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 잉여 마비 시대에 새해 맞이하기!!

                 “시대의 마비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감정수업 이라는 책에서 철학자 강신주는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을 사람들의 마비를 다룬 글 이라 소개한다.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Dubliners)>(1914)에서 “내 의도는 내 조국의 도덕사의 한 장을 쓰려는 것이었다. 내가 더블린을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는 이 도시가 내게는 마비의 중심(the centreof paralysis)으로 보였기 때문이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데 더블린에 퍼져있는 정신적,문화적,사회적 병폐와 그속에 ‘마비’된 사람들의 모습은 성서에 예수님이 치유한 중풍병자의 모습과 오늘 이시대의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다. 

지난 시대 우리 자신과 사회를 이끌어 온 힘의 바탕에 진정성이란 게 있었다. 시대에 대해 고민하고 자신을 성찰하게 하던 윤리적 진정성, 그 고뇌의 시간 끝에 자신의 청춘을 걸고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렸으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겼고, 고난의 길을 걸었지만, 진정성은 시대의 모럴이 되었다.  

   
더블린 시내의 제임스 조이스

그러나 1987년 형식적 민주화 이후 현재까지 우리 사회는  ‘전 사회의 속물화’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이 시기에 한편으로는 형식적 민주화가 진행되는듯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과 안전에 대한 강박증적 요구가 자기계발로 연결되고, 그것은 조기학습에서 평생학습에 이르는 삶의 전 시기로 확장됐다.

 1997년 이후 무한경쟁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들은 성공지상주의, 입신출세주의, 노골적인 속물주의에 올인하여 수몰염치와 과시적 파렴치가 판치는속물주의로 세계로 급작스런 심리 전환을 이루게 된다. 

그래서 이제 진정성의 삶은 낡고, 효율적이지 않으며, 안쓰럽고, 심지어 역겨운 것으로 비춰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이후 도래한 세계는 속물과 동물들의 세계, 몰렴(沒廉) 무염치(無恥)에 의해서 지배되는 속물들의 뻔뻔한 당당함의 세계가 급속도로 펼쳐진다. 

   
 

그래서 최근 속물과 잉여라는 책을 쓴 백욱인교수는 우리시대를 “애비는 벌써 속물이 되었고, 속물에도 쉽게 끼지 못한 애비들의 자식들은 잉여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꼬집는다. 

시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도종환 시인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속물성이 좀더 구체적으로 고발되기 시작 한다.

도종환 시인은  " 최근 들어 어떤 베스트 셀러는 나이 들어 인생을 즐기고 싶으면 20대부터 속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대에 속물로 살지 않아도 30대가 되면 속물로 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왕이면 하루라도 빨리 속물로서의 삶을 깨달아 행복에 조금 더 빨리 다가가도록 돕자.” 라고. 속물이 되자고 외치는 책은 42쇄를 찍는데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책은 초판도 잘 안 나가는 현실이 되었다"라고고 한탄 하면서….

도종환 시인이 한 강연에서 현재의 시국상황을 김홍중 교수의 스노비즘(속물 근성)의 예를 들어 속물에 의한, 속물을 위한, 속물의 정치즉 스노보크라시의 시대가 되었다고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속물과 잉여의 세계의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지나가고 <응답하라 1994> 드라마처럼

두 문장은 모두 ‘너’를 찾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나와 비슷하게 ‘안녕하지 못한 당신’, 당신도 나처럼 고립돼 있다는 증거를 보면서

나만 좀비가 아니었구나 안심하면서 새로운 길을 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14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성서의 마비된 중풍병자의 친구들이 마비된 친구를 들쳐 없고 예수님 앞으로 나간 모습을 다시 돌아보며 오늘 우리도  속물과 잉여로 좀비처럼 마비된 친구들을 들쳐없고 모두들 안녕하십니까, 응답하라라고 외치며 군중을 뚫고 지붕을 뚫고 우리의 신앙의 마비현상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나가는 새로운 공동체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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