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런 나라에서 살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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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조난사고로 숨진 단원고 학생의 독백 서덕석 (열린교회목사, 시인)
배는 요동치며 뒤집혀져 가는데어디다 발을 놓고 손으로는 무얼 잡아야 하는지….
넘어지고 자빠져 바닥과 벽사이 모서리 같은데 끼었는데
그저 꼼짝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데 아무도 와 주질 않아….
이제 우린 어떻게 되지…. 애들아, 죽는 거 아냐?….
카톡을 날려 보지만 친구들도 무섭기만 하다네
선장은 첫 번째 구조선을 타고 도망가 버렸는데
꼼짝 말고 있으라는 지시대로 행동한 우리가 바보였다나
이런 세상에서 살았다는 것이 힘들고….. 창피하고
괴롭고도 화가 나서 가슴이 먹먹하네요
우리, 정말 …. 대-한민국이 맞나요?
입만 열면 법과 규칙을 지켜라, 시키는대로 하라면서
높은 자리를 차지한 어른들부터 규칙을 우습게 만들고
힘없는 우리들만 바닷물 속에 쳐 박아 놓고 몰래 도망가나요?
추잡해요….섬짓하고, 무서워요…
돈만 알고 제 살길만 찾는 어른들이 미워요
사람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죠, 돈만 있으면 다 된다죠
이렇게 소중하고 작은 우리들의 꿈들이 망가져 가는데
숨은 쉴 수 없고 차가운 바닷물만 삼켜지는데
그저 누군가가 뭔가로 세계 1등 하고, 금메달이나 따고
대한민국이 그럴듯하게 보이기만 하면 그만인가요,
이제 이런 나라에서 살기 싫어요
어른들의 욕심에 우리들의 소중한 꿈이 시들었어요
거짓과 위선, 퇴폐문화, 도박성 오락, 몰인정으로 넘쳐나요
수명을 다한 원자력 발전소가 다시 돌아가고
도시를 위해 농촌이 희생되는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죠
재벌들의 사업편의를 위해서 얼마든지 규제도 풀어주고
(세월호도 그렇게 해서 다시 물에 뜨게 됐죠
우리를 죽인 청해진도 이름만 바꾸고 또 다시 배를 띄울 거예요)
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고 죽으면 보상금 몇 푼이면 해결되고
사람목숨이 돈보다 우습게 여겨지는 곳에서는 살 수 없어요
이런 나라에서 살면 안 되나요 ….
법과 규칙을 지키는 양심적인 어른들만이 높은자리에 앉고
그분이 하는 것을 보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나라예요
거짓말 하지 않고 속이지 않는 정직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고,
1등하기보다는 남들과 잘 지내는 사람이 더 인정받으며
자기 몫만 챙기기 보다는 모두를 행복하게 할 줄 아는 세상 ….
청소년들이 집을 떠나 여행하더라도 전혀 무섭지 않고 불안하지 않으며
만나는 어른들은 모두 믿고 따를 수 있는
훈훈하고 따뜻한 그런 세상에서 살 순 없나요?
우리, 정말 이런 나라에서 살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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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월호 참사에 등장한 노란 리본
SNS을 나와 길거리에 등장을 했다는 보도다. 안산 단원고 그리고 시내에 희망과 위로의 사연이 기록된 노란리본이 매여있다. 이 노란 리본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사고 몇일후 생사를 알수 없고 구조를 걱정하며 희망의 염원을 담은 마음으로 한 대학생이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리고 처음에는 이것을 사용하면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그것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아이콘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후 다시 여러가지로 변형된 문장과 내용으로 더 많이 퍼자나가고 있다. 아직도 생사를 알수 없는 아이들과 가족들 구조의 손길을 격려하며 무사히 돌아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노란 리본이 이런 의미을 담은 의미는 조의를 의미하는 검은 색과 달리 생환과 희망을 담은 색이라는 것이다. 1960년 미국의 남북전쟁시이 전쟁에 참가하여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아들들을 기다리는 한 어머니의 기다림에서 시작되였다고 전해진다. 또 미국의 팝 가수 토니 올랜도가 부른 히트 팝송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늙은 떡갈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 주세요) 라는 노래 가사에서 그 절정을 이루웠다. 그런 역사적 문화적 의미로 노란리본의 물결은 온 나라로 퍼져나가 있다. 생사를 알수 없지만 우리의 다짐은 살아있는 아이들이라도 그 생명을 지키며 안전하게 살아갈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약속이 아닐 까 한다. 이제 교회도 노란 십자가를 누가 만들면 좋을 것 같다.
