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쉴 수가 없다" 미국의 신학대학들 항의와 시위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미국의 신학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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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듀크 신학대학원 채플 광고 "連禱, 哀禱, 解放" 배너(http://bit.ly/1wbRZrE) | ||
미국 연합감리교회 소속 듀크신학교에서는 최근 미국 퍼거슨시에 일어난 인종차별에 대해 고발과 저항의 기도회를 갖는다는 소식이 공지되었다. 신학생들이 자신들이 사는 이 세상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받아드리고 이에 반응하며 그들과 연대하는 기도회다. 이 땅에 신학교가 존재하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최근 미국 퍼거슨시에서 비무장 18세 흑인 소년을 총으로 쏜 백인 경관에 대해 퍼거슨시 대배심원은 “경관이 소년을 살해할 의도는 없었다” 고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 결정 후 퍼거슨시는 시위대로 큰 혼란이 일어났다. 흑인만이 아니라 주민들과 지역 교회들까지도 죽은 소년을 애도하며 시위대들의 지원과 피난처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이 발생한지 채 한 달도 안 되어 인종차별 문제가 또 다시 점화 되었다. 지난 7월, 뉴욕시의 5개 자치구 중 가장 보수적이며 백인 거주율이 높은 스태튼아일랜드에서 에릭 가너라는 43살의 흑인이 불법으로 담배를 팔다가 단속에 걸렸다. 당시 경찰은 가너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목조르기를 시도했는데 천식을 앓고 있던 그는 경관의 지속적인 목조르기로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https://www.facebook.com/#!/events/747083728695190/?pnref=story
12월 3일, 시 대배심원은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대니얼 판텔레오 경관을 불기소하기로 결정했다. 대배심원의 이와 같은 결정 후 가너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며 이 결정이 부정의의 상징이라고 믿는 이들을 통하여 "I can’t breathe!(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외치며 죽어가는 가너의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이를 본 많은 미국인들이 분노하고 있고 그 중에서 미국의 기독교인 특히 신학대학에서 연이어 기도회와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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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경찰의 지난 7월 에릭 가너 체포 당시 모습, 동영상 갈무리 | ||
한 보도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교단인 남침례교의 윤리와종교자유위원회 러셀 무어 위원장은, 대배심원의 불기소 결정이 내려진 다음 날 위원회 홈페이지 ‘Moore to the Point’에 글을 올렸는데 “교회가 흑인 형제자매들을 위해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 영상을 보고 동참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SNS에는 대배심원의 결정을 비난하는 목사들의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앨라배마 주에서 목회하는 남침례교 소속 스캇 슬레이튼(Scott Slayton) 목사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성경 말씀은 ‘숨을 쉴 수가 없어요’ 라고 외치며 비참하게 죽어 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자신에게 투영하는 것"이라는 글도 남겼다고 한다.
또 12월 8일에는 미국 장로교(PCUSA) 의 대표적인 신학대학원인 프린스턴신학교(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는 크레이그 반스(Craig Barnes) 총장과 교수 학생들이 이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행진을 했다. 또 이 사건이 벌어진 뉴욕 주 유니언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도 이 운동의 확산에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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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린스턴 신학대학 내에서의 항의집회(Facebook) "정의없는 평안없다" 는 표지가 보인다. | ||
이 시위에 참여한 뉴욕신학교 피터 헬첼(Peter Heltzel) 교수는 에릭 가너가 숨을 쉴 수 없다고 수차례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외침을 무시한 경찰을 비판했다. 그는 목사이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이번 사태를 그냥 묵과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은 뉴욕시 디블래지오(de Blasio) 시장과 시의 지도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했다. 이 편지에는 유니언신학교 세렌 존스(Serene Jones) 학장과 이슬람 센터의 칼리드 라티프(Khalid Latif) 이맘, 미국 개혁교회 역사의 시초인 미들컬리짓교회 재클린 루이스(Jaqcline Lewis) 목사 등이 함께 했다.
"우리는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정의와 평화가 가득한 곳이 되길 바란다. 그것을 위해 이 시대의 증인으로 함께 살아가길 원한다. 우리는 믿음의 지도자로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창 1:27) 것을 믿는다. 미국에서 어린이들, 특히 유색 인종의 어린이들이 안전해지는 그날까지 교계 지도자들과 교인들은 시위를 계속할 것이다." 라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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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시 청사 로비에 항의표시로 누워있는 시위자들 | ||
흑인들이 백인들로부터 당한 인권탄압과 차별과 투쟁의 역사는 기나 길지만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되는 로드니킹 사간과 LA흑인폭동 등은 그야말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이다. 그러나 이번 처럼 신학대학과 종교 지도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국가와 부정의에 대하여 항의를 한 경우는 흔치 않았다는 면에서 놀라움이 있다. 역시 미국의 신학교와 기독교는 죽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개신교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무기력하고 쇠퇴하던 기독교 지성이 흑인들의 차별과 아픔에 동참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 동안 흑인들조차도 백인화 되어 가고 바닥의 흑인들을 부랑아와 무질서의 대명사로 사회부적응과 범죄자로 지목, 국가가 폭력으로 다스리는 것을 묵인하던 상류층 흑인들과 백인사회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미국의 기독교가 흑인사회의 차별과 아픔에 동참하고 사회적 발언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로 보여진다.
이를 통하여 미국 기독교가 다시 한 번 사회참여의 전통을 회복하며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보여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미국에서 기독교가 사회적 아픔에 동참하고 치유하며 약자들의 친구가 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것은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처럼 미국에서 기독교가 사회에 책임있는 이들로 각인된다면 미국의 기독교가 가장 먼저 성공과 부의 노예가 된 천박한 자본주의로 인하여 잃어버린 기독교의 영성과 희생을 되찾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나라다. 지금 우리의 신학교는 학생들이나 모집을 해야 학교를 운영하게 되니 학생모집에 혈안이 되고 있다. 신학교마다 그 많은 교수들에 높은 연봉을 감당하려니 그러하다. 그러고도 안에서는 패거리가 나뉘어 싸움질이나 하고 있다. 학생들은 졸업 후 일반대학생들처럼 ‘취업’이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말썽이나 부리는 신학교들은 앞으로 사라져야 한다. 지금 학생들은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는 학교와 교수들에게 돈이나 가져다 주면서 누구 좋은 일이나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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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쿼바디스’의 대사 한 구절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