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A(호주) 변조은 목사(19??-2026) 별세

브라운(한국명 변조은) 선교사가 7월 17일 호주 캔버라의 라이프케어가든스 요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로 한국선교사를 지냈다.  이 글을 쓴 고동원 목사는 연세대, 장신대를 거쳐 미국 Boston University에서 공부하고 미국과 호주 멜버른 한인교회서 목회하였다. 현재는 남호주 소속으로 호주연합교회(UCA) 부총회장으로  차기 총회장이다.  Mission Activator, Uniting Church in South Australia & Advocate for Being a Multicultural Church, UCA Adelaide, SAUniting Church in Australia, Synod of South Australia
It is with a heavy heart, yet with deep gratitude, that I write these words in memory of Rev Dr John Brown — a mentor, a spiritual father, and a faithful servant of Christ whose life bridged two nations and two peoples in a way few others could.
After graduating from Melbourne University and the Melbourne College of Divinity, Rev Dr Brown was ordained to the ministry of the Presbyterian Church of Australia in 1958. Following ministries in Bairnsdale and Omeo, he answered the call to serve as a missionary in Korea from 1960 to 1972 — twelve years of full-time service in which he taught Hebrew and Biblical Studies at the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in Seoul, pastored village churches throughout South Korea, and served in the administration of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It was there that his lifelong love for the Korean church and people took root, a love that never left him.
I first met John in Melbourne, during my time serving as minister with the Korean Congregation. From that first meeting, I knew I was in the presence of someone rare. His years of devoted work in both Korea and Australia were not simply a career in ministry; they were a calling lived out with humility, love, and an unshakeable faith in God’s purposes.
What struck me most was his deep, genuine love for the Korean people and church. He spoke Korean with a fluency and warmth that many of us, even native speakers, found humbling. In our conversations, he would speak to me in Korean, and I would answer in English — a small, quiet act of mutual respect that said more about his character than words ever could. He met me where I was, always.
Returning to Australia in 1972, John carried his Korean links with him into a second career as a senior church leader, including a prominent international role with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As National Secretary for the Mission of the Uniting Church in Australia, he became deeply involved in the reconciliation movement, serving as Co-Chair of the National Sorry Day Committee from 1998 to 2005 and Co-Chair of the Myall Creek Memorial Committee from 1999 onward — a testament to his conviction that the Gospel called him to justice and healing as much as to the pulpit. In recognition of his lifelong service, he was appointed a Member of the Order of Australia in 1993 and received a Centenary Medal in 2001 for his services to reconciliation.
John became more than a retired minister to me — he became a mentor and, in every sense that matters, a spiritual father. He walked alongside me in my own ministry journey, offering wisdom drawn not from theory but from a lifetime of faithful service. I will never forget that he travelled all the way to Adelaide to be present at my admission service at the South Australian Synod meeting — a gesture that spoke volumes about the kind of shepherd he was, one who showed up, who invested in the next generation, who believed in us before we fully believed in ourselves.
His commitment to mission never wavered, even in his later years. When he was 80 years old, he accompanied me on a long journey from Melbourne to Hunchun, China, to assist in a joint mission between the Uniting Church in Australia and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into North Korea. That he would undertake such a demanding journey at that age, still eager to serve, still willing to go, tells you everything about the man he was — a godly man in mission until the very end.
I was recently reminded of the breadth of his vision when I came across a piece of his own writing, where he closed with a series of hopes for the church. He dreamed of congregations that turned outward — patient enough to listen to their neighbours and honest enough to let them freely say yes or no to the gospel. He dreamed of a new generation of missionaries stepping forward as pioneers, and of a church bound in genuine covenant with Aboriginal people, working together to right the wrongs of the past. He dreamed of a church rich in the diverse gifts of the Spirit, expressed through many different styles of ministry; a church committed to healing creation itself; and above all, a church that followed its servant Lord in tending to the weak and the weary, refusing to rest until justice was done on the earth.
That was who he was. Not merely a man who preached these hopes, but one who lived them — gently, faithfully, and to the very end.
As a Korean Australian minister within the Uniting Church, I carry forward what he poured into me. His legacy lives on in every Korean he mentored, every congregation he touched in Korea and Australia, and every life that was drawn closer to Christ through his witness.

Rest now, dear Moksanim and Aboji in the faith. Your work is finished, and thank you. May we meet again in the joy of the resurrection.

                변조은 목사님을 추모하며(1933년 9월 24일 – 2026년 7월 17일)

무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깊은 감사함으로 변조은 목사님을 추모하는 이 글을 씁니다. 그분은 저의 멘토였고, 영적 아버지였으며, 두 나라와 두 민족을 잇는 삶을 사신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이셨습니다.

