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백(告白)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단에 빠진 문제아에서 개종하여 히포(Hippo)의 주교가 되고, 개종한지 11년이 되던 해인 397년, 《고백록》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3년 뒤 그의 나이 46세에 완성하여 하느님께 바친 영혼의 자서전이다.  지금부터 1600년 전에 썼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그동안 국내 번역본이 수십 종류가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영어나 일본어본을 다시 옮긴 중역본이었다.  

고백록, 라틴어 원전 한글 번역본은 2016년에 이루어졌다.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自敍傳)도 아니고 회고록도 아니고 반성문도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생전에 100여 권이 넘는 저작을 남기고서도 “내 작품 중 그 어느 것이 「고백록」 보다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을까?” 라고 자부할 만큼 본서를 자기 대표작으로 여겼다.  원제목 Confessiones는 주로 박해시기에 신앙을 관리 앞에서나 공공장소에서 떳떳이 공언하던 ‘신앙고백’을 의미했다.  부차적으로는 재판정에서 자기가 유죄함을 자인하거나 죄상을 자백하여 판관의 관대한 판결을 빌던 뜻도 있어 지금의 ‘고백성사’를 가리키는 뜻도 있다.

‘참회록’이라고 하면 후자만 가리키는 제목이 되고 만다. 그런데 이 책을 쓴지 25년 후 본인 입으로 “나의 「고백록「 13권은 나의 악행과 나의 선행을 들어 의롭고 선하신 하느님을 찬미하는 책이었다.”고 회고한다. “무릇 고백이란 찬미하는 사람의 고백이거나 뉘우치는 사람의 고백이다.”라고 한다. 고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본 초판에 “님기림”이라는 부제가 달린 사연이다.

책의 성격은 아우구스티누스 스스로 “비록 내륙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소싯적부터 조그만 잔에 담긴 물을 보고도 나는 바다를 상상할 수 있었다.” 목마를 때 마시는 한 모금 물에서 바다라는 수평선을 떠올렸듯이, 배고파 음식을 먹는 포만감, 눈앞의 잔 꽃송이 하나를 눈여기는 놀람, 여인의 미소와 포옹, 순간순간 감지하는 경이로운 앎에서 무한하고 영원하고 궁극적인 ‘절대지평’으로 시선을 돌리던 이 조숙한 소년. 청년이 되면서 그 지평선에 ‘진리’라는 이름을 붙인 다음 “당신을 향하도록 우리를 만드셨으므로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우리 마음이 안달을 합니다.” 라고 실토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진리를 찾아내면 자기 삶을 송두리째 거기에 걸겠다는 각오로 임하였으므로 그 진리에 당초부터 ‘하느님’이라는 종교적 명칭을 부여한다.  “오, 영원한 진리여, 참된 사랑이여, 사랑스러운 영원이여! 당신이 내 하느님이시니 밤낮으로 당신을 향해 한숨짓습니다.”(7,10,16) 따라서 철학은 호기심의 충족이 아니라 당연히 삶으로 신봉되는 종교여야 했고, 그 진리에게서 듣고 싶었던 답은 오직 하나, “나는 너의 구원이다!”(1.5.5)였다.

그렇게 20여 년 찾아 헤맨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이라고 깨달았을 때에 그는 선언한다. “이제 당신만을 사랑하니… 저는 당신만을 섬길 각오가 되어 있나이다.” 나이 33세에 선언한 이 언약을 그는 이후 44년간 수도자로, 성직자로,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충실하게 실행에 옮겼으면서도 그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되뇌던 탄식이 있다.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sero te amavi)! 그토록 오래고 그토록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습니다!”(10,27,38)

「고백록」의 경우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므로 필사본의 숫자도 엄청나고 따라서 필사본들의 차이를 대조하고 검토 수정하여 소위 학문용 ‘비판본’(critical text)을 편찬하는 작업이 19세기부터 이루어졌다.  라틴문학의 황금기에 해당하는 키케로와 베르길리우스에 뒤이어, 3세기부터 불가타 라틴어 시대가 왔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라틴문학 말기를 대표하는 문장가다.  로마 변방인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인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의 황실에서 수사학 교수로 초빙할 만큼, 당대 최고문장가였다.

고백록을 비롯한 이 교부의 저서들에서는 주옥같은 명문장이 무수히 나온다.  《고백록》은 총 1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9권까지가 《고백록》의 전부로 자신이 회심할 때까지의 삶을 회상하면서 자신이 실제 겪은 것을 고백한 부분이다.  제1권에서 9권까지는, 354년에 태어나서부터 387년 서른세 살에 밀라노 성당 부활전야 미사에서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고 북아프리카 고향으로 돌아가다 오스티아 항구에서 어머니를 사별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부록처럼 붙은 제10권은 고향 타가스테로 돌아와 살던 수도생활, 히포의 사제와 주교로서의 성직생활을 호기심 많은 독자들에게 들려주면서 어떻게 자기를 닦아나가는지 소개한다. 후반부에 해당하는 제11-13권은 구약성서 「창세기」를 펴들고 ‘천지창조’로 시선을 옮겨 세계의 기원과 시간문제에 사색을 기울이며 창조신학과 시간에 관한 철학적 고찰을 개진한다. 

