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가 남긴 것

                              버니 샌더스가 남긴 것

   
 

버니 샌더스는 누구인가?(1)

2016 미국(USA) 민주당(Democratic Party) 대선후보 경선에서 민주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버몬트 주)의 풀뿌리 민주주의 돌풍이 매섭게 불어닥치고 있다. 버니 샌더스 돌풍으로 그동안 선두 주자였던 힐러리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버니 샌더스 돌풍의 원인은 미국의 심각한 빈부 격차와 소득 불균형으로 인해 서민, 노동자들의 박탈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버니 샌더스는 ‘미국의 최상위 부자 15명이 지난 2년간 늘어난 재산규모는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 1억3천만명의 재산보다 많다’고 주장하면서, ‘탐욕으로 가득찬 월스트리트의 대형 금융사를 해체하고 소득별 누진 조세제도를 도입해 부자에게 보다 많은 세금을 거두겠다’고 외친다.

버니 샌더스는 소득별 누진 조세제도로 거둔 세금을 오바마 케어보다 더 한층 진전된 ‘모든 이를 위한 의료보험’을 실시하여 의료사각지대를 없애고, 공립대학교 등록금 무료화로 교육의 기회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최저임금을 15달러까지 대폭 인상해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정한 분배에 초점을 맞춘 버니 샌더스의 공약은 미국의 젊은이들과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기득권 세력을 바꾸자는 성난 미국인들의 표심이 버니 샌더스 돌풍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대선후보 경선에서 위협을 느낀 힐러리 클린턴은 버니 샌더스를 공산주의 성향의 좌파로 공격하고 나섰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버니 샌더스에게 ‘빨갱이’, ‘종북좌파’ 딱지를 붙인 것이다. 힐러리의 공격에 대해 버니 샌더스는 ‘초부유층이 아닌 보통사람들을 대변하는 정부를 갖는 것이 바로 민주적 사회주의’라고 반박하고 있다.

1981년 3월4일,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버몬트주의 가장 큰 도시 벌링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무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됐을 때 <유피아이>(UPI) 통신은 기사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고 한다. 버몬트주의 유일한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지금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바짝 뒤쫓고 있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샌더스에 대한 미국 주류 사회의 공포를 이해할 만하다.

1981년은 미국 신자유주의의 원조 격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했던 해이고,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였다. “트로츠키주의자가 벌링턴에 입성했다”거나 “샌더리스타스(Sanderistas)들이 벌링턴을 접수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샌더리스타스’는 1979년 니카라과에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과 샌더스의 이름을 합해 만들어낸 말이다.

샌더스는 4명의 후보가 겨루는 시장 선거에서 10표 차로 가까스로 당선됐다. 아무도 그를 시장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시의회는 그가 몇몇 참모들을 시청 직원으로 채용하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견고한 관료사회는 그의 구상들을 좌절시키려고 시도했다. 벌링턴의 기업인들도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시했다. 그랬던 샌더스가 1981년부터 2년 임기의 시장을 네번이나 연속으로 재직한 뒤 하원의원 8번을 거쳐 상원의원까지 연임하고 있다. 벌링턴 시장 때의 ‘업적’이 그를 전국적 정치인으로 밀어올린 게 틀림없었다. 그가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지난 5월 처음 출정식을 치른 곳도 벌링턴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시장이었을까?

벌링턴은 샌더스가 시장이 되기 전부터 ‘좌파 도시’ 아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광과 싼 물가, 버몬트대학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많고, 1960년대 뉴욕 등에서 반전운동을 벌였던 사람들이 일부 이주해 오기는 했다. 하지만 유권자 분포로 보면 보수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편안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고 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현재로선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해도, 30여년에 이르는 정치 인생을 사회주의자로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 유세 때마다 지지자들이 몰려드는 현상은 흥미롭다. 2008년 금융위기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병폐가 그만큼 깊고, 진정한 변화를 통해 희망을 찾고 싶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뜻일 게다.

한국의 샌더스는? (2)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자 2016 4.13 총선을 앞두고 너도나도 ‘한국의 버니 샌더스’를 자처하는 야권 정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민의당(국민당)의 안철수 공동대표와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바로 그들이다. 안철수와 김종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주의자들이다.

