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호 부총회장 취임과 105회기 출범

                          축하는 거창하게 출범은 조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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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장되시고 부총회장에 당선되면 섬기는 교회에서 나름 대로 취임이나 감사예배를 드린다. 105회 부총회장으로 당선된 류영모 목사는 지난 16일(토) 자신이 섬기는 일산의 한소망교회에서 드렸다. 신정호 총회장 취임감사예배는 27일(주일) 자신이 섬기는 전주 동신교회에서 화려하게 드렸다.

취임 축하예식 사회는 당사자인 신정호 총회장 본인이 하고 2부 사회는 총회 서기 윤석호 목사가 그 외 총회 5개 부서 총무들의 인사와 총회 사무총장 변창배 목사의 내빈소개 순서를 했다. 총회 공식 행사는 아니지만 총회 직원들도 전부 참석을 한 것이다. 설교는 전 총회장 안영로 목사가 했으며 전북지역의 유일한 전총회장 정복량 목사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와 축하했다.

   
 

그 외 전 총회장인 손달익 목사는 격려사를, 채영남 목사도 격려사를, 이성희 목사도 축하 인사를 했다. 축하에는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 난과 전북지역 8개 노회장의 꽃다발에 전북 송하진 도지사와 전주시 김승수 시장, 예장합동 총회장 소강석 목사는 영상으로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마무리 기도는 ‘전장연’ 회장 홍성언 장로가 했다.

총회장 신정호 목사는 "어려울 때 왜 부족한 저에게 총회장을 맡기셨나 생각하면서 솔로몬처럼 지혜를 구하며 나아갈 것"이라며 "도움을 주신 분들과 동신교회 교우들에게 감사드리며, 제가 총회장직을 잘 감당해 아름다운 총회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답사했다. 명실공히 전북의 지도자로 전국에 우뚝선 것은 사실이다. 

   
 

총회장 취임 감사 조용히 하면 안되나
근자에 보기 드문 거창한 총회장 취임 축하예식은 법에는 없는 일로 지 교회사정이고 소관이니 전적으로 그들의 권한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코로나19로 큰 행사를 자제하는 때에 주일 날 총회 임원들 까지 총 출동한 게 잘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105회 총회 진행에 대한 불만으로 총회장 탄핵론에 총회 불복론까지 나온 마당에 말이다.

현직 총회장 행사에 전 총회장들도 그렇고 정부와 지자체장까지 초청한 이 행사는 자칫하면 교회가 허례허식을 보여줄까 걱정이다. 취임 축하를 안한다고 해서 총회장이 아닌 것도 아닌 데 하나님 보라고도 아니고 사람들 보라는 것 밖에 안된다. 상대 후보가 없어 상처 받을 사람은 없을 것어 다행이다. 

세속적으로 출세를 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면 드는 경비도 보통이 아닐 것인데 아무리 교회나 지역에서 그렇게 하자고 하여도 자제했어야 했다. 추석이 끝나면 다시 점화될 105회 총회에 대한 후유증이 남의 일이 아닐 것인데 이런 행사가 맘 편하지도 않았을 것인데 말이다. 

   
 

명성교회 수습에 대한 불만 어떻게 풀것인가?
교단 내부와 외부에서 극대화된 명성교회수습전권위원회 수습안 철회에 대한 논의를 총회장이 고의로 회피했다는 오해를 하는 가운데 전개되는 불만들이 심상치 않다. 발언이나 토론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불만들이다.

지금 ‘예장연대회의’ 와 서명운동에서 주장하는 것을 정리하자면 총회장의 사과와 재발방지다 동일한 내용을 헌의한 12개 노회가 가을노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팔로웝을 할 것인지도 걱정이다. 그 외 ‘기윤실’ 이나 ‘세반련’ ‘명정위’ 와 일부 언론들도 부정적인 분위기를 달구고 있다.

또 하나는 장신대 임성빈 총장 인준 부결을 명성교회와 바꾼 것이라는 주장에 연금재단 사무국장과 다른 인준방식등이 모두 의도된 것이라는 오해다. 이로 인하여 장신대 학생들과 ‘직원협’, ‘교수협’이 투표로 부결한 것은 유감으로 대안을 내놓으라는 입장문을 냈다.

그 외 전광훈 목사에 대한 다른 교단에서의 이단사이비성 지정에 비하여 침묵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온다. 이에 대하여 지난 9월 23일 신정호 총회장의 취임 기자간담회에서도 "소통부족“을 인정하고 남은 의제나 미진한 것에 대하여 해 부서에서 계속 논의하고 임원회가 살핀다는 말로 다도거렸지만 그것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05회기 시무예배는 순교 성지 영광 야월교회에서
매년 새로 출범하는 신 임원들은 우리교단과 관련이 있는 지역의 교회나 성지를 방문하여 결의를 다지고 출정식을 해왔다. 작년에는 주기철 목사의 순교 본향 여수 애양원에서 드렸고 전해는 3.1 운동의 희생지 제암리교회에서, 그 전해는 전장 초소의 장병들을 방문하고 같이 예배를 드린 바 있다.

