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교, 교수들 학교 아니다.

                       신학대학교, 교수들 학교 아니다. 

신학교 누가 주인인가? 라는 다소 진부한 질문으로 글을 시작해 본다. 일반대학은 재단과 교직원 학생이라고 본다. 그러나 신학교의 주인은 교단 총회라고 볼 수 있다. 총회가 원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위탁 교육기관으로 지정한 것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교육기관은 국가법으로 정원과 규모를 허가와 감독을 받는 다는 의미에서 보면 법적인 책임이 있는 법인 이사회와 교직원 학생들이 존재하지만 신학교의 주인은 절대적으로 교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학대학의 교수나 그 부인들은 교단의 유수한 지도자들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교사이며 성직자라는 위치 때문이다. 학문만이 아니라 신앙과 학문의 멘토로 학생들로는 거역할 수없는 자리다. 그외에도 교수가되는 구조때문인데 원하는 학교에서 교수를 하려면 우선은 강사자리나 강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강의를 주는 사람은 이사회나 총장, 동문회가 아니라 바로 담당교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이 원하는 학과의 교수로 지원하려면 전공 학회에서 활동해야 하며 선임 교수들과 주종관계를 마다하지 않아야 하며 부역을 해야 한다. 학연이나 지연도 한 몫을 한다. 이런 것 없이 신임교수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고 볼 수 있다.

문제 제기는 좋으나 사람잡는 식은 문제
최근 우리교단 신학교 교수들과 신학교의 정체성에 대하여 비판적인 기시가 나오고 있다. 발단은 부산장신대 탁지일 교수의 논문 분석과 비판에서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장신대등 교단산하 신학대학 교수들의 학위와 관련하여 과연 우리교단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학문적 성과와 정체성을 갖았느냐? 는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그동안 한번 교수가 되고 나면 사고를 치지 않는 한 평생을 안정적인 자리에서 고급공무원 처럼 정년을 보장받았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겨우 교수들의 출신학교 정도나 공개되던 것에서 학위논문과 내용까지도 공개되는 시대다. 이런 것을 공개하는 것은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비판부터 하기 위한 것은 안된다. 

교수들도 이제는 성역화된 자기들의 학문세계에서 나와서 대중들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정직하게 자신의 전공과 학위논문도 공개해야 한다고 본다. 학생들에게나 교회, 학회에서도 학문적으로 봉사하고 기여해야 한다. 돈되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고액연봉자면서도 주일에 대형교회 파트알바에 강연이나 설교등 이삼중수입으로 인컴을 즐기는 데 이에 대한 반감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서구신학의존에서 벗어나야
외국유학 동기는 잘알려지다 시피 거의가 출세가 목적이다. 공부하다가 보니 박사되었다는 외국사람과 달리 어떻게 하든 지 좋은 학교 간판 따고 계층상승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와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선교사에게 아첨하고 뒷다리 붙잡고 간 1세대들부터 최근 금수저들의 자비유학에 알바형까지 거의가 그렇다.

그러니 사람대하기를 하나같이 게으른 것들, 공부못하는 것들. 학위없는 것들에 대하여 학문적 교만과 우월의식이 충만한 것이다. 성공자들에게 있는 공통점은 고고하고 개인적이고 출세지향적이다. 서구생활로 민주적이고 점잖고 신사적인 것 같지만 매우 이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성격이 형성된다.

우리 교단 산하 교수들은 거의가 미국의 대학출신들인데 그중에서도 하바드나 예일대 출신은 없다. 프린스턴이나 시카고는 있다. 이 대학들을 다른 대학들과 단순 비교 하는 것이 무리지만 영어는 기본이지만 히브리어나 라틴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입학도 못한다는 것은 잘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영어도 쩔쩔메는 데 현대 개혁교회 신학의 원전은 독일어이고 장로교 창시자 칼빈의 초기 저작은 불어로 되어 있다. 겉할기식 공부하다가 오는 거다. 독일어권의 경우도 우리와는 다른 학문적 풍토이기에 우리처럼 교단의 통제 아래 있는 장로교단 목회자 위탁기관의 교원으로 적합한 학문과 주제를 연구했는지는 모르겠다.