안철수는 자신이 보수주의자임을 스스로 밝힌 바 있다. 김종인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참여한 신군부 부역인물일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의 전신인 전두환의 민주정의당(민정당)과 노태우의 민주자유당(민자당), 더민주당의 전신인 김대중의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김종인은 또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과 새누리당의 국민행복추진위원도 지낸 사람이다.

샌더스 마케팅에 먼저 나선 당은 더민주당이다. 더민주당은 ‘샌더스 돌풍이 바로 경제민주화’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종인도 ‘샌더스가 강조하는 불평등 해소가 바로 경제민주화와 맥을 같이 한다’면서 더민주당의 경제정책 기조인 ‘더불어성장론’에 접목시키겠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샌더스의 분노의 주먹과 안철수의 싸움의 주먹’이라는 글을 올렸다. ‘공정성장’을 주장하는 안철수는 샌더스의 돌풍에 대해 ‘위대한 혁명의 조짐’이라고 하면서 ‘대한민국에서도 불평등한 구조를 바꾸려는 새로운 정치세력에게 분노를 통한 행동으로 참여함으로써 변화가 일어나지 않겠느냐’고 전망하기도 했다.

안철수나 김종인 두 사람 모두 버니 샌더스의 이미지를 차용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중도 제3정당’을 표방한 국민당이나 더민주당은 보수우파 정당이고, 안철수나 김종인도 보수우파 정치인이다. 새누리당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보수우파 정당, 보수우파 정치인은 억만장자, 재벌들에게 정치자금을 받아서 1%의 최상층을 위해 정치 활동을 하는 정당, 정치인이다. 따라서 보수우파 정당, 보수우파 정치인들이 자신을 정치 철학이 전혀 다른 민주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의 이미지로 포장하려는 시도는 어색해 보인다. 안철수, 김종인의 버니 샌더스 운운이 아전인수식 마케팅으로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주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한국 정치인이라고 가정해보자. 버니 샌더스가 만약 한국에서 선거에 출마한다면 그는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 보수언론 등에 의해 ‘빨갱이’, ‘종북좌파’라고 낙인찍힌 채 매장당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검찰 등 사법기관은 그를 국가보안법으로 몰아 감옥에 쳐넣을지도 모른다. 세계 최강국 미국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버니 샌더스는 바로 이런 사람이다.

"한 줌의 사람들이 거의 모든 걸 소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갖지 못했다.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중산층은 붕괴되고 있다." 45년전 선거운동을 하며 팸플렛에 적었던 글귀나 지금이나 그의 말은 똑같다. 오히려 미국인들은 그때보다 점점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받고,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는게 샌더스의 생각이다.

젊어서부터 ‘직업정치인’으로 들어선 삶이 순탄할 리 없었다. 그는 30대와 40대의 ‘황금기’를 변변한 직업 없이 목수, 기고가, 조사원, 독립영화제작자를 전전했다. 직업이 없어 실업수당을 받아야 할 정도였지만, 지역 신문사에 글을 보내고 라디오에 출연하며 자신의 신념을 알려나갔다.

40세인 1981년, 평생 ‘루저’로 살 것 같은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불과 10표 차이로 버몬트 주 최대도시 벌링턴 시장으로 당선된 것. 10년간 이웃들의 문을 두드려 이야기를 나누며 쌓아온 신뢰가 바탕이 됐다. ‘사회주의자’ 샌더스를 시장으로 뽑은 벌링턴 시는 어떻게 됐을까.

벌링턴 지역 언론은 처음 그가 당선됐을때 ‘반기업’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하지만 코넬대 피터 드라이어 교수는 벌링턴이 미국에서 가장 실업률이 낮고 경제활동이 활발한 도시라는 평가를 듣게 된 출발점이 샌더스 시장 재임기였다고 평가한다. 지금은 스키장비 업체 버튼을 비롯, 자연친화 기업들이 벌링턴에 본사로 두고 있다.

하원의원 도전을 위해 시장직을 그만둘때까지 그의 지지율은 계속 높아졌고, 마지막 시장 당선때는 70%가 넘는 표를 얻었다. 그는 임기중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에 의해 ‘미국 베스트 20 시장’에 뽑혔다. 지속 가능하고 중산층을 붕괴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경제가 성장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상생’을 내세운다. 우리 식으로 하면 ‘동반성장’이다.

