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교회는 아니다
제주도 삼방산이 보이는 곳에다 2019년에 순례자의 교회를 처음으로 세운 김태헌목사의 사역이 공론장에 올랐다. 그간 고군분투 끝에 동역자들과 제주도에 이어 강화도까지 3곳이다. 이런 순례자의 교회에 공감하는 동역자들이 함께 해 현재 7개 교회라고 한다. 기성 교회에서 고민하던 소명과 직업으로써의 목회의 결론은 탈출해서야 해결했고 그 힘으로 지금 까지 버티어 온 것이다.
이번에 지난 사역에 대한 반성과 평가, 그리고 미래를 그려보는 모임으로 지난 5월 20일(화) 오전 서울 남대문교회에서 있었다. 관심있는 동역자들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 날 모임 제목은 “존재론적 교회 연구 모임” 제 1회 학술 세미나다. 이 자리는 성공담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현재 사역하는 이들이 겸손하게 "우리는 왜 이 길을 선택했는 가"? 를 살펴보자는 모임이라고 볼 수 있다.
강사는 실천신학대학교 정재영교수로 목회사회학의 전문연구자다.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로 교회안이 아닌 교회 밖에서 보자는 것이다. 정재영교수는 펜데믹을 거치면서 교회와 사회현상 연구와 세속화와 개인주의로 기성교회를 이탈하는 가나안성도들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해온 분이다. 또 대안적 목회모델로 제시된 마을목회의 사례와 현장에 대한 연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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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교수가 던지는 화두
정재영 교수 강의 제목은 “비제도권교회가 던지는 시대적 질문” 인데 자료료 한국의 종교 비율 사례를 통하여 98년 종교인은 52.9에서 2022년 37.1 로 하락했으며 무종교인은 47.2에서 62.9로 역전되였음을 제시한다(한목협 한국기독교분석 리포트) 이를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숫자는 줄고 있다는 것인데 이는 세계 종교인구가 현재 80%인것과는 대조적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앞으로 종교 변동에 대한 젊은이들의 생각은 불교(34.4), 카토릭(29.7), 개신교(16.2), 원불교(1,4), 유교( 1,0), 기타(2.3), 종교를 믿지 않을 생각이다(15.0)로 나타났다. 또 각 종교인들에게 물은 종교 호감도에서 카토릭이나 불교는 호감도가 높은 반면 개신교는 비호감이다. 그 종교가 갖는 상징어나 이미지도 카토릭은 도덕성, 진정성, 헌신성이나 희생이, 불교는 포용용, 상생, 친근, 엄숙성, 보수인 반면에 개신교는 배타적, 물질적, 위선적, 이기적, 세속적이라는 표징이 나와 충격인데 한마디로 인기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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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중 하나로는 코로나 이후로 교인들의 교회관 신앙관 예배관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탈교회를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나 목회자들도 생존하기 위하여 온라인, 공유, 이중직등으로 대처하는 가운데 순례자의 교회도 기성교회로부터 이탈한 사람이나 교회를 모르는 이들과 반종교족인 사람들까지 일단 만남의 장이 되었다는 사례다. 이렇게 변화하는 교인들의 이동 혹은 변화의 현상은 가나안교인만이 아니라 면모하는 프로팅 크리스천(교회 쇼핑)이 나온다.
