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은실의 중세교회 이야기

                                    손은실의 중세교회 이야기  

손은실(장로회신학대학교, 학술연구 교수, 파리 4대학(소르본, Ph.D)  

 1. “교회사는 하나님의 교회 개혁의 역사”

최근 세계인의 이목을 주목시킨 신임 로마주교(교황)의 신선한 행보를 보면서 문득 교회사는 ‘하나님의 교회개혁의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일 해외 뉴스에서 가톨릭 교계를 둘러싼 의혹과 추문을 들으면서 작금의 가톨릭교회가 봉착한 도덕적 위기의 심각성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전 세계 가톨릭 교인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선출된 로마주교의 면면을 보면서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든지 교회가 부패할 때마다 개혁자를 일으키시고 교회를 쇄신해 오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되었던 것이다. 동시에 하나님은 현재 위기에 처한 가톨릭교회도 결코 고아처럼 내버려 두시지 않으실 것임을 믿음으로 고백한다.

“이런 말을 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은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라고 말씀하실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새 로마주교가 앞으로 잘해 나가는지 방관자처럼 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시작하시는 개혁 운동을 그가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구교, 신교, 정교회를 떠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불어 한국 개신교회도 도전과 자극을 받아 과감하게 개혁을 시도해 나갈 수 있도록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기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 중세교회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교회개혁

‘교회사가 하나님의 교회 개혁의 역사’라는 생각은 비단 이번 신임 로마주교의 선출 소식을 접했을 때만이 아니라, 사실은 중세교회사를 강의하면서 이미 학생들에게 여러 차례 강조했던 것이기도 하다. 개신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중세를 암흑시대로 일축해버리고 중세 교회 천년의 무궁무진한 영적 보고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중세교회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교회 개혁을 몇 가지 단편만이라도 상기시키고 싶다.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교회는 세속권력의 비호를 받고 세속권력과 야합하면서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 때 하나님은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사막으로 나아가는 수도사들을 일으켜 세워 주셨다. 동방의 사막에서 시작된 수도운동은 서방에도 이식되었다.

서방 교회 수도사들의 아버지인 베네딕투스(Benedictus, 490-547)의 수도 규칙에 따라 세워진 베네딕도 수도회가 전 유럽에 확산되어 교회의 영적 쇄신을 이루어 나갔다. 하지만 800년 초부터 이 수도회도 귀족들의 토지 기부로 수도원이 대토지를 소유하게 되고 봉건 영주 계층에 통합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정치권력에 봉사하는 기관으로 변질되었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수도회가 본질을 상실하자 갱신 운동이 일어난다.

 
 

   
                                           노트르담 성당

 
                                                
 
                                                                 

10세기초부터 개혁을 주도한 클뤼니 수도회의 개혁 운동은 하나의 기적과도 같았고, 새로운 새벽을 가져 올 하나님의 개입으로 보였다. 거의 200년간 이례적인 능력과 헌신을 구비한 여섯명의 수도원장 아래 개혁의 물결을 전 유럽으로 확산시켜 나간 이 클뤼니 개혁 운동도 2세기가 지난 후 실패한다. 그 결정적 원인은 수도사들의 경건한 생활에 감동하여 신자들이 재산을 계속 바치고, 귀족들의 토지 기부로 수도원이 대토지를 소유하게 되면서 수도원이 봉건영주와 같은 세속적 권력을 가지게 된 데 있다. 부와 재산이 교회 개혁에 얼마나 큰 방해물이었는지는 교회사를 통해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부와 재산을 둘러싼 성직 매매가 자행되고, 감독과 수도원장은 세속 영주처럼 행세하고, 정치적 음모에 연루되기 일쑤였다. 이렇게 교회는 재산을 소유하게 되면서 권력자들의 음모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었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 편에 설 수 없게 되었던 뼈아픈 경험을 수 없이 해왔다. 지금도!

클뤼니 수도원의 개혁운동이 쇠퇴할 무렵, 1098년에 시토 수도회가 창설되어 “가난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난한 사람들”이 되기를 추구하면서 클뤼니 수도원의 대봉건영주적 호화스러움을 거부하였다. 하지만 매우 엄격했던 시토 수도회도 개인적 가난만 요구했고, 수도회는 토지와 수입을 소유했다. 이러한 수도형태만으로는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세계에서 밀려오는 부의 위협에 대항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보다 철저하게 복음적 가난을 실천하기 위해 구걸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자 한 의도에서 탁발 수도회가 생겨났다. 탁발수도회는 개인 소유뿐만 아니라 공동 소유도 금지했다. 프란체스코는 바로 이 탁발 수도회의 창시자였다.

하나님이 써내려 가신 중세교회의 개혁역사에서 물론 수도원중심의 개혁운동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사 시간에 한번 쯤 들어 보았을 그레고리우스 개혁으로 알려진 교황주도의 개혁운동도 있었다. 그레고리우스 개혁은 랭스 공의회(1049)로부터 시작해서 제 1차 라테란 공의회(1123)까지 지속된 갱신 운동으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1073-1085 재임)의 이름에서 명칭이 유래한다.