시장으로서 권한을 활용하는 한편, 약자들을 조직하고 스스로 입법에 나서게 하는 게 그의 독특한 행정방식이었다. 벌링턴 최대 임대주택단지인 ‘노스 게이트 아파트먼트’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저소득층 아파트 단지의 소유주가 이를 재개발해 호화콘도로 바꾸려고 하자 그는 세입자들 스스로 입법활동에 나서도록 후원했다.

퇴거 2년전에 세입자에게 고지를 의무화 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고, 우선매입권을 거주자에게 부여했으며, 세입자들 스스로 게 똑같은 수의 대체 주택을 주기 전에는 강제철거를 못하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지도록 도왔다. 이같은 규제로 아파트 단지의 매입가격이 떨어지자 그는 1200만달러의 기금을 들여서 세입자들이 단지를 매입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이 아파트는 지금도 저소득층이 소유하고 장기 거주하는 주택으로 남게 됐다.

그가 대선 출사표를 던진 ‘레이크 챔플레인 워터프론트 파크’는 지역 사업가가 럭셔리 호텔과 고층 콘도를 지으려던 걸 시민용 공원으로 변경해 개발한 상징적인 장소다. 그 사업을 추진했던 사업가는 나중에 샌더스의 최대 후원자가 된다. 월가의 거대 금융기관을 해체하고, 부자들에게 중과세하자는 주장은 ‘과격’해 보이지만, 실상 총기소유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오히려 샌더스가 힐러리 클린턴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보수적인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샌더스의 지지율이 힐러리를 앞서고 있는 것은 (그가 남성이라는 점과 함께) 샌더스의 실용주의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그는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말하지만 이는 오히려 선거용 ‘브랜딩’에 가까워 보인다. 실제로 젊어서 마르크스와 레닌 트로츠키를 읽고 시위에 나섰다가 체포되기도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자본주의적 소유관계를 부정하고 혁명을 꿈꾸는 사회주의자라기보단 북유럽식 복지국가를 이상으로 삼는 ‘사회민주주의자’로 규정하는게 맞는 것 같다

버니의 대통령 후보 가능성 (3)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아이오와만 놓고 보면)높게 봐서 ‘반반’이라고 본다. 후보가 돼도 대통령이 될 확률은 또 ‘반반 게임’, 대통령이 된들 그의 신념이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을지는 ‘반반’도 안될 듯하다. 그가 미국과 세계의 ‘상식’을 깨게 되든 그렇지 못하든, 포레스트 검프처럼 달려온(샌더스는 실제로 달리기를 좋아해서 고등학교 육상부 주장이었다) 그의 75년 삶은 경의를 표할 만한 것이다.

그는 "정치는 포인트를 쌓아가는 것"이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통령의 가능성이라는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평생을 두고 ‘자기의 길’을 걷고 ‘자신의 말’을 지키며 포인트를 쌓아가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쌓이는게 더디기만 하고, 당장은 쓸 수 도 없는 거지만, 어느 순간 그 포인트가 누적돼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걸 인정받게 된다는 말이다. 샌더스의 삶이야말로 길고 긴 포인트 쌓기였다.

샌더스의 아버지는 뉴욕 브루클린의 서민동네에서 페인트를 팔아 근근히 생계를 이었다.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필품 외에는 눈을 돌리기 힘든 그런 삶이었다. 고등학교 학생회장 낙선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정치’ 이력은 뉴욕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시카고대 정치학과로 옮기면서 본격화된다. 인종 차별 금지 위원회, 비폭력 조직위원회, 청년 사회주의자 리그 같은 조직에 참여했다. 스물 셋에 결혼, 2년만에 파경. 스물 여덟에 ‘미혼부’. 30~35세 5년간 다섯 차례 낙선(한번도 지지율 6% 넘긴 적 없음). 40세까지 변변한 직업없이 목수 조사원 자유기고가 실업자 생활. 마흔 일곱에 아이 셋 딸린 여성과 재혼. 이제 나이는 어느덧 75살(한국 나이로는 76)

