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적 저장 강박증

                                                      신앙적 저장 강박증

빈대 한 마리 잡으려 집을 태운다? 누가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할까? 어쩌다가 실수로 그런 것이지. 교각살우. 소탐대실? 작은 것을 얻으려고 애쓰다 큰 것을 잃는다. 누가 이런 멍청한 짓을 할까? 큰 빵과 작은 빵을 놓고,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누가 작은 빵을 가져가려 할까? 작은 빵이라도 가져가야 할 상황이라면 모를까?

네가 들었으니 이 모든 것을 보라 너희가 선전하지 아니하겠느냐 이제부터 내가 새 일 곧 네가 알지 못하던 은비한 일을 네게 듣게 하노니 이 일들은 지금 창조된 것이요 옛 것이 아니라 오늘 이전에는 네가 듣지 못하였으니 이는 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알았노라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네가 과연 듣지도 못하였고 알지도 못하였으며 네 귀가 옛적부터 열리지 못하였나니 이는 네가 정녕 배신하여 모태에서부터 네가 배역한 자라 불린 줄을 내가 알았음이라(사 48:6-8)여기서 보는 대로, 이사야가 경험하는 하나님은 새 일을 하시는 신이다.

일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그러한 사실을 명확하게 선포하게 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들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구약성경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경험하고 규명한 하나님의 새로운 모습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새로운 모습을 경험하면서 자신들이 가진 옛생각들을 수정하거나 버려야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신앙적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적 쓰레기를 자신들의 신앙적 공간에 남기지 않았다.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특히 애가와 욥기는 특별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모습을 체험하면서 발생하는 신앙적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다룬 책이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신앙적 쓰레기들을 귀중한 것으로 잘못 알고, 여기저기서 그런 쓰레기들을 모아오는 행위에 대해 엄중경고했다. 그리고 우리가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임을 강조한다. 우리가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살기 위해서는 옛것들, 신앙적 쓰레기를 제대로 처리해야 한다.

신앙적 쓰레기를 끌어안고 살면서 새로운 피조물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적 쓰레기들. 이것은 그릇된 신앙적 지식, 왜곡된 신앙적 시각, 뒤틀린 신앙적 사고를 가리킨다. 자신의 부족함과 낡음을 인정하고, 신앙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받아들여서 새로워져야 하는데, 온통 신앙적 잡동사니로 자신의 신앙적 공간을 가득 채워서 새로운 것이 들어갈 여지가 없는 신앙적 저장 강박증 환자들이 의외로 많다.  답답한 일이다.

예장뉴스

예장뉴스 관리자 계정입니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