멜버른 대학교와 멜버른 신학대학을 졸업하신 후, 변목사님은 1958년 호주 장로교회 목사로 안수받으셨습니다. 베언스데일과 오메오에서 목회하신 후, 1960년부터 1972년까지 한국 선교사로 부르심에 응답하셨습니다 —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히브리어와 성경학을 가르치시고, 한국의 경남 여러 시골 교회를 목회하시며, 대한예수교장로회 행정에도 봉사하신 12년간의 전임 사역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한국 교회와 한국인들을 향한 그분의 평생에 걸친 사랑이 뿌리내렸고, 그 사랑은 결코 그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멜버른에서 멜본한인교회 목사로 사역하던 시절 목사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 첫 만남에서부터, 저는 참으로 귀한 분을 만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국과 호주에서의 그분의 헌신적인 사역은 단순한 목회 경력이 아니라, 겸손과 사랑,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살아내신 소명이었습니다.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인과 한국 교회를 향한 그분의 진실하고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분은 모국어 화자인 저희조차도 겸손해질 정도로 유창하고 따뜻하게 한국어를 구사하셨습니다. 목사님과 대화할 때면, 그분은 한국어로 말씀하시고 저는 영어로 답했습니다 — 서로를 배려하는 작은, 그러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존중의 행위였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제가 있는 자리로 찾아와 주셨습니다.

1972년 호주로 돌아오신 후, 목사님은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시며 호주연합교회 지도자로서 두 번째 사역을 시작하셨고,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도 중요한 국제적 역할을 감당하셨습니다.

호주연합교회 선교 담당 전국 총무로서, 그분은 호주 선주민들과의 화해 운동에 깊이 헌신하시어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전국 사죄의 날 위원회’ 공동의장을, 1999년부터는 ‘마이올 크릭 추모위원회’ 공동의장을 역임하셨습니다 — 이는 복음이 그분을 강단에서뿐 아니라 정의와 치유의 자리로도 부르셨다는 확신의 증거였습니다. 평생의 헌신을 인정받아 1993년 호주훈장(AM)을 받으셨고, 2001년에는 화해를 위한 공로로 백주년 기념 메달을 받으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게 단순한 은퇴 목사 이상의 존재가 되셨습니다 — 그분은 저의 멘토가 되셨고, 진정한 의미에서 저의 영적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그분은 제 목회 여정에 함께하시며, 이론이 아닌 평생의 신실한 섬김에서 우러나온 지혜를 나눠주셨습니다. 그분이 제가 호주연합교회 목사로 입회하는 예식에 참석하시기 위해 애들레이드까지 먼 길을 오셨던 것을 저는 결코 잊지 못합니다 — 이는 그분이 어떤 목자셨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중 하나입니다. 늘 함께해 주시고, 다음 세대에 투자하시며, 저희가 스스로를 믿기도 전에 저희를 믿어주신 분이셨습니다.

선교에 대한 그분의 헌신은 노년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든의 나이에도, 그분은 호주연합교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북한 연합 선교를 돕기 위해 멜버른에서 중국 훈춘까지의 긴 여정에 저와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 연세에도 여전히 섬기기를 갈망하시고, 기꺼이 나아가고자 하셨던 그 모습은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를 모든 것으로 말해줍니다 — 마지막까지 선교에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람이셨습니다.

최근 저는 그분이 남기신 글의 한 대목을 통해 그분의 비전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그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분은 교회를 향한 여러 꿈을 나누셨습니다. 이웃의 말에 귀 기울일 만큼 인내하고, 복음에 대해 이웃이 자유롭게 예 또는 아니오라고 답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배려하는, 밖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를 꿈꾸셨습니다. 새로운 세대의 선교사들이 개척자로 나서는 것을 꿈꾸셨고, 선주민들과 진정한 언약을 맺어 과거의 잘못을 함께 바로잡아가는 교회를 꿈꾸셨습니다. 성령의 다양한 은사가 여러 형태의 사역으로 풍성하게 나타나는 교회, 창조 세계를 치유하는 일에 헌신하는 교회, 그리고 무엇보다 섬기는 주님을 따라 연약하고 변두리로 밀려난 자들을 돌보며 이 땅에 정의가 세워질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교회를 꿈꾸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단지 설교하신 것이 아니라, 온유하게, 신실하게, 그리고 끝까지 삶으로 살아내신 분이셨습니다.

호주연합교회 안에서 한인 목사로 섬기는 저는, 그분이 제게 부어주신 것을 이어받아 나아갑니다. 그분의 유산은 그분이 길러내신 모든 한국인들 안에, 한국과 호주에서 그분이 섬기신 모든 교회 안에, 그리고 그분의 증거를 통해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이끌린 모든 생명 안에 살아 있습니다.

사랑하는 목사님, 그리고 믿음 안의 아버지, 이제 하나님 품안에서 편히 쉬세요. 이제 지상에서의 믿음의 경주를 마치셨고, 그동안의 모든 수고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부활의 기쁨으로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합니다.
 