졸업후 미 동부의 보수적이고 자연주의 전통이 강한 버몬트주에 정착한 그는 30세인 1971년 플레인필드라는 시골동네에서 ‘자유동맹당(Liberty Union Party)’ 이라는 군소진보정당의 상원의원 후보로 출마한다. 득표율은 2%도 안됐다. 정치활동만큼이나 사랑도 순탄치 않았다. 대학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했지만 2년만에 헤어졌고, 28세때는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아들 레비 샌더스를 낳았다(그는 지금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한다). 동성애 낙태 혼전관계 등에서도 ‘진보적’이었던 그는 그는 ‘미혼부’라는걸 숨기지 않고, 아들을 데리고 선거운동을 했다(47세때 아이 셋 있는 현재의 부인과 재혼, 그는 2남2녀를 뒀다).

폴란드 이민자 가정 출신의 버니 샌더스는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과 버몬트주 하원의원, 상원의원 등을 거치는 30여년의 정치인생 동안 한결같이 분배를 외쳐온 사람이다. 버니 샌더스가 민주사회주의자임을 알면서도 안철수, 김종인이 ‘내가 바로 한국의 버니 샌더스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둘 중 하나다. 매우 용기있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립 서비스(lip service)로 대중을 기만하는 사람이다. 안철수나 김종인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단순 립 서비스가 아닌 진정으로 그를 닮는 정치인이 되야 할 것이다.

2016 미국 대선에서 ‘공산주의 성향의 좌파’ 버니 샌더스가 정말 꼭 당선되기를 바란다는 소리는 한국에서도 드높다. 그의 당선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버니 샌더스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 입만 열면 ‘빨갱이’, ‘종북좌파’ 몰이를 하던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들, 보수언론 등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우리나라도 2016년 4.13 총선과 2017 대선을 앞두고 있다. 총선과 대선에서 진정한 대한민국 버니 샌더스가 출현하기를 고대한다는 기대가 드높다. 대한민국 버니 샌더스의 출현 그가 바로 불교에서의 미륵불이요, 기독교에서는 정치적 메시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버니 샌더스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버니 샌더스와 자신의 유사성을 연상할 수 있도록 발언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웃는다. 그동안 안철수에게 부여된 많은 가능성과 비판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그렇다. 버니 샌더스에게는 배울 게 많은 정치인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인들이 버니 샌더스를 언급하고 이를 둘러싼 논쟁을 벌이는 상황은 자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에 묻어가려고 하기 보다 그를 점더 정확히 아는 것과 그 현상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과 공화당 젭 부시 간의 양강대결이 예상되었지만 재벌 트럼프의 예상외 선전으로 공화당도 곤욕그러워 한다. 실전에서 힐러리에게 상대가 안된다는 것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 공화를 떠나 미국 대선에서 예상외의 복병 버니 샌더스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고 유세장의 열기도 뜨거워 지고 있다. 유세장을 채운 청중들은 유세 시작부터 ‘Feel the Bern'(버니를 느껴보세요)이라는 구호를 외쳐대고, 샌더스가 무대에 오르면 우뢰와 같은 환호가 터져나온다. 샌더스가 이번 선거는 “억만장자들에 저항하는 정치혁명”이라고 주장하면 청중들은 "버니! 버니! 버니!"라고 연호하면서 유세장의 열기를 끌어올린다.

뿐만 아니라, 선거자금 모금과 조직화에서 샌더스 캠페인은 획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선거자금의 경우 2015년 1/4분기에 공화당 젭 부시 후보의 1억300만 달러,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4750만 달러에 비해 샌더스 진영은 1500만 달러를 모금했다. 대기업의 거액기부에 의존하는 주류 후보에 비해 턱없이 적은 금액이지만 압도적 다수의 풀뿌리 소액 기부금으로 확보한 기부금인 만큼 액면가 이상의 가치가 있다.

