 박광선목사, 연제흠목사, 울산의 윤응오목사 이권석목사등이 계셨다. 영등포산선처럼 크게 이름을 내거나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으나 나름 수고를 한 분들이다.  
대학 때 박정희 군사정권의 희생자
 
백남운 목사는 이 시대 정치적 격변기인 70년대 초 학번으로 전북대  4학년 재학중  위수령반대로 강제징집을 당한 다. 제대후 사명을 갖고 장신대 입학해 첫 목회지로 북아현교회 전도사와 새문안교회가 구로지역에 세운 교회에서 노동자 야학의 지도자였다. 그 때 새문안대학부 출신의 서경석목사나 이근복 목사등과 관계를 갖는 다. 이후 전주에서 목회의 전생애를 보내지만 누구보다도 교단이나 서울 정서를 가장 잘아는 선배중 한 분으로 어려울 때 마다 이름과 마음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 때 우리교단 전도부 안에 세워진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대구 김상해목사, 목포의 임서현목사 광주 이경석목사 한철완목사, 진주의 박창재 목사 등이 계셨다. 그중 지금까지 명망을 이어가는 곳은 전북 인선협인데 그 중심에 백남운목사가 계시다. 물론 전주에는 더 선배로 완산교회 염용택목사, 전성교회 정복량목사(전총회장), 중부교회 김동건목사등이 계시지만 그 분들에 비하여 더 앞장서서 활동을 하신 분이다. 
 
사실 백목사님을 아시는 분들은 이 분이 이런 활동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말이 없으신 분이다. 나도 백목사님을 많이 뵙고 이런저런 일로 관계를 했음에도 이번에 처음 듣는 얘기들이 많았다. 그만큼 입이 무겁고 엉뚱한 데가 있으신 분이다. 한 예로 군대 시절 나온 이야기는 정말 정신이 나가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언행들로 살아 제대해온 것이 기적이다. 그런데 백목사는 아무렇치도 않게 기도하고 응답 받는 대로 했다는 고백이다.
 
생애와 목회 입문
백목사는 전주서 달동네라는 빈곤한곳에서 태여나 여려서 부터 교회를 나간다. 그리고 고교 졸업후 중앙대 약대를 들어가려다가 실패하고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장로에게 은혜받고 완산교회를 다니며 전북대 농대로 입학한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가난한 것은 농촌이나 농민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라는 의식을 갖는 다. 학생시절엔 흥사단 활동을 하면서 기독학생활동을 하는 데 4학년 졸업 즈음하여 박정희의 위수령을 맞는 다.
 
이에 반대한 전국 대학생 173명이 제적을 당할 때 같이 당하여 강제입영한다. 그러나 혼자서 이를 저항하며 사법제기를 하려고 하자 청와대까지 보고되 훗날 없던 일이 된다.  재대 말년에는  청소년기의 사명을 회고하면서 신학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장신대에 입학한다. 29세에 북아현교회(안광국목사)서의 교육 전도사를 시작으로 남양만 이화리 교회와 새문안이 개척한 구로공단의 우리교회를 거쳐 제주 화북교회서 3년을 사역한다. 그리고 전주 효자동교회로 부임하여 35년간 목회후 은퇴했다.
 
효자동교회 부임시 교회 결산이 2,700만원이었는 데 건축을 시작하지만 분위기는 냉냉했다. 1987년 기공예배는 기전여고 교목으로 부임한 최준만 목사만 왔다고 한다. 건축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무일푼으로 시작해 기도하면서 온 교회가 힘을 합쳐 기적적으로 완공을 한다. 그러자 주변에 현대, 롯데 아파트가 신축되고 인구가 늘면서 교회는 비약적 성장을 이룬다. 몇 년 안되여 부채를 다 해결하고 적립금이 4억이 될 정도였으니 얼마나 부흥이 되었는 지 가늠할 수 있다.
 
                      * 교인인 정동영 장관의 축사
 
은퇴시의 섭섭함도 잊고 
 
이어 교육관과 청소년 문화관까지 짓고 지역적으로 눈을 돌려 유종근, 강현욱도지사, 김완주, 송화진 전주 시장과 함께 전북 전주발전을 위해 뛴다 교회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지역사회 에 큰 족적을 남긴다. 그러나 2018년 은퇴를 앞두고 예우문제를 다루는 제직회서 예기치 못할 사건이 일어났다 한 장로가 “ 백목사님은 돈이 많으니 은퇴 후 예우는 안해도 된다” 는 내용이다. 새만금간척 찬성으로 5억, 청소년 문화관 지으면서 리베이트로 2억, 한일장신대 100억대 상수도 공사 댓가로 2-3%을 받았다고 발언한다.
 