3. 교황 명칭에 대한 오해와 바른 이해

   
 

교황의 법적 지위는 로마의 주교다. 로마의 주교가 다른 지역 주교에 비해서 어떤 성격의 우월성을 가지는가 하는 문제가 교회의 1차 대분열이었던 1054년 동방과 서방 교회 분열의 주된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동방 교회는 로마주교는 다른 지역 주교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가지면서 명예상 첫째 지위를 가진다는 입장(primus inter pares)을 가졌고, 서방교회는 법적으로도 첫째 지위를 가진다고 보았다. 지금 여기서 로마주교의 우위성 문제를 논할 의도는 없다. 다만 개신교 신자들이 종종 많은 반감을 표명하고 있는 ‘교황’이라는 명칭의 유래만 짧게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교황’(pope)으로 번역된 용어는 그리스어 πάππας, 라틴어 papa로부터 유래한다. 이 단어의 의미는 아버지이다. 이 용어는 존경어린 애정을 담은 호칭으로서 고대교회에서는 모든 주교에게 사용되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로마주교에게만 사용되게 되었다. 그런데 왜 이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임금 ‘황’이 들어간 ‘교황’으로 번역되었는지 그 유래는 찾아볼 일이다. 전통적으로 로마 주교는 자신을 ‘하나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SERVANT OF THE SERVANTS OF GOD.)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대 그레고리우스 교황(c. 540 – 604, 교황 재임기간: 590-604)이 처음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그는 교황의 권위가 오직 겸손과 섬김을 통해서만 실현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 어떤 주장보다도 그의 인격 속에서 더 강력한 교황의 권위가 세워진다고 보았다.

4. 새 로마주교에게서 주목한 점

새 로마주교에 대해 수많은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나는 다음과 같은 점에 특히 주목한다. 그가 수도회 출신이라는 점, 보다 구체적으로 예수회 출신이면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창설자인 프란체스코를 즉위명으로 선택했다는 점, 첫 강론에서 종교개혁자 루터가 그토록 강조했던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한 점. 십자가의 신학은 어느 시대든지 참된 교회의 신학적 기초이지만, 교회 개혁의 시기엔 더더욱 그러함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가 십자가 없이 걷고, 십자가 없이 세우고, 십자가 없이 신앙을 고백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라 세속적인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주교, 사제, 추기경, 교황, 그 외의 모든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는 아니다.”

5. 즉위명으로 선택된 ‘프란체스코’

새 로마 주교가 선택한 즉위명 ‘프란체스코’는 아씨시의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 1181/1182-1226)에게서 유래한다. ‘작은 가난한 자’(poverello)라 불리는 프란체스코는 1205년 거의 폐허가 된 성 다미아누스 교회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중 “쓰러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라”는 말씀을 들었다. 처음엔 이 말씀의 의미를 교회건물을 수리하라는 것으로 이해하여 건물 수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예수님이 선교를 위해 제자들을 보내시는 복음서 내용을 낭독하는 것을 듣다가, 예수님의 말씀이 복음과 평화를 설교하면서 교회를 재건하라는 말씀이었음을 깨닫고 1208년부터 순회 설교를 시작하고, 수도회를 창설하였다.

프란체스코는 경제가 크게 발전하던 당시의 사회 경제적 상황에서 가장 외면당했던 복음적 가치가 ‘그리스도가 자발적으로 선택하신 가난’이라고 생각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던 그는 돈이 어떻게 사회를 타락시키는지 다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돈은 사람에게 잘못된 욕망을 부추기고 잘못된 안전감을 갖게 함으로써 사람 사이의 관계를 왜곡시킨다고 생각했다. 이런 확신에 기초하여 그는 급속하게 발전해 가는 세계에서 부의 증가가 가져올 사회적 도덕적 위협에 대항하려면 무엇보다도 복음적 가난을 철저하게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의도에서 프란체스코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구걸하여 생활하는 탁발 수도회(mendicant order)를 설립하였던 것이다.

6. 교회일치를 향한 진일보를 기대하며

새 로마주교가 선출되어 “Habemus papam”(=We have a pope)을 선언하던 순간, 새 교황이 papa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로마주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 그의 주의 깊은 용어 선택을 보면서 그가 교회일치에 대해서도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감사했다.

재임기간에 Dominus Jesus라는 문헌을 발표하면서, 개신교의 강한 비판을 받았던 전임 베네딕도 16세와는 달리 신임 로마주교는 교회일치의 길에서도 전진할 수 있기를 전 세계 교회가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1054년 동방과 서방 교회의 분열 이후 로마주교의 즉위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정교회의 세계 총대주교가 프란체스코 주교의 즉위식에 참석하기로 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벌써 들린다.

7. 한국에서 개최되는 제 10차 WCC 총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교회개혁의 역사 속에서 분열된 교회를 일치시키는 역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올해 10월 30일에서 11월8일까지 부산에서 개최될 세계교회협의회(WCC) 제 10차 총회는 이 중요한 역사의 일환이다. 이 총회가 아름답게 열리고 한국 교회의 개혁과 일치, 세계 교회의 일치를 위해 귀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개신교, 가톨릭교, 정교회가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번 총회의 주제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인도하소서”이다. 정의와 평화는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절실히 요청되는 가치인가? 절박한 생태 위기에 직면한 인류가 생명의 하나님 안에서 모든 차원에서 정의와 평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먼저 교회가 한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WCC 개최를 앞두고 한국 교회가 다시 분열하고 갈등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회개하고, 한국 교회 안에서 먼저 주님의 몸의 일치를 이루어 나갈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