버니 샌더스의 정치적 배경(4)

그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작은 주인 버몬트 주의 무소속 상원의원이다. 상원에서 유일한 무소속이자 유일한 사회주의 의원이다. 버몬트의 주도인 벌링턴 시장으로 정치경력을 시작한 버니 샌더스는 하원 8선을 거쳐 상원에 입성했다. 보수적인 버몬트에서는 유명한 사회주의 정치인이지만, 전혀 전국적 정치인도 아니고, 미국의 진보진영도 그의 친노동 표결 경력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지난 4월 그는 대선후보가 되기 위하여 민주당에 입당하고 경선출마를 선언할 당시만 하더라도 아무도 버니 열풍을 예상하지 못했다. 억만장자들에 맞선 정치혁명이란 슬로건 아래 주식회사 미국을 향한 버니 샌더스의 공격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공공의료, 무상 고등교육, 최저임금 인상 등 현안에 대한 진보적 입장과 경제적.인종적 불평등 해소를 외치고 있다.

버니 샌더스가 막강한 힐러리 클린턴에 맞서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핵심적으로,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사회적 양극화에 맞서 사회경제적 정의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이 확대되는 경제적 양극화 상황에서 민주-공화 양당의 후보가 99%를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조차 1%의 기업권력 앞에 고용과 임금, 보건의료와 교육 등 생존권과 복지문제에 무기력한 상황에 대한 99%의 절망과 저항을 버니 샌더스가 대변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샌더스 열기가 뜨겁다. 버니를 지지하는 노동자들(Labor for Bernie)이란 지지모임이 만들어져 5000여명의 평조합원들이 가입했다. 미국노총(AFL-CIO) 남캘리포니아 등 일부 지역본부와 수백개의 노조 지부들이 샌더스 캠페인을 지지하고 있다.

한편 차기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으로 입각하길 희망하는 랜디 웨인가튼 위원장의 미국교원노조(AFT)은 조합 내 논의과정 없이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후보로 선정했다가 일반조합원들의 반란과 저항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 밀려 AFL-CIO 지도부는 대선후보 승인 결정을 연기했다.

샌더드 열풍과 미국 좌파

과거 1980년대 제시 잭슨과 무지개 연합(Rainbow Coalition), 2007년 녹색당 랠프 네이더 선거운동을 경험한 미국의 좌파들에게도 샌더스 열풍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보수 양당체제 아래서 주변화되고 파편화돼 있는 좌파들은 샌더스의 선전에 놀라면서도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에 힘겨워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내 활동을 강조하는 미국 공산당 등 구좌파들은 샌더스 선거운동에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 진보적 민중운동을 건설한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도, 사실상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귀결되는 행태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다른 그룹들로부터 전형적 ‘차악주의’(lesser-evilism)란 비난을 받았다.

반면 민주당 내 활동이나 민주당과의 연계를 거부하는 좌파세력들(트로츠키주의 ISO 등)은 버니 샌더스 선거운동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편 독자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미국 녹색당은 질 슈타인 후보를 내세웠고, 그녀는 끝까지 완주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사회주의는 소수자다. 그런 샌더스에게 영향을 준것은 Micheal Harrington 이라는 학자다. 그의 저서 미국의 다른 모습(The orther America) 라는 책이다. 그 책은 캐네디와 죤슨이 미국의 빈곤과의 전쟁에 대한 지침서였고 1968넌 마틴루터킹등을 통하여 명목이 이어져 왔지만 정치 세력화 되지 못하였다. 지금도 주류 사회주의는 미국대선에 대하여 냉소적이다. 해일톤의 저서 “오래된 희망 사회주의” 라는 이름으로 메디치에서 김경락 번역, 김민웅 감수로 2014년에 출판된바 있다.

버니 샌더스의 돌풍과 정치적 메시지는 미국 정치를 풀뿌리로부터 흔들고 있고, 99%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돌풍이 보수 양당체제를 대체할 진보적 제3정당의 결성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왜냐면 민주당 문제란 미국 좌파의 근본적 딜레마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고, 현재 파편화된 좌파들로서는 99%의 정치적 표현으로서 샌더스 신드롬을 조직적 성과로 가져갈 만한 주체적 역량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의 가장 큰 적은 정치적 냉소주의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 냉소주의의 극단을 달리고 있다. 세계 체제를 이끌어가는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에 만연한 정치적 냉소주의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존재다. 트럼프의 최대 무기는 ‘솔직함’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가 위선을 떨지 않고 속물적인 욕망을 대놓고 말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입장에서 정치란 이념도 아니고 타협도 아니며 합의도 아니다. 이념이니 타협이니 숙의니 하는 단어들이 정치의 진수를 말하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이런 결론도 내릴 수 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사실 말하고 싶은 것은 ‘정치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거 없다’는 건 냉소주의의 전형적 논법이다. 정치적 냉소주의는 정치인이 명분이나 이상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겉으로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그럴듯한 핑계에 불과하고 뒤로는 사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게 정치적 냉소주의가 내세우는 정치인의 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냉소주의자들은 명분과 이상을 말하는 정치인을 증오한다. 그들이 자신들을 ‘속인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그저 정치인들에게 속아왔다! 이들 입장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정치를 부정할지언정 국민을 속이지는 않는다

