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와 공공성

                                  세월호 사고와 공공성

세월호 사고와 구조의 진실은 얼마나 더 파야 끝이 보일까. 사고 후 한달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매일 새로운 사실들이 추가되고 있다. 침몰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밝히는데는 많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최종적으로 배가 인양돼야 지금까지 추정한 원인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왜 승무원들이 그 많은 승객들을 두고 자기들만 탈출했는지, 왜 구조는 빨리 이뤄지지 않았는지, 왜 최초 탈출자 174명 외에 구조된 사람이 한 명도 없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속시원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하루 하루 새로운 의문만 더해지고 있다. 그래도 현재 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결론은 청해진 해운, 해경, 해수부, 정부 등 관련된 주체들의 부도덕성, 부패, 직무 유기 등 온갖 문제가 얽혀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투명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별히 가장 투명해야 할 공공기관의 투명성 수준이 모든 부도덕과 부패의 집합소인 청해진 해운의 수준과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공공기관에게 투명성이 요구되는 이유는 공공기관이 하는 모든 일이 공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는 ‘공공성’이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로 설명돼 있다. 이것을 해석하면 공공기관의 업무는 사회 모든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사적 이익을 위한 판단이나 왜곡이 이뤄져서는 안 되고 모든 국민의 안전, 이익,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수백 명의 목숨이 걸린 세월호 사고 후 구조 작업과 관련해서는 이런 공공성이 무참히 짓밝혔다. 물론 어떤 기준을 들이대는 것조차 쑥스러울 수준의 투명도를 뽐내는 우리나라 공공기관을 두고 공공성 실현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일 수 있다.

그렇지만 세월호 사고는 워낙 큰 참사였고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이념도 개입되지 않고 순수하게 사람 목숨만 관련된 엄중한 일이었기 때문에 공공기관이 장난을 칠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해상에서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해경은 사설 업체와 결탁해 구조 작업을 지연시키면서 제대로 국민들의 뒤통수를 쳤다. 세월호 안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던 16일 오후 세종로 청사로 전국의 안전 총괄 간부들을 불러 모아 편하게 회의나 하고 있었던 안행부의 무관심은 말할 것도 없고, 해운업 관련 기관 관리 소홀에 대한 책임을 피하고 자신의 잘못을 덮는 일에만 정신을 쏟은 해수부의 몰염치도 가관이었다. 다른 정부부처 및 청와대의 무관심과 책임 떠넘기기 또한 분노를 불렀다.

정부와 공공기관들에 대한 기대는 이미 접은지 오래 됐고 다만 궁금한 것은 그들이 어떤 진실을 더 숨기고 있는지다. 그동안 공공기관들은 ‘공공성’을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취급하며 자신들이 하는 일은 공공성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토를 달지 말라고 사람들을 윽박지르곤 했다. 공공정책에 국민들이 저항하고 갈등이 생기면 공공성이 먼저라며 밀어붙이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공공기관들이 사실은 공공성에 전혀 관심이 없음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안이 워낙 중대하고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다보니 다른 때처럼 쉽게 잡아떼는 일은 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비판을 쏟아내고 언론이 물고 늘어지면 마지 못해 인정을 하거나 실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다들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공공성을 좌우명으로 삼아야 할 공공기관이 공공성을 패대기쳐버린 가운데 다른 곳에서 공공성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유족도 실종자 가족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미안합니다’라고 말하고 이유는 자신의 행동과 태도가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사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 및 안전과 연결돼 있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공공성 실현과 연결돼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란 리본을 통해 실종자 및 그 가족들과 간절한 염원을 공유하고 분향소를 찾아 애도하며 공공기관에게 두 눈 부릅뜨고 실종자 수색 작업을 감시하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끊임없이 언론의 보도 내용을 감시하고 언론은 대중의 감시와 압력에 힘입어 계속 새로운 진실들을 밝혀내면서 새삼 언론의 공공성을 되새기고 있다.

대중의 공공성 자각과 관련해 가장 극적인 사례는 사망자 및 실종자 가족들의 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승무원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가족들은 슬픔과 절망으로 경황없는 중에도 언론을 찾아 아이들의 영상을 제보했다. 아이가 남긴 영상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도록 울었을 가족들이 아이들의 영상이 더 이상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공적인 증거로 쓰여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구조 작업이 시작되던 때부터 해경과 정부의 태도와 행동에 끊임없이 의심을 품었던 가족들은 끊임없이 언론과 정부를 다그쳐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도록 했다. 구조 작업이 제대로 이뤄졌다면 가족과 다시 만났거나 시신이라도 이미 품에 안았을 사람들이 제대로 슬퍼할 시간도 없이 진실이 드러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공공성을 마치 공공기관의 전유물이거나 전문가들이 점잖은 토론 자리에서나 쓰는 말로 생각했다. 공공성이 공적 영역의 일에만 관련된 것으로 착각하고 공공기관이 항상 최소한의 공공성은 지킬 것으로 근거 없이 신뢰하기도 했다. 그런데 공공기관의 공공성은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고 국민들의 행복도 보장하지 않으며, 가장 최악으로는 국민들의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하지 않는 말뿐인 것이었다. 보고서에 있는 숫자 및 도표와 함께 장식처럼 취급되는 공허한 개념일뿐 국민들의 생활은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공공기관이 홀대하는 공공성은 우리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며, 때문에 누구나 실현할 수 있고 또 실현해야 하는 것으로 세월호 사고를 통해 우리사회에서 거듭나고 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떠나간 사람들을 제대로 애도하기 위해,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인간으로 존중받으며 살기 위해 공공기관의 공공성도 언론의 공공성도 결국 국민들이 감시하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부와 언론은 물론 기업의 공공성을 회복시켜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폭력적 구조를 뜯어고치는 일 또한 매우 안타깝지만 국민들이 선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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