이런 신학적 이론적 연구와 보고는 이미 미국에서는 연구서가 나온지 오래다. 그중 압권은 Do It Yoursel(DIY Religion) 라는 용어로 모든 것을 자신이 알아서 처리한다는 자기 종교화라는 말이 나온지 오래다. 토마스 페인은 “내 마음이 교회다", 토마스 재퍼슨은 ”나는 스스로 하나의 종파이다“, 쉴라라는 여성은 ”내 종교는 쉴라교입니다“ 라는 고백으로 기성교회나 목회자들이 들으면 경천동지할 말이지만 없는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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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평가
필자는 2024년 말로 교단법에 의하여 정년 은퇴하였고 신문은 아직 후임을 정하지 못해 겨우 유지만 하고있어 더 말을 보태기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이미 1983년에 성수동(뚝섬)에서 예장 최초로 시작한 민중교회(노동자교회)을 시작한 사람으로 후진들의 이런 도전과 용기와 언제나 지지자다. 그러나 이 일은 Movement가 되야 하는 데 그 운동에 투신할 주체(동지)와 가치(철학), RP(지속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
장청운동으로 시작하여 민중교회, 광산촌(태백), 기성교회(의정부) 그리고 선교사(일본 오사카)로써의 사역과 지난 15년 간의 인터넷신문 사역자로 경험하고 배운 바를 토대로한 것이다. 따라서 후진들의 이런 고민과 노력에는 언제나 적극 환영으로 남이 안가 본 길을 가는 그들을 축복한다. 이것은 모험이기도 하지만 그런 개척자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역사는 진전해왔다는 믿음이다.
이제는 한국교회나 교인들은 더 이상 제도교회 지도자들의 사적 욕망과 교권 출세를 위한 성공주의에 객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평신도를 깨워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교회안에서는 성공지향적 목사나 장로의 숙주가 된 교인들은 영적으로는 기도동역자로 물질로는 협력자로 가스 라이팅된다. 이런 점을 지식인과 젊은이들은 알고 있는 데 더 이상 교파교회의 생존을 넘은 과시는 멈추지 않는 욕망의 전차와 같은 괴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작은교회, 민중교회, 마을목회등으로 탈출구를 열어왔지만 역시 제도교회안의 몸부림일에 머물 뿐이다. 누구는 재수 좋아 성장하여 교권에 진입하여 총대나 임원 교권정치를 향해 과거를 잊고 달려간다. 따라서 이런 근원적인 질문은 제도교회안에서는 구조적으로 할 수 없고 그 답도 구태의연할 뿐이다.
따라서 순례자의 교회에 함께 하는 동지들의 존재론적 질문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서는 안되고 거기다가 다시 우리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과거 방주형교회(구원과 안전)에서 움직이지 않치만 언제나 그 자리에서 표징만으로도 항해자들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케 하는 등대형 교회는 좋은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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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영 교수는 3가지로 결론을 맺고 있다
1. 대안추구형/ 기존 제도교회의 틀로는 기독교 정신을 구현할 수 없다는 인식아래 다른 대안을 추구하는 것으로 문제의식을 갖고 대안적 공동체를 추구하는 공동체나 실험적 교회
2. 본질 회복형/기성교회와 대립적 관점의 대안제시를 넘어 교회 본래 모습 회복이다. 교인관리를 위한 행사나 프로그램보다는 깊이있는 성경연구, 기존 성직자 중심 지도력이 아닌 장로등 평신도들을 주체로 세우는 것
3. 필요 반응형/기존교회와의 대립이나 교회본질에 대한 질문보다 새로운 종교운동으로 교단을 넘어 현장에서 세워가는 것, 옥바리자 선교회, 명동 세입자 투쟁등 아픔과 고통의 현장에 찾아가는(세종호탤해고자 지원, 쿠팡노동자지지, 고공농성현장지지) 주일이 아닌 주중도 마다 않고 기존교회로써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의 전투적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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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장로회서는 이런 사역을 뒷받침 하기 위하여 사회선교사 제도를 두워 연구소나 시민사회등에서 활동하는 목회자들도 무임이 아닌 사역 범주에 넣어서 관리한다. 이런 제도는 이미 카토릭도 성당이 아닌 프란체스코 수도회등 다양한 사역을 인정한다. 프랑스의 경우는 외방선교회안에 ”노동사제” 평생을 노동자로 헌신하고 것인데 한국에도 1970년대 입국한 신부도 있었다.