미국의 유명신학대학들이 신학의 다양성이나 종합성은 특색이 있지만 어느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그 학교의 명망성을 다 갖는 것도 아니다. 과거나 지금도 박사 논문은 모두 학술진흥원에 등록을 한다. 그러나 그것을 분석하고 볼 수 있는 능력이 대중에게는 아직 없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특정 교수까대기나 표적과 폭로성 기사는 주의해야 한다. 그동안 폐쇄적인 것들이 공론화하는 차원에서 일정한 자극과 도전 정도가 되어야지 사람 잡자고 하는 것은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러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로 장로교단의 신학교 교수들이라면 출신학교에 상관없이 연구한 주제와 논문들의 상관성은 한번 검증되야 한다  본다. 

연구는 학문적 중립성 보장해야
그러나 나는 연구자가 무슨 대목을 연구했느냐?는 것은 크게 탓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얼마나 진지하게 학문적 접근을 하고 그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자기 논문제목이나 연구 분야를 숨기고 있는 이들이 많다. 논문은 지도교수와 자기만 아는 것을 쓴 사람이 많다. 한일장신대 구춘서 총장이 “민중신학” 분야를 썼는데 귀국후에는 자기가 전공한 것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문제다.

장신대도 그렇고 대부분은 장로교를 표방하는 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이 적은 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학위하기 편한 곳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한 대학운영은 우리나라만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미국의 신학대학의 박사 과정을 유지하는 것은 여성과 흑인, 아시아인종 특히 한국인이 절대 다수인 것이다.

독일의 국립대학, 일반대학교, 특정 교파가 세운 대학교, 초교파대학, 연합신학교, 루터파 신학교들로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대학들이다. 그러다 보니 독일의 경우 장로교 계통의 신학을 공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교단의 신학과는 상관없는 학위를 한 분들을 뽑을 수 없다.

우리교단의 경우 넓게는 개혁교회의 전통을 갖은 미국식 장로교단이다. 그러나 정작 장로교단 신학교에서 공부한 분들은 찾기 쉽지 않다. 외국에서의 공부는 시간과 돈의 싸움이라 하루라도 빨리 학위를 마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본 토인이나 여유있는 사람처럼 무한정 하고 싶은 공부만 하고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아무래도 학위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전공따로 학위따로 가르치는 것 따로다. 자신가 배우고 쓴 논문이나 분야를 더 연구발전 시키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교단신학의 정체성에 기여하지도 못하고 그져 강의나 하는 교수들이 한둘이 아니다.

교회부흥은 외국신학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누가 지적한 대로 지금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교회나 목회자들은 외국 수입신학의 산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올다.  그들의 풍성한 설교의 주제나 분야는 한국적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교수들이 한국의 설교가 목회자들을 연구해야 한다.

주기철의 순교신학, 손양원의 사랑신학, 한경직의 봉사신학, 나겸일의 부흥신학, 김삼환의 머슴신학, 김진홍의 두레신학이 이름은 소박해 보여도 이들의 교회와 신학이 한국신학를 대표하는 신학들이 되야 한다는 것이다.

강단신학으로만은 한국적 신학이 나오지 못한다. 적당한 강의와 강연, 저술만 있고 굿은 일은 비정규직 강사에게 던져주는 조직문화로는 안된다. 그런데 여전히 신학교 교수들은 케케묵은 외국 신학자들의 이름과 이론을 들먹거린다. 이제는 루터나 칼빈, 바르트와 불트만, 몰트만을 가르칠게 아니다. 이제 100년의 신학이면 한국의 칼빈이나 얀 후스, 칼바르트, 몰트만이 될 생각은 없는 가이다.

한국의 대형교회 성장의 배후에는  서구의 신학사상을 갖고 된 예는 없다는 것이다. 경동교회 강원룡 목사, 새문안의 강신명 목사, 충현과 광성의 김창인 목사, 명성의 김삼환 목사, 순복음의 조용기 목사나 민족복음화운동의 신현균 목사나 이천석 목사도 부흥성장배경이면에는 신학이 아닌 헌신과 눈물과 기도와 열정이 기초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복음의 조용기 목사를 제외하고는 이들 목회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모두 장로교신학의 정체성이 있었다. 장로교풍의 교리신학과 영성과 당회정치가 가미될 때 위대한 역사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수들도 대형교회에 적을 두고 있다 대학교회가 없으니 채플실은 돈 받고 인근교회에 임대해주고 있다. 전직 총장을 지낸 김명용, 노영상 교수나 김도일 최윤배 교수은 모두 명성교회에 나간다.

