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과 협력은 기업만의 화두가 아니다.

상생과 협력은 기업만의 화두가 아니다 

   
http://cafe.naver.com/mlsori/14(명량소리 카페 사진 갈무리)

어떻게 해야 공존할 수 있나? 

대기업에 대하여 욕을 많이 하고 비난하지만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기업위주의 특혜나 정책은 안됩니다. 그래서 중소기업과 벤쳐기업를 독려하고 최근에는 청년창업 1인 기업도 정부에서 적극 장려합니다. 사회가 큰 것을 규제하지는 않지만 사실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모든 국가와 기업 등의 공적기준은 최대치와 최소치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키가 너무 크거나 작으면 군대도 가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에게는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편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업의 활동이 국내에 머물지 않고 해외로 나가게 되니 국가는 이들의 세일즈를 적극 돕기 위하여 각종 지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덩치르 키우면 세금도 많이 내고 고용도 창출되어 모두에게 좋습니다.  그래서 기업의 경우는 재벌 혹은 대형화를 불가피하게 용인하지만 그에 대한 책임 또한 그만큼 큽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기업들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무리한 투자와 세금포탈, 외화 도피 등으로 자본이 거덜나면 정부에서는 공적자금 넣어서 기업가와 기업은 살려내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기업만 그럴까요? 건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대형화는 필요 악인 것 같습니다. 요즘 보이는 잠실의 제 2 롯데월드 건물을 보면 우리의 건축기술이나 능력보다는 그로 인한 특혜 또는 비리(성남 비행장의 고도제한 등)가 더 드러났고 지반 문제는 물론 주변 상권의 잠식으로 재벌 하나 때문에 이렇게 희생을 당해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교회 이야기를 해 볼까요? 교회는 문제만 없으면 자연적으로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럼 어디까지 성장하면 좋을까요? 상식선에서 한 만명 쯤이면 초대형교회입니다. 만 명이면 말이 그렇지 어마어마한 교회입니다. 그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예배 드리고 부서활동을 하기 위해 이동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히 모이지는 않습니다. 끌어모으고 관리를 해야 모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왜 그렇게 모일까요? 백화점이나 큰 건물을 비유해서 봅시다. 싸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사람들이 많이 몰립니다. 맘에 드는 것이면 돈도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교회도 그런 것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그곳에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있어야 갑니다. 불편해도 돈을 드려서라도 갑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얼마라는 것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백화점은 교통혼잡 분담금을 냅니다. 자기네 건물로 몰려오는 사람들로 야기되는 교통 혼잡과 인구이동에 대한 세금이라고 보면 됩니다. 온누리교회가 있는 주일이면 그 주변의 아파트 주민들은 교인들의 빈번한 예배와 이동 때문에 자신들의 집을 드나들기에도 보통 힘든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에 교인이 적다고 합니다.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정부에서는 건물이나 시설이 초대형일 경우 규제를 합니다. 그러나 교회당의 경우는 규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맘대로 10만 명이든 100만 명이든 많을수록 좋다는 말인가요? 아닐 것입니다. 모든 것은 평균치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장군라도 1개 사단만을 지휘합니다. 목사도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한들 그렇게 많은 영혼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담임목사가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목사나 직원, 행정이 하는 것입니다. 담임목사는 얼마 간의 오래 된사람만 알뿐 나머지는 잘 모릅니다. 그냥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정도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듣고 헌금 내고, 그것이 대형교회입니다. 목회자와 교인 간에 얼마만큼의 교제와 교감이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100명 정도의 교회에 비교하면 말입니다.  국가는 모두가 살기 위하여 규제를 합니다.  자동차가 그렇습니다. 종종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자랑하려고 승용차도 큰 차를 타고 다니지만 무한대의 큰차는 없습니다. 미국에는 버스만한 캐디락이 있지만 그래도 규제는 있습니다. 그 다음은 대중 함께 타는 승합차나 버스이지 개인 자가용은 아닙니다.  집도 그렇습니다. 아파트를 생각해 보시죠. 업자가 평수를 마음대로 지을 수는 없습니다. 어무리 넓어도 최대 100평은 거의 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평균치가 없습니다. 무한대입니다. 이게 정상일까요? 차고 넘치는 데도 계속해서 오라고 하고 전도와 동원을 강조합니다. 이게 제 정신일까요? 정말 한 영혼의 구원과 인도를 위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교회를 더 크고 높게 보이려는 인본주의적인 발상때문입니다.