그러면서 한일장신대 교수 3분이 우리교회 나오시니 물어보시면 압니다. 하는 것이었다. 백목사는 하도 어이가 없어 ”나는 단 한푼도 받은 일이 없다“ 고 해도 교인들은 믿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런 발언을 교수조차도 믿었으니 실망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구차하게 변명이나 구걸을 하지 않기로 하고 원로목사 예우나 전별금 없이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떠나자는 사모의 권유로 그렇게 한다. 
                                                                                * 백목사와 조현형사모

백목사 사모 조현영의 부친은 장수 출신 조준현장로로 전주고를 나와 공무원도 지내고 여행사를 운영해 재력이 있는 분이다. 1958년 완산교회 장로가 되시고 장모 유국출권사도 한일장신 전신 한예정을 나와 교회 반주까지 한 신여성이다. 형제 자매가 5남 5녀로 처제중 한일장신대 조현애교수는 백목사 에게 극진히 했는 데 대학원 학비로 400만원을 준다 그러나 백목사는 이를 무명으로 건축헌금을 했더니 돈이 무척많은 줄 오해를 한 것이다. 또 언니 생활비로 드린 것도 그랜드 피아노가 필요해 헌납하니 들리는 말은 건축비 빼돌린 것으로 둔갑했다.
 
원로목사도 되지 못하고 예우도 받지 못한 체 섭섭하게는 은퇴를 했으나 은퇴한지 5년이 지나 효자동교회로 부터 행사 초청이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혹시 교인중 누구와 다투기라고 한다면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다 잊고 하나님께 맡기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반가워 하는 교인들을 보면서 지난 섭섭함을 모두 잊었다는 소회다. 
 
백목사의 가족으로는 조현영 사모 사이 에서 남매를 두웠는 데 아들 백영기목사는 장신대 졸업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공부하고 목사안수는 미주한인장로회에서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 (D.min)을 받고  귀국후 후 한소망교회와 치유하는 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광주의 대형교회로 부임했다 그러나 몇년 전  뜻한 바 있어 교인들과 나와 광주에 하길교회를 개척하여 목회중인데 이북노회 소속이다.
                        
전북 인권선교와 운동권 기여
 
백목사가 교회 이외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드린 곳은 지역 인권운동으로 전북인권선교협의회다. 전북이나 전주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이 인권위원회로 왔다 예수병원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새만금 매립도 그렇고 백남운목사와 인권운동을 떼려야 떌 수 없는 관계다. 효자동교회와 아쉬운 이별을 한 후 어디 나갈 교회가 마땅찮을 때에 마침 인선협이 사무실을 구입한 때였다. 그러자 총무인 이광익목사등이 백목사님 여기서 예배드리시지요 하여 생각한 끝에 인선협교회로 하여 지금까지 예배를 드린다.
 
많이는 모이지 않치만 천주교였던 정동영의원이 와신상담중 출석하게 되고 지난 총선에서 의회에 진입하고 통일부 장관이 된 후에도 열심히 부부가 출석하는 중이다. 또  서거석 직전 교육감도 출석을 하다가 출마로 잠시 옮기기는 하였으나 정신이나 마음으로는 인선협교회와 함께 하는 분이다.  백목사는 교회서 일절 사례는 받지 않고  헌금은 선교비로 나누고 있다. 한일장신대 복지과를 졸업하고 동문이 되고 100주년 기념사업과 총동문회장도 역임했는 데  또 고 김용복 총장에 대한 지우기로 외면되었지만 복권운동에도 힘써 사후 3주기 행사에 채은하 총장등이 나서  한일장신대서 종합대학 승격후 초대 총장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그 외에도 기전학교 이전이나 전통시장 살리기, 전주시 기독교 성지화에도 초석을 놓았다. 그리고 전주지역 기독교역사유물을 보관하기 위한 것으로 땅을 확보한 것으로 지난 해 동신교회서 은퇴한 신정호 전총회장이 전주기독교근대역사기념관 제2대 관장 취임한 바 있다. 또 무주 국제 태권도공원유지, 전주 성폭력예방치료센타와 상담소 건립,장기수 김광수와 문병천목사 후원은 정말로 처음 듣는 이야기다. 문목사는 장기수에서 나중에 연세대서 신학공부를 하고 장신대까지 나와 안수를 받고 담안선교를 했는 데 백목사가 새벽교회 이승영목사에게 소개해 돕도록 한 것은 처음 듣는 비하인드 스토리다. 
 
