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총련 시대적 산물이다.
모든 조직은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면에서 신총연도 예외는 아니다. 신총연이 교단내 마이너들의 연대로 출발을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지방신학교, 지역교회, 그러나 열심히 공부하고 목회하고 충성한 목회자들의 결합체이다.
모든 조직에는 목적이 있다. 그럼 그들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창업자 고시영 목사는 목회자들의 권익(목사노조?) 이라거나 서울장신 출신 총회장을 보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게 못할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좀 더 세련되게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정직하게 말한 것이 실수였을 까?
그러나 겨우 그런 것만을 목표로 하면 이런 결과가 된다. 그러난 사실 그것은 하는 소리고 실제 목적은 힘을 갖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힘을 어디다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갖고 있지 못하면 조직은 사사화된다. 또 비슷하고 같은 목표를 갖은 조직들과 경쟁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조직은 그 생성과 발전 퇴보와 소멸의 싸이클을 보이며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은 명분이 중요하다. 거시적이고 의미있고 포괄적이어야 한다. 신군부의 전두환이 쿠태타로 정권을 잡고 내건 슬로건은 "정의사회 구현" 이다 정의롭지 않은 이들이 정의롭지 않은 방식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내건 구호지만 그런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기록을 할 수 밖에 없다.
교권파벌은 자연스러운 것
그동안 교단의 인물은 이북세에서 영, 호남으로 다시 영남의 분열고 호남과 중부 라는 지역구도로 짜여있었다. 그런데 지역이 아닌 조직으로 전체를 통합해낸 것이 바로 신총연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총연은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조직을 주도한 초기 멤버들은 전면에 나서기 보다 겸손하게 동역자들을 섬기는 자세가 있어야 했다.
교단에는 이미 서울 경기출신의 목회자들과 장로들의 모임은 정유장학회(구 한양선교회) 정유년에 시작되었다 하여) 호남의 온땅선교회, 경상도의 방파선교회, 충정목회자회, 강원도의 메바우선교회등이 있었다. 이런 조직들의 인적, 물적 토대는 대형교회와 교권을 획득한 시니어들이 권력틀에서 온존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지역을 넘어서 학교를 통합한 전국적 차원의 조직체가 등장한 것에 대해서는 평가를 해줘야 한다. 다만 조직의 건전한 목표와 실천강령이 나이브하고 대의적 의미와 건강성이 담보되지 않았다는 것이 한계다. 그져 자리안배와 밀어주기에 집중만 한 것은 아닌 가하는 비판이다.
그러나 지금의 잣대로 그런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초기 지도자들은 처음하는 일이니 그런 조직적 관점이나 의식을 갖고 출발한 조직이 아니었고 조직의 공적인 의미를 볼 수 있는 씽크탱크가 없었기에 지금의 잣대로 요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신총연 태동은 시대적 요청인 것은 어렵게 시작한 신학의 장에서 주경야독을 하는 만학도들의 패자 부활전의 출구였다. 그래서 각개전투보다는 연합전선이 필요했다. 전국단위의 힘을 결집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동네에서 힘이 있어야 했다. “시작은 미약하였지만 나중은 창대” 하리라 하는 말씀대로 학벌의 설움과 교세의 왜소함을 연합전선으로 극복했고 그래서 주류에 대한 반란의 성격이 컸다.
그러나 지역과 노회에서 목회도 인정받고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고 총대가 늘고 교권진입이 가능해지자 연대의 틀도 느슨해진다. 자리는 한정되고 하고 싶은 사람이 많다면 그것을 나누는 사람은 원망을 듣게 되어 있다. 그런 과오를 고시영 목사 혼자에게 전가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덕을 보고 배신한 이들이 더 문제다. 신총연이 교권정치화되었다는 비판을 하지만 비판하는 그도 역시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시대적 산물 신총연
신총연의 한계를 보고 용도폐기라고 하여 탈퇴한 한 이들에게 대하여 일전에 비판적 의견을 낸바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나가서 신총련의 조직적 한계를 극복했거나 건강하다는 증거는 없다. 이해득실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파선직전이라고 낙인찍고 탈출하는 이들도 똑 같은 비판을 받는 것이다. 2016년 년 대전신학대학 마져 신총련에서 탈퇴를 하므로 그 모양은 왜소해졌다. 그러나 연연하지 말고 조직문제를 극복하고 건강성을 담보한다면 된다.
그러나 신총연은 RP구조가 확실하기에 지역에서 건강하게 자리잡고 비 교권적 구조로 가면 오히려 건강한 조직이 된다. 신총련이 오류가 있다고 해서 탈퇴를 하고 문을 닫으라는 것도 그렇고, 닫는 다고 하는 것도 문제다. 특히 개척자인 서울장신 출신의 숫적 우위와 재정적 기여에 비례한 독식은 사실문제다.