미국 대선의 지형도 (5)

정치적 냉소주의로 인한 정치의 균열은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보다 샌더스와 트럼프 사이에서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 시대에 샌더스가 주목받는 것은 그가 사회주의자여서가 아니다. 사실 그가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적 대안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사회주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본인도 이 점을 의식한 것인지 ‘민주적 사회주의’라는 ‘톤 다운’된 어휘로 자신의 지향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 글의 목적은 샌더스가 진정한 사회주의자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게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샌더스의 방식이 트럼프식 해법의 정반대편에 서있다는 것이다.

버니 샌더스는 현재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정치적 냉소주의를 돌파한 거의 유일한 후보이다. 그가 냉소주의를 돌파할 수 있었던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종류의 보수주의에서 나온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의 정치적 기반인 버몬트주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자유를 찾아 떠나왔던 프로테스탄트들이 초기에 정착했던 6개 주의 하나다. 뉴잉글랜드로 불리는 이들 주의 정치적 전통은 미국의 근본정신을 이끌어 온데 대해 엘리트적 자부심을 갖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이들의 보수주의는 트럼프로 대표되는 천박한 파괴적 열정과는 다르다.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전통은 자유를 찾아 떠나는 메이플라워이며 링컨의 노예 해방이다. 엄격함이며 검소함이고 품위있음이다. 아직 민주당과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념에 따라 일렬로 늘어세울 수 없었던 시기 ‘무소속 버니 샌더스’가 버몬트주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전통에 그의 캐릭터가 잘 들어맞았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전통적 양당제에 대한 염증

클린턴 행정부 이후 우경화된 미국 정치에서 전통적인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정치가는 구닥다리에 불과했다. 합리와 이성에 따른 숙의보다는 상대와의 협상 자체를 죄악으로 여기는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부시 정권의 탄생 이후 이런 현상은 극에 달했는데, 공화당 성향 극단주의자들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확대된 결과가 지금의 ‘티파티’다. 이 과정에서 중도개혁을 내세울 수 있는 공화당 온건파는 사실상 붕괴했다. 오바마 시대에 정권을 방어해야 했던 민주당 내에서도 중도의 숫자가 줄어드는 유사한 현상이 일어났다. 극단주의의 시대는 정치적 냉소주의의 확대와 이에 대한 피로를 동시에 불러왔다.

트럼프와 샌더스는 바로 이 상황의 산물이다. ‘정치는 없다’고 말하는 트럼프에 맞서는 샌더스 지지자들의 논리는 ‘진정한 정치는 있다’이다. 이들이 기대하는 ‘진정한 정치’의 정체는 샌더스가 말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나 지금껏 민주당 주류 정치가 소화하지 못했던 좌경화된 메시지일 수도 있으나 앞서 장황하게 설명한 어떤 종류의 보수주의일 수도 있다. 짚어볼 만한 대목은 또 있다.

‘진정한 정치’의 전제는 지금의 정치를 진정하지 않은 것, 즉 ‘거짓’으로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실 정치에 대한 또 다른 냉소를 전제하지 않고 이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의 불행한 점은 대상이 ‘진정한 정치’에서 벗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 ‘정치는 없다’는 반동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도 있다. 이런 판국의 정치는 ‘진정한 무엇은 있다’로부터 ‘그런 건 없다’는 논리 사이의 진자운동으로 반복된다.