또 유신하 긴급조치 시절에 단양교회 부흥회 설교중 구속된 고 고영근목사에 대한 총회적 기피로 서노회 전도목사에서 해임이 되 무임 처지가 된다. 부흥회도 끈기고 어려게 되자 전북지역 선배들을 설득하여 전북노회 전도목사로 청빙하고 매달 생활비로 150만원을 10여년간 드린다. 이 귀한 일의 참여는 백목사의 노력으로  완산, 중부, 성암, 효자동, 신일교회가 했다고 기록으로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교단 정년인 70세로 은퇴하신 후 더 이어지지 못한 것을 무척 미안해 하신다. 그러나 장례에 참석하자 사모님은 꼭 백목사께 기별하라고 하셨다고 하면서 인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홍성현목사님을 한일장신대 교수로 모시기로 하고 경비도 다 마련했지만 내부 반대로 이뤄지지 못한 일이나 효자동교회로 출석하던 한일장신교수로 오해를 하고 백목사를 섭섭하게 했던 분이 총장이 되고 사과받고 화해를 한 일이나 총장으로 어려울 때에 도운 일은 필자도 직접 관여하여는 잘아는 바다. 또 예수병원이 한 때 총회 산하기관이 아닌 유관기관화 하려는 것을 중부교회 박종숙목사, 이광익목사등과 함께  정관상으로 못박아 총회 산하기관으로 하게 한 것도 큰 업적중에 하나다.
 
필자도 전주에 갈 일이 있으면 항상 연락을 드리고 대접을 받는 데 이제 나이드시고 후배들도 성장하고 지역의 리더들이 되기 과거 백목사님을 중심으로 모여 오순도순하게 지내던 일은 옛일이 된 듯하다. 이 모두 성장의 진통으로 한시대 겪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그러나 백목사님은 천상 목회자로 누구와 다투고 목소리를 높이는 분은 아니다. 그런데 소망교회서 교단 총회가 열릴 때 NCCK 탈퇴 안건이 나오자 혼자 일어서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발언을 한 유일한 분이다.

당시를 상기하면 백남운 목사(전주 효자동교회)는 “WCC 탈퇴를 위한 연구위원회는 우리 교단의 정체성과 역사성에 대한 손상”이라며 “연구 대신 이 안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한철완 목사(광주노회)도  “WCC 때문에 1959년 예장합동과 갈라섰다면서 WCC를 연구하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이어 “일개 교인들이 제기하는 문제이고 이에  총회가 압력을 받아 안건이 된 것” 이라며 “신학교 교수들과 총회 임원회가 적극적으로 WCC 홍보 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백남운목사 약력(1947-)
 
전북대, 장신대,샌프란시스코(SFTS), KSCF 이사장,전주 노회장 역임, 전북지역사회선교연합 상임의장,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전국의장, 기독교사회운동연합 전국공동의장, 전북기독교사회운동연합 상임의장, 전북기독교성시화추진위원회 이사장, 전북전통시장활성화운동본부 이사장, 아리울내부개발완공추진협의회 대표이사, 한일장신대 명예사회복지학박사학위를 받았다.
                                                                                          * 한일장신대 오덕호 총장이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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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뉴스 편집자 계정입니다

댓글 (2개)

  1. 안동 이천우 목사

    사랑사는 내친구 백남운 목사님이 보내준 비하인드 스토리를 엇그제 받고 지금 131page까지 읽고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습다.
    장신 뉴스 유재무 목사님의 백 목사님에 관한comment를 읽으니 눈물이 납니다.
    백목사님 참 장합니다.
    50년 세월 고생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가면 사랑하는 내 종아 수고 많이 했다고 하실겄입니다.
    명예도
    감투도
    권세도
    부귀영화도 아닙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수고한것 수고 맗이 한것 그것 만이 자랑이 될겄이니다.(롬16장)

  2. 유병곤목사,

    오늘 다 읽었습니다, 유병곤드림.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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