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대통령
제민일보 칼럼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100%의 국민을 아우르는 정책을 펴겠다고 제시했다. 상대 후보가 99%의 국민을 위한 국가운영을 약속했기에, 비교적 그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 돌이켜 보면 그 때 우리가 보고 들었던 것은 꿈이 아니었나 생각할 정도로 희미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공약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이제는 그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왠지 민망하거나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됐다. 제주도민들에게는 분명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모든 축구 팬들은 대표팀의 경기를 관전하며 나름대로 평가하고 흠을 잡기도 한다. 바야흐로 아마추어 국가대표 감독은 100만명을 넘는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막상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을 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운전기사 옆에서 눈여겨 보면서 가상으로 차를 움직이던 것으로 운전할 준비가 됐다고 우길 수는 없다. 실제 운전대를 처음 잡았을 때, 이제 모든 것은 내가 책임져야 할 실제상황이라는 압박감에 두려움을 느꼈던 경험을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루이 나폴레옹이 삼촌의 후광으로 프랑스의 권력을 잡은 시대가 있었다. 혼란이 계속되던 19세기 한복판에서 프랑스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위엄과 영광을 추억하고 그의 조카 루이를 왕으로 옹립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름 밖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보나파르트 가문이라면 당연히 인걸이 나오리라는 대중의 막연한 환상이 잘못된 선택을 유도했고 나라를 파탄으로 이끌어갔다. 역사에서 이를 보나파르티즘이라 부른다. 선대의 몰락 이후 33년만에 국가권력의 정상에 섰다는 점에서 루이와 박근혜 대통령은 비슷하다. 그러나 아무런 내용도 없이 허당이었다는 점은 제발 달랐으면 좋겠다.
정상적인 사람은 어제까지의 경험과 언행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간다. 이를 깨끗이 지워버리고, 마치 컴퓨터를 켜면 초기화면에서 출발하듯이 기억을 상실하고 살아간다면 이는 치매에 해당된다. 수많은 보좌관을 거느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요사안에 대해 대통령은 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시하는가. 아니면 무시하는 척 하는 것인가. 오랜 세월 절치부심하면서 대통령의 역할은 누구보다도 멋있게 수행할 수 있다고 박 대통령은 자신했다. 지지자들도 역시 그 기대가 있었기에 선택했다. 취임 이후 대통령은 한 번도 어느 하나도 자신의 주장을 내놓지 못했다.
세월호 사고가 났을 때 대통령은 진도체육관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몇몇 조치를 취하는 듯이 보였지만 어느 것도 실현되지는 않았다. 유족들과 국민들이 들은 것은 작동되지 않는 빈 명령이었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던지는 훈시는 장관들에게는 지침이나 위협이 될 수도 있겠지만 시민들에게는 조롱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차라리 사극에 나오는 어전회의에서 정책의 논의나 치열한 현장에 대한 염려를 더 구체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은가. 여론의 눈치를 보다가 지지를 얻지 못하면 은근슬쩍 말을 바꾸기가 예사다.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오해하는 국민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하나마나 한 내용을 그럴듯한 포장으로 내놓고 있으며 언론들도 이를 받아 적고 해석이나 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부하는 사람들은 국무회의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유승민 파동의 와중에서 대통령은 토라진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서 여러 정치인들에게 단단히 삐쳤다는 것을 시위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장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슬픈 현실이다. 대통령은 벌거 벗었다는 이야기가 번져 나가고 있다.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단순하고 정직하게 보는 사람들은 느낀다. 잘못된 욕심에 스스로 함정에 걸려든 임금님도 문제지만 옆에서 좋은 옷이라고 칭찬하던 간신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