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은 서구 식민정책의 산물

아랍 기독교인들에 대한 탄압은 서구 식민정책의 산물

수세기 동안 지속된 평화의 공존을 깨뜨린 그들만의 “해방”

/ 스테판 주네스 (Stephen Zunes, 샌 프란시스코 대학 정치학 교수)

1991년 1월 둘째 주에 나는 이라크 바그다드에 있는 대성당에 있었다. “사막의 폭풍”이라고 이름 붙여진 미국의 대규모 공습을 바로 앞두고 사랑하는 이들의 안전을 기도하며 봉헌된 초들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 한 동료가 신부님에게 전쟁이 시작되면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 물었다. 신부님은 “교회는 오직 한 쪽, 약자의 편에만 설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때 신부님의 말이 실현된 것인지, 20년이 지난 지금 이라크의 기독교인들은 정말로 가장 소외된 약자가 되었다.

그 당시 이라크에는 약 1백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정부에 반하는 사람은 누구나 탄압의 대상이 되던 시절이었지만, 사담 후세인 정권은 완전한 세속 정부였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박해의 두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기독교인들은 외교부장관과 부대통령 자리를 맡는 등 사담 후세인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 8월 15일, 이라크 키르쿠크에서 폭탄 공격을 받은 성 에프렘 시리아 그리스정교회 예배당을 주민들이 둘러보고 있다 (CNS/Reuters/Ako Rasheed)

하지만 미국의 점령으로 인해 세속 정부가 무너진 후 시아파 무슬림들이 이끄는 연합정부가 구성되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니파 무슬림 중 일부가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 공동체 중 하나였던 이라크의 기독교 공동체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미국의 침공과 점령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독교 디아스포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사실 미국의 침공이 있기 전 이라크에서는 쿠르드 자치구의 아주 작은 동네 몇 곳을 제외하면 알카에다 조직의 활동이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를 “해방”시킨 후 알카에다는 기독교인 수백 명을 학살하는 등 큰 위협이 되고 있다. 2010년 10월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던 교인들이 공격을 받아 60명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외세의 이라크 점령이 바로 이러한 종류의 극단주의적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하지만 힐러리 클린턴이나 조 바이든, 존 케리 등과 같은 주요 민주당 인사들의 지지를 받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전쟁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고 미국의 점령은 이라크 내 다양한 민족과 종교 사이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우파들은 이슬람 신앙을 악마화하고 자신들의 정책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랍 기독교인들의 상황을 이용해왔다. 지금까지 아랍의 기독교인들이 억압을 당하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 원인이 바로 자신들의 정책 때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작년 이집트에서 친미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끌어내린 비폭력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 때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은 함께 시위 행진을 벌였다. 무바라크 정권은 통치 시기 동안 주로 콥트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벌어졌던 분리주의 폭력 갈등을 부추겨왔었다. (이집트의 콥트 기독교 인구는 약 6백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9%를 차지, 무슬림 인구는 전체의 90%) 하지만 불행히도 민주화 시위 이후 등장한 군사정부도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으며, 보수적인 이슬람주의자들에 붙어서 이전 정부와 똑같은 분리통치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역시 미국이 든든하게 뒤를 봐주고 있는 사우디 정권은 기독교인들의 권리를 부정하며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조차 금지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기독교인들도, 그들의 무슬림 형제자매들과 함께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크게 고통 받아왔다. 그들 다수는 고향을 떠나 망명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미국은 기독교 성지 여러 곳이 포함되어 있는 동 예루살렘 점령지와 서안 지구에서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정착촌 건설을 중단시키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억압 통치를 펼치는 동시에 인구의 약 10%에 불과한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소수 종교인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시리아 정부는 분리통치 정책을 펴면서, 정권의 몰락은 강경노선의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에게 권력을 넘기는 일이며 그들이 권력을 잡으면 기독교인들을 탄압하게 될 것이라고 기독교인들을 설득시켰다. 그 결과 시리아 기독교인들은 아사드 정부의 강력한 지지자가 되었다.

 

   
▲ 1월 9일,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있는 성십자가 성당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 희생자 추모미사

한 때 시리아 전역에 걸쳐 벌어졌던 비폭력 민주화 시위는 일부 지역에서 게릴라 전투로 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친 정부측에서는 더 많은 극단주의자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민주화 시위가 무력 전투로 전환될수록 무관용의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결국 싸움이 끝난 뒤에는 패자에 대한 피 바람을 불러올 것이다. 이전 정부를 지지했던 기독교인들이 그 희생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시리아 정부군의 잔인한 폭력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외국군대의 개입에 심각한 회의를 가져야만 하는 이유이다. 비폭력적인 수단을 통해 독재자를 무너뜨린 이들은 무력을 사용한 경우와 비교했을 때 상대방에 대해 더욱 관용적인 태도를 갖는다.

시리아 정부는 비록 세속주의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 정권 최고위직과 군 수뇌부는 이슬람 시아파의 소수분파인 알라위 무슬림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시리아의 알라위 무슬림들은 기독교도 인구보다 조금 더 많을 정도로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그런 그들이 군부를 장악하게 된 계기는 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알라위 무슬림들은 프랑스 식민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그 대가로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은 알라위 무슬림들을 주요 권력 요직에 대거 중용한 것이다. 그리고 알라위 무슬림들은 그렇게 얻은 권력과 특권을 토대로 기독교도들을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오늘날 알라위 무슬림들과 기독교도들을 모두 잠재적인 위험에 놓이게 만든 셈이 되었다.

아랍 지역에서 발생하는 “분리” 갈등, 특히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갈등의 대부분이 비교적 최근의 현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주 짧은 몇몇 시기를 제외하면 수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은 무슬림 이웃들과 평화롭게 공존해왔다. 실제로 무슬림 세계는 유럽의 기독교인들보다 소수 종교에 훨씬 개방적이었다.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아브라함의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는 점 때문에 “성서의 사람들”(people of the Book)로 받아들였다. “알라”는 아랍어로 신을 뜻하고, 아랍어를 사용하는 기독교 교회와 이슬람 사원 양쪽 모두에서 사용된다.

그러나 한세기 전 중동지역에 현대 서구의 제국주의가 도래하면서,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 이러한 관용의 전통이 심하게 약화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아랍 기독교인들이 처하게 된 상황은 이슬람 전통에서 비롯된 무관용 때문이 아니라 미국과 같은 서구 권력의 직접적인 산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기사 원문 출처/ National Catholic Reporter 2012-4-2

스테판 주네스 (Stephen Zunes, 샌 프란시스코 대학 정치학 교수)

번역/ 한수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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