물론 ‘정치는 없다’는 것보다 ‘진정한 정치는 있다’는 논리의 시도가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진정한 정치는 있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유능해야 한다. ‘진정한 정치는 있다’고 말했으니, 그게 실제로 있다는 게 확인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정치인은 통치를 잘 할 수 있어야 하고 당사자 간의 이해 조정에도 탁월한 순발력을 발휘해야 한다. 만일 그 정치인이 진보적 이념을 갖고 있다면 이 이상의 것도 감당해야 한다. ‘진정한 정치는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이후에 또 하나의 구조로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선 이들의 욕망을 조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샌더스가 ‘정치혁명’을 말하는 것은 조직적 기반이란 측면에서 열세를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앞서와 같은 측면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인 걸로도 보인다. 샌더스가 경선에서 승리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애초의 의도를 어느 정도로 관철시킬 수 있을지 보아야겠으나 적어도 냉소주의의 파고를 거슬러 올라가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제 샌더스를 자처하고 있는 정치인이 포함된 한국의 정치 생태계로 눈을 돌려보자. 정치적 냉소주의는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자기 정치를 하기 바쁜 국회는 나라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으니 ‘진실한 사람’을 뽑아달라는 주장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프레임을 특히 그나마 청교도적 태도를 갖고 있는 유승민 의원에 뒤집어 씌운 것은 도널드 트럼프나 티파티의 사고방식에 비견할만 하다.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 같은 이들이 "헌법 위에 사람(인간관계)이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까지 내놓으며 충성을 과시한 것이나 최경환 의원이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이며 ‘진박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미국의 정치 환경에 완전히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상황은 한국에서도 샌더스 현상과 같은 무언가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갖게 한다. 지금 야권의 분열의 명분은 모두 새로운 정치이고 통합의 정치라고 하지만 그 주체가 신뢰를 받기 어려운 이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공천 부적격자, 특정한 지역의 맹주를 노리는 자, 대권후보에 대한 집착자와 이미 정치적으로 역할을 한 원로군들이다. 흘러간 물로는 방아를 돌릴 수 없는 데도 억지 주장을 펴서 야당을 흔들어서 분열을 꾀하며 그 과정에서 자기의 정치 지분과 파워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이들이다.

정치 현상과 현실 정치(6)

그렇다면 한국 버전의 샌더스 현상을 이끌 주체는 누구인가. 샌더스를 간접적으로 자처한 안철수 의원은 과거 ‘새정치’라는 깃발로 정치적 냉소주의의 돌파를 시도한 바 있다. ‘새정치’란 앞에서 말한 ‘진정한 정치’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어떻게든 ‘진정한 정치’의 내용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인 샌더스와는 달리 안철수 의원은 늘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아 오면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제1야당에 몸을 던져 온갖 사건에 휘말린 이후에는 그나마 갖고 있던 ‘새정치’라는 깃발 마저도 던져 버렸다. 가치와 노선을 말하기보다는 좌클릭이니 중도니 하며 장이 서는 곳으로 당의 정체성을 옮기는 것에 익숙했던 제1야당의 혼란은 더 이상 지적하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진보정당 역시 같은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통합진보당 창당 이후의 진보정당운동은 ‘진정한 정치는 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이를 믿지 않는 도착적 태도로 기울어지고 있다. 정치공학과 계파 간 갈등 조정은 물론 대단히 중요한 과제이지만 여기에만 몰두한 결과 ‘패배하더라도 우리의 역할이 있다’고 믿는 사명감과 역사의식은 희미해져가고 있다. 이제 진보정치는 시대정신을 파악해 사람들의 욕망을 조직하고 구조화 시키기 보다는 일회적인 홍보전술의 효과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의 샌더스가 되고 싶다면 정치의 ‘원형’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룰에 대한 활동이다. 그 룰을 어떻게 만들고 변화시킬지에 대한 문제가 노선이 되고 이념이 되고 세상을 바꾸는 일에 대한 청사진이 된다. 정치인은 자신이 가진 신념을 대중에게 심판받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고쳐가면서 그러한 과정 자체가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샌더스 효과에 숟가락을 얹어 잠시나마 화제가 되어 보자는 식의 태도야말로 가장 샌더스답지 않은 일이다. 자꾸 샌더스를 말할 게 아니라 노선과 가치와 명분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냥 "정권교체 할테니 지지해달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권력을 잡으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를 말해야 한다. 정치적 냉소주의의 손에 우리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샌더스에 대한 지지는 약화되고 있다. 그는 젊은이들과 여성 그리고 공화 민주 양당제도에 염증을 느낀 진보적 백인들이 지지한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가장 강력한 조직력을 갖고 있는 흑인과 히스패닉계 그리고 아시안은 그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고 있다. 그 중 흑인은 현 민주장 오바마정권에서 국무장관을 하고 오바마의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힐러리를 지지하고 있다. 실제로 슈퍼화요일에 승리한 것은 흑인들의 몰표라고 한다.