‘Yellow Ribbon’ 의 유래와 전승
‘노란색 리본’의 유래는 청교도 혁명까지 올라간다. 당시 의회파 소속의 청교도들은 젠틀맨 혹은 자유농민으로 매우 급하게 조직되었으며, 통일된 제식군복이 없는 상황에서 아군 식별이 필요했다. 그래서 명도가 높은 노란색으로 띠를 만들어 어깨나 허리에 걸치고 전투에 나갔는데, 이렇게 사용하게 된 노란색 띠는 올리버 크롬웰이 조직한 철기대나 신형군에게도 사용되었고, 의회파 소속 전 군대에서도 사용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런 노란색 띠는 윌리엄 프레데릭 예임스(William Frederick Yeames)의 유화인 ‘When Did You Last See Your Father?’나 켄 휴지스(Ken Hughes)의 1970년도 영화인 ‘크롬웰(Cromwell)’에서도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사용된 노란색 리본은 청교도들의 아메리카 대륙이민으로 미국에도 전파되었다.
이런 ‘노란색 리본’이 언제부터 회상이나 그리움의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19세기 미국에서는 ‘노란색 리본’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구전되었는데, 그것은 남북전쟁 당시 한 여성이 미 육군 기병대에 복무하고 있던 남편 혹은 사랑하는 이에 대해 헌신을 증명하기 위해 돌아올 때까지 머리카락이나 목에 노란 리본을 매달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전설은 당시 미 기병대의 연대병과장이 노란색이어서 노란색은 미 기병대를 상징하는 색으로 통했고, 서부에서 복무하던 기병대 군병들은 먼지를 막기 위해 손수건을 두르고 정찰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손수건 색깔이 보통 노란색이었다는 점에서 그 기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서부를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 프레데릭 레밍턴(Frederic Remington)의 1888년 그림인 ‘Lieutenant Powhatan H. Clarke, Tenth Cavalry’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미 육군에서는 노란색 리본을 주제로 한 많은 행진곡이 불렸는데, 노란색 리본을 언급한 최초의 곡은 조지 A. 노튼(George A. Norton)이 1917년 작곡한 ‘Round Her Neck She Wears a Yeller Ribbon(For Her Lover Who Is Fur, Fur Away)’였다. 이 곡은 가상의 인물인 수지 심킨스(Susie Simpkins)라는 여성이 군인으로 출병한 실라스 허버드(Silas Hubbard)라는 연인을 기다리는 내용의 곡으로, 이 중 노란색 리본에 대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Round her neck she wears a yeller ribbon, She wears it in winter and the summer so they say, If you ask her "Why the decoration?" She’ll say "It’s fur my lover who is fur, fur away.
1940년에는 작곡가 루스 모건(Russ Morgan)이 ‘She Wore a Yellow Ribbon’이라는 미군 행군가를 작곡해 미치 밀러(Mitch Miller)와 더 앤드류스 시스터스(The Andrews Sisters)가 불렀는데, 이 노래의 초입부는 다음과 같다.
Round her neck she wore a yellow ribbon She wore it in the winter And the merry month of May When I asked her, Why the yellow ribbon? She said, It’s for my lover who is far far away
1949년에는 존 포드가 감독을 맡은 동명의 서부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주로 기병대와 관련된 유래로, 현재 사용되고 있는 보편적인 의미의 ‘노란색 리본’과는 거리가 있다.
그 후 1959년에 펜실베이니아 주의 유명한 법학자였던 커티스 보크(Curtis Bok)가 캘리포니아 주 치노(Chino)에 있던 교도소장인 케논 J. 스쿠더(Kenyon J. Scudder)에게 들은 말을 토대로 ‘Star Wormwood’라는 책을 썼는데, 그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It is the story of two men in a railroad train. One was so reserved that his companion had difficulty in persuading him to talk about himself. He was, he said at length, a convict returning from five years’ imprisonment in a distant prison, but his people were too poor to visit him and were too uneducated to be very articulate on paper. Hence he had written to them to make a sign for him when he was released and came home. If they wanted him, they should put a white ribbon in the big apple tree which stood close to the railroad track at the bottom of the garden, and he would get off the train, but if they did not want him, they were to do nothing and he would stay on the train and seek a new life elsewhere. He said that they were nearing his home town and that he couldn’t bear to look. His new friend said that he would look and took his place by the window to watch for the apple tree which the other had described to him. In a minute he put a hand on his companion’s arm. "There it is," he cried. "It’s all right! The whole tree is white with ribbons.[1]
이것은 열차 안의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둘 중 한 남자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아, 길동무인 다른 남자는 자신에 대해 한 번 말해보라고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윽고 그가 말하기를, 그는 죄수로 멀리 있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가 5년 만에 출옥했는데, 가족들은 너무 가난해 찾아오지도 못하고, 신문 기사를 거의 못 읽을 정도로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 자신을 위한 신호를 만들어 놓으라고 편지를 썼는데, 만약 가족들이 그를 원한다면 정원 맨 끝자락 철도 가까이에 있는 큰 사과나무에 흰 리본을 묶어 두고, 그러면 자신이 기차에서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가족들이 그를 원치 않는다면 아무것도 걸어두지 않으며, 그러면 그는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다른 곳에서 새 인생을 찾을 것이었다. 그는 마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래서 밖을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새 친구는 그 대신에 창가 쪽에 앉아 사과 나무를 보고 말해주겠노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남자의 팔을 잡았다. "바로 여기야.", 그가 말했다. "세상에! 나무 전체가 흰 리본으로 덮여 있어!"