정교수는 순례자의 교회의 가능성에 대하여 비신자들도 찾아가는 교회, 교권주의를 넘어 존재론적인 교회, 프랫홈 목회의 가능성, 탈종교 시대 시민사회 속에 존재하는 교회라는 아이탬을 들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기성교회와 공존 혹은 타협보다는 과감하게 탈출하여 새 길을 가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또 이미 순례자라는 단어가 주는 역사적 신학적 의미들이 확고하니 다른 것 필요 없이 순례자의 교회가 아닌 집이라는 개념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보기 바란다. 순례자는 이미 가정과 교회를 떠난 것이다. 길로 나선다면 많은 것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렇기에 오직 생존은 타인의 자비와 도움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겸손과 절제, 순종, 침묵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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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에 대한 역사적 신앙적 의미
순례(巡禮,pilgrim) 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성지를 찾아 참배” 라고 나오지만 그 내용은 헐씬 더 심오하다. 대표로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의 길인 성 야고보의 발자취 순례 길인데 그 시작은 813년, 한 은자가 별빛에 이끌려 성 야고보의 무덤을 발견하고 이를 ‘콤포스텔라(별들의 들판)’라고 부르게 되면서 한 때 년간 50만명이 넘는 순례객들이 걸었다고 한다.
당시 유럽의 크리스천들은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산티아고를 3대 성지 순례지로 11세기부터는 프랑스 국왕 필립 2세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순례길이 더욱 활성화된다. 처음 순례는 감사를 잊은 신자가 무료한 생활에 활력을 주기 위하여 길을 떠나 하나님 주신 만물과 성지로 가 창조의 설리를 깨닳고 걷는 육체적 피로와 쉼을 통한 재활의 의미다. 1인 여행은 숙식을 준비할 수 없으니 생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낮은 자세와 노동이 전제되고 감사를 발견하게 된다.
순례라는 말은 기독교에만 국한하지 않는 말인데 불교나 회교에서도 전통적으로 있어온 개념이다. 회교도들은 사우디에 있는 매카 방문이나 중국인들의 유명사찰 방문, 네팔 불교도들의 오체투지등에서 보듯이 길를 나서는 것 자체가 고행과 사색을 전재로한 행동이다. 우리나라에서 천주교나 불교도들이 순교성지나 옛 사찰을 방문하여 묵는 탬플 스태이등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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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교회 설립자 김태헌목사 발표에 대한 단상
김목사는 늦갂이 신학도로 직장생활도 해보는 등 남다른 여건속에서 출발한 목회자다. 그런 기질상 기성교회서는 느끼지 못하는 영적 목마름에 대한 질문을 위하여 그 자신이 탈교회를 통한 진짜교회를 추구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교인들로부터 제공받는 생활 보장없는 사역을 홀로 노동과 경제적 결립를 견디어 온 목사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이를 구체화하거나 신학적으로 명료하게 정리할 시간적 여우도 없었을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하여 자신이 받은 바 사명을 순례자의 교회라는 확신만으로도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제도교회의 눈이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용과 발상이지만 그것도 신앙의 한 고민의 산물이며 이 시대 세속화되고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라는 비판속에서 한번 쯤은 눈여겨 볼만한 사역이다. 단순히 호기심과 여행지에서도 기도할 수 있다는 부속물로써의 건물만이 아니다
발전하여 기존 교회형태로만이 아니라 산티아고 걷는 길에 있는 알베르게(숙소와 식당을 겸한 공동시설) 와 같은 역할로 카페나 식당 차량운전등 다양한 사역으로의 봉사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동록된 교인도 정규적인 예배도 모임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개인의 영성과 경건을 유지할 것인지도 관건으로 새로운 방식의 사역을 연구해야 한다. 기성교회를 뭐라고 하지만 그들이 드리는 설교나 성경공부등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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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교인이 없다고 하여 편하고 쉬운 사역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고민과 생각들을 이제 내놓은 것이니 우선 주체들이 더 배우고 확신한 일에 서서 동역자들을 규합하여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뜻을 펼치기를 바란다. 기성교회와 적대적 비판적 대립이 아닌, 아예 가보자 않은 다른 길을 가는 것이라고 보면된다.
따라서 사역에 대한 주관적 감성적 내용이 아닌 실천적 이론적 내용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전문가들로부터 검증을 받기 위해서는 동역자들과 깊은 연구와 정리가 필요하다. 자기의 사역에 대한 것이 간증을 넘어 신학적 이론적 도전을 하여 검증받고 더욱 명료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