또 하나는 샌더스가 진보적이기는 하지만 그는 미국백인에 대한 것이다. 미국은 좋던 싫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샌더스에게 국제정치와 특히 아시안과 남북문제에 대한 대한 어떤 비젼과 경륜이 있을 까? 그것이 우리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그런면에서는 오히려 민주당 정권과 힐러리가 국무장관을 지냈고 다소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평이다. 미국에게 좋은 것이 우리에게 좋은 것일 수는 없다. 다만 미국대선을 보는 관전평에서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 지가 중요하다.

종교와 미국의 대선 후보

미국에서의 대선후보의 종교는 매우 중요하고 쟁점이 된다. 샌더스는 폴란드 이주 노동자의 아들로 뉴욕 브르크린에서 성장하고 시카고 대학을 졸업한다. 그는 어려서 Jew로 교육받고 키프츠운동에도 참여했지만 성인이 되고는 유대교의 전통과 관습을 버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신을 믿는 다고는 하지만 종교적인 관습과는 거리를 둔다. 그는 각자의 방식으로 신을 믿는 다며 이는 자기의 삶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식으로 범신론자로 무신론자는 아니다. 한편 유대교의 뿌리는 자랑스러워 하지만 정작 정통 유대인들로 부터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데 미국의 유대인들은 오히려 힐러리를 지지하고 있다.

미국에서 캐토릭교도로 최초의 대통령이 된 것은 죤 F. 케네디다. 그가 캐토릭이라는 이유로 교황과 전통이 미국정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냐는 염려를 덜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으며 성공하였다. 2008년 공화당 대선후보 전 아칸소주 주지사 출신의 마크허커비는 침례교 목사였다.

힐러리는 기회가 날 때 마다 자신은 감리교인이며 그렇게 교육받고 자란 것을 자랑스럽다고 외친다. 2012년 오마바와 겨뤘던 미트롬니는 미국에서는 약간은 이질적인 종교로 불리는 몰론교도였다. 그에 비하여 현재 공화당 후보로 통풍을 일으키는 도날드 트럼프는 조사결과 가장 종교적이지 않은 후보로 나타났다. 그래도 그는 장로교인이며 지난 주 교회에 갔다 “겸손” 에 관해서 설교를 들었다고 너스레를 떤다.

결론, 샌더스에게 배울 것

우리기독교인에게 주는 미국대선에의 샌더스의 정치적인 메시자는 무엇인가? 2015년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 대학인 리버티에서 행한 연설의 동영상에서 보듯이 그의 강연은 겸손하지만 담대하고 예의바르며 주관이 뚜렷한 정치인으로 각인되기 충분했다.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아모스의 정의를 언급하며 이는 예수님의 황금율과 같다는 식의 설교조로 강연을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 목회자들의 설교는 늘 현실을 걷도는 식의 말장난을 하지는 않는 지 돌아봐야 한다. 예수님에 대한 메시지도 사실 성경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모두 제멋대로 해석하고 적용한다. 

말잘하는 한국 목사들이 예수의 기적과 성공, 축복과 은혜를 말하지만 예수의 진짜 가르침인 공의와 정의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반쪽 예수만 전한다고 봐야 한다. 그건  복음서의 예수가 아니라 자기가 이해하고 각색한 예수다. 그러니 신자들의 영적 성장이 아닌 자기교회의 성장, 부흥을 위하여 숙주로 객체화 도구화하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의 문제는 한 교회나 교파 교단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갈릴리 예수는 없다고 해야 정직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정신은 오히려 정치에서 구현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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