신총연을 비판하려면 남은 자 보다 나간 자들이 먼져 비판받아야 한다. 그들은 기회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욕망을 체우고 더 체워지지 않자 나가버린 것이다. 특히 장신대 학부 동문회는 전혀 성격이 다름에도 파워의 전리품이 탐이나서 제발로 들어왔가 말도 없이 나간 야비한 사람들이다. 그 조직의 인자와 노선에 오류가 있다면 갈던지 노선투쟁을 해야지 가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신총연에 대하여 비판을 하려면 그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시각으로가 아닌 조직적 측면에서 해야 한다. 즉 조직이 이념이나 정책이 아닌 교권 상승에 대한 자리에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교회에 봉사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즉 기독교의 숭고한 정신인 희생과 헌신의 가치로 복무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말도 아무나 할 수는 없다. 동업자들끼리는 비판할 수 없다. 이 조직으로부터 객관성이고 중립성을 담보한 이들의 평가여야 한다.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지 씹어돌려서는 안된다.
2016년 신총연 총회를 기점으로 창업자 고시영 목사는 일선에서 은퇴를 했다. 아무리 영향력이 있다고 한들 이제는 종이 호랑이라는 소리다. 이제는 ‘한교연’ 의 연장선상인 ‘세기총’ 의 새 회장으로 피선되었는 데 그의 심경을 잘담은 인터뷰를 소개한다. http://www.ck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38
기회주의자는 비판받아야
다시 하면 그것을 인정했다면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침몰하는 배에서 저들만 살겠다고 먼져 뛰어내린 기회주의자들이 먼져 비판받아야 한다. 앞으로 서로를 탓하지 말고 서로의 자리에서 조직의 목표를 명료하게 하고 반성하며 활동하면 된다. 초기 그가 걸었던 조직의 목표와 의미가 구현되지 못하고 총회장만들기와 교권나누기를 전락한 것에 대하여 시인하고 고해성사를 했다는 면에서 다행이다.
조직은 없에고 또 만들기 보다 리모델링을 해서 쓸 수 있으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동향이든 지역이든 학교나 친목이든 이익이든 조직화하여 상부상조하며 일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결사의 자유이기도 하다.
다만 과도한 이권추구와 경쟁, 신앙을 져버릴 만한 비도덕적 행위만 없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동안 신총련이 부총회장 선거에서 이권에 발목이 잡혀 목적과 명분없이 특정후보의 편에 선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그런 비난을 신총연에게만 하는 것도 잘못이다. 조직대 조직의 경쟁구도에서 신총련이 다른 조직과 경쟁에서 이긴 것이지 상대를 파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공교회의 발전과 진보를 위하여 복무하지 않고 자리나 풀고 이권을 나눈 것이 문제다. 특히 연금재단의 문제에서 김정서 이사장의 후견인 노릇을 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그러고도 서울장신 총동문회에 축하 강사로 초청을 한 것을 보면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다. 교단의 정서를 전혀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 것이다. 그 정도의 끈끈한 우정을 나눈 사이던가?
선의의 경쟁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과 이권에 연류된다면 그 조직은 타락하게 되어 있다. 신앙공동체인 교단의 조직이 신앙과 정의의 토대의 건강성과 개혁을 담보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그런 부분의 비판을 전체로 확대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신총연에 바란다
사실 신총연이 좀더 세련되게 잔략과 전술을 갖고 교단정치에 임했으면 지금 처럼 그렇게 빨리 노출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조직운영에 대한 아마추러리즘을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다행이다. 그들보다 헐씬 음모적인 교권주의자들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신총연은 초기부터 공개적이였으며 인자들이 노출되었다는 면에서 합법적 활동을 한 셈이다. 다만 권력에 집중한 것이 문제었는 데 이 점만 극복하면 된다. 이번에 신총연 회장이 된 한일장신대 정 욱 목사의 인터뷰는 신총연이 어디로 가야할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과거에 메여서 비난하기 보다 미래를 향한 희망을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 남은 이들이라도 과거의 구습과 이권과 결별하고 건강한 조직으로 재생하기 위하여 지역과 노회에서 기여하고 크게는 공교회성을 회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러면 교단에서 다시 쓰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까지 신총연에 대한 갖가지 공식, 비공식 차원의 비판과 문제점이 많이 나왔으니 책임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내부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면 신총련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 개혁자, 선각자가 되려면 몰려다니는 일보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