세계의 시원을 ‘창조설’로 확립한 사상가가 아우구스티누스이며, 시간을 피조물인 물체들의 한 차원으로, 시간은 인간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피조물이 존재하기 시작하면서 시간이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해서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 하느님은 뭘 하고 계셨느냐?” 시비를 일소시킨다.  10권에서 13권까지 삶의 가운데 중요하게 대두되었던 구약의 창세기와 같은 여러 주제들을 분석한 내용이다.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그의 어머니 모니카를 떼어 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기독교로 귀의 하기까지 어머니인 성녀 모니카의 헌신적인 기도와 노력이 있었다. 레몬 크리스티아니가 지은 《아들아, 내 치마폭에는 눈물과 기도가 담겨있다》라는 책은 성녀 모니카의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한 가슴을 치며 기도했던 안타까운 모습과 아름다운 결실을 그린 일대기이다. 

《고백록》의 많은 부분은 그가 인생 초반에 저지른 죄악과 실수를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도 회심 이전에는 보통 사람과 같이 결점 많은 인간이었다.  그의 생애는 고매하고 추상적 진리를 관조하는 ‘차가운 형광등‘ 아니라 시뻘건 불길을 널름거리면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자신과 타인들의 삶을 송두리째 삼키는 불꽃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진리의 연인”이라고 부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20대를 살면서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을 품고, 신을 외면하는 선택을 하고 수도원을 빠져나와 향락의 길로 들어선 적도 있다.  ‘성자’ 이자 고차원의 정신세계를 구현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 그이기에 이 방황이 흥미롭다. 방황은 사람을 한층 더 크고 단단하게 성장시킨다.

청춘시기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그 선택이 아닌 것 같으면 돌아서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것이다. 이것이 청춘의 특권이다.

잘못된 선택일 것 같아, 알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현실에 안주하려고 한다면 진전은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18)는 사도 바오로 이후 그리스도교 가장 위대한 교부일 뿐더러, 오늘날 ‘유럽 연합’이라는 정치집단으로 집결하는 유럽문화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합류한 한강이라는 문화사 평가가 옳다면, 아우구스티누스야말로 1600년 전에 그리스-로마 사상과 유다-그리스도교 종교라는 두 강줄기를 합류시킨 인물이다.

‘유럽 사상사의 양수리’에 해당한다.  “인간이란 그 자체가 실로 위대한 심연이다.”는 놀람에서 시작한 인간 탐구가 이 책을 마치면서는 “인간이란 사랑이다!”라는 답변을 찾아낸다.  “하느님은 사랑이다.” “그런데 사람은 하느님을 닮은, 하느님의 모상이다.” “따라서 사람은 사랑이다.”라는 삼단논법이다.

“물체는 제 무게의 중심(重心)에 따라서 제 자리로 기운다. 제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제 자리를 찾는다. 나의 중심은 나의 사랑. 사랑으로 어디로 이끌리든 그리로 내가 끌려간다.”(13,9,10)는 말 그대로입니다. 인간 개인 의지와 집단 의지를 사로잡고 움직이는 것이 사랑이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대상이 무엇인지 “알면 사랑하게 된다.”고 가르쳤으나 아우구스티누는 “사랑하면 그 대상을 알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랑이 진리를 알게 해 준다는 말이지요. “진리를 아는 이는 그를 알고 그를 아는 이는 영원을 압니다. 사랑이 그를 압니다.”(7,10,16)

인간의 본질이 사랑이라면, 인간은 사랑으로 구원받고 사랑으로 멸망한다는 것이 「고백록」을 읽는 독자들에게 건네는 이 교부의 메시지다.  그의 다른 대표작 「신국론」의 골자는, 인간은 “사회적 사랑으로 하느님의 도성 에 속하여 구원받고, 사사로운 사랑으로 지상의 도성에 속하며 멸망한다.”는 것이다.
 
쉽게 풀자면, 안으로 굽는 팔은 ‘사사로운 사랑’, 팔을 밖으로 펴는, 개인적 집단적 이기심을 극복하고 바깥으로 펴는 노력은 ‘사회적 사랑’이라고 불린다. 그런 뜻에서 십자가에 못질된 그리스도의 두 팔, 안으로 굽힐래야 굽힐 수 없는 두 팔에서 자기 신앙의 완성 경지를 배우는 교우들도 있다
“내달려 가거라! 내가 가서 안아서 데려오리라!”  그래서 이 교부의 윤리학은 단순하다. “사랑하라!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ama et quod vis fac!) 다만 그 사랑은 사회적 사랑(amor socialis)이어야 한다.
 
개인으로든 인류 집단으로든 ‘사회적 사랑’으로는 구원을 받고 ‘사사로운 사랑’으로는 멸망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경고는, 21세기의 지성인들에게도 의미심장하다.  이 교부는 현대 인류에게 “평화는 정의의 열매!”라는 사회교리의 초석을 제공하였다.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라고, “정의를 확립하지 못하는 권력은 사법권이 없다!”고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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