                              호주연합교회(UCA) 총회장 Charissa Suli의 회고문  
 
호주 연합교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 중 한 분이셨던 존 브라운 목사(AM)께서 지난 금요일(7월 17일) 92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깊은 슬픔과 함께 전합니다. 존 목사님은 40여 년 동안 연합교회의 신학적 비전, 선교 우선순위, 그리고 공적 증거를 형성하는 데 헌신적인 봉사자였습니다. 그의 사역은 개인적인 명성보다는 신실한 리더십, 진실한 관계, 그리고 하나님의 사명은 정의, 협력, 화해를 통해 실현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그의 영원한 유산은 연합 원주민 및 섬 주민 기독교 연맹(UAICC)과의 언약 체결, 다문화 교회로서의 정체성 확립, 세계 선교 비전, 그리고 한국 교회와의 오랜 협력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존 목사님은 인내심 있는 리더십과 흔들림 없는 결단력으로 오늘날까지 교회를 이끌어가는 토대를 마련하셨습니다. “존 브라운 목사님은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 중 한 분이셨으며, 연합교회(UCA)에서 다문화 및 언약 사역의 선구자이셨습니다.”라고 연합교회 총회장인 샤리사 설리 목사는 말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존 브라운 목사님의 사역을 알고 있었지만, 2년 전 한국 전국대회를 통해 마침내 그분을 뵐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저는 그분이 연합교회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하셨는지 알고 있었지만,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그분의 업적의 폭이 아니라, 그분의 겸손함과 은혜로운 마음, 그리고 사람들을 대하는 따뜻한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한국 전국대회 지도부 구성원들과 한국어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화하시는 모습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의미 있는 순간이었고, 그분이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깊은 관계와 한국 공동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존의 충실한 삶과 증거에 감사드리며, 그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부활의 소망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며 충실히 살아온 그의 삶에 감사드리며, 그를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자비 안에 맡겨 드립니다.” 존은 1933년 9월 24일 남호주 마운트 갬비어 근처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개척 농가에서 자란 그는 근면, 겸손, 인내의 가치를 배우고 멜버른 대학교에서 철학과 중동 언어를 공부했으며, 이후 장로교 신학대학(현 오몬드 신학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훗날 그의 아내가 되어 평생 사역의 동반자가 될 노마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1957년에 결혼하여 한국에서 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존은 1958년 호주 장로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빅토리아 주 베인스데일과 오메오 등 지방 도시에서 사역하다가 1960년 노마와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한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그 후 12년 동안 서울 장로교 신학교에서 히브리어와 성경학을 가르치고, 마을 교회들을 목회했으며, 한국 장로교회에서도 사역했습니다. 이 시기는 그에게 한국 사람들과 한국어, 그리고 한국 교회에 대한 평생의 사랑을 심어주었습니다. 1972년 노마와 세 자녀와 함께 호주로 돌아온 존은 곧 연합교회 설립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에큐메니컬 선교 및 관계 위원회(BOEMAR) 위원장과 공동 임시 선교 위원회 의장으로서 세 연합교회의 선교 구조를 통합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리더십은 연합교회의 초기 형성기 내내 이어졌습니다. 세계선교위원회 사무총장, 그리고 나중에는 선교위원회 집행 사무총장으로서 그는 교회의 다양한 선교 기관들을 협력, 정의, 그리고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사명을 중심으로 하는 일관된 신학으로 통합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세계선교, 프론티어 서비스, 사회 정의, 복음 전도, 다문화 사역, 그리고 새롭게 부상하는 UAICC에까지 미쳤습니다. 총회 세계선교부의 그의 지도력 아래, 1985년 “UCA는 다문화 교회입니다”라는 획기적인 선언문이 작성되고 채택되었습니다.
 
존의 신학적 비전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곳은 아마도 1990년대 전국 언약 조정관으로서의 그의 활동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언약 선언문을 개발하고 교회 내에서 자치 단체로서 UAICC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정의, 상호성, 그리고 원주민과의 화해에 기반한 언약 신학을 정립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존의 화해에 대한 열정은 교회를 넘어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는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비원주민 공동 위원장으로서 전국 사죄의 날 위원회를 이끌었고, 마이알 크릭 기념 위원회 공동 위원장도 역임했는데, 이는 복음이 교회로 하여금 원주민들과 진실 안에서 함께 걸어가고 그들을 치유하도록 이끈다는 그의 신념을 반영한 것입니다.
 
존 브라운 목사님의 사역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된 목적 의식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세계 선교에 이르기까지, 다문화 사역에서 원주민과의 언약 사역에 이르기까지, 그는 교회가 협력, 겸손, 그리고 정의를 통해 하나님의 화해하시는 사랑을 구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증거가 맺은 열매는 오늘날 연합교회를 계속해서 형성하고 있습니다. 존 브라운 목사님의 신실한 삶과 증거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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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뉴스 편집자 계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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