옛날에도 규제는 있었습니다. 사대부라도 제아무리 부자라도 99칸 이상의 집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1칸 집이 서민이라면 100배를 넘는 부의 대형화는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공무원들 월급도 편차도 그렇고 최대치와 최소치라는 합리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없는 곳이 있는 데 거기는 교회만 없습니다.

명성교회는 1만명도 아니고 자칭 8만이라고 하는 데 적게 잡아 5만이라고 합시다.  그래도 이게 정상적인 교회일까요?  사실 이런게 교회라는 게 기적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한 지역과 한 교회안에서만의 문제만이 이런 현상은 노회에서도 나타납니다.

총회에 오는 노회의 목사와 장로의 총대 수는 동수입니다.   그리고 명성교회가 소속한 동남노회에는 38명의 총대가 있습니다.  그중 목사 총대의 4명이 명성교회 이고 장로들은 9명으로 총 13명이 명성교회의 총대입니다.  약 30%가 한개의 교회 지도자인데 이런 이 숫자는 사실상 노회를 좌우지 할 수 있습니다. 노회의 총대 배정이 세례교인 숫자로 비례하기에 명성교회의 교인들이 많은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그렇치 않습니다.

대 기업의 임원이나 회원의 다양성이라는 것 때문에 정부도 기업도 학교도 특정한 지역이나 기관, 학교등 영향력을 받는 구룹을 배제하는 것이 추세입니다. 그런데도 명성교회는 대내외적으로 막상 파워를 갖고 독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나가서 쓰는 돈도 보통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이익과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기업을 인수하고 설립하고 참여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교회는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은혜가 되고 편안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지금 그런 선택을 우선으로 하여 신앙생활을 할까요? 아닌 것 같습니다. 유명세가 있는 곳, 능력이 있을 것 같은 곳, 부자들이 다니고 힘있고 능력있는 이들과 친구가 되어서 언젠가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곳을 찿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요?

그렇기에 대형교회는 이제 그만을 선언해야 합니다. 더 이상 건물을 짓고 교인편리를 제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변의 교회와 다른 동역자들과 공존할 수가 있습니다. 지역상권을 위하여 백화점이 강제휴일과 버스운행을 중단했듯이, 교회는 몰려오는 이들를 위한 편의를 더 늘려서는 안됩니다. 오는 것을 막을 수 없지만 모시러 다니거나 선전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장사가 잘되는 어느 가게에 준비한 물건을 다 팔리면 문을 닫는 다고 합니다. 이것은 고객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본인 자신과 가정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주변의 같은 일을 하는 분들과 공존하는 길입니다. 장사꾼에게도 이런 의미와 도리가 있는 데 어째서 목사에게 이런 인간적인 조차 남아있지 않을 까요?

하나님의 요청이라고 핑계를 대기도 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그렇게 많이 모여서 예배하기를 원하고 계실까요? 부대비용이 드려서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을 희생하고 뒷밭침하는 것을 원하실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생각 일뿐입니다.  대형화는 필요 악입니다. 무엇보다 어디 까지인가? 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과시와 허영심으로 멈출줄 모르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같이 쾌속질주하는 것이 요즘의 대형교회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돈을 주체를 못하고 써도써도 남아서 별짓들을 다 합니다. 교인들은 자녀들 등록금과 집세 노후를 걱정해야 하는 데 교회는 흥청망청입니다. 모든 것은 조화롭게 평균치 안에서 서로 공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획일적인 규격화는 거부하지만 100배가 넘는 공룡과 거인은 인간사회에서 사실 불편한 존재일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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