이 이야기는 비록 전체적인 골격은 가사의 내용과 같지만, ‘열차’나 ‘사과 나무’, ‘흰 리본’ 등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이러한 유형의 돌아오는 유형수에 관한 이야기는 1960년대 종교적인 목적의 출판물이나 미국 교회의 청년 사역 활동에서 구설로 전해지기도 했는데, 아마 이러한 이야기가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Parable of the Prodigal Son)’와 유사한 점이 있기 때문일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형식의 ‘노란색 리본’에 관한 이야기의 골격과 구체적인 사항은 1971년 신문 칼럼니스트인 피트 헤밀(Pete Hamill)이 뉴욕 포스트에 기고한 ‘Going Home’이라는 칼럼에서 처음으로 찾을 수 있다. 이 글은 플로리다 주의 포트 로더데일로 가는 버스에 있던 한 대학생이 그 도시에서 유형수였던 한 사람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가 길가의 떡갈나무에 묶여있는 ‘노란색 손수건’ 을 찾고 있었다는 내용의 칼럼이었다. 이 이야기가 유행하면서 9달 후인 1972년 6월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다시 올라왔고, 같은 달 미국 ABC에서는 이 이야기를 각색한 드라마가 방영되었는데, 여기서 배우 제임스 얼 존슨(James Earl Jones)이 돌아오는 유형수 역할을 맡았다. 또한 나중에 피트 헤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1977년 야마다 요지(山田 洋次)가 《행복의 노란 손수건》 (幸福の黃色いハンカチ)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1973년 어빙 레빈과 러셀 브라운이 지은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d Oak Tree’가 크게 성공하자, 헤밀은 이 곡은 자신의 칼럼을 토대로 제작된 곡이라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레빈과 브라운은 자신들이 군에 복무하면서 이런 유사한 이야기를 들었고, 귀환병을 유형수로 바꾸는 등 약간의 수정을 해 작곡과 작사를 했다고 주장했으며, 변호인이 증인으로 불려온 민속연구가가 헤밀이 쓴 이전의 여러 유사한 이야기를 증거로 제시하면서 그는 패소했다고 한다.[2]
영향
이 음악은 이후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탔는데, 방송음악협회(Broadcast Music Incorporated, BMI)에 의하면 이 곡은 라디오에서 17년동안 총 300만번 이상이 나왔다고 한다. 필리핀의 야당 지도자인 베니그노 아키노가 3년간의 미국 망명 후 필리핀으로 돌아올 때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암살당하자, 이 노래와 노란색은 니노이를 상징하는 모티브가 되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반대 시위에서 많이 사용되었으며, 1986년 필리핀 총선에서 아키노의 미망인인 코라손 아키노가 켐페인을 벌일 때도 사용되었다. 베니그노 아키노가 암살된 날인 8월 21일은 필리핀의 국경일인 니노이 아키노 데이(Ninoy Aquino Day)인데, 이 날 마닐라 시내엔 노란색 리본이 많이 걸린다.
한국의 정치현장에서도 노란 색은 의미있게 등장한다. 신군부 전두환에 이어 노태우 정권이 탄생을 하게 되는 형국에 야당은 김영삼 김대중씨의 대권욕으로 말미암아 양분되여 결국은 김대중씨가 전통 민주당에서는 대선후보로 선출되기가 어렵다는 것을 판단하여 호남을 기반으로 한 평화민주당이라는 정당을 급조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당의 깃발을 노란색으로 만들고 선거바람을 일으키지만 결국 양 김은 패하게 되는 역사가 있다. 그후 노란 색은 노무현 정부에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노란색 리본은 역사적으로 많이 사용되었는데, 베트남에서 귀환하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사용되거나,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당시 억류된 인질의 석방을 기원하며 전국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91년 걸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에서 귀환 장병들을 환영하는 표시로도 사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