김삼환 목사의 신학은 몰트만이나 칼빈, 바르트의 신학이 아니라 머슴신학이라고 한다. 청계천 광장에서부터 두레공동체를 이룩한 김진홍 목사의 신학은 두레신학이다. 그들은 신학은 이론은 미약했지만 목양과 넓은 시야의 실천을 통해 살아있는 신학을 만들어 냈다. 왜 교회건물과 예전, 찬양은 토착화를 허용하면서도 신학만은 여전히 서구신학 따라잡기인가?

왜 신학자들이 한국적인 신학에 도전하지 못하는 가? 목회현장은 실천신학으로 우리민족과 민중의 삶을 반영한 한국적 설교들로 평가받는 데 신학만 외국학자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그런면에서 지금 각 신학교에서 나오는 목사후보생들의 정체성를 보면 역동성과 영성도, 헌신도 없다는 비판이다. 졸업생들이 고 이상양과 같이 망원동으로 인명진 처럼 산업현장으로 임인수 처럼 농촌으로 최일도 처럼 청량리 길거리로 가려는 이들은 없는 것은 사실이다.

제일 낫다는 장신대만 해도 거의 단골매뉴로 90이 다된 몰트만 박사를 해걸러서 초청하고 칼바르트나 칼빈만 가르치지 다양한 신학의 스팩트럼을 열어주지 못하고 있다. 학문의 다양성으로 볼때 여러나라에서 다양한 학문은 필요하지만 논문통과하기 좋은 곳에서 공부하고도 여전히 폼을 잡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성서신학이 퇴조하고 실천신학(상담학이나 설교학등)이 인기종목이 되면서 부터 신학의 역동성은 상실된다. 설교학의 방법론은 창조적이고 야성적인 설교가를 길드렸고 조직신학은 신학적 혼란을 더 가져왔고 예배학의 복잡한 예전 도입은 감동과 감화의 체험을 방해하고 역사신학은 교회의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문제여에 사건연대기 외우기에 메달린다는 비판이다.

 WCC와 동성애 문제
현재 우리교단 헌법엔 WCC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WCC는 세계교회와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전통있는 조직이다. 창립시 헌장과 시대별로 우리 교단이 추구하는 에큐메니칼신학의 전통위에 서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준 미국장로교회나 영국 호주 카나다 독일이나 스위스의 교회들 모두 이러한 에큐메니칼신학에 복무하는 형제들이다. 개혁교회들과 다른 교파교회들과의 복음안에서의 일치운동은 WCC 설립에 기초가 되었던 신학이다.

그런면에서 우리 교단이 WCC의 신학과 선언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지만 큰 틀에서 세계교회의 형제로 연대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과 어긋나지 않다. 동성애 문제도 이미 서구교회에서는 논쟁을 끝내고 국가와 인권의 측면에서 논의를 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적 상황이라는 특수성은 있으나 이 문제는 일방적인 정죄나 비판만으로 갈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바로 이런 문제들을 신학교 교수들은 연구하고 대안을 내야 할 것이다.

이단문제, 동성애문제 힘이나 반대만으로 풀수 없어 
최근 장신대 신학춘추 사건을 기화로 이를 마치 교수들이 허용하거나 지지하는 것으로 몰아붙히고 교수들 신학 검증을 한다는 일부 목회자 단체들도 있는 데 이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자기 강단이나 잘지키기를 바란다.

배우는 학생들이 다양한 신학적 흐름을 연구하고 거기서 우리교단의 신학의 정수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금지하므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노출함으로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고 본다. 교회의 몰락은 동성애 문제가 아니라 세속주의와 개교회주의 인본주의라는 것은 이미 답이 나와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목회자들중에는 우리교단 신학교 출신이 아닌 타교단에서 오랜동안 신앙생활을 해왔거나 공부한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교단의 정서는 분명히 다르다. 그래서 교단을 옮기는 데 교단정체성을 위하여 청목과정을 거치게 하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최ㅇ ㅇ 목사, 이종ㅇ 목사, 이ㅇ장 목사, 박ㅇ철목사 등은 모두 근본주의 신학을 기초로한 보수교단의 목사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우리 총회 신학교육부는 앞으로 교단 내의 인력풀을 위하여 박사학위자들의 학교와 학위논문을 모두 데이터베이스화 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앞으로 신학교 채용과정에서는 교수들의 박사학위와 연구논문도 개혁신학이나 한국교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 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총회 신학교육부도 앞으로 교수 임용에 있어서 반드시 전공과 연구논문에 대한 리뷰도 하여 교단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일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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