전 일 총회장 취임 감사예배를 드리고 전주에서 묵은 총회 사무총장과 5개 부서 총무단들은 시무식을 겸하는 영광의 야월교회로 이동하였고 지역노회와 현지 교회 교인들과 목회자 위주로 조촐하게 드렸다고 전한다.

그러나 관례 대로하면 총회장 시무예배는 총회의 상임부서 총무들만이 아니라 100주년 인근에 있는 총회 산하, 유관 기관 책임자들도 함께 해야 한다. 유지재단과 한국기독공보, 연금 재단, 문화재단, 지구촌 의료등 5개 기관은 총회와 함께 가야 하는 기관이기 축소해서 할 일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야월교회 순교지 소개(한국기독공보 안홍철 목사)
야월교회는 1908년 4월 5일 미국 남장로교 소속 유진벨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처음에는 염산리교회로 호칭되었다. 일제강점기 때는 교회에 계량 학교를 세워 한글교육 등 문명퇴치 운동을 전개하며 민족 의식을 고취하였다.

야월도는 섬이였지만 염산리에 교회가 이 곳밖에 없기에 육지에서 이 곳까지 교회를 다니는 성도가 늘어나게 됨으로 분립개척하여 세워진 교회가 1939년에 세워진 염산교회이다. 그리고 염산교회는 이후 1948년 현재의 설도로 옮겨져서 오늘까지 이르렀고, 염산리교회는 분립 개척이후에 지역이름을 따서 1939년에 야월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해방이후에 염산면은 남로당 거물인 김삼룡이 거주하면서 지역사람들을 많이 포섭을 하여서 1950년 전부터 공산당원들이 활동하였고, 6.25이후 북한군과 공산주의자들은, 1951년 9월까지 야 월교회 성도들을 설도 분주소에 끌어다 때려 죽이고, 허리에 돌을 매달아 물 속에 수장시키는 등 잔인한 학살을 하였다. 또한 교회에서 1km 떨어진 큰북재인 마을 공동묘지에다 직경 6m 넓이의 깊은 구덩이를 파고, 굴비 엮듯이 엮어 생매장시켰다.

순교자 조양현 영수와 최판섭 집사는 해방 전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최판섭 집사는 어머니가 “네 장형 최판원 집사가 잡혀 죽게 되었다”고 울면서 “네가 분주소로 들어가면 네 장형을 살려준다고 하니 네가 들어가거라.” 그러자 최판섭 집사는 찬송을 부르며 설도 분주소에 가서 설도 수문에서 형 최판원 집사와 함께 물에 빠져 장렬히 순교하였다. 남석우씨는 예수 믿는 반동분자라 해서 돌로 머리를 쳐 두개골이 파열돼 죽고 말았다. 야월교회 성도들은 하나같이 값진 신앙을 지키다가 노인부터 어린아이까지 전 교인 65명이 희생 되어 순교제물이 되었다.

공산세력은 교회당 건물을 소각해 버려 몇 년 동안 교회 없는 마을이 되었으나 1952년에 안창건 전도사(천호동성결교회 원로목사)에 의해 교회를 재건하였다. 이후 20여명의 목회자가 야월교회에 부임하여 목회를 하였지만 교회 다니면 다 죽는다는 순교의 아픔이 있는 지역이다 보니 전도의 어려움으로 장기 목회하신 분이 없고 1-3년 정도의 목회를 하는 분이 많았다.

그러다 1988년에 배길양 목사가 부임한 후 빨간 벽돌로 교회당도 신축하고, 순교자의 신앙을 계승하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순교자들의 명단을 추적하여 65인의 순교자의 명단을 확정하고 이 순교자 명단을 돌에 새겨 순교 기념탑을 1990년 11월 29일 세우게 됨으로 야월교회가 전교인 65명 순교성지 임을 교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전국에서 순례자들의 방문이 잦아져, 염산교회 출신 총회장 안영로 목사님 때 총회결의로 야월교회 순교기념관을 건립하는데 전국교회가 헌금을 하고 지자체의 후원으로 2009년 7월에 연건 평 250평 규모로 ‘기독교인순교기념관’과 ‘교육관’을 건립하여 오늘 많은 성도들에게 순교신앙을 전하는 장소로 쓰임 받고 있다. 2019년에 순교영성훈련센터 260평 규모의 건축허가를 받고 지금 건축 중에 있으며 이 순교영성훈련센터를 통하여 한국교회 및 세계교회에 순교신앙을 계승하고 전파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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